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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호 사람과 상황] 제주의 예멘 난민들, 그리고 그들을 돕는 하현용 떨기나무공동체 목사
[333호] 2018년 07월 30일 (월) 10:34:11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난 6월 1일부터 예멘은 제주도로 무비자 관광이 불가능한 나라에 포함되었다. 저가 항공사인 에어아시아가 작년 12월 이후 운행을 시작한 말레이시아-제주 직항 노선으로 예멘인 561명이 국내 입국해 519명이 난민 신청을 하자 대한민국 법무부가 급작스레 내린 ‘조치’였다. 법무부는 앞서 4월 30일 이후로 예멘인의 제주도 출도를 제한한 바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난민법을 갖춘 나라다. 1992년 난민지위협약에 가입했으며 2012년에는 난민법을 제정했다. 최근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519명의 예멘인들은 자국에서 몇 년째 진행 중인 전쟁 피란민으로, 말레이시아로 우선 입국했다가 난민법이 없어 취업을 비롯한 활동의 제한을 받자 난민법이 있는 대한민국행을 선택한 사례다. 그들이 입국하던 당시 제주출입국·외국인청 난민 업무 담당자는 한 명이었고, 정부 대책은 없다시피 했다. 제주도 내 외국인 원어민 교사들 커뮤니티가 개인 인맥을 동원해 당장 노숙할 처지에 놓인 난민 신청자들의 거주지를 알아봐주고, 몇몇 종교단체와 NGO들을 중심으로 제주예멘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리기 시작했다. (현재는 대책위에 33개 시민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예멘인 500여 명의 난민 신청 소식과 법무부 조치가 보도되자 여론은 들끓었다. 지난 6월 13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난민법과 제주 무사증 입국 폐지 청원이 올라왔고, 71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500명이 아니라 5만 명 이상 입국한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으나,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여론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최근 한국갤럽이 실시한 예멘 출신 난민 신청 수용에 대한 여론조사(전국 성인 1002명 휴대전화 RDD 조사 / 응답률 14% / 표본오차 ±3.1% 포인트, 95% 신뢰도)에 따르면 강제 출국 조치해야 한다는 응답이 20%에 달하고, 가능한 수용 응답이 11%, 최소한 수용 응답이 62%이다. 법무부는 현재 두 명이 추가된 제주출입국·외국인청 난민 심사관 수에서 추가로 네 명을 더 보강해 총 7명을 배치하고, 통역 전문가도 두 명에서 네 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6일 제주도를 찾았다. 온라인이 예멘 난민에 대한 공포 조장과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들썩이던 것과는 사뭇 달리, 제주는 매우 차분한 분위기였다. 며칠 동안 서울 면적(605.21㎢)의 세 배 규모가 넘는 제주도(1,849.02㎢)를 돌아다니면서 500여 명의 예멘인은 물론이고 아랍권 외국인을 길에서 마주치지는 못했다. 심사를 기다리는 난민 신청자들이 생업에 뛰어들어 일하는 지금은 제주 출입국외국인청도 한산했다. 대책위의 노력으로 정부가 예멘인 조기 취업을 승인하고 취업설명회를 두 차례 열었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이날 밤에 만나 짧은 이야기를 나눈 사담(Saddam, 26) 씨도 지금은 중문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그도 말레이시아를 거쳐서 왔다. 2년여 전 예멘에서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머물 때 6개월마다 취업 비자를 신청했지만 허가가 계속 나지 않았다. 사담은 SNS를 통해 한국은 난민법이 갖춰져 있고 제주도로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어 제주도로 입국했다. 현재 말레이시아에서부터 함께 온 두 명의 예멘 친구와 함께 중문 관광단지 인근 숙박업소에 임시로 머물고 있었다. 숙박업소 주인인 강민창(49) 목사는 사담과 친구들이 원래 머물던 숙소가 일터에서 너무 멀다는 사실을 듣고 거처를 제공했다.

