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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난민 한국의 난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인터뷰] ‘서유럽 이민 정책’ 전문가 한경준 미국 테네시주립대 교수
[333호] 2018년 07월 30일 (월) 10:49:03 한경준 poemgene@goscon.co.kr
   
▲ 미국 테네시주립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한경준 교수. 그는 서유럽의 이민·난민 이슈와 극우 정당의 연관성, 소득불평등을 주제로 15년 넘게 연구해온 ‘서유럽 이민 정책’ 전문 연구자이다.  ⓒ정민호

국내에서 난민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는 서유럽의 난민 정책 ‘후퇴’ 움직임이다.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들도 난민 수용을 줄이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는데, 한국이 왜 난민을 받으려 하느냐는 논리다. 수십에서 수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과 ‘500명’도 버거워 하는 한국을 비교한다는 것부터 넌센스다.

서유럽은 우리보다 수십 년 먼저, 천 배가 훨씬 넘는 규모의 난민 대이주를 겪었다. 그들의 오랜 경험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과연 서유럽의 난민·이주 정책은 후퇴하고 있는지, 그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한국은 그들의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등 하나하나 따져보고자, 미국 테네시주립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한경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서유럽의 이민·난민 이슈와 극우 정당의 연관성, 소득불평등을 주제로 15년 넘게 연구해온 ‘서유럽 이민 정책’ 전문 연구자이다. 올여름 서울대 대학원에서 특강을 맡아 잠시 한국을 방문한 차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코스타 강사로도 활동한 한 교수는 ‘세계 시민’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난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조근조근 핵심을 꿰뚫는 말을 쏟아냈다.

― 유럽의 복지나 정책에 대한 언급은 늘어나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유럽 관련 전공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서유럽을 택해 연구하게 된 동기가 있었나?
외국의 정치 사회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 사회에 여러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공부와 연구를 하고 싶었다. 특히 앞으로 우리나라가 걸어갈 그 길을,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먼저 걸어간 서유럽의 정치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의 앞날에 대한 시사점과 교훈을 얻고 싶었다.

― 서유럽은 오래전부터 난민·이민 정책에서 시행착오를 겪어 왔기에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애초 원고를 의뢰했다가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난민 관련한 기초적인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짚어보기 위해서다. 난민의 정의부터 풀어달라.
유엔난민기구 사이트에 들어가면, ‘난민’이라고 통칭하는 사람들이 세부적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넓게 보면 자기 집을 떠나 타국에 머무는 이도 난민인데, 보통은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박해와 전쟁, 폭력으로 인해 자기 나라를 떠난 사람들’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용어가 엄격하게 분리된다. 자국을 벗어나 난민 신청을 하고 기다릴 때까지를 ‘asylum seeker’(난민 신청자)라고 하고, 난민 승인이 되면 그때 ‘refugee’(난민)라고 한다. 사실 난민은 유럽보다 아프리카에 훨씬 많다. 1994년 르완다 사태 때 수백만 명이 자기 집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서구중심적인 언론 시장에서 피부로 와닿는 문제가 아니기에 ‘사태’나 ‘위기’로 분류되지 않은 것뿐이다.

― 최근 국내에서는 ‘선진국 독일도 난민 정책이 후퇴하고 있는데 한국이 왜 난민을 받으려 하느냐’는 논리가 주요 언론을 통해 전해진다. 이런 주장이 ‘난민 반대’의 근거로 활용되는데, 서유럽 이민 정책 연구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독일의 경우를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메르켈 정부의 이민 정책이 후퇴한 이유는, 그가 속한 기독민주연합(Christian Democratic Union)의 기본 입장 때문이 아니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다른 정당들과 절충을 위해서였다. 이번 같은 경우는 기독사회연합(Christian Social Union)에서 워낙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국내 정치 상황에 따른 판단으로 보인다. 따라서 난민 정책에 대한 기본 입장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난민 수용을 제한하기로 한 것은 맞지만 그 ‘제한’이라는 것도 일방적인 반대와는 거리가 멀다. 독일에는 이미 난민 100만여 명이 있다. 그들이 백 보 후퇴해 봐야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서유럽은 난민 승인 비율이 높을 때는 90%까지 이른 적도 있다. 한국은 고작 4% 정도다. 서유럽 상황과 우리 상황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 서유럽에 거주하는 난민 수 (한경준 제공)

