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 베네딕트 16세, 해방신학 정죄한 장본인…탈권위주의, 다원화 역행 우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와 장례 절차를 지켜보는 동안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심기가 편치 않았다. 하나는 '화해와 용서의 사도'였던 지도자의 죽음이 안타깝다는 이유로 장례식장에 모여든 세계 각국 정치 지도자의 모습 때문이다.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 지도자 가운데는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도 있었다. 교황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는 그들의 애도사는 마치 자신들이 화해와 용서의 일꾼인 양 대중을 호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화해와 용서와는 거리가 먼 정치 지도자들이 교회 지도자의 죽음 앞에서 애도사를 말하고, 교회의 권위를 빌리려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감스럽게도 교회가 화해와 용서에 역행하는 정치 지도자와 친구가 되어 있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또 장례식을 집전하는 라칭어 추기경의 음험한 과거 이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속의 대심문관을 연상시키는 그는 교황청 교리성 장관으로서 '가톨리시즘'의 수호를 위해 수많은 종교 재판을 담당했고,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민중을 대변하는 해방신학을 정죄한 장본인이다.

진보성 찾아보기 어려워

요한 바오로 2세 재임 기간 동안 '교황의 사람'으로 불리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 그는 제3세계 빈곤을 전혀 눈여겨보지 않고, 제도로서 교회를 수호(?)하는데 몰두해왔다. 그래서 그런 그가 새로운 교황이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나 요제프 라칭어 추기경은 '베네딕트 16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교황의 자리에 앉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가톨릭 신자 여부를 떠나 수적으로나 활동에서 이미 유럽 교회보다 제3세계 교회의 비중이 높아진 현실을 감안해 최초의 비유럽인 교황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른바 '복음의 탈북반구화(脫北半球化)'에 상응하는 선택이라면 그래야 했다. 혹시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가톨릭 내의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통합형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유럽중심주의를 고수하는 완고한 보수주의자가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보수적인 노선 속에서도 교황청과 견해를 달리하는 가톨릭 교인을 잃는 것에 늘 신경을 쓴 반면, 라칭어 추기경은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단호한 입장을 취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톨릭 교회의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킨 제2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은 이미 요한 바오로 2세 때부터 퇴조했지만, 베네딕트 16세의 등장으로 그 현상이 노골화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진보적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요소는 거의 지니고 있지 않다. 그의 이력과 신학적 입장에서도, 젊은 시절 한때 자유주의적 성향을 띠었던 것 말고는 진보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10대 시절인 1941년 독일 나치의 청년조직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하였고, 2년 뒤에는 항공기 엔진을 만드는 공장의 방공포대에 근무했다. 훗날 가톨릭 신앙이 나치즘에 대한 면역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는데, 그 의중을 알기는 쉽지 않다.

지적인 성향의 라칭어는 1946년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이후 명민한 신학자로서 인정받았다. 젊은 신학자 시절 그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띠었다. 제2바티칸공의회 기간 동안에는 진보적 신학자 칼 라너가 이끄는 신학자 전위 그룹에서 활동하기도 하였고, 훗날 자신이 징계한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튀빙겐 대학교수 시절인 1960년대 말 학생들의 급격한 좌경화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되고, 동료 교수인 한스 큉과의 대결로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상적 전환을 한다. 큉은 제2바티칸공의회의 개혁을 더욱 밀고 가기 원했고 그는 주저했다. 이후 ‘교황무오설’에 이의를 제기한 한스 큉은 1979년 교리성성의 징계를 받고, 라칭어는 2년 후 교리성성 장관이 되었다.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 부정적

가톨릭 내부에서 중세기 종교재판소의 재현인 교리성성의 임무가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라칭어는 교리성성을 교황청의 중심으로 세우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그는 제도로서 교회의 권위를 진리와 동일시하는 믿음으로 수많은 종교 재판을 행했고,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을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해방신학을 대표하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에 대한 징계는 브라질 교회의 반발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1986년 레오나르도 보프에게는 징계를 내림으로써 결국 해방신학을 정죄했다.

교회와 신학이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회들의 거센 반발로 정죄할 수는 없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에 동참하면서 교회 구조를 바꾸어 나감과 동시에 그 현실을 외면한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라칭어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것은 교회의 통일성, 가톨리시즘을 위협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에 동참하는 것은 곧 정치적 참여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데도(그러나 정당 정치와는 명백히 다른) 교회가 사회운동 또는 정치 참여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따른 것이었다. 결국 라칭어의 해방신학에 대한 정죄는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질서에 반하여 다원성을 추구하는 교회에 대한 정죄였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라칭어는 다른 종교와의 대화 그리고 개신교 및 다른 기독교 종파와의 대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성사제 서임, 낙태, 동성애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터키의 유럽공동체 가입에도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순수한 유럽 문화의 우월성, 가톨릭 교회의 중심성을 고수하는 그에게는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새로운 교황의 이와 같은 면모를 볼 때, 적어도 교황의 역할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가톨릭 교회는 상당히 보수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세계 현실이 끊임없이 다원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상반되게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권위주의화 및 보수화 경향과 어떤 함수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강력한 위계질서 아래 고도로 집중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특성상 보수적인 교황은 곧 교회의 보수화를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탈권주의화와 다원화를 추구하는 오늘의 세계 현실에서 교회가 아예 등을 돌리는 현상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괜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그리스도의 대리인' 또는 '하나님의 종 가운데 종'이라기보다는 사실상 권력의 상징, 아니 권력의 화신인 교황을 두고 부질없는 기대와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제2바티칸공의회가 가졌던 교회적 의의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 의의를 생각한다면 기대와 우려가 부질없는 것만은 아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민중 가운데 함께 하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교회들이 정당한 몫을 인정받지 못하고, 이 세계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소수자들이 교회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은 세계의 아픔을 의미하며 교회의 손실을 의미한다.

독일 내에서도 호응 줄어

독일에서는 자국 출신이 교황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발표 직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 교황의 면모가 드러나면서 호응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바로 우려 때문이다.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개혁 세력은 교회의 보수화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최형묵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가난한 민중과 함께 했던 레오나르도 보프는 1992년 사제복을 벗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무방비 상태의 꽃들과 눈에 띄지 않게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들에 희망을 걸고 있는 이의 하나이다."

담담하게 자기 믿음을 피력한 보프는 이전인 1986년 바로 라칭어 추기경의 심문을 받고 난 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교회에 머물고 싶다. 하지만 로마가 어쩌면 우리에게 용서를 청할 시점이 올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우려가 보프 신부의 믿음과 기대로 바뀌었으면 한다. 아울러 새 교황 선출을 바라보며 우려하고 있는 한국 가톨릭교회 형제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최형묵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대표·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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