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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생육하고 번성하라며!
[323호 시사 잰걸음] 구조악에 갇힌, 청년들의 일과 사랑
[323호] 2017년 09월 22일 (금) 15:52:28 박제민 기독시민운동가 goscon@goscon.co.kr

기독청년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무얼까? 아마도 “비전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 아닐까. 나도 정말 많이 들었고, 괴로울 만큼 많이 고민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결국 비전이라는 게 두 가지다. 나는 장차 어떤 일을 할 것이며, 누구를 만나 어떻게 연애를 할 것인가! 〈무한도전〉에 나왔었던 ‘그 녀석(노홍철)’의 말마따나 일과 사랑, 사랑과 일이다.

청년들의 일과 사랑에 대해서 발표할 기회가 생겼다. 세미나에 초청한 분이 미리 이야기 제목을 알려달라고 했다. 고민하던 중에 말씀 하나가 떠올랐다.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 흔히 ‘창조 명령’이라고 하는 그 말씀이다. 영어로는 “Be fruitful and increase in number”라고 하던데 직역하면 “열매를 맺어라, 수가 늘어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거칠함을 무릅쓰고 갖다 붙이면 “일해라, 사랑해라”라고 말할 수 있겠다.

청년들이 일도 잘하고 사랑도 잘하면 굳이 나 같은 사람을 부를 이유가 없겠지. 알다시피 오늘날 청년들은 “일할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일할 수 있을까?
통계청이 발표한 시도별 청년실업률에 따르면 2017년 2분기 전국 청년실업률은 10.4%다. 1분기 10.8%에 비하면 0.4% 하락했지만 올해 들어 10%대로 올라선 이래 계속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통계보다 심각하다.

우선 통계 방식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15-29세를 청년으로 보고 통계를 잡는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가입해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15-24세를 기준으로 한다. OECD기준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청년실업률은 11.3%로 좀 더 높아진다. 군 복무가 의무인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해 기준을 달리했다고 하는데 궁색한 느낌이다. 통계의 문제는 또 있다. 실업자를 계산할 때는 아주 인색하고, 취업자를 계산할 때는 매우 관대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실업자가 되려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첫째, 조사 기간 중에 수입이 있는 일을 하지 않을 것. 둘째, 지난 4주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어야 할 것. 셋째, 일이 주어지면 즉시 취업이 가능해야 할 것 등이다. 이 경우,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수험생이나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인 취업준비생들은 실업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반대로 다음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만 해당하면 취업자가 된다. 첫째,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을 하는 사람. 둘째, 무급으로 가족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 셋째, 질병·사고·교육·휴가 등의 이유로 일시 휴직한 사람은 취업자로 분류된다. 이 경우 단기 아르바이트생, 일용직, 임시직 등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는 분들도 쉬이 취업자로 분류된다.

아시다시피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수(실업자 수 + 취업자 수)를 분모에, 실업자 수를 분자에 놓고 곱하기 100을 해서 낸다. 실업자 수를 계산하는 데 인색하다는 것은 분자를 줄이겠다는 것이고, 취업자를 계산하는데 관대하다는 것은 분모를 늘리겠다는 것. 즉 수치를 낮게 잡겠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청년실업률 숫자와 청년들의 체감 실업률은 크게 차이가 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조사한 〈2016 청년고용지표의 현황과 개선 방향〉에 따르면 청년 체감실업률이 무려 34.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실업률은 9.8%였다.

위 결과가 나오자 당시 유경준 통계청장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난센스” “통계분석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며 발끈했다고 한다.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다. 설령 통계가 좀 과장됐다 하더라도 청년들이 느끼는 압박감에 공감하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하면 어디가 덧났을까? 그러나 그의 걱정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지금 과장된 수치가 공표될 경우 고용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사랑할 수 있을까?
초혼 나이가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 여남 각각 24.8세, 27.8세였던 초혼 연령은 2015년에 여성 30.0세, 남성 32.6세에 이르렀다. 가장 최근에는 결혼정보업체 듀오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2017년 현재 여성 32.7세, 남성 35.9세로 나타났다. 그런데 내가 처한 형편이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 주변에 있는 35.9세 남성 중에 결혼을 안 한 사람이 훨씬 많다.