― 서유럽에 난민이 발생한 배경이 궁금하다.
서유럽에서 난민 문제가 정치적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냉전 시대에는 어떤 형태로든 국경을 넘는 이주가 자유롭지 않았고, 간혹 자신이 속한 국가의 정치적 문제로 인해 다른 체제로 이주하는 경우에는 이를 받아들이는 국가에서 체제 선전으로 활용될 수 있었기에 오히려 정치적 기회로 여겨졌다. 탈냉전이 지속되면서 국제정치적 불안정 속에 1991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생했다. 이 전쟁으로 1990년대 초반에 매년 수십만 명의 난민이 서유럽으로 유입되었다. 그나마 이 숫자는 ‘난민 신청’을 기준으로 하기에 실제는 이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도 내전 등으로 더 많은 난민이 발생했지만 상대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잦아듦에 따라 난민 수는 줄어들다가 1998년 코소보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다시 늘어났고, 결정적으로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2차 난민 위기’라 불릴 만큼 많은 숫자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 갑자기 수십만 명이 서유럽 국가들로 유입되었다고 했는데, 당시 반응은 어땠나?
대다수 서유럽 국가들이 1951년 체결된 난민 협약 가입국이었기 때문에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어느 정도의 국제법적, 정치적, 그리고 도덕적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수용할 시설, 이들에게 제공할 물질적 지원에 대한 재정적 기반, 이들의 난민 신청을 심사할 행정적 기반, 그리고 무엇보다 대규모로 유입되는 ‘비 서유럽인’에 대한 정서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난민, 더 나아가 외국인에 대한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1990년대 초반부터 서유럽 국가들은 난민 유입 자체를 직접 줄이거나, 이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축소해 간접적으로 감소시키려는 정책들을 집중적으로 도입한다.

―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여론이 악화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약 20년이 지나 2011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2차 난민 위기’가 발생했는데, 그간 여론의 변화가 있었나?
1990년대 서유럽 국가들이 미처 준비되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유입되는 수많은 난민으로 인해 우왕좌왕하며 ‘1차 난민 위기’를 겪었다면, 2010년대의 ‘2차 난민 위기’를 맞이하는 서유럽 국가들 상황은 매우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그 사이 외국인과 다문화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강해졌고, 이러한 여론을 등에 업은 극우 정당 등의 정치세력이 성장했다. 1990년대 이전에는 이주, 외국인, 소수 민족 등은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전혀 아니었으나, 오늘날에는 좌파 정당마저 이러한 여론을 의식해야 할 정도로 주요한 이슈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동안 난민과 이주 문제는 통제하기가 힘들다는 좌절감이 쌓였고, 이러한 좌절감은 이주민, 외국인,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로 표출되었다. 이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국가로부터 온 난민과 이주민을 전혀 받아들이지 말자는 극단적인 정책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30년 동안 난민과 이주의 현상은 자유/평등, 관용/비차별이라는 다원주의 민주주의의 원칙과 외국인 혐오증, 국경 통제에 대한 지지,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경제·사회적 지원 축소에 대한 요구로 이어져 갈등과 긴장을 야기했다. 이런 분위기가 중도좌파 정당들뿐 아니라 중도우파 정당에도 간과할 수 없는 딜레마를 안겨준 게 사실이다.

   
▲ 2015년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리는 이주민들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 여론 악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인가?
난민 혹은 외국인 유입에 대해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우려는 세 가지다. 첫째, 외국인이 자국민 일자리를 빼앗고, 사회보장 등 경제적 혜택을 누리면서 자국민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 둘째, 범죄나 테러의 위협이 늘어난다. 셋째, 언어와 종교 등 사회의 핵심적이고 전통적인 문화가 훼손된다.

