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날자, 날자꾸나”

이번 호에서는 방송 이야기 좀 해보렵니다. 우리나라 방송 중에 가장 역동적인 매체를 꼽으라면 저는 CBS를 듭니다. 미디어의 미래를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집단이지요.

최근 10년 동안 CBS의 매체 확장은 눈부십니다. 1996년 수도권을 상대로 한 음악 FM 개국, 1998년 서울 등 전국 주요도시의 표준 FM 개국 및 지역방송망 확충, 2000년 위성방송 기독교 채널 사업권 획득, 2003년 인터넷 신문 노컷뉴스 창간, 2004년 위성 DMB 보도채널 사업권 획득, 2005년 CBS가 참여한 한국 DMB의 지상파 DMB 사업권 획득. 그리고 며칠 전 5%의 주요 주주로 참여한 경인 TV의 사업자 선정.

대단하지 않습니까? AM 라디오 방송만으로 40년을 버텨온 CBS는 1970년대 라디오 르네상스 시대의 맥을 살리지 못한 채 1980년 언론통폐합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이후 2000년 노조의 파업까지 근 20년을 상실의 시대로 보냈습니다. 젊은 층들은 그새 TV와 FM 매체 환경에 길들여져 갔습니다. 사양화된 매체인 AM만 붙잡아온 CBS로서는 ‘상실의 20년’을 채워가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CBS 앞에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FTA. 한미 FTA협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과 미국 사이에 무역장벽을 없애는 것입니다. 방송도 예외는 아닙니다.

CBS의 결정적인 약점은 ‘높은 광고 의존도’입니다. 2004년 기준으로 CBS의 한 해 수익은 682억여 원입니다. 이 가운데 광고 수익은 429억 원으로 63%에 해당합니다. 이 수익의 대부분은 라디오 방송 광고 수입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바로 KOBACO(한국방송광고공사)입니다. 여기서‘메이저’지상파 방송에 들어오는 광고 물량을 비영리 방송사에 분배해줍니다. 그런데 이것도 한미FTA가 발효되면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KOBACO가 사라진다면 CBS는 광고주와 개별적인 영업을 통해 수익을 벌어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올 경우 연 400억대의 매출에 해당하는 종전 광고물량을 확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 우세합니다.

CBS는 그래서 TV로, DMB로, 인터넷 미디어로 여러 플랫홈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라디오 기반의 미디어로 그칠 경우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사활을 건 매체 확장’이라는 표현이 적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경인민방 허가는 그런 의미에서 CBS에게는 생사를 가를 시금석이 될 것 같습니다. 수도권 전역에 80% 이상의 TV 수상기를 통해 전파될 경인민방. ‘5%의 주주일 뿐 경영이나 방송에 관여 못한다’는 원칙론에 가둬놓기에 CBS의 역할과 잠재성, 인프라는 너무나 탁월합니다. CBS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주목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바칠까, 말까”
 
경우1. 모 교회 권사가 자기 교회에 십일조를 했습니다.
경우2.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모 군수의 부인이 종교단체에 1억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를 했습니다.

경우1과 경우2가 만나면 어떤 사법적 해석이 나올까요? 전남지방경찰청은 ‘유죄’라고 보는 모양입니다. 전남경찰청은 선거법상 기부행위로 전남 장흥군수의 부인 김 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김 씨는 올 1월말쯤 남편인 현직 단체장의 재선을 돕기 위해 자신이 권사로 재직 중이던 전남 장흥군 모 교회에 1억 원짜리 수표를 십일조 명목의 헌금으로 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목을 끄는 부분은 경찰의 해석입니다. “아무리 헌금이라도 너무 큰돈이다. 게다가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기부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십일조는 신자가 마땅히 따라야 할 규율입니다. 안 내고 싶어도 내야 하는 의무성이 개입돼 있습니다. 게다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입니다. 권사라는 중직을 받았습니다. 확인 안됐지만 10억 원을 벌었다면 1억 원을 봉헌해야 마땅합니다. 아마 군수 부인은 이 점을 적극적으로 호소할 것 같습니다.

