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호 에디터가 고른 책] 가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아닌 아나뱁티즘 / 월터 클라센 지음 / 김복기 옮김 / KAP 펴냄 / 13,000원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기가 무색하게도 한국교회는 다시 오늘의 개혁 대상이다. 그런 한국교회에 돌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아나뱁티스트운동의 태동부터 살펴보는 책이 나왔다.
책에 따르면 기독교 국가주의가 지배하던 16세기부터 아나뱁티즘은 (오늘도 급진적이라 여겨지는) ‘제자도’를 강조했다. 그들에게 사랑의 계명은 삶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었다. 곧 이 계명은 “피해에 관련된 사람들을 용서하고, 보복하지 않고, 상처를 되돌려 주지 않고, 억압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변호하며,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함을 의미한다.”
교회-세속이 구분 없던 16세기에 아나뱁티스트들은 성서에 나와 있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이미 구별하여 알았다. 그들은 평화에 반하는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고, 재산에 대해서는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위험한’ 태도를 취했다. “사람들이 공동체에 들어갈 때, 그들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공동체의 처분에 맡겨야 했다. … 다른 사람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자신의 소유물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기존 사회와는 다른 대안 사회를 세워나가는 이 운동을 당국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런 모범적 삶 때문에 그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위험한 지역이 되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일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잘해 주거나 친절하면, 그 사람은 아나뱁티스트가 아닌가 하고 의심을 사게 되거나 박해를 받기도 했다.”(71-72쪽) 아나뱁티스트들은 추방의 대상이었다.
책은 아나뱁티즘을, 그 태동한 시간과 공간의 맥락 속에서 다각도로(신성불가침, 윤리, 율법주의, 이상주의, 사회 변화) 살펴본다. 결론 장의 제목처럼 아나뱁티즘은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에 다시 프로테스탄트운동이 요구되는 오늘, 아나뱁티즘이란 기독교의 유산을 필독서로 읽어보면 좋겠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태동은 오늘의 우리가 새로운, 그러나 실은 본래의 교회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움직임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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