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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줄 게 없다”는 말
[323호 쪽방동네 이야기]
[323호] 2017년 09월 22일 (금) 16:02:18 이재안 부산 동구쪽방 활동가, 풀꽃강물교회 전도사 goscon@goscon.co.kr

지난 호 글을 되새겨 보니, 엄청 힘들어 보인다. 읽으시는 분들은 어떨까? 종종 SNS로 ‘잘 읽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는 분이 있지만, 많은 분이 힘들어 할 내용이다. 어쩔 수 없다. 이 또한 우리네 삶인 것을…. 독자들께서도 힘들더라도 있는 그대로 우리의 삶을 오롯이 잘 받아주시기를 바란다.

꼿꼿했던 70대 재일동포 강씨 어르신
“나논... 몸에 독쏘가 있어서... 칠십까지 살다가 죽오야겠서...”

   
▲ 함께해주신 이주민홈리스네트워크와 부산반빈곤센터에 감사드린다

강씨 영감님이 몇 주 전에 두어 번 나에게 건네셨던 말이다. 일본에서 재일동포로 오랫동안 사시다가 아버지를 여의시고 더 이상의 가족이 없어 2년 전 추방되듯이 한국으로 오신 어르신이다. 오랜 일본 생활로 인한 외로움이 심하셨는지 마을 주민 프로그램도 참석하고 교회도 출석하시고 꾸준하게 여러 모임에 나가셨다. 그 외로움을 술로도 담배로도 달래지 않던 꼿꼿한 분이셨기에 더욱더 건강하시리라 믿으며 돌봐드렸다.

그러나 입원하신 지 나흘 만에 병원 3층에서 투신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병원 근처에 있었던 나는 급히 달려갔다. 이미 늦었음을, 심폐소생술을 하는 의사들의 얼굴에서 직감할 수 있었다. 20여 분쯤 지났을까, 마지막, 담당 의사의 사망선고를 듣고 반쯤 감긴 그분의 왼쪽 눈을 감겨 드렸다. 30분간의 심폐소생술로도 살릴 수 없었다. 가족이 없기에 내가 보호자였다. 기울어진 고개, 얼굴을 잠시 쓰다듬고는, 왼쪽 귓전에 입을 갖다 대고 속삭여 말씀 올렸다.

“어르신 고생하셨습니다. 편안히 하늘나라 가시고 나중에 거기서 다시 만납시다. 수고하셨어요.”

흐트러진 다리와 팔, 옷매무새를 정리해드렸다. 출동한 경찰에게 경위 설명을 듣고, 안치실까지 동행했다. 부검의의 설명을 들었다. 가시게 된 정황과 몸의 상태를. 그리고 관할 경찰서까지 동행해 새벽 2시까지 조서를 작성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1년 넘게 인형극을 같이 배우고 진행했던 김 선생님도 어려운 발걸음을 함께해주셨다.

흔히 “똥 닦아야 한다” 말하는 이들은 많으나 실제로 닦아주는 사람은 없다. 힘들고 더러운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특히나 타자의 어려움에 대해 선뜻 나서지 않는 이들이 있다. 당신들이 해야 할 행동은 개입해서 해결하는 것이지 관찰이 아니다. 소외된 이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깝다. 외로운 70대 재일동포 출신 강씨 어르신의 천국 가는 길은, 외면하지 않고 함께하는 친구들의 손과 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함께해주신 이주민홈리스네트워크, 특히 부산 반빈곤센터에 감사드린다.

문제의 근원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세뇌
작년 8월에는 무척이나 더웠다. 자택에서 두 분이 소천하셨고, 입원 중에 세 분이 돌아가셨다. 올 8월도 긴장했던 날씨의 연속이었다. 32세의 젊은 친구가 떠났고, 70세 술·담배를 일절 하지 않던 분이 급작스레 가셨다. 특히나 부산에서는 유난히도 고독사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가만히 세심하게 돌아보았다. 공통점이 있었다.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누구 하나 이 문제에 대해 발 벗고 먼저 나서고자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혼자 곰곰 그 문제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장기 분단체제는 우리를 식민체제 의식에 고착화시키고 있다. 기독교 신자들을 포함해서, 사회 전반 다중들의 삶을 그 식민 정신이 지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의식에 지배당한다. 사람들의 창조성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따라 소멸되고, 강자들에게 굴종하며 만족하는 삶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약자들의 삶에 대해 최소한의 동정어린 시선은 유지하나, 이들에 대해 공동체적 관계는 맺지 않는다. 한쪽 눈을 감고 의도적으로 혹은 비의도적인 척, 거부한다. 강자들에게 모든 결정권을 헌납하며 살아왔기에, 자신에게는 그러한 관계를 주도적으로 맺을 권한과 책임이 없다고 세뇌당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지속적으로 지배되어 왔기 때문이다.

세뇌가 되어 창조성이 파괴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해줄 게 없다”는 말이다. 타자의 사건으로 피로해지고 곤란해지는 것은 위험하다. 정성스레 관계를 맺다가 잘못 엮이면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소비자에게 들이미는 ‘당신은 즐기고 향유하는 주체’라는 광고에 세뇌되어 주체적 인간인 줄 스스로 착각하고 있다.

소비주의가 주는 개인 평안과 가짜 풍요는 지속가능한 생명 평화의 공간을 점점 줄여간다. 결국에는 모두가 살기 어려운 사회를 만들어버린다. 스스로가 만든 역풍을 맞는다. 대안은 있다. 우리 일상에서 치열하게 기초 공동체성을 다지며 함께 격려하고 지지하며 사는 것이다. 약자들과의 관계에 지극정성을 쏟으며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다수의 기독교인은 지금 어느 지점을 걷고 있을까?

