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호 사람과 상황] 도시빈민 공동체 활동가 김현일 바하밥집 대표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팬데믹 패닉이 조금 수그러들자, 그제서야 국가 지원에서도 배제된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청도대남병원을 시작으로 드러난 장애인 시설 문제, 임시·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임금 단축, 초기 정부방역 대책에서 제외되었던 난민과 이주 노동자들이 그러했고, 최근엔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재난지원금 신청이 어려워 마스크를 빨아 쓴다는 노숙인들의 실태가 보도되었다. 재난은 가려졌던 사회적 취약계층의 모습을 전면에 드러낼 뿐 아니라 이들을 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내몬다.
제도의 사각지대 속에서 지역 자치와 시민 단체들, 시민들의 노력으로 조금이나마 이들을 돌보려는 시도들이 이어지던 차, 사랑제일교회발 감염이 증폭됐다. 또다시 노숙인 대상 무료급식소가 줄줄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9월호 커버스토리 인터뷰에서 언급된 ‘바하밥집’의 근황이 궁금했다. 2009년 설립된 바하밥집(바나바하우스 밥집)은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로, IMF 시절 잠깐 노숙 생활을 한 김현일 대표가 세운 단체이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청년들과 함께 살다가 도시빈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들을 돌보다가 가정교회 식구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단체를 출범했다. 노숙인에게 배식뿐 아니라 다양한 행정적 지원을 하며 그중 도움을 요청한 이들과 공동체를 이뤄 살던 바하밥집은 3년 전 노숙인 예방 사업으로 도시빈민이 될 위기에 있는 청년들을 위한 ‘리커버리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김현일 대표는 “요즘 기독교인들을 보며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만 더해진다. 작금의 기독교와 내가 따라가는 예수님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문도 들고 참담하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자신을 ‘도시빈민 공동체 활동가’로 소개한 그는 인터뷰 내내,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공동체’를 강조했다. 노숙인의 탈(脫)시설과 자립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익히 들어왔지만,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해법이라는 이야기는 낯설고 신선했다. 인터뷰는 지난 8월 27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 소재 바하밥집 사무실에서 있었다.
요즘 바하밥집은 어떤 상황인가.
주변 이웃들이 바하밥집 때문에 불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메르스 때처럼 단체 배식은 부득이 중단하고 거리로 나가 빵이나 김밥과 함께 손 소독제와 마스크 나눠드리는 일들을 계속 해왔다. 그러다가 사랑제일교회 집회 이후 성북구에서 3단계에 준하는 행정명령이 떨어졌다. 9월 7일까지는 10명 이상 모이는 건 무조건 금지한다는 거다. 그래서 1차로 9월 8일에 노숙인들을 직접 찾아가서 음식과 방역용품을 나눠주는 게릴라 배식을 재개하려 한다.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게 식사하는 것만큼 중요한데, 노숙인 분들도 상황이 무섭다는 걸 아시니까 길에 버려진 마스크 빨아서 쓰신다. 그런 만큼 마스크 물량 확보에 애쓰고 있다.
최근 코로나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데, 활동에 어려움은 없나.
2월부터 게릴라 배식으로 활동가들이 많이 지쳐 있는 상황이라 한편으로는 잘 됐다 싶었다. 2주 동안 쉬면서 최대한 사람들이 몰리지 않게 할 방법을 찾고 있다. 방역 마스크에 안전복 입고 청량리역 주변에 계신 노숙인들을 찾아가서 직접 (음식과 마스크 등을) 나눠드리는 일을 생각 중이다. 방법이 없지는 않은데 재정이 많이 필요하다.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단체 배식할 때보다 재정 부담이 는 건가.
거의 2배 정도 늘었다고 보면 된다. 밥을 할 수 없으니 빵이나 김밥을 구매하고 환경 때문에 플라스틱 말고 자연 분해가 되는 일회용품을 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초기엔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게릴라 배식은 일주일에 두 번, 방역용품은 일주일에 두세 번 계속 나눠드렸다. 100% 다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코로나 전에는 그래도 여기저기 교회에 부탁했지만 지금은 조심스러워서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노숙인들은 개인 공간이 없으니 거리두기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 긴급재난지원금도 처음엔 노숙인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못했고 나중에 내놓은 정책도 비판을 받았다.
