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호 무브먼트 투게더 1]


아이들의 질문을 외면하는 성교육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아이들과 함께 과학실에서 양호 선생님에게 성교육을 받았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인체 기관이 질이었는데 우리는 그게 우리 몸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업 말미에 결국 아이들이 질문을 했다. “(그래서 대체) 아기는 어디서 나오나요?” 선생님은 곤혹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시고는 아까 알려주지 않았느냐며 질이라고 대답하셨다. 결국 그날도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성교육 수업이 끝났다.

내 짝이었던 남자아이는 평소 짓궂은 편이었지만 어느 날 내게 그 질문을 할 때는 사뭇 진지했다. 그럼 남자는 오줌이 나오는 곳과 항문이 있고 여자는 오줌이 나오는 곳과 항문 그리고 질이 또 있는 것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간의 정보를 취합해 아마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때 우리는 야한 얘기를 키득거렸다기보단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고 공유한 것에 가까웠다.

음경이 질에 삽입되어 임신이 된다는 것은 그 후 한참 시간이 흘러 알게 됐다. 어떤 책자에서 읽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삽입’이라는 단어를 보고 내심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조각나 있던 정보가 그제야 합쳐졌다. 물론 여전히 성기가 결합된 상태의 신체 단면도 같은 시각 자료는 본 적이 없는 채로 삽입이라는 어휘가 주는 막연한 정보만 갖고 있던 셈이다.

   
▲ 초등 6년 시절 성교육 수업도 결국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끝났다.(사진: publicdomainpictures.net)

소위 ‘야한 동영상’은 대학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봤다. 섹스 영상을 보며 처음엔 뭘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러니까 성기 결합이라는 정보를 알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렸지만 실제로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그때까지도 잘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그 영상 역시 모든 인류가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려 주는 콘텐츠가 아니라 과장되게 연출된 픽션이었다.

교회 안, 대상화되는 여성들 
교회에서는 연애를 하게 되면 담당 교역자에게 일종의 ‘관리’ 같은 걸 받았다. 그러면서도 성적인 문제를 일으킨 남성 목회자는 드러내지 않고 덮어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공존했다. 내가 연애를 하는 것을 알게 된 대학부 담당 목사님은 나를 따로 만나 연애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몇 년 후 교역자가 바뀌었는데 그 목사님은 심방을 빙자해 내 후배를 만나 스킨십을 시도했고 잦은 연락으로 고통받던 후배는 나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는 교회에 사실을 알려 상황을 해결하려 했으나 공론화를 하기도 전, 다른 교역자에게 불려가 입단속을 받았다.

이상한 일들은 그 외에도 많았다. 청년 담당 목사님이 북어랑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맞아야 된다는 얘길 농담조로 한다든가, 휘어진 나무젓가락을 보며 한 남자 청년이 여자 청년에게 네 다리처럼 휘었다고 말한다든가, 집이 같은 방향이라 나란히 걸어가던 선배가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를 하더니 히죽히죽 웃으며 “나 지금 누구랑 있는 줄 아냐?” 하는 일들이다. 목사님은 설교 중에 여자 청년들을 지목하며 모두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했다.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사람들은 그로 인해 불편해하는 누군가를 불편해했다. 나는 20대 중반에 그 교회를 나왔다.

교회 안이든 밖이든 어느 성별에게든 정확한 과학적·생물학적 정보에 기반한 전인적 성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과 관련한 것들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알려 주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부재했다. 그런 상태에서 성을 주도하는 역할은 남성들이 맡았다. 여성과 밀접하게 연관된 중요한 주제에 대해 남성들이 알아서 학습하고 이끌도록 허락된 것과 같았다. 남성 집단에서 사적으로 공유하는 정보들은 ‘성적 대상화’된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했다. 여자들은 제외된, 남자들끼리 나누는 여자들에 대한 정보 공유. 비극은 분명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반면, 여성들은 순종이 미덕이라는 현숙한 아내의 덕목을 교육받으면서 성에 관심을 갖거나 잘 알아서는 안 됐다.

