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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어느 분이 돌아가시는 걸까
[316호 쪽방동네 이야기]
[316호] 2017년 02월 22일 (수) 16:54:32 이재안 부산 동구쪽방 활동가, 풀꽃강물교회 전도사 goscon@goscon.co.kr
   
▲ 쪽방주민들과 함께 핸드드립 커피를 나누다. (사진: 이재안 제공)

오랫동안 소망해왔던 쪽방상담소 사람들과 나누려 했던 일은 바로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는 것이다. 오늘에야 향긋한 공정무역 커피를 나눈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 거래한다는 작은 업체에서 갓 볶은 르완다 산 공정무역 원두를 공수해왔다. 한 잔씩 나누니 상담소 직원들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와~ 그냥 기계로 내려 먹는 커피와는 차원이 다르네요. 한 잔 더 먹어야겠어요.” 아침 일찍부터 임플란트 지원 시술 의뢰서를 받으며 상담하시는 윤씨 아저씨에게 한 잔 나누었다. “나는 커피 향은 참 좋아해요. 맛은 좀 쓰지만~” 하신다. 3층에서 장기 두고 계신 분들 10여 명과도 커피를 한 잔씩 나누었다.

“이 선생, 와~ 이게 얼마 만이고. 매주 이렇게 먹으면 되지?”
“아뇨, 아뇨. 한 달에 한 번 핸드드립으로 같이 드시고 이야기도 나누죠.”


다음 달을 기약한다. 앞으로는 종종 즉석에서 커피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쪽방 식구들과 함께하려 한다. ‘봉지커피’만 마시는 아저씨들, 당뇨와 고혈압이 대다수라서 향긋한 핸드드립 커피가 몸에도 훨씬 좋을 듯하다. 한 잔씩 나누고 풀꽃 이야기도 피어난다. 봄이 다가온다. 엊그제 입춘이 지났다. 커피 향과 함께 추운 여인숙 쪽방에도 따스함이 스며들기를.

입춘 지난 부산역, 바닷바람이 칼바람이다

지난 12월 23일, 아기 예수 오심을 고대하며 풀꽃강물 친구들과 함께 부산역에 계신 분들을 만난 후부터 노숙인을 지원하는 센터를 통해 월 1회 야간 활동을 함께하게 되었다. 입춘이 지났음에도, 한 번씩 찬바람이 쌩쌩 부는 부산역 바닷바람은 칼바람이다.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를 주의 깊게 보던 최 선생 내외분이 부산역 친구들을 만나러 가자고 하신다. 당신들이 컵라면을 살 테니, 핫팩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신다. 온종일 아저씨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자원해서 야간 아웃리치를 나가는 것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SNS로 연락된 지인들이 하나둘 함께하자고 독려(?)하고, 의료업체 사장은 마스크를 보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모인 이들이 딱 열 명. 밤 11시를 넘는 시간까지 부산의 섬나라, 영도 끝자락에 칼바람 맞고 계신 이씨 아저씨에게 핫팩과 컵라면을 전하고 돌아왔다.

피곤하고 지쳐도 한 걸음 내딛는 힘은 미안함과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듯하다. 지난 설 연휴에는 한 분이 의료원으로 급히 이송되었지만,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늦게야’ 들었다. … 내일까지 춥단다.

하루 만에 끝난 김씨 아저씨의 고시텔 생활
부산역에서 다시 만난 김씨 아저씨.(본지 315호 116쪽) 열흘 만에 고시텔 입주에 성공했으나 이틀째에 도망쳤다. 여기는 다시 부산역이다. 한 달 넘게 부산역에서 뵙질 못해 조금 걱정했었다.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구정 연휴에는 흰잠바 이씨 아저씨가 결국 배에 복수가 차 소천하셨다. 정기 방문하시는 할머니 수녀님들을 통해 의료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런지 아저씨들이 며칠 안 보이시면 더 신경이 쓰인다.