선거법과 하나님의 법의 간극.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라고 외치기 전에 가이사의 법전부터 뒤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입부터 ‘淸敎徒(청교도)’가 되소서
 
“여기 짧은 치마 입고 온 여자들 많지? ‘XX’ 다 보이는 치마. 앞으로 그 치마 입고 오면 ‘XX’ 들춰본다. 그리고 연단 앞자리에 가슴이 파인 옷을 입은 여자들, 가린다고 안 보일 것 같지? XXX 까만 것까지 다 보여.”

그런데 이 발언을 목사가 했다면 어떠시겠습니까? “그럴 리갚라고 하시면 당신은 평신도입니다.“설마”라고 한다면 서리집사입니다.“너무 심했다”그러면 안수집사나 권사. “우리 목사도 그런라고 하면 장로입니다.“그럴 수도 있지”라고 한다면…. 아이고 목사님. 이제야 인사드립니다.

정답을 말씀드리죠.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이런 망발을 입에 담으신 주인공은 청교도영성훈련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전광훈 목사입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통일선교대학 이사장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는 고명하신 분입니다.

목사를 일컬어 인간의 영혼을 책임지는 ‘영적 지도자’라고들 합니다. 목사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로 인한 여파는 큽니다. 그렇다면 이분, 마땅히 물러나야겠죠? 하지만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목사가 잘못하면 책임지고 물러나는 문화가 한국교회에 필요합니다. 특히 목사도 잘못하면 쫓겨날 수 있다는 인식과 문화가 필요합니다. 국회의원도 취중 실수로 인해 정치적 생명에 치명상을 입는 세상입니다. 국회의원이 이 정도라면 목사는 그보다 더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종교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 아니겠습니까?

기독공보 노조, ‘얌전히’ 해체하라

모 교계방송에서 노조 간부로 활동하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직한 이후, 이 회사 저 일터 다니며 구직할 때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최종면접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이 묻는 말이 있었습니다. “노조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죠?”라고요. 그때마다 저는 이실직고를 했고, 그때마다 낙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들어가고 싶었던 직장의 최종면접 자리에서였습니다. 면접관은 어김없이 노조경력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는 “단순 조합원이었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낙방했습니다. 올라오면서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직장 구한다고 내 나름의 가치를 부인하다니. 집으로 오는 길에 차를 세워놓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얼마 전 한국기독공보 노조가 해체했습니다. 한국기독공보도 자랑하듯 1면에 크게 다뤘습니다. 그런데 그게 자랑일까요? 해체하면서 이들이 남긴 말이 참 걸리네요. “노동조합 없는 한국교회를 만드는 몫 또한 한국교회 전체에 있다고 믿습니다”라는 부분입니다. 노조하면 왠지 분파적인 인상이고 불신 지향적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들이 생각하는 ‘노조는 곧 필요악’이라는 인식은 그들만의 사고의 틀은 아닐 것입니다. 광성교회에도 목사 8명이 노조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적이 있었죠? 그들의 탈퇴의 변이 이렇더군요. “노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법을 따라 저희 교회의 문제를 바르게 치리․수습해주실 것으로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탈퇴합니다.”노조를 그저 사용자에 대한 엄포용, 쟁의행위를 위한 합법적 투쟁도구 등으로 인식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노조 없는 한국교회를 염원한다’라니요? 노조 결성은 노동자의 기본권입니다. 노조는 엄혹한 시절 노동정의 실현을 위해 싸워온 분들이 만든 피와 땀의 산물입니다. 한국기독공보 노조가 얼마나 눈물어린 투쟁을 했는지 몰라도 그 존재 가치를 재단할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반대입니다. 한국교회에는 노조가 필요합니다. 노조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대개 대형기업 노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천착합니다. 사용자의 절대 권력이 두드러진, 규모가 작은 또 응집력이 약한 한국교회 내 노조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내부 분열, 활동 부진, 사용자와의 갈등의 소지가 걱정돼 문 닫는 것이라면 조용히 해체하십시오. 한국기독공보보다 못한 규모의 환경에서 억압받고 있는 익명의 기독교 산업 종사 노동자들에게 더 큰 낭패감 남기지 말고요. 본디 패자는 말이 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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