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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더의 불행한 호출은 왜 되풀이되는가
[336호 커버스토리]
[336호] 2018년 10월 29일 (월) 14:47:47 김성한 goscon@goscon.co.kr
   
▲ 존 하워드 요더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 걸까?’

존 하워드 요더를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신학자로서 큰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지만, 그가 남긴 ‘은밀한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명성만큼이나 거듭 회자되고 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요더의 성폭력과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의 반응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복상 지면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글을 쓰기 직전 해인 2015년에 나는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연구방법론 과목을 수강 중이었고, 요더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 성경대학원(Anabaptist Mennonite Biblical Seminary, AMBS)과 고센대학(Goshen College) 가까이에 살고 있었다. 나는 사례연구를 통해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Mennonite Church U.S.A, MCUSA)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 합동)측이 목회자의 성적 비행을 어떻게 다루는지 비교하려고 했었다. 요더와 전병욱을 다루는 두 교단의 치리 과정을 비교문화/간문화의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두 사례를 비교하려던 시도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공개되기 시작한 요더의 자료들과 내가 만난 인터뷰이들 이야기는 이미 내가 감당할 분량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본지를 통해 연재한 글은 당시 수업을 위해 썼던 소논문을 기초로 한 것이다.(2016년 1~5월호에 <존 H 요더의 성폭력과 메노나이트 교회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연재됐다. 하단 관련 기사 참고) 그리고 2년이 지난 뒤, 나는 교회 성폭력을 특집으로 다루는 지면에 요더에 대한 글을 다시 쓰고 있다. 요더는 1997년 12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계속 호출된다. 그는 정말 무엇을 남긴 것일까?

안희정의 위계, 요더의 위계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우리는 막강한 힘을 가진 가해자의 ‘위력’이 ‘위계질서’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았다. 그 질서 밖에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권력이 안에서는 작동한다. 물론 더 놀라운 것은, 심지어 그 위력이라는 것이 아직 법의 잣대로는 심판될 수 없는 초법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법을 잘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짐작이란, 무죄 판단을 내린 분들은 ‘눈만 깜박거려도 알아서 기어야 하고’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위력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을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꼼짝없이 몰아넣거나 무기력한 상태로 무너뜨리는, 지위에 기반한 폭력은 시대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별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요더를 경험한 학생들은 예외 없이 그를 매우 강력한 존재로 기억한다. 강의실에서 지적으로 흥미롭고 도전적인 질문을 하는 소수의 학생만이 요더와 지적 대결을 즐겼고, 그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 대다수는 두려움 가운데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요더가 학생이 질문하면서 인용한 저자의 책에 그 내용이 몇 페이지에 쓰였는지 기억하고, 심지어 저자가 인용한 각주를 언급하며 대답하더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데 이런 요더의 지적인 탁월함이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힘’으로 작용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은밀한 실험은 이런 막강한 지적 능력과 그의 확고한 명성이 작용하는 위계 안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요더의 많은 피해자는 그가 계속해서 편지나 대화 가운데 ‘친밀함’(intimacy)이라는 주제에 집중했다고 증언한다. 요더의 미발표 소논문 중 하나인 〈도움에 대한 요청〉(A Call for Aid)이라는, 1인칭으로 쓰인 3쪽 분량의 글을 받게 된 학생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신학적이며 윤리학적인 그리고 심리학적인 연구로 이끌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 이 연구는 내가 써왔던 글들을 넘어 연구해보지 않았던 주제들로 나를 밀고 갑니다. 그것들은 매우 복잡한 주제들로서 출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만일 독신자들을 위한 교회와 사회의 의무를 단언한다면 이 주제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 따라서 당신―동의한다면―이 이 연구 주제들을 위한 “해석학적인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Yoder, 1974)

새로운 실험에 동참해달라는 이 진지한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요청을 바로 존 하워드 요더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라는 미국의 급진적 사회 문화를 생각해보면, 가족이라는 우상을 넘어, 독신자들과 결혼제도 바깥의 사람들을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그의 급진적 주장은 반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우리는 요더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이 왜 이렇게 많은지 놀라지만, 그 피해자들은 요더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와 교회에서 피할 곳이 없었다. 그가 존경받는 목사인지, 유력한 대권주자인지, 능력 있는 연출가인지, 혹은 뛰어난 학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막강한 힘을 가진 똑똑한 포식자는 세련된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길들이고 교묘한 말로 원하는 것을 취하고 있었다.

