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호 연중기획: 종교개혁 500주년,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화 09]

김근수 선생의 글은 항상 기다려진다. 왜 그럴까? 자기 몸을 통과한 글을 쓰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만의 향취랄까, 그만의 멋과 맛이 느껴진다.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얻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의 저서 《슬픈 예수》(21세기 북스)와 《행동하는 예수》(메디치미디어)를 읽으면서 때론 성경에 대한 이해나 바울신학에 대한 평가에서 나와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발견하곤 했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참 재미있다. 묘한 매력이다. 이는 그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가난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그의 지난 글에서도 그런 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왜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한 번도 비판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수십 년 동안이나 마음에 품고 성서를 공부했다는 점 자체가 우선 감동이다. 그리고 그가 얻은 답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넘쳤기 때문에 꼭 해야 할 비판마저 자제하지 않았을까.’ 나도 최근에야 가난한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시고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아니 여전히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주체로 삼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속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함석헌 선생의 글을 통해서다.

나는 씨알을 믿는다. 끝까지 믿는다. 믿어주지 않아서 그렇지 믿어만 주면 틀림없이 제 할 것을 하는 것이 씨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하는 것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처 모르고 꼬임에 들어서 그랬지 본바탕은 착하다 믿는다. 까닭은 간단하다. 씨알이라니 다른 것 아니고 필요 이상의 지나친 소유도 권력도 지위도 없는 맨사람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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