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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보고 싶은가
[352호 편애하는 리뷰]
[352호] 2020년 02월 19일 (수) 11:32:56 오수경 goscon@goscon.co.kr

 

나는 드라마 덕후다. ‘큐티 하듯’ 매일 성실하게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는 내게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고 통찰하게 하는 좋은 참고서다. 사실, 인간 역사 자체가 ‘드라마’ 아니던가. 아주 먼 옛날에도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고, 우리가 ‘고전’으로 여기는 작품들도 그 시대의 보편적인 막장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드라마는 나의 일상뿐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이나 동시대 사회 속에 함께 존재한다. 

대중문화가 변하고 있다 
드라마뿐 아니라, 광고나 텔레비전 콘텐츠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대중문화는 동시대를 재현하며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단단하게 뿌리박힌 관습의 저항에 부딪히기도 한다. 

2010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기억하는가? 주말에 방영하는 가족 드라마에 동성애 커플이 등장해 일부 시청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심지어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라는 무시무시한 협박 광고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2014년에 방영된 MBC 단막극 <형영당 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퀴어’ 소재 작품이라는 이유로 논란이 되었다. 이 드라마는 2006년에 극본 공모전 단막극 부분 대상을 받으며 눈 밝은 관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반대에 부딪혀 8년이 지난 뒤에야 주요 내용이 상당 부분 수정된 후 겨우 방영되는 수난을 겪었다. 

같은 해 여고생 간 키스신을 방영한 JTBC 드라마 <선암 여고 탐정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로부터 5년 후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는 동성을 사랑하는 작곡가가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를 다루었다. ‘사회적 논란’으로 여겨지던 성소수자들이 좀 더 현실적 존재로 재현된 것이다. 

공론장의 공정성을 묻다 
예전처럼 항의 소동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대중문화가 변화했다고 하여 사회가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지난 1월에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군인 변희수 하사가 강제 전역을 당했고, 2월에는 법적으로 여성이 된 A씨가 숙명여대에 합격했다가 강한 저항에 부딪혀 입학을 포기했다. 

이런 사회에서도 tvN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인 <삼촌은 오드리 햅번> 단막극이 방영되었고,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는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이 등장한다. 이렇게 대중문화는 사회를 재현하는 단순한 도구일 뿐 아니라 관습과 지향 사이에서 대립 구도를 형성하거나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문화적 공론장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그 공론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떤 지향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음 질문으로 연결된다. 대중문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시선’은 공정한가? 

   
▲  JTBC〈이태원 클라쓰〉화면 갈무리


“미디어는 삶의 현실을 가치중립적으로 반영하기보다는 의미와 가치를 둘러싼 투쟁의 장이자 이데올로기적 협상과 경합의 장”이라는 이나영 중앙대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대중문화의 시선은 중립적이지 않다. 사회 변화의 역동을 반영함과 동시에 의미와 가치를 선택적으로 재현하거나, 과잉 재현하거나, 소멸시켜 사회적 관습을 옹호/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 드라마는 그동안 가부장 남성 중심 가족을 사회적 표준 모델로 재현하고, 가장으로서의 남성과 함께 여성의 모성을 강조해왔다. 예능 프로그램은 남성 출연자들이 절대다수를 이룬다. 이런 예능 생태계에서 남성은 말하는 주체로 등장하지만, 여성은 몸(매)나 태도를 끊임없이 평가 당하는 보조적 역할에 머문다. 사회는 다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텔레비전 화면에는 가난한 가정, 못생기고 뚱뚱한 주인공,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은 등장하지 않거나, 웃음거리나 부정적 존재로 등장한다. 대중문화의 시선은 과연 공정한가? 대중문화가 ‘보여주는’ 세계만 본다면, 우리 사회는 ‘단일민족-가부장-중산층-비장애인-이성애자’들로만 구성된 사회일 것이다. 이런 사회가 정말 현실적인가? 이런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무엇을 보고 있으며, 보고 싶은가 
이렇게 대중문화가 보여주는 것이 중립적이지 않을 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보고 싶은가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비판적 개입을 해야 한다. ‘보여주는 세계’에 갇히기보다는 무엇을 볼지 선택해야 대중문화도, 우리가 사는 사회도 진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 해석하는 능력과 적용하는 실천력이 필요하듯, 대중문화를 볼 때도 그렇다. 대중문화가 보여주는 세계가 과연 공정한지, 그걸 보는 나는 관습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담는 대중문화는 어떻게 가능한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우선 해석하는 능력, 리터러시(media literacy)다. 그럴 능력이 없을 때 타인을 향한 막연한 공포와 은근한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며 정당화하게 된다. 
 

   
▲ tvN 〈인생술집〉화면 갈무리


다음으로 필요한 능력은 선한 영향력(good influence)이다. 최근 대중문화의 트렌드가 된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인 나에게도 익숙하다. 이 단어는 단지 ‘착하다’는 의미를 넘어 어떻게 하면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연대할지 고민하며 전향적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자신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고 선언함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성 역할 관습에 질문을 던지고, 수직적 조직 문화가 아닌 수평적 관계 모델을 실천한 ‘펭수’와 남성 중심의 예능 생태계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협력하는 모델을 보여준 탁월한 기획자 송은이를 비롯한 여성 연예인들이 일으킨 변화가 선한 영향력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흐름을 통해 남성적 위계 중심 문화,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것으로 웃기려는 문화는 ‘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웃자고 하는 말’에 정색하고 비판하는 창조적 비평자를 통해 느리지만 확실하게 온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 《불편할 준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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