김씨 아저씨께서 부산역 대기실 환기통 옆에 쪼그리고 앉아 계신다. 따뜻한 바람 스며드는 곳이다. 표정을 보니 나에게 좀 미안한가 보다.

“그때 그 방에 들어가니깐, 텔레비전도 안 나오고 답답해서 안 되겠던데예….”

처음에는 자신 있게 말하더니 이내 말끝을 흐리신다.

왼편에 계신 김현◯ 아저씨는 빡빡머리를 하고서 몇 개월 만에 나타나셨다. “그동안 어디 계셨어요?” 한마디 건네니 한참을 말씀하신다. 40일 동안 ‘학교’ 가서 벌금 처리하고 왔다고. 나름 반갑고 적극적으로 말씀을 나누신다. 10분 정도 듣고 나서 한마디 전했다. “아저씨, 날이 추우니 근처 고시텔에서 주무시도록 안내해드릴게요.” 3초 정도 고개를 숙이시더니, “다음에 잘게요. 다음에….” ‘다음’이라고 말한 지가 5년째다. 김씨 아저씨는 1년의 반 이상을 당신 방을 비워두고 저러고 계신다. 여전히 고민하며 지켜보는 중이다. 깨어서 기다리리라 다짐한다.

해뜰마을 사랑방에서 드린 찾아가는 예배
‘풀꽃강물교회’라는 이름을 지을 때 함께하신 임 선생님. 그분이 계신 영도의 작은 마을에 방문해 예배를 드렸다. 임 선생님은 마을 주민들의 연령대가 점점 고령화되어 마을이 슬럼화되는 것을 막고자 하신다. 이 마을을 살려내기 위해 시(市) 차원의 도시재생 사업을 책임지며 일하고 있다. 사무실 겸 ‘만남의 장소’인 사랑방은 단층 슬라브의 몇 평에 불과한 작은 공간이다.

동역자들이 일하는 현장을 찾아가 드리는 예배는 단출하고 소박하지만, 서로의 삶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다. 사역의 현장 한가운데서 드리는 예배는 가슴 깊숙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져다준다. 마을 주민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잘 섬기고,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의 현안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곧 지역 현장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다.

취재차 들른 최 기자와 함께
작년 만덕 재개발 이주민을 돕다가 연락을 받게 된 최 기자. 부산에 취재하러 왔다며 오후에라도 잠시 만나자 하기에 “뭐 별것 아니에요. 더 수고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거절했는데, 아주 잠시만 편안하게 보자고 하시니 결국 만날 수밖에 없었다. 만나자마자 바로 근처 쪽방으로 발걸음을 동행했다.

지난 12월 23일 밤에 뵈었던 옥탑방 사는 단짝 김씨 아저씨와 이씨 아저씨 두 분을 함께 뵈었다. 살아온 긴 이야기를 기자에게 쏟아낸다. 사진 찍어도 괜찮단다. 대화를 나누고 근처 부산역에도 함께 갔다. 평소 아는 아저씨들께 인사드리고 안부만 간단히 여쭈었다. 헤어지기 전 최 기자에게 시혜적 차원의 도움이나 동정이 아니라 진짜 이웃, 진짜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상에서, 이웃으로, 동네 사람으로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소금처럼 녹자, 빛같이 비추자”
두 번째 공동예배에는 고등학교 졸업 전 취업한 아들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함께했다. 두 명이 오지 않아 아홉 명이다. 적은 인원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삼촌이고 이모다. 신앙을 수련하는 선배요, 삶의 현장이다. 영화 시나리오를 몇 편은 써야 할 이모 삼촌들 삶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욱 깊어지기를 바란다.

마태복음 말씀을 나누었다. 소금처럼 녹아지는 삶, 빛으로 보여지는 삶,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님 당신의 삶을 성찰하며 우리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며 서로 얼굴을 대면한다. 마지막으로 역사전공 박사학위 과정인 H 형제가 한마디 툭 던진다. 팔짱을 끼던 손을 아래로 내리며 “음…, 어휴, 더 고생하라고 그러시네요.” 모두들 30초 정도 아무런 말이 없다. 나는 침 한번 꿀꺽 삼키고 나눔을 이어간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더욱 고생하라고 하시니 참 힘든 마음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길을 따라 함께 걸어가 봅시다.”