요즘은 비혼도 늘어나는 추세이고 이를 애써 불온하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애를 하고 싶어도, 결혼을 하고 싶어도 형편 때문에 할 수 없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6년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취업이나 불안정한 직업 때문에 연애를 망설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20대 18.4%, 30대 28.7%에 이르렀다. 또 ‘비용부담으로 결혼을 망설인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41%에 달했다.

도대체 결혼하는 데 얼마나 들기에 그럴까? 듀오가 발표한 〈2017년 결혼비용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총 2억 6,332만 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부적으로는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 1억 8,640만 원·예식장 1,905만 원·예물 1,798만 원·예단 1767만 원·혼수용품 1,417만 원·신혼여행 496만 원·소위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가 309만 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결혼하려면 이렇게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인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거 실화냐?”

문제는 구조악
혹자는 청년들이 눈이 높아서 힘든 일자리는 마다한다고 한다. 청년들이 이기적이라서 연애도, 결혼도 안 한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잘난 척하며 나열한 통계들은 청년들이 눈이 높거나 이기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구조적으로 일하고 사랑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소위 80년대 학번들은 데모만 열심히 해도 졸업할 때는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피똥 싸게 공부해도 면접 한 번 보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월급 격차가 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 임금격차는 169만 원 이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격차도 200만 원이 넘는다. 그 정도 격차면 어떤 이에게는 한 달 치 월급이다. 일하고 와서 사랑하는 이와 몸 누일 방 한 칸은 있어야 하는데 부동산 가격은 정말이지 미쳤다.

당당하게 살기에는 사방에서 쏘아보는 눈치들이 너무 따갑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말을 자주 하는 이들의 자녀들은 고생을 사서 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선비·농민·공장·상인 순으로 직업의 귀천을 따졌다. 직업의 귀천을 따져 월급 차이를 두고, 사람을 아래위로 보는 것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헬조선이 맞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모든 직업을 거룩하다고 인식시키는 데 완전히 실패하고 세상에 동화되었다.

젊은이들이 눈이 높아서 일자리를 안 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기적이라서 혼밥, 혼술하며 연애도 안 하고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일하고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따를 수 없게 사회구조가 짜여 가고 있다.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 없게 하는 이런 구조를 ‘악’이라 부르지 않으면 무엇을 악이라고 할까!

자매와 형제가 되자
초청받은 곳에 가서 이야기하면서 청년들의 편을 들자고 했다. 기본소득, 최저임금 인상에 지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자 한 분이 손을 번쩍 드셨다.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장로님이 편의점을 운영하시는데 야간 아르바이트생에게 야간수당을 주지 못하고 있단다. 그것까지 챙겨주면 장로님은 남는 게 없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 뭘 모르고 하는 말이란다. (와, 젊은 사람이라고 해주셨다!)
심호흡 크게 하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는 그 장로님이 악독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생의 야간수당을 떼어먹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일하면서도 정당하게 야간수당을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의 고통을 헤아려보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모두 구조악에 고통받고 희생당하는 약자입니다. 편의점 사장 장로님과 알바생, 또는 질문하신 분과 제가 다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따를 수 없도록 하는 구조악을 깨뜨리는 데 우리 모두 자매요 형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진심이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소개했다. 마가복음 6장 42절이었다. “다 배불리 먹고” 저 여섯 글자가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9월 2일에 결혼을 했다. 2억 6,332만 원 없이 이뤄낸 쾌거였다. 아내는 ‘잘사는 힘’은 ‘잇대어 사는 삶’이라고 믿는 사람이다.(복음과상황 288호 커버스토리 참고) ‘가난이 네 탓이 아니라’는 아내의 고백은 내게 진실로, 진실로 복음이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던 아내는 비전을 좇아 새로운 일을 찾기로 했다. 이 땅에서 일과 사랑, 사랑과 일을 하기 위해 애쓰는 젊은이들에게,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자매와 형제 된 마음으로 큰 복을 빌어본다.

   
▲ 9월2일에 결혼을 했다. 2억 6,332만 원 없이 이뤄낸 쾌거였다. (사진: 박제민 제공)


다 배불리 먹고! 아멘.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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