현장을 수도 없이 다니면서 행정의 불합리를 목격했다.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게 현장에서 인정하는 부분이다. 데스크는 현장보다 항상 두 박자 정도 느리다. 현장 없이 보고서만 보고 재정을 꾸려야 하니 이해는 하지만 데스크와 현장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게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나는 그 사각지대를 채울 수 있는 건 월급쟁이인 공무원이나 제도보다는 열정,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몸 된 교회인 우리가, 그리고 제도 교회가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이를 채울 수 있다고 봤다. 나는 옆에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교회라고 생각하고 나 역시 그런 교회가 되려고 노력한다. 제일 두려워하는 건 나한테서 그런 모습이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교회의 역할이나 사명에 대해 관심이 없고 막연한 신학, 영성만 붙들고 하나님 얘기를 한다. 그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지 모르겠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라는 예수의 말처럼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나마 하나님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년들과 공동주거를 하면서 가정교회 멤버들과 공동체를 이뤄 사신다는 게 흥미로웠다.
처음엔 공동체로 살 생각 안 했다.(웃음) 32년 전에 신문보급소를 했는데 일하는 가출청소년들을 먹여주고 재워줬다. 바깥에서 보면 불량소년, 비행소년이라고 하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불쌍한 애들이 많았다. 나도 옛날에 거칠게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얘기하면서 데리고 살았는데 그게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2001년도에 신앙을 가지면서 성경을 읽으니 예수의 이야기가 온통 가난한 사람들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때는 ‘심령’이라는 단어도 잘 안 보였고 무조건 ‘가난한 자’라는 말만 보였다. 이 시대는 경제적으로 가난하면 심령도 가난하지 않나. 예수님이 관심 가진 이들이 가난한 사람들인데 돈 몇 푼 줘서 보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같이 사는 게 답이더라.
‘같이 사는’ 게 답이라면….
'51 대 49’가 우리 공동체 캐치프레이즈다. 2003년부터 공동주거를 시작해서 우리 부부 둘이서 30명까지 돌본 적이 있다. 6년 만에 완전히 탈진했다. 그때 돌보는 사람이 돌봄 대상보다 한 사람이라도 많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 손가락을 보니까 다섯 개 손가락 사이에 네 개의 공간이 보이더라. 공동체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으기에 앞서 51%의 돌보는 사람들을 세우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지치면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게 가능하니까. 돌보는 사람을 먼저 세우는 게 우선이다.
‘51 대 49’의 공동체라니, 실제로 그게 가능한 일인가.
현재 공동체 인원이 총 43명인데 51%에 해당하는 이들은 15명도 안 된다. 그러니 이건 물리적인 게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치매가 올 수도 있지 않나. 그때는 지금의 49%가 내 휠체어를 밀고 밥을 먹여줄 수도 있는 거다. 또 49% 안에도 다른 친구들 밥 다 챙겨주고 돌보는 또 다른 51%가 있다. 누군가를 돌보면서 자신도 회복되는 하나님의 이치인데, 49%에 속하는 친구들도 그럴 거라고 본다. 이 수치는 공동체 안에서는 유기적인 것이어서 수혜자와 기여자로 딱 구분되는 게 아니다.
도시빈민에게 가장 필요한 게 공동체라는 얘기가 참 새롭다. 반면 이들에게 무상으로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빈민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은 돈이 충분히 없어서이고 스스로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또 노숙인들을 위한 다른 복지 서비스 등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현금 지급이 사회적으로도 재정 부담이 덜하다는 실험 결과들을 제시한다.