― 실제로 그런가?
경제적인 부분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수많은 실증적 연구 결과는 외국인의 유입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유의미할 정도로 크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대다수 국가에서는 외국인 노동시장이 틈새시장처럼 존재한다. 이 노동시장은 자국민은 기피하여 외국인들끼리 경쟁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따라서 새로운 해외 노동력이 유입되었을 때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자국민이 아니라 이미 거주하던 외국인들이다. 사회보장 등으로 인한 재정 영향에 있어서도, 외국인들이 혜택을 누리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령화로 인해 축소되고 있는 노동 연령층을 젊은 이주민들이 채워주기 때문에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국가 재정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이 때문에 빠른 속도의 고령화를 겪고 있는 몇몇 국가들에서는 노동력 보충을 위해 이주민 영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정책적 제안들도 종종 나오고 있다. 외국인 유입 영향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 수준은 매우 미미하다는 게 대다수 실증적 연구 결과다.

― 범죄나 테러 위협은 어떤가?
역시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뒷받침되지는 않았다. 많은 경우 이주민들이 경제적 사회적 불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범죄와 테러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으나, 반대로 종교단체나 이주민 연합 등 이주민들 사이에 형성된 연결망, 또한 범죄나 테러에 연루되었을 때 자신과 가족의 지위에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우려 등이 오히려 범죄와 테러 가담을 막는 사회적 심리적 기제로 작동한다. 쉽게 말해, 이주민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 치지 말아야지, 문제 일으키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더 조심조심 산다는 거다. 이건 나 자신도 (미국에서) 이주민이기 때문에 똑같이 느끼는 심리다. 실제 경제적 안정성이 확보된다면, 이주민 혹은 외국인 범죄율은 자국민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연구들도 최근에 나오기 시작했다.

―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난민을 반대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실증 연구와 상관없이 서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이민자들이 경제적 사회적 위협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런 ‘믿음’을 합리적이고도 타당한 실증적 근거로 깨뜨려줄 수는 있지만, 이민자들로 인한 부정적인 경제적 사회적 위협에 대한 주장이 직관적으로 쉽게 흡수되고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와 태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더 심각한 측면은 사실 사람들의 문화적 우려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도만 다를 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다른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호불호에 대해서는 실증적 타당성도 무의미하고 가능하지도 않아서 더 심각한 문제다.
 
― ‘문화적 우려’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이른바 ‘토착주의’(nativism)로 대표될 수 있다. 토착주의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에 대한 우월감과 그 문화가 외래문화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는 두려움에 기반을 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을 강조하면서 우리만의 문화를 매우 자랑스러워하게끔 어릴 때부터 가르쳐 왔다. 이 ‘단일민족 역사’는 토착주의의 자연스러운 토양을 제공하면서, 다문화주의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는 데는 어려움을 준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원초적 개념이 아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산업화된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근대국가에서 중앙집권적 국가 구조를 형성하고, 계급적 균열을 봉합하고, 대규모 노동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게 많은 정치사회학자와 역사학자의 공통된 결론이다. 그들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표현하거나(Benedict Anderson), ‘민족이 민족주의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민족을 창조해내었다’(Hans-Ulrich Wehler)라고까지 말한다. ‘민족’이라는 개념에는 동일한 정치사회적 공동체를 구성하며 평등한 정치시민적 권리를 공유한다는 근대론적 측면도 존재하지만, 점점 친족의 확대 개념으로서 혈연적, 언어적, 역사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원초적 측면만 강조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난민 이슈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 그럼에도 서유럽은 타문화에 열려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난민’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나 보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서유럽은 미국 등으로 이민을 오히려 내보내는 입장이었고, 1950-60년대에는 경제 재건을 위한 노동력을 위해 많은 이민을 받아들였다. 식민 역사의 가해자로서 식민지였던 나라(튀니지, 알제리, 인도 등)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이민 권한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오일쇼크가 오면서 경기가 안 좋아지고 외국인 노동자가 더는 필요 없으니까 이주민이 들어오는 문을 좁히기 시작한 거다. 그런데 1990년대 1차 난민 위기 때부터는 통제가 되지 않았다. 원하지 않았는데 밀려드는 상황에 처했는데, 도덕적 부담이 있어서 안 받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더군다나 밀려드는 타국인들과의 역사적, 문화적 접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서유럽 사람 입장에서 스웨덴 사람이나 영국 사람이 들어오는 건 큰 문제가 안 된다. 독일-터키, 프랑스-북아프리카, 영국-인도 등 인종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역사·문화적으로 접점이 있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았다. 반면에 아무런 접점이 없는 ‘비 서유럽인’이 갑자기 많이 들어오는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정치 이슈, 선거 이슈가 된 것이다.