강 목사를 통해 만나게 된 사담에게 본국에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가장 먼저 물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영어를 전공한 학생이었다.
“박사까지 계속 공부하고 싶었지만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어요.”

사담은 한국에 와서 처음 2주간은 아무것도 못 하고, 출입국·외국인청을 전전하며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정부가 주최한 취업설명회를 통해 일을 구했다. 처음엔 경험도 없는 어선을 탔다가 8일 만에 해고됐다. 지금은 호텔에서 설거지 일을 하고 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돈 없고 일 없이는 살 수가 없잖아요. 경험은 없지만 처음엔 배 타는 일을 했어요. 8일 만에 선장한테 해고당했지요. 경험 있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됐어요. 지금은 일주일에 3일, 하루에 8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설거지 일을 하고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담 발목에 있는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전쟁 중인 예멘에서 입은 상처였다. 사담이 있던 바로 옆 건물에서 폭탄이 터져 파편이 날아와 다리에 박힌 것이다. 치료가 더 필요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일을 해야 하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네 시간의 수술을 받았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아직도 매일 고통을 느끼고요. 지금은 병원 진료를 받을 상황도 아니고 돈도 없어요. 일해야 해요.”

사담을 비롯한 예멘인들은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한국 사회 여론이 좋지 않은 사실을 알고 있다.
“여론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주변에서도 들었고, SNS를 통해서도 알았어요. ‘가짜 난민’이라고 한다고요. 물론 기분이 좋지 않지만, 우리에게 머물 곳을 준 사람(강 목사)도 있고 정말 감사해요. 그냥 우리가 가짜 난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 전쟁이 계속되는 현실을 봐주면 좋겠어요. 유튜브에서 볼 수 있거든요.”

   
 

이렇게 난민에 대한 거부 반응이 강하리라 예상했느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한국이 난민법이 잘 되어 있다고 들었고,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한국인들이 우리를 ‘뭐? 무슬림이라고?’ 하면서 무서워한다고 들었는데, 아마 우리나라를 잘 모르고 낯설어서 그럴 거예요. 그래서 가짜 난민이라고도 생각할 거고요…. 예멘 상황을 알고 나면 서서히 오해를 풀 거로 생각해요. 그러길 희망해요.”

무슬림인 그에게 특별히 종교적 의미를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 정부나 한국인들에게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평화를 말했다.
“평화요. 평화가 제가 가장 바라는 거예요. 여기서 난민으로 받아들여지고 어서 가족들을 만나면 좋겠고요. 엄마, 아빠, 그리고 네 명의 누나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두 달 전인데 그것도 인터넷을 통해 친구에게 연락한 거였는데…. 제발 한국인들이 예멘의 전쟁 상황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정말 안 좋거든요. 내가 예멘을 막 떠나오기 전 상황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고 집과 건물들이 무참하게 무너졌어요.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모든 곳이 그랬어요.”

사담은 취재를 나온 방송국과 영어를 못 하는 예멘인 가족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그는 마침 인터뷰 날 오전 방송한 제주 MBC 〈생방송 제주가 좋다〉에 나오는 자신의 인터뷰를 보여주었다. 방송에서 예멘 난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쁘지 않게 나오고 있는지 우리에게 확인하면서, 불쑥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이 볼 때 어떤가요? 우리가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나요?”