언론이나 통계의 위험성을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 성공한 한두 건의 케이스로 전체를 가리니까. 현장에 있는 입장에서는 노숙인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일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노숙인 대다수는 정서적으로나 정신과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분들이다. 그중 절반은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 돈을 주면 한국에서는 대다수 술을 사먹을 거고 외국에선 마약을 구입할 거다. 바하밥집에서도 노숙인들에게 현찰은 절대 주지 않는다. 자산 운영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분들에겐 30만 원도 돈벼락이다.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원 없이 술을 마시는 일이다. 지금은 술을 끊었다고 하더라도 알코올 중독은 12시간 만에 원상태로 돌아간다. 노숙인들에게 집과 직업을 제공하면 노숙을 안 할까? 그렇지 않다. 이분들의 상황이나 정서가 그런 것도 있고, 노숙 생활 자체가 건강하지 못한 가족·공동체에서 출발하신 분들이 다수이다. 몇 개월 정도만 노숙했던 분들이라면 자립을 하겠지만 그런 케이스가 많지는 않다. 노숙인과 도시빈민 문제의 정확한 해법이 한두 가지로 내려지진 않는다. 나를 ‘공동체 활동가’라고 소개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공동체로 함께 살면서 인생의 마지막까지 돌본다는, 함께 살면서 수많은 일들이 생길 텐데 공동체 안에서 감당한다는 말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발견한 방법이다. 그게 특별히 예수 공동체라면 더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수 공동체는 ‘더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말인가?
보통 일반적인 동호회나 공동체는 자신들의 유익을 추구를 하면서 공동으로 선을 이루는 반면, 예수 공동체는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 지구적인 평화라는 거창한 걸 얘기하지 않나. 원칙적으로 얘기하면 액션 플랜만 세워지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겠다는 사람들이 공동체로 살겠다고 모인 거니까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다. 우리도 썩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그래도 함께하는 활동가들 보면 예수 공동체가 제일 희망이 있구나 느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을 공동체를 위해 내놓을 수 있겠나. 우리는 십일조 없이 자발적으로 공동체 지정 헌금을 하는데, 공동체 안에서 돈이 돌고 돈다. 동의하는 사람들만 하는데 몇 가지 합의를 했다. 우선, 저축이나 보험은 들지 않고 공동체 기금을 모은다. 내 통장에 돈이 남아있는데 공동체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가 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월세가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점에서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해서 집을 사거나 전세를 들지 않는다. 예수 공동체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총 다섯 가정이 그렇게 하는데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신념대로 살아나간다는 점이 그렇다. 그렇게 10년 정도 지나니까 나를 포함한 그 다섯 가정이 되게 잘 산다. 솔직히 처음엔 자신 없었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노숙인을 품을 수 있는 공동체가 얼마나 되나.
얼마 안 된다. 개중에 80%는 개신교단이 운영한다. 목사님들이 노하우를 배우러 바하밥집에 꽤 많이 찾아오시는데 다 돌려보낸다. 빈민 사역 하면 헌금이 들어오고 그 과정에서 교회가 부흥하기도 하는데, 그걸 염두에 두고 오는 경우가 많다. 노숙인들한테 식사만 제공하면 돈도 많이 안 들고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분들과 함께 살면서 돌보는 데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서울 시내에서 고시원 방 한 칸도 30-35만 원에다 하루에 아무리 안 들어도 생활비로 1만 원씩 들어간다고 하자. 그럼 한 사람에게 한 달에 60-70만 원이 필요하다. 열 명이면 1년에 1억 가까이 들어간다. 이걸 빙자해서 헌금을 요구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거다. 그래서 목사나 교회가 주도할 일이 아니다. 어떤 성도가 이런 소명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도록 목사는 바르게 가르치는 일에 그쳐야 한다. 그리고 정말 이 성도가 이 사역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교회 공동체가 인정하면, 그때 사역을 지원해야 한다.
현재 공동체로 함께 사는 이들이 노숙인이 아닌 빈민 위기 청년들이다.
처음엔 노숙인들, 청년들이 모두 함께 살았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많다보니까 서로 너무 힘들어하더라. 마치 수용소처럼 느껴져 너무 비인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우리가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자문했다. 노숙인들 쉼터는 많지만, 위기에 처한 청년들을 돌보는 기관은 한 군데도 없다는 게 우리 결론이었다. 그래서 위기 청년들에겐 공동주거를 제공하여 함께 살고, 노숙인들에게는 무료급식과 자활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서울시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 소개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위기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바하밥집이 주로 사역하는 대상은 노숙인들이 두드러지는데, 한 4-5년 전부터 청년들이 밥 먹으러 오는 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청년들은 주로 깨어진 가정에서 나고 자란 위기 청년들로 대부분 도시빈민 계층에 속한다. 이들은 사회가 돌보지 않으면 노숙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바하밥집과 함께 이들을 위한 예방 사업으로 리커버리센터를 시작했다. 바하밥집은 식사하러 오시는 모든 분들이 대상이지만, 리커버리센터는 공동주거까지 하기 때문에 약간의 규칙이 있어서 동의서를 받는다. 들어오기 위한 별도의 행정적 기준은 없고 본인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자격이 성립된다. 다만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가 있어야 해서 받을 수 없다.