   
▲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교회라 해도 한국교회처럼 이슬람 혐오 발언을 쏟아내진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보수적인 기독교 지역에서도 난민과 이주민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거는 교회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민호

― 비 서유럽인의 유입이 정치 이슈가 된 것은 극우 정당이 조장한 것인가?
1990년대 이전보다는, 자국민들 사이에서 반이민정서가 높아지니까 극우 정당들이 난민·이민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극우 정당이 여론을 안 좋게 조장한 측면도 있겠지만,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반이민정서가 높아질수록 (극우 정당) 지지율이 높아지고, 그럴수록 반이민정서가 강해지는 것이다. 극우 정당들이 이민 이슈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강조하면서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럼에도 그런 정당들이 연합정부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정당이 거부한 면도 있고, 암묵적으로 다른 정당들도 그런 극우 정당과는 정치적 논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정부 바깥에서도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극우 정당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중도우파, 중도좌파 정당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전에는 이민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려했으나 이제는 극우 정당의 지지율 증가와 변화하는 여론 때문에 이민 문제를 정치 이슈로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식이다. 또한 전에는 이민 문제에 대해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던 정당들도 이러한 정치적 우려 때문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극우 정당들은 정부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 셈이다. 실질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쳐 이주와 다문화주의, 소수민족 보호 등에 대한 정책이 수정됐다.

― 소극적이라곤 하지만 이미 난민을 수십만에서 백만 명 이상 받은 나라들 아닌가.
그렇다. 한편으로는 극우 정당처럼 난민 정책에 제한을 가하려는 정치적 힘도 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온 평등과 다원주의를 지켜내려는 정치적 관성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독일의 경우엔 1990년대 초 헌법 자체가 난민들에게 난민 지위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어서 정부가 난민 신청을 거부하기에 엄청난 정치적, 법적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결국 1993년에 헌법을 수정한다. 또한 이러한 평등과 다원주의, 차별 금지를 지켜내려는 정치적, 사상적 전통이 유럽 사법체계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수많은 반이민 정책들이 법원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했다. 서유럽 국가들의 전반적인 이민 정책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승인하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거주하는 이주민 삶을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서유럽에서 중도우파 정당들은 이 두 가지 정책 모두에 제한을 가하려고 하지만 많은 중도좌파 정당들은 일종의 타협책으로 이주민과 난민의 숫자를 제한하고 축소하더라도 후자에 대한 정책만큼은 지켜내려 한다. 또한 이미 거주하고 있는 많은 이주민과 그의 후손들, 그리고 소수민족 사람들이 정치적 세력을 구성해서, 특히 중도좌파 정당들이 개방적인 이민 정책을 유지하도록 정치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다.

― 한국에서 난민 이슈가 불거지리라고 예상했나?
소위 ‘난민 문제’라고 말할 때는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엄청나게 많은 수의 난민이 몰려드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지정학적 위치가 결정적인 요소인데, 비행기를 통해서가 아니면 난민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는 어렵다. 물론 유럽에 비하면 그 수가 매우 적지만, 난민 500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리라고는 예상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난민이 들어온다면, 지금같은 혐오 정서가 생길 거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허상 아래서 오래 살아와서 타 문화권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외국인을 볼 때도 미국인, 유럽인, 동남아, 조선족으로 구분하며 그에 따라 차등 대우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혐오 정서는 충분히 예상했다.

