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좌석 배치 사건 통해 불신 드러나…신뢰 회복이 관건인데
'부활절연합예배 단상 좌석 배치 사건'이 한국교회 연합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총무 백도웅 목사)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박종순 목사) 양쪽 모두 이번 사건이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단상 좌석 배치 사건은 양쪽이 서로에게 갖고 있는 불신이 극명하게 드러난 예라고 볼 수 있다.
한기총이랑 연합을 하겠다고?
KNCC의 일부 인사들은 이번 부활절연합예배를 한기총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설교자로 선정되면서 더욱 증폭됐다. 이 같은 기운은 지난 4월 20일 열린 KNCC 실행위원회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오충일 목사는 "폭력을 행사한 경호원들을 폭행으로 고소해야 한다.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고 말했고, 한 실행위원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면 기하성은 KNCC를 탈퇴해야 한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나왔다.
하지만 KNCC 쪽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KNCC 독자적으로 부활절연합예배를 치른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어려운 일이다. 인원 동원도 문제고,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돈'이다. 가뜩이나 재정 형편이 어려운 KNCC로서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같은 대형교회의 지원 없이 행사를 치른다는 것은 무리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속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총회장 서상식 목사)는 KNCC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총회장 안영로 목사)와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감독회장 신경하 목사)에 이어 세 번째로 회비를 많이 내는 교단이다.
이런 실행위원들의 분위기와는 달리 KNCC 회장인 박경조 주교나 백도웅 총무는 이번 사태를 적당한 차원에서 수습하는 것을 원했다. KNCC는 회원 교단인 기하성을 상대로 끝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박경조 주교와 백도웅 총무는 이번 사건의 해결을 임원회에 맡겨줄 것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하지만 실행위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우리도 할 말 있다"
KNCC가 이렇게 나오자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여의도순복음교회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4월 21일 <뉴스앤조이>로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문건을 보내왔다. 문건에 따르면, 부활절연합예배 당시 날씨가 추워 조용기 목사가 않을 좌석에 방석과 난로를 준비했고, 이를 본 KNCC 관계자가 "조용기가 뭔데…"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 매우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한국교회에 큰 행사가 있을 때는 대형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인원과 돈 등을 지원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정작 그에 걸맞은 대우는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활절연합예배도 마찬가지. 조용기 목사가 주강사였고, 날씨는 매우 추웠다. 그래서 교회 측은 조 목사를 위해 난로와 방석을 준비했던 것. 교회 측은 뒤에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 하용조 목사에게도 이불을 제공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측은 "차라리 우리 교회와 KNCC 그리고 한기총 관계자가 모여 그날 사건의 진상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보자"는 제안을 할 정도다. 이번 사건과 연관된 세 주체들뿐만 아니라, 기자들과 다른 사람들까지 불러 과연 누구의 잘못인지 시시비비를 가려보자는 얘기다.
교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 교회의 경우 조용기 목사가 설교를 하면 부인인 김성혜 사모가 옆에 앉는 것은 관례"라며 "이런 관례는 외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룰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사과를 했다"고 말했다.
KNCC, "한기총은 합의대로 하지 않았다"
KNCC는 단상 좌석 배치 사건뿐만 아니라, 예배 당일 행사 진행에도 불만이 있다. 한기총이 부활절연합예배 진행과 관련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조 목사가 당초 약속했던 설교문과 달리 설교를 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분명히 설교문으로 합의를 했음에도 행사 당일에는 메시지로 둔갑했다고 했다.
그럼 조용기 목사는 왜 합의한 설교문대로 설교를 하지 않은 것일까. 김광준 신부는 부활절연합예배를 앞두고 일간지 기자들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신부는 "이번 설교문은 채수일 교수가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심기를 건드렸다. 한기총 관계자는 부활절연합예배를 열흘 앞두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측으로부터 설교를 취소하겠다는 통보를 받았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기총 인사들이 설교문에 구애받지 말고 설교를 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한기총은 이 과정에서 KNCC의 박경조 주교와 백도웅 총무에게 허락을 구했고, 그들 역시 흔쾌히 응했다고 말했다.
한기총, "우린 억울해"
또 KNCC에서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들 역시 모두 공문을 통해 KNCC에 보냈다고 했다. 한기총의 한 관계자는 "한기총은 이번 사건과 관련 KNCC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공문을 보냈고, 증거를 가지고 있다"며 "이런 사건이 생긴 것은 KNCC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한기총은 이번 사건과 관련 매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사고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KNCC가 쳐놓고 욕은 한기총이 먹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한기총은 이번 사건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고 있다. 한기총은 일단 공개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5월 4일 있을 한기총 일치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 뒤, KNCC 임원들을 만나 조용히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자신들도 할 말은 많이 있지만, 시끄럽게 떠들어봐야 한국교회 이미지에 좋지 않은 결과만 가져온다는 것이다.
한낱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사건이 이렇게 확대된 이유에는 KNCC와 한기총 사이에 불신이 존재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양대 연합기구는 2007년 기구 통합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양쪽이 우선 신뢰를 회복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또 한국교회의 연합을 우리 시대에 이루겠다는 욕심도 버려야 한다.
사사건건 의견이 다른 KNCC와 한기총. 과연 기구가 통합된다고 해서 하나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천천히 한걸음씩 나가는 자세가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