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호 3인 3책]

배틀 그라운드
백영경 외 공저
성과재생산포럼 기획
후마니타스 펴냄 / 2018년           

2019년 1월 현재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형법 제27장에 의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죄’다. 물론 모자보건법에 의해 일정한 조건이 성립되면 합법적으로 인공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런 법을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성경에는 “주께서 모태에서 내 내장을 지으시고 만드셨다”는 구절을 비롯하여 요한이 태아 시절, 태아 상태인 예수님을 만났을 때 “복중에 뛰노는” 이야기도 나온다. 즉, 성경은 태아도 생명(Prolife)이라는 사실을 명시하지 않지만, 그렇게 간주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종교계는 낙태를 ‘성경적’으로 죄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낙태를 단순하게 ‘생명권’ 문제로 접근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불법 낙태 단속을 요구하며 인공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병원을 고발했다. 이 계기로 정부는 낙태죄 처벌을 강화했다. 이 ‘낙태 고발 정국’은 많은 여성을 위험으로 내몰았다. 인공 임신중절 수술 비용이 터무니없이 상승했고, 위험한 시술을 감행하다가 의사에게 도리어 성폭행을 당하거나,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태아의 생명은 지켰으나 여성의 삶과 건강은 유린당하게 된 것이다. 태아의 생명권이 중요하다면 여성의 생명권이나 성과 재생산에 관한 자기결정권(및 행복추구권이나 안전/보건 추구권)은 어떻게 보호받아야 할까?

한편으로는 낙태가 언제나 ‘죄’인 것은 아니었다.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국가 차원에서 ‘가족계획’ 운동을 전개했고, 이때 낙태는 공공연한 ‘합법’이었다. 이런 국가 정책에 장단을 맞춰 교회는 ‘성경적’으로 낙태를 용인했다. 또한 1990년 전후로 성별을 감별해 여아를 낙태한 결과로 그 시기 출생한 인구에서 남성의 비율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그런가 하면 ‘IMF 낙태’라는 것도 있었다. 1997년 즈음 IMF 한파가 몰아치며 기혼 여성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낙태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당시 언론은 이런 현상을 ‘슬픈 낙태’로 보도하기도 했다. ‘슬픈 낙태’ 반대에는 ‘문란한 낙태’가 존재한다. 두 경우 모두 그 책임을 여성에 오롯이 전가했다는 문제가 있다. 낙태가 죄라면, 그 죄는 어떻게 성립되는가? 애초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국가나 종교가 개입하고, 통제하는 게 합당한 일인가?

낙태를 ‘문란하고 무책임한 성생활의 결과’라거나 혹은 ‘태아의 생명을 무시한 비윤리(비신앙)적 행위’로 단순하게 간주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낙태’ 자체가 바로 사회/정치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를 다룬 책 제목이 《배틀그라운드》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낙태죄라는 문제는 “단지 여성의 생애 한 대목에서 일어나는 임신중단이라는 행위만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시민 사이의 위계 재생산과 정상적인 삶의 규정을 둘러싼 싸움터”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활동가, 연구자, 변호사, 의사들로 구성된 성과재생산포럼에서 기획 출간한 이 책은 우리 사회문제의 최전선(배틀그라운드)인 낙태죄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정면 돌파한다. 낙태죄를 둘러싼 주요 맥락들인 법, 정책, 종교, 문화, 보건의료, 인권 등을 망라하여 다뤘다.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사회적 요구는 낙태를 함부로 할 길을 열겠다는 게 아니다. 낙태를 범죄화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점검하고, ‘범죄’로 분류되어 박탈당하는 여성의 성/재생산 자기결정권이나 생명권, 안전추구권 등을 제대로 보호하자는 의미다. 이런 상식적인 것조차 ‘죄’가 되는, 그 법과 종교는 과연 누구에게 은혜로운 것인가?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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