그럼 현재 함께 사는 청년들은 몇 명이나 되나.
지금은 성별을 기준으로 층을 나눠 총 14명이 같이 산다. 부모의 지원을 받는 아이들이 한두 명 있지만, 나머지는 경제적으로 오갈 데 없는 친구들이 대다수이다. 결손가정이거나 정서장애, 우울증, 조현병, 지적장애의 경계에 있는 친구들도 있다. 이들과 함께 살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공동체의 원형을 경험하고 있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함께 모여서 산다. 이들 중 51%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49%는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또 우리가 왜 이렇게 사는지는 얘기하지만 예수 믿으란 소리는 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에 많은 친구들이 자기가 알고 있던 교회와 많이 다르다고 하더라.
공동체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오면 무조건 말린다. 너무 힘드니까.(웃음) 내가 없어져야 공동체가 살아나는데, 인간의 에고란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가지 않나. 성경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내가 죽고 내 안에서 예수가 산다? 이게 말이 쉽지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 올라온다. 물론 힘든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 찾아온 이들에게는 3년 동안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 그냥 이 안에서 보게 하고 느끼게 하고, 예배하고 성경 말씀을 함께 읽는다. 이땅에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강력한 소망이 있으니까 공동체로 살 수 있는 건데… 솔직히 이제는 다른 방법을 모르겠다. 더 가치 있는 일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찾아오는 이들도 말리고 싶을 정도로 힘든 그 ‘공동체’가 왜 중요한 건가.
나는 ‘양심의 소리’가 성령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나무 한 그루 붙잡고 기도하다가 어느 날 음성이 들렸다? 나는 그런 거 안 믿는다. 내게 ‘양심의 소리’는 우리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공동체 사람들이 건네는 말이다. 상담을 할 때 하나님 뜻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되게 혼내기도 한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한테 와서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가진 거 다 내려놓으라고 하시지 않았나. 하나님은 애매모호하게 말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신학을 빌미로 말씀을 비비 꼰다. 하기 싫으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때로는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데 순종을 모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객관적이지 못하니까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더욱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를 하면서 후회되는 순간은 없었나.
엄청 많다.(웃음) 80%는 실패의 역사니까. 5년, 10년 있다가 떠나기도 하고, 교도소를 가는 경우도 있고, 리더 하다가 떠난 사람도 있다. 또 자살한 경우도 지금까지 세 명이 있었다. 모두 우울증이 있었고, 공동체를 떠난 친구들이었다. 그때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많이 자책했다. 그러다 2017년도에 조현병이 있는 한 친구가 사라졌는데, 내가 그때 쓰러졌다.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니까 환각증세가 나타났다. 말로는 ‘죽고 사는 건 하나님한테 달렸다’고 버티다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두고 상담사가 엄청 혼냈다. 네가 뭔데 하나님의 영역까지 관여하고 자책하면서 잠도 못 자냐고. 약도 먹어야겠지만 네 힘부터 빼라는 말을 들었다. ‘하나님 뜻이 아니라 자기 측은지심과 정의감으로 한 게 무슨 사역이냐’라고도 했다. 그 상담사가 우리 교회 교인인데, 말씀은 부드럽게 하셨지만 망치로 얻어맞는 느낌이 들더라. 그때부터 몸에 힘이 빠졌다.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회복하셨나.