   
▲ 요더의 성폭력 사건 전모를 밝힌 연구서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질문과 저항이 솟기까지
오랜 기간 피해자들의 고통이 은폐되고, 요더의 명성과 지위가 날로 견고해지는 동안 그에 대해 질문하고 저항하는 이들도 있었다. 요더는 1967년부터 AMBS의 전신인 고센성경대학원(Goshen Biblical Seminary, GBS)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말린 밀러 총장은 1976년경부터 요더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1984년 요더가 AMBS를 떠나 노트르담 대학교(Notre Dame University)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밀러와 학교 리더십은 요더의 결혼 관계와 가정을 지키고 ‘결혼 관계 바깥에서의 친밀함’에 대한 요더의 실험을 멈추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실패했고 요더는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밀러 총장의 은밀한 시도가 계속되는 동안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서 요더에 대한 은밀한 소문 역시 퍼지고 있었다.

아직 이때까지도 북미 지역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메노나이트 교회―각기 다른 콘퍼런스에 속한―나, 학교들―각각의 독립적인 이사회를 가진―이 빠르게 소식을 공유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소통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지혜로운’ 그가 밀러 총장과 자신의 문제를 매우 은밀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조치들을 취했다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다. 물론 밀러는 학교를 책임지는 상태에서 요더에 대한 추문을 널리 알릴 수 없기도 했다. 점점 커지는 그의 명성은 작은 교단 신학교를 떠나, 인근 가톨릭 종합대학인 노트르담으로 갈 수 있게 작용했다. 그는 사실상 ‘해임’되듯 떠났으나 오히려 더 좋은 자리로 ‘영전’한 것이다.

요더가 노트르담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자, AMBS는 더는 그를 학교 행사와 수업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금지령을 내렸다. AMBS 바로 길 건너에 살고 있던 요더는 도서관과 같은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더는 학교 행사와 수업에 초청되거나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요더의 모교인 고센대학 역시 캠퍼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행사와 수업에 요더를 초청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로 보이지만, 요더라는 위험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AMBS와 고센대학에서의 요더 금지령은 모두 비공식적이었지만, 사실상 그의 추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물론 문제는 요더가 메노나이트 세계 바깥에서는 오히려 잘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얼마 뒤인 1987-1988년에는 미국 기독교윤리학회장으로 선출되기까지 한다.

1992년 2월 요더가 멤버십을 갖고 있던 프레이리 교회는 요더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테스크포스(task force, 전담반)를 조직했고, 미국 전역의 메노나이트 교회의 여성들에게 요더로부터 본 피해 보고를 접수하였다. 그리고 그중 피해 여성 여덟 명의 증언을 청취하게 된다. 이들은 요더를 따로 소환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마침내 피해자들의 증언이 참된 것임을 확증한다. 요더에 대한 공식적 조치들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던 이 시기에도 다양한 행사에 그를 초청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는 여전히 가장 ‘핫한’ 학자였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캔자스 주에 위치한 다른 메노나이트 대학인 베델대학(Bethel College)에서 준비중이던 콘퍼런스는 1년 전에 이미 요더를 주 강사로 확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1992년 4월에 열리는 이 콘퍼런스를 앞두고 요더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베델대학에도 알려진다. 이 소식은 학교 전체에서 요더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결국, 학생들의 저항은 이 문제적 인물에 대한 초청을 취소하게 했을 뿐 아니라 요더의 성 추문에 대한 공개 폭로를 촉발했다. 베델대학의 신문 〈컬리지안〉(Collegian)은 요더에 대한 초청이 취소되었다는 기사를 내었고, 이어서 〈메노나이트 월드 리뷰〉(Mennonite World Review)라는 교계 신문은 “베델대학이 성적 비행에 대한 혐의를 받고 있는 신학자의 강연을 취소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다. 이런 보도는 1992년 6월 말 요더의 목회직 정지에 관한 결정이 내려지고 난 뒤 이를 특종으로 보도한 〈엘크하르트 트루스〉(Elkhart Truth)보다 앞선 것이다. 이후 칼빈대학을 비롯한 여러 학교는 예정되어 있던 요더 관련 일정들을 취소했다. 