   
▲ 선풍기 한 대로도 고독사를 막을 수 있다. 관성을 깨는 이들이 많이 필요하다. (사진: 이재안 제공)

관성을 깨는 이들과 함께 한 걸음
쪽방 주민들을 위해 여러 물품을 기부해주신 두드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새것은 아니다. 헤어드라이어 2대, 선풍기 6대 등 두드림 선생님의 아버님께서 일일이 수리해주신 귀한 나눔이다. 새것보다 귀하다. 노후를 알뜰하게 보내시는 아버님의 꼼꼼하신 손놀림이 놀랍다. 갖가지 고장 난 가전제품을 모아서 직접 깔끔하게 고쳐 기부해주신다. 귀한 선풍기 한 대로도 고독사를 막을 수 있다. 혼자 사시는 분들에게 정성이 담긴 중고 선풍기를 전달하며 사연을 함께 전하였다.

목회멘토링사역원/공동체지도력훈련원의 부산 모임에서 만난 구수한 얼굴의 미소가 멋진 작은 교회 형님 목사님께서 20kg 쌀 두 포대를 주셨다. 일주일 동안 드릴 분을 물색하다가, 한 포는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의 국토대장정 식사용으로 전달하고, 한 포는 힘들게 작은 방에서 지내며 뇌졸중 치료를 받고 사는 분께 전달했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는 미미한 것이지만, 주시는 손길이 아름답고 그 마음씨가 곱다. 전하고 받는 이들의 가슴속에 알알이 열매가 맺히고 이를 매개로 관계가 깊어진다면, 그렇게 생명이 잉태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렇기에 힘들고 괴롭지만, 곳곳에 풀꽃강물 친구들이 있어 뜨거웠던 8월을 보내고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9월을 맞는다. 시편 124편 6절 어간을 묵상하며, 민중들을 씹히지 않게 하시는 여호와를 되새기고, 출애굽기 1장 17절 앞뒤를 읽으며 산파들의 주체성과 주도성을 따르자고 기원했다. 로마서 12장 1-8절을 읽고 나누면서는, 분별하고 지혜로운 공동체로 생동하길 바라며 풀꽃강물교회 공동예배를 드렸다. 마태복음 16장 13절을 기점으로 예수를 따라 사는 삶, 바닥에서 사는 일상의 모습이 곧 신의 아들이요, 제자도의 삶임을 고백하게 되었다.

부산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 마을 꼭대기, 지지난 주 이사한 노가다 민중 시인의 월세방에서 조용히 예배를 드린다. 이재용의 삼성, 전두환과 80년 광주를 짓밟은 자,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집단들은 보란 듯이 자본을 가득 쥐고 살아간다. 교회는 민중들과 함께 바닥에서 잡초처럼 살아가지만, 권력에 맞서는 주체성으로 깨어 분별하며 살아간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우리는 그 뜻을 받들어 온 생명과 온몸 살이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걸어간다. 우직하게. 관성을 깨면서.

죽음의 언저리
9월 1일 SNS에 게시한 글이다. 

“금요일 점심 만찬은 김◯◯ 님과 함께… 대접받습니다. 빠알간 고추장만으로 직접 만든 비빔당면, 작은 게 무침, 꼴뚜기 무침, 다음에 재료만 사 오면 어떤 요리도 다 해준다네요.^^”

   
▲ 김씨 아저씨와의 금요일 만찬을 잊을 수 없다 (사진: 이재안 제공)

짭조름한 김씨의 손맛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함께 참석하는 시민단체 모임에서도 김씨의 음식 솜씨 발휘를 위해 공동밥상을 제안했다. 그런데 그 식사 자리를 더욱 잊을 수 없게 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9월 7일, 구청 행사 참여 중 케어에 집중해오던 주민 두 분이 직접 행사에 오셨다. 밝게 웃으면서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더니, 슬쩍 이야기를 꺼내신다.

“오늘, 2층에 사람이 한 명 죽었다는데… 누군지 모르겠던데…”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두 분을 차로 모셔 여관으로 갔다. 입구에 형사 한 분이 하늘색 장갑을 끼고 쉬고 있다.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사흘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 같은데,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와서 방문을 열고 확인하니 그렇게 누워있더라는 말이었다. 들어가서 직접 누워 계신 분의 얼굴을 확인했다. 직접 알고 있는 분은 아닌 듯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소문해서 알아보니, 50대 후반이고 몇몇 기관을 거치신 분이셨다. 작은 교회 공동체에서도 생활하셨단다. 그저 혼자 살고 싶으셨는지 이웃 방 분들과도 교류가 없었다. 주인과 눈인사만 할 정도였다고 한다. 작년부터 올 4월까지 기관에 등록해 서비스를 받으시다가 말없이 거주지를 옮기셨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곳은 지난 9월 1일 점심을 먹었던 김씨 방에서 고작 5미터 떨어진 구석방이었다. 만약 지난 금요일 이분을 알았더라면, 이분의 방을 열고 인사를 했더라면, 모르는 분이지만 한 번의 미소를 나누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는 분으로 만나서, 가슴을 쓸어내려서, 그저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이재안
잠자리 눈물만큼의 정(情)이라도 찔끔찔끔 나누며 살아가는 작디작은 풀꽃강물교회 식구이며, 부산 동구지역을 중심으로 ‘혼살이’ 아저씨 아줌마 할매 할배들과 찌지고 뽁고 욕먹고 욕하며 살아가는 40대 유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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