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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와의 전쟁 : ‘있는놈’들 전성시대
[322호 시사 잰걸음]
[322호] 2017년 08월 25일 (금) 14:31:20 박제민 기독시민운동가 goscon@goscon.co.kr
   
▲ 김현미 장관이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위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국토교통부 제공)

‘있는놈’들 전성시대
어릴 적에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의 작은 아파트에 살았다. 한 회사가 사택으로 지은 아파트였는데 회사가 망하면서 일반인에게 팔린 듯했다. 젊고 똑똑한 사람들이 경영하던 회사였는데 그만 정권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망했다는 말도, 기성 재벌들이 시샘하고 견제하는 바람에 망했다는 말도 있었다.

5층짜리 아파트 6개 동이 아기자기 모여 있었다. 우리 집은 5동 202호였다. 아버지가 2층에서 고무호스를 내려 세차를 하는 날은 반드시 비가 왔었다. 5동과 6동 사이 풀밭에서 온종일 놀다 풀독이 잔뜩 오른 적도 있었다. 처음 자전거 보조바퀴를 떼고 단지를 한 바퀴 쌩 돌다가 넘어졌을 때 울지 않고 일어났다. 그날은 보조바퀴를 뗀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아파트를 부수고 크게 새로 짓는다고 했다.

서울 강동구에 아파트 재건축 붐이 일고 있다. 올해 안에 6개 재건축조합에서 아파트 5천1백36가구를 분양한다. 98년까지 지어질 재건축아파트 총가구 수는 7천여 가구에 이른다. (중략) 지난해와 올 상반기 사이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암사동 ○○아파트 등 7개 재건축조합에서도 2천15가구를 짓는다. 이중 조합원 공급물량을 제외한 1천여 가구는 내년부터 타 지역 거주자에게 일반 분양된다.
― ‘서울 강동구 재건축 아파트 넘친다’, <경향신문> 1995년 5월 10일, 20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몇 차례 긴 대화를 나눴고 집을 팔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집이 1억 3천만 원에 팔리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열심히 기도했다. 늘 그렇듯 내 기도는 잘 응답되지 않는다. 1억 2천만 원에 팔렸다.

그런데 우리 집을 사기로 한 사람이 남은 돈을 제때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 사람이 미리 낸 돈이 그냥 전부 우리 것이 되고 우리 집은 다시 우리 집이 된다고 했다. 오예! 하지만 양반이었던(확인된 바는 없다) 우리 아버지는 “남의 돈 갖고 함부로 그러면 안 된다”면서 그냥 봐줬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스스로 약간 우쭐해 하시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런 아버지가 얼마 전 암사사거리에 있는 이탈리아 사람이 운영하던 피자집에서 영어로 솰라솰라 주문하는 모습을 본 뒤로 오랜만에 멋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집 판 돈을 가지고 지긋지긋하던 은행 빚을 몽땅 갚아버렸다. 알고 보니 우리 집을 사면서 은행에서 돈을 좀 빌렸는데 그게 야금야금 늘어난 모양이었다. 나는 더 이상 어머니가 밤마다 산수 공부를 안 해도 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빚을 다 갚고 약간 돈이 남았는데 어머니 친구가 수도권에 싼 아파트를 사 놓으라고 했다.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인 어머니는 그 제안을 쉬이 거절했다.

우리는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작은 빌라로 이사를 했다. 빚 갚고 남은 돈으로는 전세 비용이 모자라서 매달 얼마씩을 집주인에게 줘야 한다고 했다. 새집에 들어가 창문 밖으로 처음 동네를 봤을 때, 그 낯선 모습에 마음이 갑자기 어스름해졌다. 고향을 떠나는 것은 싫었지만 전학을 가보는 것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종종 암사동에 놀러 갔는데 우리 아파트가 있던 자리에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부동산 불패’라는 신화가 생겼고, 우리 집은 점점 가난해졌다. 그때부터였다. ‘있는놈들 전성시대’가 열렸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정부가 2017년 8월 2일,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흔히 ‘8·2 부동산 대책’이라 불리는 이것은 12년 만에 나온 가장 강력한 조치로 사실상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는 평가다.

8·2 부동산 대책의 큰 틀은 주택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투기수요를 차단하고, △실수요 중심으로 주택 수요를 관리하며, △서민을 위한 주택공급을 확대하고, 이것이 투기세력이 아닌 △실수요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를 직접 발표했는데 브리핑문을 바탕으로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투기수요를 차단하기 위해서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구’를 지정했다. 먼저 서울시 전 지역, 경기도 과천시, 세종시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또 추가로 서울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등 강남 4구와 용산구, 성동구, 노원구, 마포구, 양천구, 영등포구, 강서구, 세종시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했다. 정부가 지역을 예의주시하면서 상황에 맞는 제재를 가함으로써 투기수요를 강하게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실수요 중심으로 주택 수요를 관리하기 위해서 금융제재와 세금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먼저 다주택자에게 LTV와 DTI를 40%p로 하향 적용하기로 했다. 여기서 자꾸 헷갈리는 LTV, DTI가 대체 뭔지 알아보자. ‘주택담보대출비율’이라고도 하는 LTV(Loan To Value ratio)는 집을 살 때 그 집을 담보로 잡으면 집값에 비례해 대출금을 결정하는 것이다. ‘총부채상환비율’이라는 DTI(Debt To Income)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대출받는 사람의 돈벌이를 기준으로 빚 갚을 능력이 있는지 점검하는 제도다. LTV와 DTI가 높을수록 집을 살 때 돈을 많이 빌릴 수 있는데 앞으로는 다주택자가 대출을 받아 집을 더 사는 게 어려워졌다.

