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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난’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353호 편애하는 리뷰]
[353호] 2020년 03월 19일 (목) 11:42:17 오수경 goscon@goscon.co.kr

 

2009년, 21세기 최악의 전염병으로 불리는 신종플루가 세계를 강타했다. 멕시코 어느 도시에서 돌기 시작한 이 전염병은 ‘돼지 인플루엔자’라 불리며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양산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확진자 수만 163만 명이 넘고, 약 2만여 명이 사망했다. 전염병이 거침없이 확산하자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감염병 경보 중 최고 수준인 ‘대유행’(pandemic·팬데믹)으로 규정했다. 최초 발생 1년 후인 2010년에 공식 종료된 신종플루는 이후 대중문화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간과 동물, 좁혀진 ‘생태적 거리’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는 영화 〈컨테이젼〉(2011)의 홍보 문구였다. 신종플루가 세계를 휩쓴 후 개봉된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갑작스러운 사망 사건으로 시작한다. 홍콩 출장을 다녀온 뒤 기침과 고열 등 감기 증상을 보인 베스와 그의 아들이 돌연 죽고, 같은 시기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같은 증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보고된다. 

베스를 부검한 결과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사망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신종 바이러스는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누군가 만졌던 물건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전염이 될 정도로 전파력이 강하다. 이러한 바이러스의 속성 때문에 일상은 빠르게 붕괴하고, 도시는 폐허가 된다. WHO와 CDC가 바이러스의 원인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신속히 움직이지만, 정보 통제와 치료 백신 분배 문제로 불신이 팽배해진다. 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는 이 틈을 타 블로그에 가짜뉴스를 올리며 혼란을 증폭시켜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영화 말미에 베스가 바이러스의 최초 전파자가 되는 시점인 ‘DAY 1’의 단서가 나온다. 베스가 다니던 회사 에임 엘더슨 사가 주도한 난개발로 서식지를 잃은 박쥐는 입에 물고 있던 바나나를 어느 축사에 떨어뜨린다. 그 바나나를 축사에 있던 돼지가 먹고, 돼지는 도살되어 홍콩의 어느 식당에 팔린다. 그 식당 요리사가 돼지를 만지던 손을 닦지 않고 베스와 악수를 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난다. 즉 무분별한 개발로 바이러스의 매개인 동물과 인간과의 ‘생태적 거리’가 좁아진 것을 바이러스 감염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 〈컨테이젼〉화면 갈무리

코로나19가 드러낸 ‘진짜 재난’ 
영화 〈감기〉(2013)는 컨테이너에 감금된 상태로 집단 사망한 불법 체류자가 바이러스의 진원이라는 점에서 〈컨테이젼〉보다 한국적이며 동시대적 의미를 생산한다. ‘진짜 재난은 바이러스가 아니다’는 홍보 문구처럼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러스의 진원이 컨테이너와 불법 체류자였던 〈감기〉와, 바이러스의 최초 희생자가 KTX 여성 승무원이었던 영화 〈부산행〉은 바이러스가 편견과 혐오라는 증상을 키우고, 사회의 약한 존재들을 타격하는 사회적 문제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드러낸 ‘진짜 재난’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드러낸 재난은 타자를 향한 혐오다. 2015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당시 여성 혐오가 창궐했던 것처럼 ‘코로나19’는 초기에 ‘우한 폐렴’으로 알려지며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과 중국인을 향한 혐오로 번졌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76만 명을 넘었고, 일부 음식점에서는 중국인 손님을 거절하기도 했다. 혐오는 ‘31번 확진자’의 존재가 알려진 2월 18일 이후 신천지 신도에게로 옮겨갔다.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인 점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구분해야 하듯, 신천지의 전염 확산 책임과 신천지 신도에 대한 혐오는 별개의 문제다.) 어떤 확진자는 공개된 동선에 따라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이렇게 재난이 몰아칠 때 ‘외부의 적’은 불안과 공포를 회피하기 위한 제물이 된다. 2년 전, 예멘 난민에서부터 중국인, 신천지, 확진자… 그다음 혐오의 대상은 누구일까?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감시와 격리(봉쇄) 시스템이다. 〈컨테이젼〉과 〈감기〉에서 보건 당국은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급히 도시를 봉쇄하고, 확진자를 격리하고, 정보를 통제한다.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인권이 무너지고, 가짜뉴스가 창궐하고, 불신과 특혜를 양산하는 것은 막지 못한다. 확진자 동선을 제공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라 해도 ‘감시의 눈’은 우리 일상을 경직시키며 인권 등 지켜야 할 가치를 방치하게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코호트 격리’ 등 최선을 위한 방책이 도리어 어떤 존재를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진짜 재난’으로 짚어야 할 것은 불평등 사회다.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의 말처럼,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 사회인지 아프게 드러낸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집단 감염된 신천지 신도 대부분이 20-30대 여성이고, 1980년대 중반부터 여성 노동자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공급된 저렴한 임대아파트에 여성 신천지 신도들이 모여 살다가 집단 감염되었다. 수일 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던 콜센터 여성 직원들이 집단 감염되었음이 보도되었다.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돌봄 노동자 감염 사례가 많다는 사실의 교집합은 ‘여성’이다. 그만큼 사회적 위계가 여성들을 위험한 곳으로 몰아내고 있다.
 

타자를 환대하는 ‘사회적 항체’
점점 주기가 짧아지는 ‘바이러스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살까? 우리는 이미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고, 타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것으로는 ‘우리’를 지킬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 감시와 격리(봉쇄)를 쉽게 하는 시스템은 단기적으로는 편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재난을 불러올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난으로부터 우리 자신과 사회를 지킬 수 있을까? 〈감기〉에서 모두를 살릴 항체는 혐오의 대상인 불법 체류자 ‘몽싸이’에게서 발견되고, 그 항체가 몽싸이를 유일하게 환대한 여자아이 ‘미르’(의도한 작명인지 모르지만 러시아어로 ‘평화’를 뜻한다)에게 전해진다. 우리가 혐오하는 타자를 환대하는 이타적 인간을 통해 사회적 항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 《불편할 준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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