   
▲ ⓒ복음과상황 이범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게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은 민간인들이다. 머물 곳 없는 예멘인들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그들은 한국 사회에 일고 있는 예멘인들을 향한 공포의 감정, ‘이슬람 포비아’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짧지만 직접 부대껴 살아본 예멘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여러 질문을 안고 하현용 제주 떨기나무공동체 목사를 만났다. 제주도에서 초중고등학교 대상으로 연극 심리 상담 및 강의와 집 근처 농장 인부 중식 제공을 생업으로 하는 하 목사 가정은 제주도에서 오갈 데 없어진 예멘인들에게 집을 개방한 네 가구 중 하나다. 공무원이었던 자말 씨와 아내 나자와 다섯 딸을 집에 들여 3주간 함께 지냈고, 몇 차례 언론 인터뷰도 했다. 그의 기사에는 어김없이 각종 악플이 달렸다. 하 목사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예멘 난민신청자인 자말·나자 씨 일곱 가족과 3주간 함께 살았다. 어떻게 집을 개방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제주에는 배우자가 한국인인 영어 원어민 교사 커뮤니티가 있다. 원래 직업이 있는데 제주도에서 원어민 교사를 하는 분들로, 영어를 쓰고 외국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인 그룹이다. 이분들이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도왔다. 아내가 이 커뮤니티에 속한 미술치료사의 수업을 듣고 있어서 그분을 통해 자말 가족을 알게 되었다. 자말 가족은 입도하여 호텔에 묵다가 점점 돈이 떨어져 갈 데가 없어져 우리 집에 오게 됐다. 이때만 해도 무슬림 포비아 같은 이야기는 돌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도 우리는 크게 상관없었다. 초기에 예멘인들에게 도움을 건넨 이들은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일단 돕고 보는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였다. 종교와 무관하게 인정이란 게 있으니까. 그러다가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다른 분들도 연결되면서 공개 온라인 페이지도 만들게 되었다. 물론 여론이 시끄러워진 뒤에는 비공개로 전환했다.

―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본 입장에서는 여론이 안 좋아진 이유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내 생각에 제주에서 여론이 부정적으로 바뀐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문화 차이에서 오는 건데, 하필 예멘인들이 입도할 때가 라마단 기간이랑 겹쳤다. 그러다 보니 생활하고 움직이기가 어려운 게 라마단 기간에 무슬림은 낮에는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신다. 낮에는 자고, 해가 지면 7시 40분에서 8시 정도에 ‘아침’을 먹는다. 새벽 한두 시쯤 ‘점심’을, 새벽 5시쯤에 ‘저녁’을 먹고 잔다. 자말 가족을 관찰해보니 그렇게 생활하더라. 아마 500여 명 무슬림들이 다 그렇지 않았을까. 자말 가족은 우리 집에서 요리를 해먹을 수 있었지만 다른 예멘인들은 먹을 곳이 없으니 밤부터 새벽 사이 편의점을 서성였을 거고, 무리 지어 다녔다. 제주 사람들 입장에선 낮엔 안 보이던 사람들이 밤부터 새벽까지 편의점에 몰려 있으니 충분히 무서운 느낌이 들었을 거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예멘인이고 무슬림이라고 하니까 여러 이야기가 돌았다.

― 또 다른 한 가지는?
제주의 한 온라인 카페를 통해 가짜 뉴스가 증폭되고 유통됐다. 회원 수 9만 에 육박하는 온라인 카페다. 제주도의 온갖 정보를 온라인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이주해온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곳이다. 세월호 참사 때 정치적 중립을 두고 혼란이 있은 후에 회원 수가 나뉘었다. 나도 회원이라서 계속 지켜보니 몇몇 회원이 난민 관련 가짜 뉴스를 올리고, 좀 지나면 이 가짜 뉴스가 쫙 퍼졌다. 이게 제주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준 거 같다. 〈제주투데이〉 기자가 이런 가짜 뉴스 관련 내용을 기사로 쓰면서 그 카페 운영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분도 공공연하게 혐오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 인터뷰 이후 언론사와 카페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제주 사회에서 그 카페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제주도에서 있었던 난민 반대 집회도 상당수 카페 회원이 주축으로 참여했을 거다.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 카페에서 가짜 뉴스를 사실로 받아들인 분들이 참여하고, 안 좋은 여론을 확산시킨 것 같다.

