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공동주최 놓고 계속 홍역…올 해 행사 치룬 뒤 재논의 불가피

「부활절연합예배 20년사」를 읽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1994년에도 올 해와 비슷한 일로 부활절연합예배가 홍역을 치른 적이 있었다. 당시 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는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를 설교자로 내정했다. 그러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쪽이 반발했다.

예장통합은 1983년 제68회 총회에서 조 목사를 ‘사이비신앙운동’으로 규정하고 동조·추종·강사초청·집회참석 금지를 결의했기 때문에 설교자의 재고를 요청했다. 한부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예장통합은 부활절연합예배의 참석을 거부했다.

올 해 부활절연합예배 역시 이와 비슷한 홍역을 치렀다.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가 대회장으로 선정되자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를 비롯한 보수교단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드러내놓고 대회장 교체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내심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한부연·사무총장 한창영 목사)는 예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한기총·KNCC 공동주최 '물거품'

이와 맞물려 한국교회를위한교단장협의회(교단장협·공동대표 서기행 신경하 김태범)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최성규 목사)와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총무 백도웅 목사)의 공동주최를 제안했다. 부활절연합예배를 진정한 한국교회의 연합행사로 치르기 위해서는 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두 단체가 공동주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제안은 KNCC의 거부로 무산됐다. KNCC는 2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교단장협에서 제안 받은 부활절연합예배 공동주최는 시기적으로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거절했다. 그러나 KNCC는 한부연 중심의 부활절연합예배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고, 올 해 부활절예배가 끝난 뒤 바람직한 연합예배를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한부연 역시 교단장협의 한기총·KNCC 공동주최 제안을 거절했다. 한부연은 이 제안을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한창영 사무총장은 "부활절예배가 한 달여 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공동주최를 들고 나온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한부연은 제안을 거절한 지 일주일 만에 교단장협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사무총장은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돈 때문이다.

한 사무총장은 2월 25일 열린 한부연 실행위원회에서 "사무총장 이름으로 되어 있는 카드 다섯 개가 모두 막혔다"며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했다. 실행위원들 역시 한기총과 KNCC가 공동주최를 하려면 연합예배에 들어가는 경비를 한부연과 한기총 KNCC 모두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창영 목사, "돈 없다. 대안 내놔라"

이날 열린 한부연 실행위는 마치 한기총 성토대회를 연상시켰다. 실행위원들은 "부활절연합예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공동주최를 제안해 혼란을 일으키는 저의가 뭐냐"며 한기총을 강하게 성토했다.

이강욱 장로는 "올 해 대회장을 맡은 윤석전 목사가 최근 3년 동안 부활절연합예배를 위해 가장 많은 재정을 지원했다"며 "한기총 대표회장인 최성규 목사가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교회 연합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에 뒤늦게 참석한 박영률 목사는 "한부연은 명실상부한 한국교회의 독자적인 연합체다"며 "지금까지 한부연이 잘해왔는데 왜 한기총이 끼어드나"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부활절연합예배가 잘 되길 원한다면 그냥 뒤에서 도와주면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기총과 KNCC의 공동주최 여부는 이미 지난 실행위에서 부결된 문제다"며 "한창영 사무총장이 총무들을 만나 공동주최를 제안한 것은 월권이다"며 화살을 집행부로 돌렸다.

이런 논의와는 다르게 한부연은 이날 실행위에서 한기총과 KNCC에 공동주최를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단, 두 단체 중 한 단체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부연이 단독주최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결국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 해 부활절연합예배는 한부연의 단독주최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KNCC가 여전히 공동주최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활절연합예배, 논의 불가피

올해 부활절연합예배가 이렇게 흔들리는 이유는 한부연에 대한 불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부연은 지난 해 부활절연합예배를 치르면서 옥한흠 목사를 설교자로 세웠다. 이 과정에서 한부연은 옥한흠 목사가 소속되어 있는 예장합동과는 전혀 논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영 목사(예장합동 총무)는 "한부연이 지난 해 부활절연합예배를 치르면서 우리와는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옥한흠 목사를 설교자로 내세웠다. 돈만 있으면 설교자로 추대하는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기행 현 총회장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옥한흠 목사를 총회와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지난 해 부활절예배의 설교자로 선정된 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이다.

부활절연합예배는 올 해 행사를 치른 뒤 논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KNCC가 부활절연합예배에 대한 논의를 제안해 놓은 상태고, 한창영 목사 역시 한부연의 존재 가치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해야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부활절연합예배는 올 해 행사를 치른 뒤 다시 한 번 한국교회의 논의의 장으로 나올 전망이다.

부활절연합예배, 두 번의 분열 겪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

1885년 4월 5일 제물포에 도착한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는 그 이듬 해인 1886년 4월 25일 부활절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한국교회 최초의 부활절 예배다. 일제시대에도 부활절 예배를 드리던 우리 민족은 일제 말기로 접어들면서 일제의 탄압이 노골화되자 기독교의 부활절 행사도 중지됐다.

산발적으로 드리던 부활절 예배가 연합으로 드려지게 된 것은 1947년 4월 6일 서울 남산광장에서 15000명의 기독교인이 참석하면서다. 첫 연합예배의 설교는 한경직 목사가 맡았다. 6·25전쟁에도 중단 없이 진행되던 부활절연합예배는 1960년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1960년의 부활절은 3·15부정선거로 인해 전국이 들끓던 시기였고 부활절인 4월 17일은 4·19혁명이 일어나기 이틀 전이었다. 이런 상황을 감지한 한국기독교연합회에서는 부활절연합예배의 중지를 결정했다.

1962년 부활절연합예배는 첫 분열을 맞았다. 진보 쪽은 배재중고등학교에서, 보수 쪽은 균명고등학교에서 예배를 따로 드렸다. 이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교단은 각각의 교회에서 예배를 진행했다. 이 후 10년 후인 1972년까지 부활절연합예배는 분열된 채로 치렀다.

1973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대한기독교연합회(DCC)는 부활절예배를 함께 드리기로 합의함에 따라 분열된 지 10년 만에 연합예배를 드리게 됐다. 이 후 부활절연합예배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부활절연합예배준비위원회가 구성됐다.

1973년 부활절연합예배는 박형규 목사, 권호경 전도사, 김동완 전도사 등 '수도권도시선교회' 실무자들과 나상기, 황인성, 정명기 등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소속 학생들이 민주회복과 자유언론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살포하려다 미수에 그친 일도 있었다.

연합예배를 드린 지 4년 만인 1977년 부활절연합예배는 두 번째 분열을 맞게 된다. 이유는 진보와 보수의 종교적·정치적 견해 차이. 진보 쪽은 성공회대성당에서, 보수 쪽은 여의도광장에 모여 각각 예배를 드렸다. 당시 부활절예배는 진보는 고난을 강조하고 보수는 신앙을 강조해 그 성격이 뚜렷이 구분되는 양상을 보였다.

두 번의 분열을 맞았던 부활절예배는 1978년 교단 사이에 갈등을 그대로 안은 채 하나가 됐다. 이 후 부활절예배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자 선정에 대한 예장통합 쪽의 반발(1994년), 남녀 평신도가 처음 순서를 맡는(1993년)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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