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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2009)
[323호] 2017년 09월 22일 (금) 16:51:28 최은 영화연구가 goscon@goscon.co.kr
   
 

“톨스토의주의나, 나의 것이라 할 가르침이란 건 없을 뿐더러 결코 존재한 적도 없소. 단지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의 가르침이 있을 뿐이고, 그것은 나나 우리 모두에게 성서를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표현되는 것이오.”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

《안나 카레니나》와 톨스토이의 회심
1874년 제정 러시아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생 페테르부르크의 귀부인 안나 카레니나는 바람둥이 오빠와 올케를 중재하러 모스크바에 갔다가 젊은 장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사생아를 낳은 끝에 자살에 이릅니다. 이 단순한 스토리를 톨스토이는 한글 책 세 권 분량으로 펼쳐놓았지요. 그런데 흔히 회자되는 것과 달리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1878)는 안나의 파멸로 끝나지 않습니다. 안나는 7장에서 죽지만, 마지막 8장에서 톨스토이는 러시아-터키 전쟁(1877-1878)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과 젊은 지주 레빈의 회심을 비중 있게 서술합니다. 안나의 삶과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내용과 노골적인 반전 메시지 탓에 신문 연재 당시 8장은 출간을 거부당했다지요. 이후 작가의 강력한 의지로 책에 포함되었습니다.

러시아의 백작이며 대지주였던 톨스토이에게 레빈은 자신의 분신이었지요. 오스트리아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톨스토이가 안나와 레빈의 삶을 대조하여 안나를 도덕적으로 단죄하고 있다고 불만스러워했어요. 그가 보기에, “자기 관찰과 고백의 강박을 지닌” 톨스토이는 잘 나가다가 《안나 카레니나》에서부터 종교를 위해 예술을 희생하는 오점을 남기고 맙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박한 평가가 당시 톨스토이에게 ‘비폭력 평화’와 ‘영혼 구원’이 얼마나 절박한 화두였는지 새삼 확인시켜주었군요. 저로서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단죄보다는 용서의 서사를 읽습니다. 그런 뜻에서 조 라이트의 영화 〈안나 카레니나〉(2012)는 지금까지 영화화된 여러 《안나 카레니나》 중 가장 옹호할 만한 버전입니다. 화사한 결말 때문에라도 말입니다.

실제로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할 무렵 톨스토이는 심한 정신적 방황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톨스토이는 《참회록》(1879)을 쓰고 자신의 회심과 새로운 신앙공동체에 대한 신념을 공표하게 됩니다. 여전히 소심한 냉소와 안타까움을 담아, 츠바이크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과학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던 어느 난치병 환자가 그의 질병을 가지고 무녀들과 돌팔이 치료사들을 찾아가듯이, 러시아의 가장 정신적인 인간 톨스토이는 50세의 나이로 농부들, 민중에게로 돌아가, 무식한 그들로부터 마침내 올바른 신앙을 배운다.”

톨스토이 가출 사건,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그렇습니다. 회심 후 톨스토이는 교회(러시아 정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민중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는 소위 정통 신앙과 제도 종교에 실망하고 사제들과 갈등을 일으킨 뒤 교회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소유와 삶 전체를 공유하는 초대교회와 같은 신앙공동체를 꿈꾸면서요. 당연하게도 정교회는 그를 이단시했고, 차르를 공공연히 비판했던 그는 반체제인사로 낙인찍혔습니다. 신분과 명성 탓에 차마 그를 어찌할 수는 없었으나 당국은 그의 제자들을 수시로 괴롭혔습니다. 정작 민중들 가운데도 태생이 귀족인 그가 ‘농민(서민) 코스프레’를 한다고 비웃는 이들도 많았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톨스토이주의자’로 부르는 이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어 그의 영지에 머물렀고, 당대의 문호 톨스토이는 이제 종교 지도자로도 추앙되기에 이릅니다. 일거수일투족이 관찰과 기록으로 남겨지고 보도되면서, 비판과 찬사가 항상 그를 따라다녔겠지요.

마이클 호프만의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2009)은 30년째 그렇게 살고 있는 늙은 톨스토이에게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회심 후에도 참 고단했다고 말합니다. 탄압이나 외부의 지나친 관심과 오해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오죽했으면 83세의 고령에 단출한 짐을 꾸려 집을 나갔을까요. ‘톨스토이 가출 사건’으로 유명한 이 여행으로 톨스토이는 시골의 작은 정거장 아스타포보의 역장 집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둡니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1년을 재구성한 제이 파리니의 전기소설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1990)이 원작인 영화입니다.

   
 

톨스토이는 성실한 ‘톨스토이주의자’가 아니었다
두 장면을 먼저 보겠습니다. 첫째는 톨스토이(크리스토퍼 플러머)가 비서 발렌틴(제임스 맥어보이)의 볼에 붙은 모기를 잡자, 그의 애제자인 체르트코프(폴 지아매티)가 스승을 나무라는 장면입니다. 제자가 보기에 노스승은 살생을 금하는 자신의 가르침을 위반했습니다. 또 다른 장면은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야(헬렌 미렌)가 톨스토이와 딸 샤샤(앤 마리 더프), 체르트코프의 회합을 몰래 훔쳐보다가 튀어나와 분노를 토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톨스토이 전 작품의 저작권과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샤샤는 생존한 톨스토이의 자녀 8명 중 유일하게 그의 사상을 전적으로 지지했던 딸입니다.

두 장면은 톨스토이가 말년에 겪어야 했던 내밀한 갈등과 고통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한 젊은 비서 발렌틴은 이 갈등의 복판에 관찰자로 서 있지요. 톨스토이주의에 매료되어 “신앙의 표시로 여자를 버린” 그는 당혹스럽게도 스승의 성지에 와서 마샤(캐리 콘돈)와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톨스토이는 이 제자를 책망하고 내쫓았을까요? 유언장을 찾아내려 서재를 뒤지고 자살 직전의 히스테리를 부리는 아내와 다투고 집을 나가면서, 톨스토이는 자신의 지난 세월과 아내와 가족을 부끄럽게 여기고 후회했을까요?

발렌틴의 시선으로 영화가 포착한 것은 위대한 사상가도 성자 톨스토이도 그리스도의 형상도 아닌, ‘늙은 남자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날의 방탕과 참회, 종교적 열심과 회의, 아내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다섯 자녀를 잃은 슬픔, 대중의 숭배와 가장 친밀한 이들로부터 날아오는 비난과 실망을 나이테처럼 얼굴 주름으로 받아 안은 모순 투성이 노인네 말입니다. 톨스토이가 성실한 톨스토이언(Tolstoyan, 톨스토이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기를 거부했던 것처럼, 가끔은 우리가 ‘성실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기를 선택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집니다. ‘성실함’을 가장 적극적으로 발동하는 부분이 오랜 습관인지 지성의 연마인지 맹목이나 신비의 추구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자신의 현재 상태와 궤적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이겠지요. 다만, 문득 생각나면 이불킥을 몇 번이고 날리게 되는 어느 부끄러운 열심마저도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나’의 일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집을 나서던 날 새벽, 톨스토이는 자신이 나고 자란 땅에 정성스레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구부린 등과 낮은 입맞춤이야말로 신앙인 톨스토이의 참 모습이 아니었을까, 막연하게 더듬어봅니다. 비장하게 떠난 길에서 맞이할 것이 차가운 죽음이라는 사실을 설령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길을 떠나야만 했겠지요. 그랬을 겁니다. 누가 그의 죽음을 비극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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