― 애초에 정확하고 공식적인 정보가 없었던 게 원인 같은데, 정부 지침이나 안내 사항 같은 것은 없었나.
핵심을 짚었다. 그게 제일 화가 나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난민법을 갖추고 있으니까, 이 사람들이 대거 입국한 초기에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여 정확한 입장 발표와 조치가 나와야 더 큰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여론 눈치만 보며 뒷짐 지고 입장을 유보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자초했다. 정부 책임이 크다. 난민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는 그동안 난민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왔고, 난민으로 인정하는 유형이 무엇이며 이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정부에서 먼저 정하고 알렸어야 한다. 애초 예멘의 국가 상황이 어떻고, 난민들이 어떤 경로로 입도했는지 초기에 안내만 제대로 했어도 지금 논란이 되는 이야기의 50% 정도는 막을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다. 그런 정부의 태도가 사람들의 의심을 더 증폭시켰고, 점점 더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거 같다.
대책은 늦게 나올 수도 있지만, 무슨 사회적 현안이 생겼을 때 이런 식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부로서 최소한 입장 표명은 해야 했다.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부이다 보니 여론 눈치를 많이 보나 싶은데, 그로 인해 사회 혼란을 조장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회개해야 한다.

― 난민에게 도움을 준 이들까지 온라인 댓글로 곤욕을 치렀다.
정부가 손 놓고 있을 때 개별적으로 도운 사람들이 그렇게 욕을 참 많이 먹었다. 한 영세한 NGO는 방송에 인터뷰하고부터 난리가 났다. 고소도 당하고. 나도 기사 댓글로 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한 통신사 메인에 내 인터뷰 기사가 떴을 땐 댓글이 이틀 만에 5천 개가 달렸다. 읽다 보면 나를 브로커로 매도하는 건 기본이고, 아내와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해봐야 정신 차린다는 댓글도 있고 더 심한 말도 많았다. 더 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안 봤다. 자말 가족과 2주 정도 함께 지냈을 때였나, 하루는 마당에 쉬러 나왔는데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숨이 턱 막히고, 내가 예멘인을 돕고 있으니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스스로 진단해보니, 마음은 아니라고 하지만 딱 공황장애 증세였다. 민간에서 돕는 사람 중 나보다 더 어려움 겪은 분들 많다. 인신공격까지 당하고, 도움받고 연대할 그룹은 아직 없고. 다들 많이 지쳤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다. 어떤 가정은 한부모와 세 자녀로 구성된 예멘 가족을 도왔는데, 일단 영어 소통이 불가한데다 아버지가 세 자녀를 돌보려는 의지가 없어서 애를 많이 먹었다. 이분들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게 제일 안타깝다. 제주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서는 분들인데…. 누구로부터도 격려를 못 받고 있다. 정부나 공신력 있는 단체로부터 어떤 작은 격려나 응원도 받지도 못했다. 심지어 가까운 지인들로부터도 반응이 좋지 않으니 더 절망하는 것 같다. 요즘은 이분들 만나 이야기 나누고 격려하는 게 목사로서 내 소명인가 싶다.

―  목사님 일상도 영향을 많이 받았을 텐데.
나도 원래의 내 일상이 있으니 언제까지나 기약 없이 난민 관련 일을 병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사실 난민을 앞으로도 다 받아들일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나도 입장을 명확하게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지금 제주에 들어온 예멘인들이 정착해야 한다면 잘하도록 돕고 싶은 거다. 제도만 잘 되어 있다고 정착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 가족도 제주에서 이주민이다. 토착민과 이주민 사이의 관계가 여기 제주의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이주민은 토착민들이 잘 안 받아주고 안 끼워 준다고 문제의식을 느껴왔다. 그렇다면 여기 온 이주민인 예멘인에게 공감하며 더 잘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앞서 언급한 카페 회원들도 그런 문제의식을 느껴 온라인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려 했었을 텐데, 왜 같은 문제의식으로 예멘인을 바라보지는 못하는 건지 답답하다.

