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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 할 얼굴
[342호 3인 3책]
[342호] 2019년 04월 29일 (월) 14:40:04 오수경 goscon@goscon.co.kr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 2018년 
                                  
가난한 집 셋째 딸로 자란 엄마는 제법 어린 나이에 상경하여 노동자가 되었다. 또래 친구들이 ‘학창시절’을 누릴 때 엄마는 ‘여공’이 되었다. ‘여공’ 엄마는 역시 노동자였던 가난한 집 장남과 결혼하여 나와 내 동생을 낳았다. 평생 노동자로 살아온 부모의 바람은 하나였다. 내 자식은 ‘책상에서 일하는 사무직’이 되는 것. 그래서 부모의 노동은 생존을 위한 현재의 일이면서, 자녀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 부모의 노동을 자본 삼아 나는 대학을 졸업한 ‘노동자’가 되었다. 부모는 사무직인 나를 노동자로 생각하고 싶지 않겠지만 나는 노동자다.

노동이란 무엇이며 누가 노동자인가. 노동에 관한 부모 세대의 거부감은 자기부정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몸을 쓰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고, 내 자식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길 원하는 것.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멸시의 단어다. 노동자는 결코 닮고 싶지 않거나 아예 ‘없는 존재’가 되기 쉽다. 지금 머릿속에 노동자의 얼굴을 그려보라. 어떤 얼굴이 보이는가. 그런 까닭에 우리는 거리에서, 크레인 위에서, 굴뚝 위에서 투쟁하는 노동자에 동일시하기보다는, 사측 입장을 옹호하는 자기 분열적 선택을 하며 노동자의 형상을 지운다.

그런 경로를 거쳐 내가 처음 만난 노동자는 우연히 읽게 된 《전태일 평전》 속 전태일이었다. 정작 노동자인 부모는 전태일을 몰랐고,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전태일을 알게 되었다.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 농성을 한 김진숙도, 세계 최장기간 고공 농성을 한 기록을 세우고서야 땅에 발을 디디게 된 파인텍 노동자들도 나에게 너무 늦게 도착한 노동자들이었다.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또 다른 노동자를 소환했다.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 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평양 평원고무공장의 여성 노동자였던 강주룡은 1931년 일제의 일방적인 임금삭감에 반대해 높이 12m의 을밀대 지붕에 올라 농성하며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외쳤습니다.”

그가 소환한 강주룡의 일생을 담은 소설이 《체공녀 강주룡》이다. 이 책에는 어린 남편을 따라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남편을 잃고, 평양 평원고무공장 노동자로서 노동운동을 하다 생을 마감한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일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독립운동가로, ‘을밀대’에서 최초로 고공농성을 한 노동자로 알려졌지만, 그는 그저 ‘사람’이고자 했다. 거창한 대의명분 때문이 아니라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길 원하는 남편을 따라나서며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나라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노동운동 또한 노동자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사측에 “우리가 사람인 것을. 그것도 저들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인 것을” 보여주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노동자였지만 그 이전에 (모던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고, 사람이었기에 독립운동도, 노동운동도 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평생 노동자로 살아온 부모를, 매일 평범하고 성실하게 사는 일상의 노동자들을, 절박하게 투쟁하고 있는 거리의 노동자들을 생각했다. 우리가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에 관해서도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라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기며 노동자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는 것 아닐까. 그러기 위해 강주룡의 말을 새겨본다.

“내 배운 것이라군 예서 배워준 교육밖에 없는 무지랭이지만은 교육 배워놓으니 알겠습데다. 여직공은 하찮구 모단 껄은 귀한 것이 아이라는 것.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 고무공이 모단 껄 꿈을 꾸든 말든, 관리자가 그따우로 날 대해서는 아니 되얐다는 것.”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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