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방화 사건이 발단…10여년 째 이웃사촌으로 관계 돈독

   
▲ ⓒ뉴스앤조이 신철민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전남 해남 바닷가 마을에는 북쪽 산 중턱에 작은 절이 있다. 이 절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목탁소리가 작은 시골 마을을 감싸주었다. 조용한 마을에 노을 속으로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가 그렇게 은은할 수 없었다. 반대편 언덕에는 내가 다니던 작은 교회가 있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절과의 영적 전쟁을 선포하셨다. 마귀 같은 소리에 맞서 싸우시겠다며, 한동안 목탁과 종소리가 날 때마다 외부 스피커에 찬송가를 틀어놓은 것이다. 마을 어른들을 공경하고 이웃들을 잘 돌보셔서 교회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존경받는 목사님이 유독 절에 대해 얘기할 때는 험상궂은 얼굴로 변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신앙인의 자세라고 배웠다.

한신대 학생들, 법당 방문해 사과

나이가 들면서 '절과 스님은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없다'는 경험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발견했다. 기독교 신자들이 절에 들어가 불상을 훼손하거나 방화하는 일들 때문이다. 1996년에는 화계사에서 불이 세 번 났는데 모두 기독교인의 소행으로 밝혀졌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소식이 충격이었다.

그해 12월 화계사가 '성탄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은 것이다. 이에 뒤질세라 화계사와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한신대 신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축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방화로 건물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상처를 입었을 화계사가 어떻게 성탄절 축하 현수막을 걸게 되었을까.

현각 스님의 고백을 통해 사연을 알게 되었다. 당시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수행하던 외국인 스님들은 화재 뒤처리로 며칠 밤낮을 매달리면서 놀람과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까지 일었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이곳은 우리가 사는 집이다. 그런데 어떻게 신념과 다르다고 몇 번씩이나 불을 지를 수 있단 말인가. 전통적인 기독교 나라인 미국에도 사찰 수백 곳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불을 지른다든지 탱화를 훼손하는 일은 없다. 만약 다른 문화, 전통에 대한 파괴 행위가 일어난다면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현각 스님은 일간지를 통해 ‘자신의 분노와 탄식을 쏟아내고 있을 때 절망을 씻어준 분이 나타났다’며 한 교수와 한신대 학생 20여 명의 방문 소식을 전했다. 이들은 흉물이 된 법당을 둘러본 뒤 기독교인으로서 깊은 사죄의 뜻을 전하고 법당을 청소하고 갔다. 현각 스님은 당장 수행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겠다던 외국 스님들의 울분도 눈 녹듯이 녹았다고 밝혔다.

절도 성탄일 현수막으로 '화답'

   

▲한신대와 화계사 입구에 걸린 한신대생의 현수막. 서로의 잔치를 축하하는 이들의 행보가 각박한 세상에 흐뭇한 소식이 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당시 화계사를 방문한 사람은 한신대 신대원에서 '기독교와 대승불교의 대화'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던 김경재 교수였다. 그는 세미나 시작 전 학생들에게 화계사 방화 사건을 소개하고 방문을 제안했다.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쌀집 아저씨와 슈퍼 아줌마도 서로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위로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었다. 김 교수와 학생들은 수업을 마친 뒤 위로금을 걷어 연락도 하지 않은 채 화계사를 방문한 것이다.

뜻밖에 찾아온 이웃 한신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 위해 화계사는 그해 12월 성탄 축하 현수막을 걸었다. 화계사 총무 해안 스님은 "위에서 하자고 제안해 나머지가 따른 것이 아니라 모두 흡족한 맘으로 축하 현수막을 달았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한신대는 단순한 위로 방문이 기독교의 큰 절기를 축하하는 공개 메시지로 되돌아온 것에 놀랐고, 다음해 석가탄신일 즈음해 한신대 학생들이 석탄절 축하 현수막을 거는 것으로 화답했다. 언론들은 조용하지만 '혁명적인' 변화에 관심을 갖고 "종교간 화해와 평화를 이루었다"라고 격려했다. 주변 주민들도 한신대와 화계사의 변화를 놀라워하면서도 환영하는 반응을 보였다.

석탄일엔 운동장 주차장으로 '보시'

   
▲한신대와 화계사는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이다. 거리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도 정겹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그러나 일부 기독교인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학교는 한동안 항의 전화로 시달렸다. 본인을 집사라고 밝힌 한 남자는 "어떻게 마귀의 종교를 인정할 수 있느냐"라며 "현수막을 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라고 협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김경재 교수는 1년 동안 집으로 항의 전화와 편지가 왔다고 밝혔다. <기독교사상>(1997년  5월호)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법정 스님에게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 제목의 공개 편지를 써 석탄일을 축하하고, 스님과 함께 종교간 평화에 대한 좌담회에 참석했다는 것이 비난 받은 이유였다. 이번 현수막 사건도 그가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썼다.

그래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현수막을 내리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학생들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현수막이 찢겨진 채 발견되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굴하지 않고 더 좋은 현수막을 제작해 달았다.  김 교수는 "기장 교단이나, 노회 이름으로나, 어느 교회 이름으로나, 신학대학원 이름으로 못한 일을 학생회 이름으로 응답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새 시대는 열린 가슴을 지닌 젊은 학생들이 열어가는구나' 하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정례 행사로 자리잡은 '현수막 축하' 외에도 한신대와 화계사는 좋은 이웃으로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묻어나는 일들을 계속 진행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한신대가 석가탄신일에 화계사측에 운동장을 '보시'하는 것.

그동안 석가탄신일마다 한신대 운동장에서는 목회자나 교인들이 운동회를 하며 한가롭게 보낸다. 휴일을 이용해 교회나 노회가 친목 모임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울타리 건너 편 화계사 길목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연출된다. 불자들의 차로 그렇지 않아도 좁은 도로가 마비될 지경이다. 이런 화계사의 상황을 딱하게 여긴 한신대 교수들은 회의를 거쳐 운동장을 빌려주기로 했다. 그래서 1998년 이후 줄곧 화계사가 한신대의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교수들이 나서 교단 설득도

그러나 한신대가 운동장을 맘 편하게 빌려줄 상황은 아니었다. 한신대는 교단 소속 신학교이기 때문에 교단 소속 목회자나 교회에서 쓰겠다고 하면, 아무리 적은 수라도 운동장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식구가 우리 집 마당에서 행사를 치르겠다는데, 식구는 젖혀 두고 다른 사람 그것도 불교 신자들에게 빌려준다는 것은 아무리 기장이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교수들이 나서서 교단 관계자나 교회를 설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화계사도 빈손으로 받고만 있지는 않았다. 한신대가 버스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빌려주고 있다. 화계사 주지 성광 스님은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기 마련"이라며 "한신대와 맺은 인연을 소중히 이어가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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