― 자말·나자 씨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갈등은 없었나?
한국 사람들끼리도 각자 달라서 관계에서 갈등을 느끼며 살아간다. 우리 가족과 자말·나자 가정은 별로 어렵거나 갈등이 없었다. 특히 이 부부는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또 식구 모두가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사실 예멘이 영어 구사 인구 비율이 높지 않다. 제주의 예멘인 중 30% 정도가 영어 소통이 가능한 건 그나마 제주에 입도한 예멘인들이 비교적 고학력자여서 그런 것도 있다. 브로커에게 돈도 내고 공무원들과 소통해서 문서도 만들고 해야 하니, 예멘에서도 아주 못사는 분들은 아예 나오지도 못한다.

― 한 인터뷰 기사에서 목사님이 이 난리에 예멘 가족을 ‘손님’으로 표현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분들은 손님 맞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이분들에게는 손님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지내보니 이분들은 누군가를 환대하고 같이 지내는 생활이 체화된 것 같았다. 밥을 차리면 꼭 같이 먹자고 부르고, 음식도 나눈다. 다른 가족과 한 공간에서 같이 지낼 때 배려하고 마음 쓰는 게 자연스럽다. 우리가 이들을 돌본 부분이 있지만, 어떤 면에선 자말·나자 가족이 우릴 돌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늘 우리를 챙겼다. 그 집 자녀들이 우리 애들을 오히려 돌봐주기도 했다. 아내도 그 아이들 칭찬을 많이 하더라.

― 현재 자말·나자 가정은 직업을 구했나?
자말·나자 부부도 나도, 그게 고민이다. 이 가정은 원래 서울로 가서 일자리를 구하고 거기서 아이들을 교육하려고 들어왔다. 자말은 2011년에 예멘에서 말레이시아로 홀로 건너가 2년 동안 있다가 가족들 데리고 나와 다시 5년 동안 말레이시아에 머물렀다. 법적 지위 없이 무허가 외국인 노동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예멘인들이 말레이시아에 국제학교를 만들어서 아이들이 거기 다녔다고 한다. 그래도 자녀들이 공식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면 안 될 것 같아 한국으로 와서 난민 신청을 한 것이다. 가족 단위로 온 다섯 집 가운데 가장이 이미 서울에 머물고 있는 한 가정은 상경했다. 자말·나자 가족도 곧 서울로 갈 것을 예상해서 직업을 구하지 않았는데, 출도 제한 조치로 길이 막히고 서울로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젠 제주도에서 일을 구해야 할 텐데 현재로선 공적 기관을 통한 취업 알선이 다 끝났다. 아직 일을 못 구한 예멘인들은 개인적으로 직업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 직접 직업 구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내가 자말이어도 어떻게 직업을 구할지 막막하다. 33개 NGO가 대책위를 꾸리긴 했지만 아직 직업 소개까지 해줄 형편은 아닌 것 같아서 나처럼 개인적으로 돕는 사람들도 완전히 손을 뗄 수가 없다. 물론 기약이 없으니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목사니까 이 일에 투신해야 하나’ 등등 여러 고민이 생기지만, 나만 해도 이미 자말·나자 가족과 3주나 관계를 맺어서 뻔히 어려운 사정을 아는데 어떻게 손을 놓을 수 있겠나.

― 짧은 기간이지만, 3주를 함께 보냈다. ‘무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나.
한국인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처럼 예멘인들도 가족마다 사람마다 환경에 따라 다 다르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건 그중 한 가족일 뿐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 무슬림은, 기독교를 포함해 한국의 종교들과 달리 일상과 종교가 거의 일치되어 돌아간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과는 하루를 함께 보내도 그가 기독교인인 것을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무슬림은 하루, 아니 만난 지 30초만 되어도 알 수 있다. 일단 여성은 히잡을 썼고, 기도를 하루에 다섯 번 드린다. 일상에서 종교 행위가 두드러지니까 ‘무슬림은 종교성이 강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한국 언론은 그동안 무슬림 관련 뉴스는 거의 안 좋은 사건만 보도하지 않았나. 이런 문화적 종교적으로 ‘다른’ 요소들이 모두 ‘혐오’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하지만 무슬림들과 실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슬람권에서는 종교가 그냥 일상의 세속문화와 거의 일치하는 생활방식일 뿐이다. 거기서 살아왔으니 그런 거지 사람마다 종교성에도 차이가 있다. 그들이 몇 만 명이 넘게 제주도에 들어오면 그들 문화와 종교가 이슬람 사회에서처럼 정착될지도 모르겠지만(예를 들면 서울 대림동에 조선족 사회의 문화가 들어온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예멘인들보다 나는 오히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이 더 무섭다.

