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마무리하며 / 한국 교회가 나서 반민족 행위 회개해야

   
▲ 장로교가 일제에 전투기를 헌납한 기사를 실은 기독교 신문. 감리교도 이에 뒤질세라 비행기 세 대를 바쳤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지난 봄 대학가에 친일청산 바람이 불자 교계에도 그런 소식이 없는지 찾아다녔다.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 등 굵직한 교단 안에서 또 학계에서 교회의 친일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폈다. 두 달간의 취재에서 한국 교회는 단순히(?) 신사참배 문제만이 아니라 훨씬 심각한 반민족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고, 한국 교회가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몇 번의 좋은 회개 기회를 번번이 날려버린 사실이 안타까웠으며, 교회 내에 소수가 외롭게 부르짖는 친일 청산의 외침을 선지자를 통해 밝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못하는 한국 교회의 강퍅함에 슬펐다.

교회의 친일 문제로 다가가면 교계의 공통된 첫 번째 반응은 "선조들의 친일 행위를 밝혀 반민족 행위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교훈삼자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라는 것이다. 곧이어 "60여 년이 지나 당사자 대부분이 고인이 된 지금, 이러한 비난이 기독교가 민족 종교로 발돋움하는데 도움이 되겠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다. 사회적 흐름이 친일 청산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반대하기는 어렵지만 효과는 미지수일 것이라고 은근히 찬물을 끼얹는 교계 지도자도 있었다.

효과는 미지수?

친일 청산에 동의한 사람들은 방법론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최덕성 교수(고려신학대학원)와 윤경로 위원장(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성결교 '대부' 이명직 목사의 친일 부역을 끈질기게 제기하고 있는 이선교 목사(백운교회)는 교회도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교계의 보수 진영을 대변하는 한국교회언론회도 대변인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해 "전문가로 구성된 '백서발간위원회'를 발족시켜 일부 교회 지도자가 저지른 친일 범죄 행위에 대한 진상을 올바르게 밝히자"라고 주장했다.

친일 명단을 만들자는 주장은 과거에 대한 진상 조사나 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진 바 없기 때문에 당연히 나오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까지 역사 청산의 노력도 친일파를 공개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해방 후 1948년 조직된 반민특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반민족행위자 370여 명을 검거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족행위자 처벌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하는 가운데 겨우 12명만 형을 선고했고, 7명이 친일파로 선정되었다. 정인과 전필순 김길창 김동만 전인선 양주삼 정춘수 목사가 검거되었지만 모두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2002년 현역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민족 정기를 세우는 의원 모임'(회장 김희선)도 친일파 명단 708명을 발표하는데 주력했다. 역시 김활란 고황경 윤치호 신흥우 등 기독교 지도자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필요한 일이지만, 한국 교회는 과연 반민족 행위자를 조사할 명분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회에서는 개인 범죄를 추적하는 것이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교회는 누구를 조사하겠다고 나설 상황이 아니다.

교회 자체가 조직적으로 반민족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교단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일제에 전투기를 헌납하고 국방헌금을 하고, 교회 종까지 바치고, 교인과 목회자 신학생까지 신사참배에 동참시켰다. 장로교가 비행기 한 대를 헌납하면, 감리교는 세 대를 헌납했다. 장로교가 먼저 국방헌금을 하면, 감리교는 뒤늦게 나선 것을 반성이라도 하듯 교회와 교회를 병합하는 제 살 깎기를 통해 헌금을 모았다. 성결교도 각종 헌금을 하다가 교단 자체를 해산했다.

한국 교계는 먼지 없나

해방 이후 출옥 성도들이 친일 부역한 죄를 물어 회개를 선포했을 때 한국 교회는 이를 거부했다. 사회에서 반민특위가 기독교 친일파를 잡아들였을 때 '기독교 정권'의 수장 이승만 대통령이 방해했다. 장로교 총회는 회개 대신 1954년 제39회 총회에서 슬그머니 신사참배 결정을 취소하는 성명을 전국 교회에 알렸다. 교회가 안팎에서 준 회개 기회를 차버리고, 회개해야 할 당사자인 교회에게 친일 부역의 상징인 신사참배 결정을 취소한다고 알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행동인가.

기독교 기관도 친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비정부기구(NGO)의 뿌리이자 산파인 YMCA는 <청년>에 '황국시민의 선서'를 냈고, 신흥우 윤치호 등 YMCA 지도자가 친일 행각을 벌였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YMCA 운동 100년사>를 쓴 민경배 총장(서울장신대)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때 아팠던 사람들을 부둥켜안고 우는 것이 필요하지, 지금 (청산)한다면 YMCA도 심각한 청산 대상이 된다"라고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진보교단 연합 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해방 이후 생겼지만 역시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KNCC 모체인 조선기독교연합회 회장 김관식 목사의 행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김 목사는 일제가 강제로 모든 교파를 통폐합해 만든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의 통리를 지냈고, 평양 신학생들을 데리고 내지를 견학해 신사참배를 시킨 바 있다.

올해 KNCC는 분단 60주년을 맞아 한국 사회에 교회를 돌아보는 사업을 마련했다. 세미나와 토론회 주제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에 맞추어졌다. 그러나 친일파들이 해방정국을 거치면서 친미주의자로 변신하는 기회주의적 본능을 발휘한 것을 감안할 때, 친일을 다루지 않고 미국과 친미를 논한다는 것은 현대사의 두 핵심 가운데 하나를 빼먹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과거'가 걸려 있는 문제는 피하면서 조국과 교회의 근현대사를 다루겠다는 생각은 비겁하게 비칠 수도 있다.

친미 이전에 친일부터 논하라

교계를 친일 취재하기 위해 만난 김인수(장신대)·최덕성 교수, 윤경로 위원장, 이선교 목사, 김승태 연구실장 등 교회 사학자와 구교형 사무국장(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교회개혁 활동가는 지금이라도 KNCC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 교회의 반민족 행위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하나님과 민족 그리고 역사 앞에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김인수 교수와 이선교 목사는 아직도 친일파 후예들이 교권을 장악하고 있어 역사 청산에 대해 바른 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한국 교회가 친일 매듭을 풀지 않으면 민족 종교로 서는데도 걸림돌이 되고, 역사와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나서서 과거를 씻지 않으면, 세상이 교회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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