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호 3인 3책]

산딸기 크림봉봉

에밀리 젠킨스 글 / 소피 블래콜 그림
길상효 옮김 / 씨드북 펴냄 / 2016년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림책을 선물하곤 한다. 누군가는 “애들이나 보는 책”이라며 반기지 않지만, 사실 많은 그림책은 어른이 읽어도 좋은, 아니 오히려 어른들이 읽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그림책은 얇지만, 여느 두꺼운 책보다 두터운 이야기를 생산하게 한다. 에밀리 젠킨스가 쓰고, 소피 블래콜이 그림을 그린 《산딸기 크림봉봉》이 그런 책이다. ‘산딸기 크림봉봉’이란 으깬 산딸기(원래는 블랙베리인데 번역자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친숙한 산딸기로 바꾸었다)에 설탕을 녹인 다음, 우유로 만든 생크림을 부어 둥글게 둥글게 저어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먹는 디저트다.

설명만 봐도 달콤하고 맛있을 것 같은 이 디저트를 300년 전 영국 라임이라는 마을, 200년 전 미국 찰스턴이라는 도시 변두리, 100년 전 미국 보스턴이라는 도시, 가까운 몇 년 전 미국 샌디에이고라는 도시에서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이 책은 산딸기 크림봉봉이 시대마다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회전 거품기가 등장하기 전인 300년 전에는 엄마가 젖소에게서 우유를 짜서 나뭇가지로 만든 거품기로 저어 생크림을 만들면, 딸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천에 산딸기를 으깨어 산딸기 크림봉봉을 만들었다. 완성된 건 언덕배기에 있는 얼음 창고에 보관했다가 아버지와 아들만 앉을 수 있는 식탁에 올렸다. 딸은 부엌에 앉아 양푼에 남은 걸 먹었다.

200년 전에는 흑인 노예인 엄마가 젖소 농장에서 배달된 우유를 가지고 대장간에서 쇠로 만든 거품기로 생크림을 만들면, 역시 노예인 딸이 양철 거름망에 산딸기를 으깨어 만들었다. 지하에 있는 얼음덩어리 상자에 보관했던 산딸기 크림봉봉을 백인 주인들이 먹으면 노예인 모녀는 벽장에 숨어 양푼에 남은 걸 긁어먹었다.

100년 전에는 멸균 처리되어 예쁜 유리병에 담겨 배달된 우유를 엄마가 요리책을 참고하여 손잡이 달린 거품기로 저어 생크림을 만들면, 딸이 수돗물을 받아 산딸기를 씻어 채에 으깨어 만들었다. 다 만든 산딸기 크림봉봉은 날마다 배달되는 얼음덩어리에 보관했다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었다. 요즘에는 (드디어) 아빠와 아들이 슈퍼마켓에서 산딸기와 유기농 크림을 사와 아빠가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찾는 동안 아들이 전기 거품기로 생크림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산딸기 크림봉봉을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흑인 친구들, 백인 친구들,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나눠 먹는다.

이렇게 《산딸기 크림봉봉》은 시대별로 조리 도구와 기술 등 문명의 발전사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성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차별당한 역사나 노예제도 등 사회 변화 과정에 관한 문제의식도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최근에 이르러서야 아버지와 아들이 산딸기 크림봉봉을 직접 만들게 되었다는 부분과 인종과 성별, 나이를 초월하여 함께 풍성한 식탁에 둘러앉은 마지막 장면은 재미있는 그림책 이상의 풍성한 의미를 전달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희망의 공동체”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림책’이 누군가에게는 책이 아니듯, 디저트라는 음식 또한 누군가에게는 안 먹어도 그만인 것, 혹은 주 요리를 뒷받침하는 하위 분야로 취급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 책에 등장하는 ‘산딸기 크림봉봉’을 만들던 어머니와 딸도 역사 속에서는 그런 존재로 여겨져 왔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되어 온 역사와 문제의식을 감각적이고도 성실하게 재현함과 동시에, 만약 지금 내가 산딸기 크림봉봉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고, 누구와 함께 먹을 것인지 상상하게 한다.

이 책을 읽고, 산딸기 크림봉봉을 만들어 정답게 나눠 먹으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음식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러라고 작가가 요리법도 자세하게 적어 놓았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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