공동체 친구들이 왜 정신과 약을 안 먹으려고 하는지 알겠더라. 약 먹으면 생각하는 힘이 사라져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입 안에서 알약을 숨기는 기술도 생겼고. 1년 가까이 병원 생활하다가 공동체로 돌아왔는데, 정작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깜짝 놀랐다. 내가 없으면 다 망할 줄 알았으니까.(웃음) 그렇게 걱정했던 사람들이 다 의젓하게 리더가 되어 있었다. 또 내가 아프니까 아내가 용기를 내서 12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리커버리센터를 맡아서 잘해나가고 있다. 이게 하나님 일이 맞구나 싶었다.
공동체로 살면서 구성원 가운데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이 당신의 공의를 행하시기 위해 사랑이란 수단으로 예수를 대속 제물로 삼았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신학이다. 그렇기에 공동체 일원 누군가 실수이든 아니든 잘못을 저질렀다면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치리하고 회개하면 얼마든지 공동체에 있을 수 있다. 이미 두 건 정도 있었는데 받아들이지 않고 공동체를 떠난 사람도 있지만 다시 돌아온 사람도 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란 두려움과 존경이 같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경외가 공동체에도 있어야 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는다는 언약을 받고 유예기간 동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면 공동체 일원으로 다시 받아주는 시스템이 있다. 더 헌신하는 그룹에서 안을 만들어서 치리와 회복의 결정들을 한다. 초창기에는 나 혼자서 다 했는데 자연스럽게 시스템이 만들어지더라.
그런 의사 결정 시스템을 만들 때 어떻게 소통했나.
우리는 의자 하나를 사더라도 만장일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과정이 굉장히 느리다. 나는 성질이 급한데.(웃음) 어떤 사람이라도 반대나 부동의 하지 않아야 하고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어려움이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만장일치가 된다. 그렇기에 안 되는 경우에는 하나님이 심각하게 보시는 것으로 판단해서 특별히 무게 있게 받아들인다. 최근엔 함께 찬송가를 부르는데 용어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있었다. 가사에 ‘형제자매’가 들어가는데 성소수자에 관심이 많은 한 친구가 ‘양성으로 구분하는 게 불편하다, 우리 공동체는 그렇게 안 불렀으면 좋겠다’고 문제 제기한 거였다. 그래서 함께 논의한 끝에 그 찬송가 가사의 ‘형제자매’를 ‘이웃’으로 바꿔서 부르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런 과정들이 물론 쉽지는 않다.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으면서 공동체가 이제 자리 잡혔을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런 시스템 없이 가다보니까 갈등이 많이 생기더라.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우선순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잖나. 그래서 더 헌신하기로 한 그룹과 리더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우리가 놓치는 부분들을 충분히 논의하면서 살피는 시간을 갖고 있다. 연말이 되면 공동체의 한 해를 평가하고 내년을 기획하기도 한다. 지금도 공동체는 계속 만들어져 가고 있는 거다. 나는 이 공동체를 교회라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역할을 늘 자문하고 있다. 처음엔 노숙인이, 그리고 위기 청년들이 보였고 우리가 그 사역을 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 다음엔 또 뭐가 보일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진화되어야 한다. 여기서 멈추고 ‘아 지금 이대로가 좋다, 건물 더 올리자’ 하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이 끝나고 주식회사가 되어 돈 모으는 데 신경 쓰게 된다.
공동체를 통해 서로 변화된 모습을 보는 것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애인 때문에 마지못해 왔다가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무척 깔끔한 친구라 여길 싫어했다. 처음 만났을 땐 신앙이 없었는데, 교회에 대한 실망감을 얘기하길래 내가 그랬다. 짝퉁이 있는 건 진짜가 있기 때문이다, 짝퉁을 보고 진짜가 그럴 거라고 투덜대는 건 손해다, 나는 진짜를 봤는데 여기서 3년은 있어야 너도 볼 수 있다고. 그 친구가 3년 뒤에 발견 못하면 어떡할 거냐, 거짓말이면 가만 안 놔두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웃음) 결국 3년 동안 여기서 무급으로 일했다. 도중에 애인이랑 헤어져서 교회를 떠날 줄 알았는데 안 떠나고 변하기 시작하더라. 공동체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변화된 거였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그 사람과 그의 삶에서 하나님의 속성이 발견되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나. 예수님도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해야 하는데, 우리는 자꾸 교회생활이나 주일예배 성수 같은 것들로 사랑과 정의의 결핍을 덮으려는 것 같다. 내가 공동체 식구들에게 늘 얘기하는 게, 일상에서 예수와 함께하지 않으면 ‘짝퉁’이라는 거다. 이왕 예수 믿기로 한 거, 쪽팔리게 짝퉁은 되지 말자, 예수쟁이답게 살자고 말한다.
