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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를 통과 중인 우리 사회의 맥락
[341호 3인 3책]
[341호] 2019년 03월 29일 (금) 15:37:12 오수경 goscon@goscon.co.kr
   
 

미투의 정치학
정희진·권김현영·루인·한채윤 지음
교양인 펴냄 / 2019년
  
지난해 8월 18일. 나를 포함한 수많은 여성이 광장에서 피켓을 들었다. 여성 수행원을 여러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법원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심문한 끝에 가해자가 가진 ‘위력’은 부정하고,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사용하지 않고, ‘피해자다움’을 보이지 않은 ‘죄’를 물어 가해자에게 ‘무죄’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들을 분열’하게 한다는 음모론이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이것은 ‘진정한 미투’가 아니라면서 ‘미투 아니고 불륜’을 외치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6개월 후인 지난 2월 1일, 2심 재판부는 같은 사건에 대해 피고인에게 3년 6개월 법정구속을 선고하여 이 사건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반전이 가능했을까?

이 상반된 결과는 위계와 성폭력 등에 관한 우리 사회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변화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한여름 정오보다 뜨겁고 치열하게 전개된 페미니즘 운동과 정치의 성과다. 《미투의 정치학》은 지난해 이후 남성 중심 사회의 민낯을 총체적으로 폭로하고 뒤흔든 미투운동에 관한 입체적 보고서다. “우리는 사회 정의와 새로운 지식의 최전선에 있다”는 머리말의 선언처럼, 미투운동은 성폭력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는 흐름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 중심적 성 문화를 뿌리째 뒤흔들어 일상의 혁명을 촉구하는 매우 급진적인 운동”이며 우리 사회가 사회 정의에 관한 개념을 재검토하며 새로운 지식을 향해 진전할 기회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입장을 가진 필자들이 집필했다. 안희정 사건 재판을 방청한 권김현영은 재판 안과 밖의 풍경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1심과 2심에서 드러난 문제가 무엇인지 점검한다. 1심 재판 과정은 2심 재판부가 지적한 대로 우리 사회에 ‘성인지감수성’이 얼마나 부족한지 드러내는 중요한 자료다. 한채윤은 고전 소설 <춘향전>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의 개념을 정리하여 1심 재판부가 오용한 개념을 바로잡는다. 그는 여성에게 죄를 묻고 억압하는 사회적 통념이 과연 타당한지 문제를 제기한다. 정희진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미투’가 어떻게 선별되거나 배척되는지 지적하며 미투 이면에 작동하는 인식과 방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루인은 트렌스젠더를 향한 폭력을 통해 ‘진정한 여성’은 누구이며 폭력의 개념은 누가 정하는가에 관해 화두를 던진다. 이 책은 미투라는 간단해 보이는 현상에 담긴 복잡한 맥락을 정리하고, 우리 사회가 왜 이것을 주목하고 숙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저의 꿈은 미투가 번져 나가는 세상이 아니라 미투가 필요 없어지는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 지난 3월 8일에 진행된 세계 여성의 날 기념식에서 미투운동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아직도 투쟁 한 가운데 서 있는 서지현 검사가 ‘올해의 여성상’을 받으며 남긴 소감이다. 그의 꿈은 그동안 일상에서, 법정에서, 광장에서 미투운동에 연대한 수많은 여성의 꿈이기도 하다.

세상에 존재한 모든 일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변화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투’ 이전과 이후, 안희정 사건 1심 재판과 2심 재판 사이 한국 사회가 어떤 변화를 통과하고 있는지 주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화를 통해 적어도 이제는, 성폭력이 범죄인 줄도 모르고 남성 동질성을 확인하며 권력을 향유하는 수단으로 여성을 도구화하고, 그것을 문화와 제도로 계승하는 사회에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불행하다는 감각을 공유하게 되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원한다면 더 적극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변화의 맥락과 당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는 ‘사회’를 도모할 수 없을지 모른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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