요더의 이야기를 다시 읽을 때마다 요더라는 거대한 인물의 추악한 이면을 보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고 저항했던 학생들의 용기를 생각하게 된다. 더 이상의 피해자들을 막기 위해 캠퍼스에 요더를 들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선생님들이 보인다. 그렇게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더라도, 큰 명성을 지닌 사람이더라도 교회가 먼저 그의 죄에 대해 공적인 치리 과정을 시작했다면, 그의 자격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불의한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에 대해 질문하고 저항하고 추방해야 하는데, 그가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기에 평소 누려왔던 제도와 질서에 의해 보호되어 숨어버린다.

만약, 질문도 저항도 허락되지 않는 곳이라면, 이미 그곳에서는 비밀스러운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겠는가?

   
▲ 지난 2015년 미국 메노나이트 교단 총회에서 채택된 <성폭력에 대한 범교회 성명서> 첫 페이지(부분).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 웹사이트 mennoniteusa.org에서 PDF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다.

여성 리더십의 배제와 등장
안희정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언급했다는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1970-80년대 MCUSA의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피해자들의 증언과 신고가 계속되었지만, 가부장적 질서와 남성 중심 리더십이 견고했던 교회는 피해 여성들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1992년에 시작된 ‘인디애나-미시간 콘퍼런스’의 치리 과정 역시 요더의 치유와 복권에 우선적 관심이 있었지, 피해 여성들의 치유와 회복에는 관심이 없었다. 1996년까지 무려 4년간 계속된 징계 절차가 끝났음을 알리는 1쪽 분량의 공식 발표문 어디에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이 없었으며, 요더는 공식 발표문과 함께 사과문을 발표해달라는 ‘인디애나-미시간 콘퍼런스’의 요청을 거부했다. 따라서 요더가 세상을 떠난 1997년 이후에도 요더의 성폭력 사건은 많은 피해자에게 미결로 남겨져 있었다. 교회는 이들의 고통을 깊이 살피지 못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요더의 문제를 새롭게 다루게 된 계기에는 AMBS의 총장인 세라 웨그너 셍크(Sara Wagner Shenk)라는 여성 리더십의 등장이 있다. 셍크 총장은 먼저 요더의 많은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던 AMBS를 책임지는 총장으로서 과거에 일어난 이 불행한 사건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그는 AMBS 교수들과 함께 요더의 신학과 그의 저작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비판적인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교단 차원에서 구성된 위원회에 주도적으로 참가하고, AMBS 차원에서 ‘애통, 고백과 헌신의 예배’를 준비했다. AMBS의 전·현직 이사회, 교직원, 요더의 가족과 피해자들이 함께한 예배에서 셍크 총장은 요더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게 한 일에 대해 학교를 대표해서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셍크 총장의 사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피해자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교회의 잘못과 책임에 대한 인정과 사과의 ‘시작’이었다. 셍크에게는 요더가 저지른 권력 남용과 그의 폭력으로 고통받은 이들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있었다. 변두리로 밀려나 차단되어 있었던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요더의 명성에 가렸던 그들의 탄식과 눈물을 교회 앞으로 가지고 나왔다.

절망스럽게도 아직 우리는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자다움’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전병욱 재판을 오랫동안 미뤄오던 합동교단 평양노회 재판국은 피해자들을 불러서 삼자대면을 하겠다며 피해자들에게 소환장을 보내는 몰상식을 보였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에 ‘피해자다움’을 먼저 보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성폭력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이를 정의롭게 해결하지 못하는 교회는 스스로 교회 안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매년 가을 열리는 교단 총회에 참석하는 여성 총대 비율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 절망적인 수치다. 백번 양보해서 신학적 입장 때문에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구조 안의 남성 리더십은 매년 교회에서 일어나는 목회자의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고 피해자 중심의 해결을 이루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투명하고 구체적인 제도와 방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셍크 한 사람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셍크 총장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가능하지 않았을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따라서 여성 리더십이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교회가 여성 피해자들의 고통에 어떻게 귀 기울일 수 있을지는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불가역성’이라는 어려운 말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은 일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불가역성’이란 어려운 말은 이런 상황에 어울린다. 요더의 사례를 연구하면서 MCUSA의 반응을 살펴보면,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던 과거의 반응은 철저하게 실패한 모습이다. 그렇다며 최근의 반응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너무 오랫동안 일어났고 방치되었다. 이제야, 너무 늦게,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이루어진 것이다. 