사역을 하면서 스스로 경계하는 바가 있는지.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달을 보여주는 건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내 손가락에 주목해주기를 바라는 때가 있다. 달을 가리키는 나는 없어지고 달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아야 하는 게 기독교 아닌가. 그게 인간적으로 쉽지는 않다. 내가 터득한 건 사역을 물리적으로 무조건 나누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바하밥집, 리커버리센터, 바나바하우스를 각각 재정부터 인사까지 권한을 나눴다. 한 조직이나 한 사람한테 권한을 다 몰아주면 반드시 방만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작게 만들어 놓으면 힘을 못 쓴다. 우리는 사역을 기수로 나눠 한 기수를 7년으로 잡는데, 내가 3기 사역 중간에 있다. 내 사역이 4기로 들어갈 때는 현장에서 물러나서 또 하나의 그늘 넓은 느티나무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 공동체 젊은 친구들도 그때 가면 사역은 자기들이 한다면서 내게는 스승 같은 역할을 요구한다.
인터뷰 요청드렸을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하셨다.
지금은 입 닫고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광훈이나 그 교회가 이단이라거나 건강한 교회와 다르다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광훈처럼 나도 하나님 이름으로 장사한 적 없나 자문하면 나라고 얼마나 다를까 싶더라.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 거다. 결사적으로 대면예배를 지키겠다며 ‘순교하겠다’는 말들을 하는데, 뭐가 예배고 뭐가 순교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런 말 하긴 조심스럽지만, 광복절 광화문 집회 때문에 서울 시내 노숙인 무료급식소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다가 코로나가 재확산되었다면 이렇게까지 처참하진 않을 거다. 이런 시국에 교회가 대면예배를 강조할 게 아니라 국가가 미처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서 사역했으면 어땠을까. 제도 교회든 개인이든 하나의 교회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한없이 슬프다. 기대도 안 했지만 말이다. 교회라는 이름만 내세우는데 정작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점점 메말라간다. 우리도 원래는 공동체보다 가정교회라는 말을 더 많이 썼지만 이젠 의식적으로 안 쓴다. 앞으로는 교회나 기독교인이라는 말 대신 예수교인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혼자서 한다.
‘예수쟁이’라는 말도 자주 쓰시던데, 대표님에게 예수쟁이로 사는 삶은 어떤 것인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손 내밀어 돕는 것 아닐까. 돈 없어서 밥 못 먹는 사람한테 밥 한 끼 사주는 것, 우울증 앓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걸어주고 약 잘 먹는지 한 번이라도 챙기는 것. 이렇게 사는 이들이 곧 예수쟁이 아니겠나.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구체적’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내 측은지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사랑을 얘기하신 거다. 자신의 동정심이나 정의감으로 사람을 사랑하면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낀다. 그래서 사랑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성경이 계속 얘기하는 거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말이 “기도해줄게”다.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먼저 지갑을 꺼내야 한다. 우리 공동체는 재밌는 규칙이 있다. 중보기도를 할 때 백 원이든 만 원이든 기도한 횟수대로 돈을 모은다. 봉투에다가 금액을 적고 공동체 기금으로 내면 공동체는 그걸 중보 대상에게 전달한다. 공동체 멤버들에게 늘 하는 말이, 선한 일이라면 그게 설령 위선이라 해도 반복하라는 거다. 그게 무슨 유익이 있냐고 누가 물었는데, 마음에 없더라도 선한 일을 반복해서 하는 훈련을 하면 그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선한 습관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면 예수님이 기뻐하실까? 원치 않는 고난이나 훈련은 회피하면서 예수쟁이로는 살고 싶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게 가능한지 난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훈련만이 예수쟁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요원’이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나만의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어도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다. 그걸 좇으려면, 차라리 굿을 하는 게 낫다. 예배가 굿이 되지 않아야 한다.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