― 목사님은 중동 사람 혹은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없었나?
나는 일단 무슬림에 대해 잘 몰랐다. IS 테러 소식을 알고, 교회에서 무슬림을 ‘대적’하는 분들이 말하는 걸 들은 적은 있지만 그런 걸 잘 안 듣기 때문에 이해 자체가 별로 없었다. 대학 때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하는 라마단 기간 대항 기도 같은 걸 본 적은 있지만, 무슬림을 만나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는 게 별 없어서 재밌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몰랐던 거는 물어볼 수 있으니 즐거웠다.

   
 

― 자말·나자 가족과 지낸 시간이 즐거웠다는 얘긴가?
정말 즐거웠다. 몇몇 에피소드들이 있다. 한번은 내가 제주 한림에 있는 할랄 식품 가게에서 식재료를 사다 줬었다. 그런데 나중에 자말이 “아무래도 그 집 재료들이 할랄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 할랄은 도축 과정에서 피를 완전히 다 빼야 하는데, 요리할 때 재료에서 자꾸 피가 나온다는 거다. 그러더니 나한테 사업 제안도 했다. 어디에서 닭을 구해오면 자기가 할랄 식품에 맞게 처리해서 팔겠다고. 솔깃했는데 우리나라에선 그 피를 처리하는 게 법적으로 좀 어려울 거 같더라.(웃음)
자말과 이 이야기를 나눌 때 문득 꽤 오래전에 본 미국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무슬림들이 굉장히 어두운 지하에서 촛불을 켜고 불법 도축을 하는 이야기였는데, 자말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무슬림들은 생활 방식상 할랄 식품을 먹어야 하는데 당시엔 불법이더라도 직접 할랄 식품을 만들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더라. 방송에서 충분히 무서운 이미지로 삼을 수 있는 소재가 아닌가. 어두운 지하, 바닥엔 피가 흥건하고, 사람들은 기도를 드리는 장면들을 어떤 의도를 갖고 편집한 영상이라면 얼마나 잔인해 보이겠나. 알고 보면 할랄 식품 도축 방식이 오히려 동물에게 덜 잔인한 방법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도축은 집단 수용하고, 전기 충격으로 기절시켜서 죽인다. 이게 한 번에 잘 안 죽어서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오히려 할랄식으로 목을 따서 피를 완전히 버리는 게 더 인도적이고 동물에게도 고통을 덜 느끼게 하는 방법이라고 들었다.

― ‘한국 사람들 도움을 받으려면 한국 사회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분들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리 난민이라지만, 이미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갑자기 통째 바꾸는 게 인간으로서 과연 가능한 일인가? 무조건 한쪽을 포기하라고 말하는데, 우리 인간의 삶이 그렇게 진행 안 되지 않나. 시간을 두고 지내다 보면 절로 서로 맞춰 갈 텐데…. 예를 들어 무슬림이 한국에서 일을 구했는데 하루 다섯 번 기도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해보자. 어떤 사람은 기도 시간을 조정하고 그 일을 하겠지만, 그게 안 되겠는 사람은 새 직장을 구하든지 그만두고 자기 선택을 감내하고 살면 된다. 한국 사람도 새 직장을 구하면 안 맞아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설사 갈등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조정되는 과정이 있다. 우리 눈에는 매우 ‘종교적’으로 보이는 생활 방식도, 한국에 정착해 살다 보면 본국에서 살 때와 달리 점점 불편한 점이 많아져서 아마 바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알아서 변해가는 것이지 강요할 수는 없다. 서로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희는 난민이니까’로 시작해서, 어떤 건 안 되고 어떤 것만 된다고 하면 ‘이건 정말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명백히 차별이다.