― 정부도 당황한 것 같은데, 한국은 어떤 난민 정책을 펴나가야 하나?
공공 정책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적절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유입되는 난민 모두를 수용하고, 그들 모두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지원하는 게 무조건 옳은 정책은 아니다. 그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터키에는 350만 명의 난민이 있다는데,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극단적으로 다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것보다, 제한적으로 받더라도 난민에게 인간으로서 살아갈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난민 유입을 원천 차단하면 복잡하게 생각 안 해도 되겠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도 엄연히 난민 협약 가입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해야 하기에, 우리만 문 닫고 살 수는 없다. 문을 열어두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지에 대해 고민하며 제도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1990년대 서유럽에서는 난민 수용과 지원의 부담이 한 국가 안에서도 특정 지역에 편중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점에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의 협력과 조정도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는 접근성 측면에서는 섬나라와 마찬가지라서 난민 유입의 숫자를 조절하는 부분에서는 현실적 어려움이 없다. 따라서 허용된 범위의 난민이 유입될 때, 이들의 난민 신청을 처리할 제도적, 법적, 인원적 기반을 확충하고, 이들에 대한 경제적(거주 시설, 의료, 취업 등), 사회적(교육, 언어, 통합 등) 지원에 대한 물질적, 제도적 기반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난민에 대한 반감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그에 맞는 제도를 먼저 시작하고 긴 호흡으로 대화하며 절충하는 게 중요할 텐데, 정치권이든 여론이든 지금과 같은 관심이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정책이나 제도 마련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은 난민들과 난민 사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무엇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 외국인, 이방인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이 좀 유별난 것 같기도 하다. 미국이나 서유럽과 비교해 어떤가?
역사적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분단 사회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미국이나 서구 백인의 기준에 기울어진 채 세계를 보는 경향이 있다. 제주도에 온 난민들이 예멘인이 아니라 미국 백인이었어도 지금처럼 반대할까? 관련 기사 댓글을 보니 이슬람 혐오 정서가 크더라. 서유럽이 무슬림에 대한 정서가 나쁘다고 해도, 프랑스는 인구의 10% 이상이 무슬림인 상황에서 나오는 얘기다. 내가 사는 곳도 미국의 ‘바이블 벨트’라 불리는 매우 보수적인 지역인데, 난민 어린이들을 위한 캠프가 주기적으로 열린다. 나도 얼마 전에 내가 다니는 교회의 중고등부 학생들을 데리고 동네의 보수 교회가 주최하는 난민 어린이 캠프에 자원봉사로 다녀왔다. 아무리 난민을 제한하려는 추세라지만, 미국 사회와 서유럽 사회는 기본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고 돕는 문화다.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교회라 해도 한국교회처럼 이슬람 혐오 발언을 쏟아내진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보수적인 기독교 지역에서도 난민과 이주민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거는 교회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 엉뚱한 질문일지 모르나, 서유럽 극우 정당과 한국교회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보는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약한 것 같다. 현대 정치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오늘날 다원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향한 가장 위험한 공격이 바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권위주의’라고 생각한다. 여론조사에서도 ‘민주적인 절차보다는 강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극우 정당이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면서 결국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외치는 주장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특히 미국 역사 맥락에서 여러 번 피해자가 되었던 농촌이나 중소도시 공장노동자에게 설득력 있게 들리는 말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약자에 우선적 관심을 보이며, 서로 동의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강조하고 있기에,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드는 권위주의적 주장과 정치 문화에 대해 고민을 안 할 수 없다.

― 이 즈음 다수의 한국교회는 난민에 관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두려움과 공포의 근거가 실증적인 측면에서 근거가 있는지 구분해야 한다. 근거가 없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근거가 있으면 지혜로운 대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세금 부담도 생길 수 있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테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거 있는 두려움이라 하더라도, 기독교인이라면 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 ‘기독교인으로서’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문제’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초대교회 때도 일종의 ‘난민’ 문제를 피해갈 수 없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민족적으로는 같은 유대인이었으나 문화적으로는 이방인인 헬라파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중 많은 이들이 본토 유대 땅에 묻히기 위해 노년에 이주(역이민)하여 예루살렘으로 왔고, 남편이 먼저 죽어 과부가 된 여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당연히 경제적으로 의존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을 텐데, 유대파 유대인이 다수였던 초대교회는 소수였던 헬라파 유대인들의 구제에 힘써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들을 구제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두 집단 사이에 오해와 불신, 갈등이 생겼다(행 6장). 이때 초대교회는 두 가지 방식으로 반응하며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첫째는 오히려 헬라파 유대인들을 집사로 세우는 파격적인 대응으로 구제 사역이 소홀히 되지 않게 함과 동시에 구제가 공정하게 배분되도록 한다. 둘째는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 알 수 있듯이,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지중해 지역 헬라파 유대인 교회들로부터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의 교회들을 지원하는 범 교회적 전략을 편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발생한 문제에 대응한 방식은 두려움과 혐오와 편견이 아니라 함께 지혜를 모으는 일이었다. 혐오와 편견으로 문제를 덮으려 하지 않고, 합리적이고도 현실적인 방법으로 대응했다. 만약 두 집단 사이에 혐오가 조장되었다면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 대한 지원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헬라파와 유대파 유대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 혐오와 편견이었다면 헬라파 유대인들을 집사로 세워 구제 사역을 맡길 수도 없었을 것이다.