소라넷, 원정녀, 그리고 1인 매체 속 성폭력 영상
소라넷에 대해 처음 들은 건 10여 년 전 남자 지인에게서였다. 가벼운 수준의 이야깃거리였다. 여자친구 가슴 사진을 올리며 자랑하거나 평가하는 게시판이 있다고 했다. 그 얘기는 이후 사귀던 남자친구에게서도 또 들었다.

남자 후배와 여성의 몸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여성의 가슴 크기는 고정적인 게 아니라 호르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월경 전에는 유방통과 함께 더 커지는 경향이 있고 월경이 끝나면 통증이 사라지고 크기도 줄어든다는 얘기를 후배에게 해줬다. 여성의 가슴에 대한 남자들의 고정된 시선, 즉 성적으로 환원된 시선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생물학적 여성의 몸과 관련한 사실을 알려 주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배는 여자의 가슴 크기가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새로운 성적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식으로 내 얘길 받아들였고, 나와의 얘길 대략 ‘여자와 여자의 가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상황으로 인식한 듯했다.

어떤 지인에게선 원정녀 야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불법으로 동의 없이 촬영된 성관계 동영상은 연출된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야동의 범주로 묶였고 순차적으로 번호가 붙은 ‘원정녀’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촬영된 영상을 소비하는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됐다. 그들은 문란한 데다가 성 판매 여성이었기에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 문란한 여성들은 그런 응징을 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후 1인 매체 시대가 되었다. 아프리카TV 등 개인 채널을 통해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었다. 얼마 전 해외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됐다. 한국어로 된 영상이 나오길래 무슨 내용인가 하고 보니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남자 호스트가 여자 게스트에게 술을 계속 권하며 마시게 하고는 어르는 듯한 말투로 점점 수위를 높여 여러 가지 성적인 요구를 했다. 영상 속 박제된 그 여성은 술에 취한 채 남성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저 영상은 대체 언제 찍힌 걸까, 저 사람은 자신의 영상이 이 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걸 알고 있을까, 혹시 모든 걸 알고 이미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아닐까, 저 남자는 수치심도 가책도 없이 오히려 호기롭게 자랑거리로 삼아 살고 있겠지…. 그날 그 여성이 걱정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영상이었다. 사람들은 재밋거리로 그 영상을 소비하며 그 여성이 애초에 저런 걸 찍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할 것이다.

결코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n번방 성범죄에 대해 사람들은 저 멀리에서 어쩌다 일어나는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라고 여기며 자신과는 선을 긋는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못한 사회가 그 원인이다. 성에 대해 혼자서 배우고 해결하게끔 방관한 분위기가 그 원인이다. 여성과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한 남성들의 문화, 남자의 본능이라는 수식을 붙인 연민 어린 관용, 남자들의 잘못을 묻기보다 여자들의 처신을 단속해온 분위기가 그 과정이다. 그다음으로는 여자친구 가슴을 품평하는 재미있는 놀이가, 불법 촬영물에 ‘야동’과 ‘몰카’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이는 무신경한 잔혹함이, 그리고 그러한 촬영물을 소비하는 손쉬움이 일련의 과정이다. 모든 성범죄는 이러한 원인과 과정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 극단적 결과가 바로 n번방 성착취 사건이다.

이제는 여성에 대해 (성적 대상으로서) 안다고 생각하지만 (동료 시민으로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문화를 전복해야 할 때이다. 또한 모든 인류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자신의 성적 편견을 내려놓고 정확한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사회에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지형이 생겨날 것이다. 성적인 존재로 환원되어 소비되었던 여성들은 새 지도를 그려 나갈 주체가 되어 하나님이 창조 때에 의도하신 본래의 온전한 자기로 부활할 것이다. 미안할 만큼 곱고 투명한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성과 상대의 성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세상에서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고 아이들이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더라도 해 됨도 상함도 없을 것이다.

 

 


박소현
대학원을 다니다가 출판사에 입사해 편집자가 되었고, 현재 14년째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부위원장, 여성위원장 및 당 대의원직을 맡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 공저자로, 글쓰기, 페미니즘, 여성 정치 등을 주제로 강의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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