― 혐오 발언들이 상당하다.
최근에 우리 동네에서는 어떤 분이 나한테, 예멘 난민 신청자들 때문에 돼지들이 전염병에 걸릴 수 있다고 말하신 적이 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말이라, 처음엔 우리나라 전염병에 예멘인들이 취약해서 병 걸릴 수 있다는 의미로 말한 거겠지 싶었다. 제주에서 돼지가 생업과 연결되어 있어서 전염병을 가장 무서워하는 건 알지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다. 하면 안 되는 발언이라고 강하게 말씀드렸다. 물론 싫어하시더라. 인종차별을 넘어 인종혐오 발언이 한국 사회에서 정상 발언 범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보여서 걱정이다. 선입견 정도가 아니라, 나치가 유대인을 상대로 인종 정책을 펴고 홀로코스트를 벌일 때와 유사하게 보인다. 심각하다. 내가 전에 알고 있던 한국 사회와 괴리가 너무 커서 계속 깜짝 놀라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분노에 끓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냥 예멘인들이 제주도에 왔고, 그들이 난민 심사를 받는다는 사실에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분노하는지를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나라 난민 심사 통과 비율을 볼 때 기껏해야 500명의 5% 이내인 20명 안쪽으로만 통과된다. 그런데 왜 가짜 뉴스까지 생산해가면서 분노하는지, 그렇게까지 이 사회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나 싶다.

― 자말 가족은 그런 차별 혹은 혐오를 겪은 적이 없었나.
자말이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국제 운전면허가 있다. 우리 교회 구성원 중에 차가 하나 남아서 자말에게 타고 다니라고 빌려줬는데, 대책위 쪽에서 여론을 우려하더라. 대책위 반응도 이해됐던 게, 그만큼 난민에 대한 한국인들의 편견이 강하다는 거다. ‘난민이 운전하고 다닌다’ 혹은 ‘난민이 마트에서 물건을 많이 산다’는 말이 퍼지면 안 된다는 건데, 그런 말이 문제가 되는 것이 큰 문제다. 사람들이 ‘난민은 이래야 한다’는 자기가 가진 어떤 틀 속에 난민들을 욱여넣으려고 한다. 답답하다. 면허증 있어서 운전하는데 뭐가 문제인가? 자말도 한국에서 연락하려면 휴대폰이 필요하고, 사용하던 게 아이폰이니 아이폰을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물어보더라. 그래서 요금제와 연동되어 할인을 많이 받을 방법까지 가르쳐주면서 자세히 안내해줬다. 이런 설명을 해주면서도 ‘그런데 사람들이 너 이런 핸드폰 쓰는 거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줘야 할 때마다 내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사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한국 사회에서 스마트폰 없이 어떻게 살 수가 있는가. 일도 구해야 하는데 말이다. 입고 있는 옷이 해져서 쇼핑을 도와줬는데, 새 옷 입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게 볼까 봐 걱정이다. 안 좋게 보고 싶으면 뭐든지 안 좋게 볼 수 있다.

― 제주 난민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지금으로선 우리나라는 정말 ‘다름’을 못 받아들이겠구나 싶다. 500명이면 우리나라 인구에서 10만 명당 한 명인데, 실은 한국 경제 규모로 볼 때 50명에 한 명이어도 한 사람을 충분히 먹일 수 있지 않을까? 돈 문제를 떠나서도 이번에 언론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 질문과 접근 방식으로 볼 때 모든 초점이 ‘그들이 진짜 난민이냐 아니냐’에 맞춰져 있었다. 우리 가족이 난민과 관계를 맺는 것을 매우 특별하게 보더라. 솔직히 이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난민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다.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마치 우리 국민의 3천만 명 정도는 난민 심사관이고, 이들을 다 통과해야 난민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꽉 막힌 느낌을 받았다.