2013년 8월 MCUSA의 대표인 어빙 스투즈만은 요더의 해결되지 않은 논란뿐 아니라 교회 안의 성폭력에 대한 그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요더에 대한 교단 차원의 반응 핵심은 범교단 차원의 ‘식별그룹’(Discernment Group)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 그룹은 요더의 문제뿐 아니라 MCUSA 안에서 성폭력 문제를 다루도록 결정되었으며 4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으로 구성되었다. MCUSA 대표인 스투즈만과 AMBS 총장인 셍크가 공동의장으로 그룹을 이끌었으며, 성폭력과 그 피해자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전문가들과 요더와 그의 피해자들을 잘 알고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식별그룹은 그동안 정확한 사건 전모와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던 요더의 성폭행에 관해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교회의 잘못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작업과 교회 안에서의 성폭행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을 주된 과제로 삼았다.

진실 규명 작업을 위해 여성 역사학자인 레이첼 월트너 구슨(Rachel  Waltner Goossen)에게 요더의 성폭행과 관련된 비밀 메모, 회의 자료 등과 같이 남아 있는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광범위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하게 했다. 그 결과물이 80쪽이 넘는 분량의  논문 <야수를 해가 없게 하다: 존 하워드 요더의 성폭행과 메노나이트 교회의 반응>(Defanging the Beast: Mennonite Responses to John Howard Yoder’s Sexual Abuse)이다. 이는 2015년 〈Mennonite Quarterly Review〉(MQR) 1월호를 통해 발표됐다. 요더의 많은 에세이들과 그에 대한 수많은 글이 〈MQR〉을 통해 발표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요더의 치부를 드러내는 글을 〈MQR〉에 싣기로 한 결정은 요더의 신학과 그의 행동에 대한 공개적인 참회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진실 규명에 이어 재발 방지를 위한 교단 차원의 노력은 2015년 여름에 열린 콘벤션(2년마다 열리는 교단 총회)에서 구체화되었다. 총회의 공식 안건 중 하나가 교회 내 성폭력 방지와 희생자들에 대한 치유에 대한 것이었다. 이 문건은 다른 총회 안건들과 함께 지역 교회에서 회람되었고 총회에서 <성폭력에 대한 범교회 성명서> (Churchwide Statement on Sexual Abuse)를 결의안으로 채택하기에 이른다. 이 결의안의 초안은 요더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시작된 식별그룹에서 작성했고 총회에서 발표되었다. 이 문서에는 지역 교회의 회중들이 성폭력을 막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울러 학교와 기관들이 성폭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며 희생자들을 보호하는 조치들은 무엇인지 자세히 밝히고 있다.

