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호 쪽방동네 이야기]

   
▲ 쪽방주민들과 함께 핸드드립 커피를 나누다. (사진: 이재안 제공)

오랫동안 소망해왔던 쪽방상담소 사람들과 나누려 했던 일은 바로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는 것이다. 오늘에야 향긋한 공정무역 커피를 나눈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 거래한다는 작은 업체에서 갓 볶은 르완다 산 공정무역 원두를 공수해왔다. 한 잔씩 나누니 상담소 직원들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와~ 그냥 기계로 내려 먹는 커피와는 차원이 다르네요. 한 잔 더 먹어야겠어요.” 아침 일찍부터 임플란트 지원 시술 의뢰서를 받으며 상담하시는 윤씨 아저씨에게 한 잔 나누었다. “나는 커피 향은 참 좋아해요. 맛은 좀 쓰지만~” 하신다. 3층에서 장기 두고 계신 분들 10여 명과도 커피를 한 잔씩 나누었다.

“이 선생, 와~ 이게 얼마 만이고. 매주 이렇게 먹으면 되지?”
“아뇨, 아뇨. 한 달에 한 번 핸드드립으로 같이 드시고 이야기도 나누죠.”

다음 달을 기약한다. 앞으로는 종종 즉석에서 커피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쪽방 식구들과 함께하려 한다. ‘봉지커피’만 마시는 아저씨들, 당뇨와 고혈압이 대다수라서 향긋한 핸드드립 커피가 몸에도 훨씬 좋을 듯하다. 한 잔씩 나누고 풀꽃 이야기도 피어난다. 봄이 다가온다. 엊그제 입춘이 지났다. 커피 향과 함께 추운 여인숙 쪽방에도 따스함이 스며들기를.

입춘 지난 부산역, 바닷바람이 칼바람이다

지난 12월 23일, 아기 예수 오심을 고대하며 풀꽃강물 친구들과 함께 부산역에 계신 분들을 만난 후부터 노숙인을 지원하는 센터를 통해 월 1회 야간 활동을 함께하게 되었다. 입춘이 지났음에도, 한 번씩 찬바람이 쌩쌩 부는 부산역 바닷바람은 칼바람이다.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를 주의 깊게 보던 최 선생 내외분이 부산역 친구들을 만나러 가자고 하신다. 당신들이 컵라면을 살 테니, 핫팩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신다. 온종일 아저씨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자원해서 야간 아웃리치를 나가는 것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SNS로 연락된 지인들이 하나둘 함께하자고 독려(?)하고, 의료업체 사장은 마스크를 보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모인 이들이 딱 열 명. 밤 11시를 넘는 시간까지 부산의 섬나라, 영도 끝자락에 칼바람 맞고 계신 이씨 아저씨에게 핫팩과 컵라면을 전하고 돌아왔다.

피곤하고 지쳐도 한 걸음 내딛는 힘은 미안함과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듯하다. 지난 설 연휴에는 한 분이 의료원으로 급히 이송되었지만,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늦게야’ 들었다. … 내일까지 춥단다.

하루 만에 끝난 김씨 아저씨의 고시텔 생활
부산역에서 다시 만난 김씨 아저씨.(본지 315호 116쪽) 열흘 만에 고시텔 입주에 성공했으나 이틀째에 도망쳤다. 여기는 다시 부산역이다. 한 달 넘게 부산역에서 뵙질 못해 조금 걱정했었다.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구정 연휴에는 흰잠바 이씨 아저씨가 결국 배에 복수가 차 소천하셨다. 정기 방문하시는 할머니 수녀님들을 통해 의료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런지 아저씨들이 며칠 안 보이시면 더 신경이 쓰인다.

김씨 아저씨께서 부산역 대기실 환기통 옆에 쪼그리고 앉아 계신다. 따뜻한 바람 스며드는 곳이다. 표정을 보니 나에게 좀 미안한가 보다.

“그때 그 방에 들어가니깐, 텔레비전도 안 나오고 답답해서 안 되겠던데예….”

처음에는 자신 있게 말하더니 이내 말끝을 흐리신다.

왼편에 계신 김현◯ 아저씨는 빡빡머리를 하고서 몇 개월 만에 나타나셨다. “그동안 어디 계셨어요?” 한마디 건네니 한참을 말씀하신다. 40일 동안 ‘학교’ 가서 벌금 처리하고 왔다고. 나름 반갑고 적극적으로 말씀을 나누신다. 10분 정도 듣고 나서 한마디 전했다. “아저씨, 날이 추우니 근처 고시텔에서 주무시도록 안내해드릴게요.” 3초 정도 고개를 숙이시더니, “다음에 잘게요. 다음에….” ‘다음’이라고 말한 지가 5년째다. 김씨 아저씨는 1년의 반 이상을 당신 방을 비워두고 저러고 계신다. 여전히 고민하며 지켜보는 중이다. 깨어서 기다리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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