다음으로 다주택자에게 양도소득세를 중과하기로 했는데 이것이 사실상 이번 8·2 부동산 대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즉 2주택자에게는 기존세율 40%p에 10%p를 추가해서 50%p, 3주택자에게는 20%p를 추가해서 60%p를 매기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지방소득세까지 포함하면 세율은 더 오르고 장기보유자에게 적용하던 특별공제 적용도 없애 부담을 더했다. 또 분양권을 전매할 경우 주택을 매각할 때보다 높은 50% 세율을 적용해 분양권 단기 전매를 통한 차익을 노리는 투기 수요에 대응하기로 했다.

즉 앞으로 다주택자가 집을 팔 때 세금을 왕창 물릴 테니 그 전에 팔아서 주택시장에 공급하라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내년 4월까지 양도소득세 중과를 유예하기로 했다. 김현미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4월까지 기간을 드렸으니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니면 좀 파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셋째, 서민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공급량을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이미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많다고 봤지만 추가로 공공택지를 확보하고 공적임대주택, 신혼부부를 위한 분양형 임대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겠다고 했다.

넷째, 위와 같이 늘린 공급량이 실수요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청약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그동안은 공급량을 늘려도 투기꾼들이 달려들어 다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즉 이제껏 청약 1순위를 얻으려면 청약저축 가입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했는데 그것을 2년 이상으로 바꿨다. 이렇게 하면 현재 수도권에 약 800만 명이 청약 1순위 자격이 있는데 약 100만 명이 줄어든다고 한다. 또 청약신청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가산점인데 오래 살았거나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이 청약가점제 적용비율을 투기과열지구에서는 100%, 조정대상지역에서는 75%까지 높이기로 해 해당지역에 오래 살고 부양가족이 많은 실수요자에게 유리하도록 했다. 아울러 특별사법경찰제도 등을 운영해 불법행위 적발 시 벌금을 1억 원 이하로 늘리는 등 단호히 대처하기로 했다.

8·2 대책에서 빠진 것
결국, 정부는 다주택자들이 투기를 노려 주택을 추가로 구입하는 것을 강력히 억제하고 실제 집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집 살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집을 거주공간이 아니라, 투기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김현미 장관) “부동산 가격 문제에 물러서지 않겠다.”(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는 발언 등을 볼 때 정부가 투기와의 전쟁에서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을 기세다.

와, 그럼 이제 투기는 끝장난 것일까? 글쎄… 이번 8·2 부동산 대책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 바로 보유세 인상이 빠졌다는 것. 부동산을 팔 때만 내는 양도소득세만 왕창 매길 경우, 막말로 다주택자가 안 팔면 그만이다. ‘전성시대’를 지나온 ‘있는놈들’이 소낙비만 피하자는 심정으로 버티기 시작하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정부가 될 수도 있다.

부동산 투기를 확실히 잡는 데 보유세를 높이는 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 보유세는 부동산을 갖고 있기만 해도 내야 하는 세금이기 때문에 다주택자들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번 조치에 보유세 인상을 뺀 것을 두고 조세저항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지지율이 높고 투기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크기 때문에 과거 참여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세금폭탄론’ 같은 반대 주장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희년의 나팔을 불자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보면, 전직 공무원과 깡패가 결탁해 전성기를 누리다가,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서로를 배신하는 과정을 그린다. 깡패는 몰락했지만 전직 공무원은 용케 살아남아 자기를 잡으려던 검사까지 포섭해 승승장구한다.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끝내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닌 것이다.

이번 투기와의 전쟁은 어떻게 될까? 집 없는 사람들이 제 몸 하나 편히 뉘이고, 식구들과 오순도순 살 수 있는 집을 갖게 될까? 아니면 저 영화처럼 모든 게 흐지부지 되고 여전히 있는 사람만의 전성시대가 계속될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를 따르는 백성에게 땅을 고르게 나눠줬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는 사용권만 빌려주지 소유권까지 팔지는 못하게 했다. 땅은 원래 하나님의 것인데 사람들 먹고 살라고 잠시 나누어 빌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50년마다 한 번 씩 원래 받은 사람에게 되돌려준다. 희년이다! 땅 팔아먹고 노예처럼 살지 말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라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다. 희년과 투기는 상극이라 하겠다.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지키는 것, 즉 사용권을 주고받되 불가역적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고, 50년마다 한 번씩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오늘날 어렵다면, 희년의 정신을 그대로 담은 제도를 만들어 실천해보자. 이번 8·2 부동산 대책에 보유세를 더하면 얼추 모양이 나올 것 같다.

되겠냐고? 글쎄… 그래도 지금은 한 번 해보자. 그 옛날 팔레스타인에서, 누군가 처절한 기다림 끝에 희년의 나팔을 불었던 것처럼.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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