― 그들도 ‘이방’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않았을 텐데….
이질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교회의 주인인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그런 지혜를 짜내기 직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나.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 기부, 거짓 헌금을 하였다가 혼절해 죽지 않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런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즉 경외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행 5:5, 5:11).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이 ‘가장 작은 자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기준으로 양과 염소로 가르고, 염소가 있는 왼편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신다. 가장 작은 자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않았고, 나그네들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경험한 초대교회 사람들에게 이런 예수님 말씀은 단순히 비유로 다가오지 않았을 거다. 그런 경외함이 있었기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혐오와 편견을 증폭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지혜를 짜낼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는 난민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을 압도하는 듯하다.
기독교인들이 난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우리 이웃을, 나그네를 어떻게 대했는지 다 지켜보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난민을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말이 아니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누구를 더 두려워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자는 거다. 법무부에서도 나서기 시작했고, 올해 안에 난민 심사를 마친다고 하니까 난민 이슈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지금 예멘 난민 신청자 500명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면 좋겠다.

― 사실 이번에 난민을 향한 혐오의 작동 원리는 그동안 사회·경제적 약자나 소수자를 향해 퍼부어지던 혐오 방식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게 바로 구별 짓는 행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식인데, 자주 고민하는 부분이다. 특히 사회학의 사회정체성 이론을 연구하면서 깊이 고민했다. 한 사회집단의 내부 결속력과 그 사회집단이 취하는 외부에 대한 배제성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La Distinction)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 자존감, 존재의 가치를 쌓아가고, 그렇게 내부적으로 장벽을 두르고 외부와는 단절된 그 공간을 감히 ‘공동체’라고 부른다. 상처를 내고 구별하는 난도질은 국가에도 존재하고 사회에도 존재한다. 물론 지역 교회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도 있음을 본다. 아무리 ‘민족 공동체’ ‘가족 같은 모임’ ‘피를 나눈 형제애’ 등 아름다운 수식어를 붙인다 한들 그 결과가 포용과 화해가 아니라면 구별짓기의 한 형태일 뿐이다. 이런 파편화된 ‘공동체’가 종교와 이념 등의 신념으로 덧씌워질 때, 자기기만의 깊이를 더해가며 정체성을 강화한다. 그 결과, 구별짓기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 혐오와 배제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그 정체성으로 다시 타자를 혐오한다. 이 순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신앙의 목표일 것 같은데, 오히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구별짓기에 앞장서는 것 같다.
정체성은 비슷한(같은)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척점에 있으므로 형성되기도 한다. 나도 인종적 편견이 없다고는 말 못한다. 많은 인종이 어울려 사는 LA에서 7년을 보내면서 내게 있는 민족적, 인종적 편견에 대해 겨우 깨달았을 뿐이다. 당시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세워가는 자기 정체성이 과연 그리스도인 정체성에 적합한가, 고민을 많이 했다. 함께 공조하며 살아가야 할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다움’을 꼭 대척점과 대립각을 통해서 다져야 하는 걸까?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고전 15:10)이라고 했다. 그 표현이 자기정체성을 말하려는 건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꽤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내가 지금의 나인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다른 그룹과 다른 사람과 비교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을 비추는 복음 안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구약적 의미에서 보더라도, 한 민족을 택한 것이 그 민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열방을 위한 일 아니었나. 이스라엘도 이스라엘다움을 회복할 때 하나님에게 사용된 것처럼, 우리도 우리다움을 회복해야 다원주의, 다문화주의, 세계시민사회를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구별 지으며 정체성을 강화한 예가 많이 나오지 않나. 이 점이 오늘날 교회의 배제와 혐오를 조장하고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심으로 민족 개념이 강조되는 것 같지만, 신약에서 세례 요한(마 3:9)과 예수님(요 8:39-40)과 바울(갈 3:7, 29; 롬 2:28-29; 9:7)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혈통적인 자손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믿음에서 난 사람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이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즉, 혈통을 나누는 민족이 하나님의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민족’이 되는 것이다. 