낮아질 때로 낮아진 도시 빈민들에게 더 고생하라는 의미는 우리에게 정직한 성찰을 요구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함께하시는 쪽방주민 두 분께 자꾸 죄송한 마음만 든다. 성경 본문 맥락대로 앞 구절에는 팔복이 언급된다. 소금처럼 빛처럼 사는 삶, 복이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신다. 그분의 뜻을 따라 더욱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하나님 나라는 일구어가는 것이다. 서로 격려하는 작은 마음들이 모이는 그런 무리들이 곧 교회다. 함께 나누며 간식으로 먹는 사과 세 개가 귀하고 간절하다.

활달했던 영도 김씨 어르신, 결국…
지난 1월 23일 구정 연휴를 앞둔 월요일, 홈리스 당사자 모임을 진행하는 임 선생님과 장 반장님 그리고 주민 두 분과 함께 영락공원 추모관을 방문했다. 지난 수년간 소천하신 쪽방주민 분들이 서른 분은 족히 된다. 그중에 작년에만 스무 분이 소천하셨다. 주민 모임을 통해 설과 추석에는 먼저 가신 분들을 추념하고 오기로 했다.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그분이 사셨던 흔적을 되새기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묵념했다.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소천하신 분, 방에서 주무시다가 혼자 돌아가신 분 등 외로이 가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지난 1월 12일 오전 10시 즈음인가. 영도 임대주택 입주 어르신에게서 차분하지만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담당 직원이 한숨을 쉰다. ‘아래층에 계신 김씨가 이상해서 119에 전화를 하지 않고 상담소로 먼저 전화했다’고 한다. 옆자리 앉은 직원이 급히 119에 신고하고 상담소 차량이 출발했다. 약 두 시간 후, 경찰이 현장 조사를 마무리했다. 어르신은 혼자 계시던 중 지병이었던 고혈압의 영향으로 피를 흘리고 쓰러지신 것이다. 그 상태로 소천하셨다. 주민센터를 통해 약 30년 전 헤어진 가족을 수소문했으나 “왜 전화했느냐”라는 타박만 들었단다. 차라리 가족이 바로 ‘시신 위임 동의’만 해주시면 좋으련만, 이마저 어렵다.

작년 11월에 소천하신 우즈벡 재외 한국인 슬라브 님(314호 102쪽)을 도와주신 장례업체에서 도와주기로 했지만, 시신 위임을 받지 못해 장례를 바로 치르지 못했다. 보름이나 안치 냉동고에서 홀로 보내시고, 설 연휴 전날에야 친지로부터 우편 등기로 시신 위임 동의서를 받았다. 결국 일반 업체가 시신을 처리하게 되어 설 연휴 첫날 27일이 되어서야 무연고로 등록되어 화장되셨다. 우리 동네에 사는 사진작가를 통해 미리 영정사진도 준비하는 등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해드리려 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아랫집 어르신의 제안으로 지난 2월 6일 영락공원 무연고 분들을 안치한 곳에 조용히 다녀왔다. 근처 복지관에서 활동하는 선생님이 제수 세트를 제공해주셨다. 그렇게 추모하는 기도를 올려드렸다.

“잘 가셔요. 김◯◯ 어르신. 홀로 사시느라 수고하셨어요.”

김씨 어르신은 내가 본 수백 명의 사람 중, 가장 깨끗하게 방을 꾸미시는 새신랑 같은 분이셨다.

다음에는 어느 분이 돌아가시는 걸까. 다시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재안
잠자리 눈물만큼의 정(情)이라도 찔끔찔끔 나누며 살아가는 작디작은 풀꽃강물교회 식구이며, 부산 동구지역을 중심으로 ‘혼살이’ 아저씨 아줌마 할매 할배들과 찌지고 뽁고 욕먹고 욕하며 살아가는 40대 유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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