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호 특집 20대, 희망을 상상하다]

예수님은 청년이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만 33세의 과장급 인재. 만약 공부를 하셨다면 박사학위를 갓 받은 전임강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은 그런 ‘뻔한’ 삶을 사는 청년이 아니셨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고 어떻게 즐길까 고민하는 당시의 헬레니즘 문화와는 너무도 다르게 덥고 추운 광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40일을 금식하시며 고민한 뒤 부름에 응하셨다. 통장의 잔고를 보며 미래의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대다수 크리스천 청년들과는 달리 집도, 깔끔한 옷도, 보기 좋은 소유물 하나 없이 너무도 간소한 생을 사람들과 사시다 고통 가운데 눈을 감으셨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끼리끼리 모여 사회의 좋은 트렌드를 잘 좇는 사람이 멋쟁이였던 지금과 비슷한 당시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를 먼저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있기를 전혀 꺼리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섬김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며 그렇게 하겠노라, 자신은 실제 그렇게 살고 있노라 선포하며 자신의 명예를 강조할 때에 정작 하나님의 아들은 섬김=고통임을 십자가의 달림으로 몸소 보여주셨다. 놀 수 있는 친구로서는 좋지만 함께 운명을 같이할 친구로서는 옆에 두고 싶지 않은 개인주의 사회에서 자신보다 대부분 나이가 많았던 12명이나 되는 제자들과 함께 밥을 먹고 동거를 하며 그들의 삶을 책임지셨다.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지식의 힘을 믿으며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을 서슴없이 쓰는 엘리트들과는 달리 인간이 늘 먼저이며 그런 다음 지식이 있다는 사실에 모든 율법을 풀어나가셨다. 한 가지 사상에 사로잡혀 율법적이고 도그마적인 평가를 했던 학자들에게는 결코 균형을 잃지 않으며 그들이 보지 못하는 그 이상의 본질을 한번 더 고민할 수 있도록 비유로 진리를 설파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