조상이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상이한 문화적 기반 위에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보편적 교회의 핵심적인 가치와 믿음을 인정하고 공유한다면 누구나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민족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불릴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의 기준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원초적 배경에서, 그 사람이 복음(초대교회) 혹은 헌법(현대 민주주의 국가) 등으로 대표되는 그 사회의 핵심적인 원칙과 가치에 동의하는가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또한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민족이 되는 것과 함께 다른 사람들과의 ‘이웃됨’을 강조하신다.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외국인들에 대해 경제적인 보호(레 23:22)와 법적인 보호(신 27:19)를 강조하시고, 무엇보다 일상의 즐거움에서 그들을 배제하지 말 것(신 16:14)을 강조하셨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율법 전체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셨고, 사마리아인의 예화를 통해서 그러한 이웃 사랑과 이웃됨에는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경계가 필요 없음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들은 혈통적, 종교적 순수성을 훼손하는,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고 함께 지낼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에게 그들은 이웃됨의 가능성이 한껏 열려 있는, 그래서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적어도 나의 견해로는,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내용들이 배제와 혐오, 배타성과 구별짓기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교수님의 신앙 여정이 궁금하다.
미국 가기 전까지 한국의 한 보수적인 대형교회에 다녔다. 그럼에도 당시 대학부 선배들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이들이었고,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기독교 운동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성경도 많이 배우고, 시각을 넓히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기회들을 가질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1992년도는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활발했던 때여서, 교회 안에서 그 운동을 소개하기도 하고 관련 강사를 초대하기도 했다. 교회 안에서 해소되지 않는 갈증은 개인적으로 공부도 하고 바깥을 찾아다니며 풀었다. 그때 〈복음과상황〉도 알게 되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교회 후배들에게 소개하기도 하고…, 그래서 ‘복상’ 생각하면 빚진 마음이 있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면서도 캠퍼스 성경공부 단체의 간사로 활동했고, 코스타에도 매년 참여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 코스타에는 어떻게 참여해왔나?
2005년부터 지금까지 두 번 정도 빼고 계속 참석했다. 내가 몸담은 캠퍼스 선교단체(KBS, Korean Bible Study)가 코스타의 협력단체로서 한 부분을 맡았던 계기로 2009년부터는 스태프로 참여했다. 조장을 섭외하고 교육을 진행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고, 몇 년 전부터는 멘토링도 담당하고 있다. 작년에 처음으로 세미나 강사를 맡았는데, 서유럽의 극우 정당 현상과 트럼프 현상이 접목되는 지점이 있어서 기독교 입장에서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 나그네를 도우면 결국 돌고 돌아 한국에도 세계에도 선한 결과로 돌아올 것 같은데, 이게 너무 이상적인 얘기라는 비판이 있다. 눈에 보이게 증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민자를 방임하는 것과 잘 정착하도록 돕는 것 중 어느 쪽이 그 사회에 장기적으로 좋은 영향을 가져오는지 실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미’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잘 정착되었을 때에 그 사회는 오히려 이주민들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나 범죄 위협 등의 사회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엄연히 입증된 사실이다.

― 서유럽처럼 많은 수도 아니고, 500명 정도로 우리 사회에 이렇게 혐오 정서가 확산된 것을 보면 앞으로라고 해서 낙관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첫걸음을 떼는 것이라 어렵다. 10만 명에서 20만 명 받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보다, 0명에서 500명 받는 첫 단계가 더 어려울 수 있다.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적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현실에서 ‘공존’이란 절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나는 많은 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LA에서 박사과정을 했는데, 학교에서도 관련 문제가 발생했다. 시험을 봐야 하는데 자기네 종교 공휴일이라서 시험을 볼 수 없다는 사람들이 거의 매번 나타나고, 종교 행위 때문에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학생들도 종종 있었다.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늘 논쟁거리가 된다. 다문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한국은 이제 첫발을 떼는 과정이라 반대 목소리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난민에 거부감 갖고 있는 사람들 목소리도 듣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 대화를 위해, 양쪽이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마침 이슈가 된 것이 오히려 대화할 기회 아닌가. 우리 사회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신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행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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