― 예멘인들도 자기들에 대한 한국 사회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더라.
요즘은 SNS로 소통을 하니까 한국에 이슬람 혐오가 퍼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번은 가짜 뉴스를 통해 떠도는 이야기를 직접 물어본 적이 있다. ‘여자를 사고판다는 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예멘에는 결혼할 때 장인어른에게 지참금을 주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데 그게 와전된 것 같다고 하더라. 일부다처 문화를 두고도 자말 말을 듣던 아내 나자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둘이 티격태격하더라. 옆에서 듣던 딸들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엄마를 거들고. 우리들 사는 모습과 같다. 무슬림이라고 해서 무슨 제도든 무조건 지키는 게 아니라 사회 변화에 따라서 논쟁거리가 된다. 다만 한국은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른 나라다 보니 구습이 현대사회에 남아 있는 시간이 적은 것이고, 이슬람 쪽은 공존하는 기간이 비교적 긴 것뿐이다. 한번은 자말한테 딸 결혼 이야기를 물었더니 예멘 남자와는 절대 결혼 안 시킨다고 하더라. 자기가 봐도 예멘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하대하는 문화라고. 한국인 사위도 괜찮은데, 무신론자는 안 된다고 하더라.

   
▲ ⓒ복음과상황 이범진

― 목사님은 기독교인인데, 자말은 기독교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던가.
기독교인에 대한 거부감은 없고 오히려 같은 신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유대인 역시 싫어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알라와 똑같이 생각하더라.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이끄시는 분도 하나님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자말은 그분을 알라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어떤 이름을 부르느냐가 중요할까? 자말은 어떤 종교의 이름표가 붙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누구를 믿는지보다는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가 이후에 신의 심판을 받을 때 중요하다고 하더라. 그가 무슬림 보편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여기서 새로운 질문과 고민들이 생기긴 했다.

― 어떤 고민인가?
이들이 하나님을 알라와 똑같이 받아들인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자말이나 자말의 친구들에게 기독교의 하나님을 소개해줘야 하나?’ ‘하나님을 소개하면 이 사람은 그게 하나님이 아니고 알라라고 생각할까?’ 등등 여러 생각이 들더라. 자말의 신앙을 엿보면 기독교 신학 안에서도 소화 못 할 이야기는 아닌데, 그렇다면 ‘어떻게 무슬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할 수 있을까’ 싶고. 코란 속 알라와 성경의 하나님은 분명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다. 이 친구가 부르기를 알라로 끝까지 부르더라도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등등….

― 한국교회에 하고 싶은 얘기도 있을 거 같다.
제주의 여러 교회가 산발적으로 도움을 많이 줬다. 우리처럼 네 가정이 모인 교회를 비롯해 작은 교회들이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섰다. 드물게 서울의 큰 교회에서도 도움을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감사하고 위로가 되는 한편, 관심 가진 교회가 많은 것에 비해 그렇지 않은 교회만 드러난 점은 아쉽다. 개신교 목사로서, 개신교회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좀 해주길 바랐지만 그게 없어서 가장 아쉽고. 기독교장로회(기장) 교단만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고, 큰 위로가 됐다. 다른 교단들은 공식 입장이 없었다. 교회에서 배운 대로면 난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은 너무 당연한 신앙적 태도 아닌가. 그런데 기장 말고는 어떤 교단도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정책적 찬반 입장은 나중 문제다. 교회가 당장 도움이 절실한 나그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앞장서서 지지하고 격려하고 위로했다면 어땠을까? 사실은 기독교뿐 아니라 종교계라면 당연히 했어야 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그거 아닌가. 성경의 하나님은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 이민자들같이 사회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우며 함께 살아야 한다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되게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이게 기독교 핵심인데, 교인들 핑계를 대고 여론 눈치를 보며 핵심 진리를 이야기 못 한다면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교회가 아니다 싶었다. 많은 기독교인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거 같아서 아쉽다. 더는 ‘우리 교회’라고 할 수가 없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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