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호 연중기획: 종교개혁 500주년,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화 03]
들어가며
지난 호에 실린 김근수 선생의 글을 감동 깊게 읽었다. 마음에 잘 간직해 절대로 잊지 않고 싶은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오늘의 가톨릭교회의 참모습을 더 잘 알아감으로써 오해를 푸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아, 우리가 사실은 주 안에서 한 가족이구나, 깨닫고 부둥켜안는 기쁨이라고나 할까?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해도 김근수 선생이 하면 어찌나 명쾌 통쾌한지! 내 속이 다 후련~해진다. 내가 섬기고 있는 새맘교회 주일 점심 애찬이 생각난다. 기획하는 사람 없이 각자가 힘닿는 대로 음식을 가져오다 보니, 때론 반찬 종류가 겹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같은 김치, 같은 콩나물무침, 같은 두부 요리라도 그중 하나만 먹지 않고 두루 먹는다.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어도 손맛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혹 우리 둘이 너무 비슷한 이야기를 할 때면, 독자들이 그런 기분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글의 주제는 종교개혁과 21세기 한국교회 개혁이다. 지난 글에서 종교개혁의 정신이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왜곡되었는가는 이미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선 500년 전 종교개혁의 정신과 태도로 21세기 한국교회를 깊이 성찰하여 개혁 과제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단순히 기념의 해로 삼는 것이 아니라, 통렬한 자기 성찰과 개혁의 시간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야말로 기억이 그리스도인에게 부여하는 신앙적 의미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진단하자면 오늘 한국교회 대다수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돈에 찌들어 있다는 점이다. 바로 며칠 전에도 내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이야기를 한 목사에게 전해 들었다. 그는 최근까지 수단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다 심각한 내전이 발발해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귀국한 분이다. 그가 어떤 교회의 ‘목사 청빙’에 응하여 절차가 거의 다 마무리가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 교회 담임목사가 자기를 부르더니 개인적으로 1억 원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교회가 그 목사에게 줄 은퇴 자금을 충분히 준비했다는 데도 말이다. 하도 놀라 자신이 알던 한 원로목사에게 하소연했다가 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너무 놀라거나 이상하게 생각지 마세요.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할 때, 상당한 액수의 돈을 투자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이런 상황이 정말 지극히 예외적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예를 통해 우리는 지금 한국교회가 얼마나 돈에 찌들어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