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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
[347호 오수경의 독서일기] 《선량한 차별주의자》
[347호] 2019년 09월 24일 (화) 11:05:03 오수경 goscon@goscon.co.kr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창비 펴냄 / 2019


비혼은 사회적 현상
<억압받는 다수>(Oppressed Majority)라는 프랑스 단편 영화가 있다. 유모차를 끌고 우체통을 살피는 남성의 ‘평범한’ 일상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런 그를 향해 상의를 탈의하고 조깅하던 여성이 인사를 건네며 도움을 줄지를 물어보고 아이에게는 “예쁜 아빠를 둬서 좋겠다”는 덕담을 나누고, 남성에게는 “웃고 다녀라” 참견한다. 출근한 아내 대신 아이를 유치원에 데리고 간 남성을 맞이한 건 히잡을 쓴 남성 교사. 둘은 자연스레 외모에 관한 잡담을 나누고 헤어진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옷매무새를 신경 쓰던 남성은 거리에서는 여성에게 성희롱(catcalling)을 당하고, 곧이어 한 무리의 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너무 익숙하기에 오히려 문제적인 이 영화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성차별과 성폭력의 현장에 남성을 배치한다. 일종의 미러링(mirroring)인 셈이다. 여성의 자리에 남성을 배치했을 뿐인데 그동안 보이지 않는 성차별 문제가 매직아이처럼 튀어나온다.

영화의 백미는 남성이 여러 명의 여성에게 성폭력을 당해 경찰서에서 진술하는 장면이다. 가해자는 사라진 상황에서 진술서를 써야 하는 피해자인 남성은 그곳에서 온갖 수치를 당한다. 여성 경찰은 사무적인 태도로 피해자인 남성의 진술을 못 믿겠다는 듯 심문하고, 서류를 들고 온 후배 남성 경찰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며 외모 칭찬을 한다. 그런 그녀 앞에서 남성은 자신의 반바지를 최대한 끌어내려 다리를 가린다. 뒤늦게 경찰서로 달려온 아내는 남성이 당한 폭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회사에서 이룬 성취를 자랑한다. 결국 아내 앞에서 남성은 절규한다. “가모장제 사회 때문에 못 살겠어!” 그런 남성을 향해 아내는 냉정하게 말한다. “난 꼴마초들 하는 소리 이해가 안 되더라. 네가 옷 입은 꼬라지 좀 봐! 반 팔 티셔츠에, 슬리퍼에, 무릎 위로 올라오는 반바지까지. 원해서 그렇게 입었으면 이런 일이 있어도 불평하면 안 되지.” 즉, 성폭행을 당한 남성의 옷차림과 행실을 문제 삼은 것이다.

차별과 특권 사이
우리 일상이 얼마나 차별과 연결되었는지 이렇게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를 차별할 때 “나는 반드시 차별하는 사람이 될 테야!” 하고 굳게 다짐하지는 않는다. 차별은 자신도 모르게 발생한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은 차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군가에게 차별과 평등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절대다수는 평등을 선택할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사랑과 혐오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당연히 사랑을 선택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사회는 왜 차별의 언어와 행동이 난무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차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 눈에 차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느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다는 이유로 참석자의 질문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는 저자의 자기성찰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기묘한 현상을 추적하며 우리가 차별을 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고, 최근 한국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에 비추어 생각을 확장했다.

이 책은 무심코 뱉었을 이산화탄소와 같은 차별적 생각과 말을 돌아보게 한다. 이주민에게 “한국인이 다 되었네요”라고 하는 것은 차별일까 아닐까. 장애인을 향해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말하는 건 왜 차별일까? 딸만 둘인 여성에게 “이제 아들 하나 더 낳으면 되겠네”라거나 결혼 안 한 사람에게 “결혼해야 어른이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하는 생각과 말이 누군가에게는 모욕일 수 있다.

그렇게 차별할 수 있는 건 특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권이란 돈이나 권력을 가진 일부 계층이 누리는 게 아니라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을 의미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대중교통을 불편 없이 이용하는 비장애인, 같은 노동을 하고도 임금을 더 받을 수 있는 남성 혹은 정규직,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혀도 교회에서 출교되거나 회사에서 해고될 염려가 없는 이성애자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특권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차별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

‘선량한 차별’부터 멈추려면
그렇다면 차별주의자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함께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다. 2018년 여름, 제주도에 약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도착했을 때 그들의 수용을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70만 명을 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난민 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안전을 위해 반대했고, 누군가는 난민들로 인해 청년들이 취업의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반대하거나 ‘가짜 난민’으로 규정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무슬림이어서 반대했다. 이런 다양한 이유로 반대한 이들이 모두 악한 사람들이었을까? 대부분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었을 것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차별인 줄도 모르고 난민을 차별할 때, 어떤 사람들은 그 막연한 두려움과 차별, 혐오의 근원은 무엇이며 그걸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질문하며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한 편씩 올렸다. 그 글을 엮은 책이 《경계 없는 페미니즘》(와온, 2019)이다. 이 책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의 사회에서 어떻게 환대의 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지 38명의 필자가 용기 내어 질문하고, 고민을 이어간 집단 지성의 결과다.

어떻게 하면 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다만,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자각하고, 그 위치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만이 덜 차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두 책이 함의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애써 살피지 않으면 차별에 가담하게 된다는 것. 애써 살피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선 이 책들을 읽자.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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