혹시라도 메노나이트에 대한 헛된 환상을 갖게 하지 않을까 노파심이 인다. 이는 사건이 있은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시작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일 뿐이다. 교회 전체가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바른 방향으로 가겠다는 첫걸음일 뿐이다. 요더의 신학과 저작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계속되고 있으며, 요더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교회, 여전히 그의 저작과 신학을 중요하게 취급하는 교회와 신학에 대한 문제제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는 성폭력 사건 이전으로 결코 되돌려질 수 없다. 불가역적이다. 그래도, 이 뒤늦은 노력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교회의 실패에서 제발 작은 교훈이라도 배우기를 바란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해결하지 않은 평화신학
요더의 성폭력은 그동안 그가 이룬 학문적인 기여와 함께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다뤄졌지 결코 독립된 주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MCUSA가 요더의 문제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공식적인 치리를 시작하기까지 최소한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 동안 피해자들의 증언과 요더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계속되었지만, 이를 외면하거나 증언을 신뢰하지 않았던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다. 1992년 2월이 되어서야 요더에 대한 본격적인 치리가 시작되고 같은 해 6월 그의 목회직을 정지시킨다. 하지만, 그들은 예외 없이 긴 세월을 버텨온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황보다는 요더의 복권과 그의 학문적 기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2013년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서 요더에 대한 논쟁을 다시 촉발한 것은 바바라 그래이버가 교단 공식 기관지인 〈더 메노나이트〉(The Mennonite)에 투고하면서부터다. 이 투고는 진실이 은폐되고 가해자와 그의 편에 섰던 교회의 공적 참회 없이 오히려 가해자의 명성이 계속 높아지는 기이한 현실이 피해자들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구역질 나는 요더에 대한 추천사 …
…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를 따르는 것에 대한 존 하워드 요더의 가르침을 다룬 “놀라울 정도로 적실한” 책을 어서 사서 읽어보라는 글(지난 6월 ‘미디어와 문화’란)과 교회가 조직적으로 만성적인 요더의 성폭력과 오랫동안 전 세계의 여성들을 상대로 저지른 잘못들을 은폐해왔다는 모순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은 꽤 역겨운 일이다. 하루를 망치는 것 같았다. 그의 폭행을 견뎌왔지만, 교회로부터 그 어떤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여성들의 얼굴에 찬물을 한 잔 더 끼얹는 셈이다. 그들의 포식자에게 또 다른 영예가 더해진다. 단지 더 “평화를 외쳐라, 평화가 없는 곳에서 평화를 외쳐라”와 같은 꼴이다. 메노나이트 교회의 평화주의 신학은 교회의 남성들이 똑같은 열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매 된 자들과의 평화를 추구하며 그들의 가정과 교회의 여성과 어린이들을 향한 폭력이 멈추도록 일할 때까지는 거짓일 뿐이다. 존 하워드 요더의 삶과 그의 가르침 사이의 윤리적 모순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바바라 그래이버(해리스버그, 버지니아)

바바라의 질문은 나에게도 유효하다. 요더의 비행을 하나의 ‘딜레마’로 받아들이고 있던 나의 태도는 1990년대 메노나이트 교회 지도자들이 가졌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더에 대해 유보적 견해를 견지하거나, 피해자들의 고통을 그의 작업과 분리해서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요더의 급진적 윤리학과 메노나이트 평화신학이 훌륭한 대안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요더의 실패는 그 자신의 모순뿐 아니라, 교회 안의 위계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견고한지 보여주었다. 만성적인 요더의 성폭력을 막지 못했고,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을 오랫동안 미뤄왔던 메노나이트 교회는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 그들이 내세웠던 평화신학의 높은 이상은 수많은 피해 여성들에게 침묵과 고통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남성 리더십의 한계와 교회의 현실을 극복하지 못했다. 좀 더 거칠게 말하자면, 요더를 통해 제시된 메노나이트 평화신학은 여성을 배제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바바라의 시선으로 요더를 볼 수 없었을까? 이미 내게 주어진, 내가 몸담은,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시선으로 요더를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질서와 구조 안에서 힘을 가진 사람으로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죽은 요더를 다루는 시선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요더가 한국에서 거듭 호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이곳에서 계속 실패하기 때문이다. 20-30년 전 요더와 같이 교회와 제도 안에서 힘과 명성을 가진 이들이 그 힘을 남용해서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현실, 이를 정의롭게 다루지 않는 불의한 교회 현실이 개혁되지 않기에 요더는 사라지지 못한다. 이 불행한 호출이 이제 멈춰지기를 바랄 뿐이다.  


김성한
IVF(한국기독학생회) 미디어 사역부 대표간사와 인디밴드 코드셋 멤버로 활동했으며 철학, 교회사, 평화학을 공부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인디애나주의 고센에서 살면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Intercultural Studies 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현재 IVF 춘천지방회 대표간사로, 여전히 한국 기독교의 민족복음화 담론에 대한 논문을 붙잡고 씨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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