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호 편들고 싶은 사람]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 글을 써야 하는 그의 좌우명은 다름 아닌 ‘글에서 말로, 말에서 침묵으로, 침묵에서 삶으로’다. 글과 말이 뛰어나면 대중이 환호하지만, 그대로 살아내면 곁 사람들이 존경한다. “드러내진 않지만 후배 기자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는 분위기”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해 준 <CBS>에서 일하는 모 기자의 말을 변상욱 기자님, 듣고 계시나요? 비유와 비평과 풍자로 ‘진실’을 드러내고, 기독교와 유학과 선불교 등을 공부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자칭 ‘천방지축 로맨티스트’인 변상욱 대기자를 5월 14일 오후 그가 일하는 <CBS> 사옥에서 만났다. 
가만 보면 한 사람이 (얼굴이나 이름 등이) 팔리는 게 7, 8년 주기로 돌아오는 것 같다. 이때 벌어서 7, 8년 먹고살아야 한다. (웃음)
해직 언론인들이 만들고 있는 <뉴스타파>에 출연하면서 대중에 더 많이 알려졌는데, 청을 받으신 건가, 같이 만드신 건가.
청을 받았다는 표현이 맞다. 해직 기자와 언론노련(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내 언론 민주화 실천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해직 기자들을 활용해 ‘나는꼼수다’(나꼼수)처럼 새로운 시대에 맞는 대안 언론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런데 해직 언론인들이 한풀이하는 이미지가 강해 보이니 보완책으로 현직 언론인 두 명 정도를 넣자는 의견이 나왔다. 신경민 아나운서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었기에 그가 클로징을 맡고, 칼럼은 내가 맡는 것으로 처음 구도를 짰다. 즉 시니어급 기자 둘, 해직 언론인, 언론 노조 이렇게 삼각 동맹이었는데 신경민 아나운서가 민주통합당 대변인으로 가면서 빠졌다. 지금은 <뉴스타파>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에 대해서 약간의 자문만 하고 있다. 본인들 일이니까 본인들이 알아서 열어 가야 할 일이다. 나로서는 방송에서 꺼내기 부담스러운 내 색깔이나 심경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뉴스타파>가 진실 보도에 있어 제일 장타를 쳤다고 생각하는 꼭지가 있다면?
정부나 권력의 허구성을 드러낸 경우다.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사업이 첫 번째다. 그곳은 해군기지가 들어설 만한 곳도 아닌데 해군이 자신들의 위상과 입지를 위해, 그리고 예산을 따내려고 조악한 과정을 거쳐 억지로 만들고 있다는 걸 구체적으로 짚었다. 또 1, 2회에서 다룬 선거관리위원회의 총체적 부실이다. 이 두 가지는 실체적 진실에 다가갔다고 평가한다.
<뉴스타파>의 공은 언론사 특히, 방송사가 (사회 주요한 이슈를) 다루지 않고 회피하는 게 소용없다는 걸 방송사에 인식시켜 줬다는 점이다. 화면이 없는 나꼼수가 기성 언론이 성역으로 여겨 접근치 않는 소재 중 각하에 집중한다면, <뉴스타파>는 여러 소재와 현장을 화면이 있는 뉴스로 전달한다. 또한 저널리스트라고 하는 기자들에게 ‘기자라면 이렇게 묻고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는 걸 보여 줬다. 기자들은 가능한 한 힘 있는 자를 귀찮게 하고 힘없는 자를 편안케 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겁먹지 않고 누구든 겁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기자들에게는 ‘두 번째 질문’이라는 게 없다. (취재원의) 대답이 불충분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을 때 다시 묻고 또 다시 묻는 게 최선인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엉터리여도 끄덕하고 만다. 1번 질문했으니 2번 질문하고, 내가 질문했으니 다른 기자가 질문하는 식인 거다. 뉴스, 방송사, 저널리스트 이 세 차원에서 <뉴스타파>는 각각에게 경고와 대안이기에 보람이 있다. (다른 방송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주제여도 <뉴스타파>에 걸리니까 조금이라도 다루고 약간 더 나아가는 풍조가 생겨나고 있다. 
언제까지 파업 현장에서 방송을 만들 수만은 없을 텐데, 파업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계시지 않나. 어떤가.
파업이 노조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국회에서 방송국 사장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국회 교체기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 임기가 남았고, 박근혜 대표 체제인 새누리당은 여기에 관심이 없다. 더군다나 대선 때까지 지금처럼 뉴스가 나가면 집권당에는 유리하다. 총선 때도 노조 파업으로 집권당은 득을 봤기 때문에 굳이 판 흔들며 해결하고 싶지 않을 거다. 급하게나마 노조에서 <뉴스타파>, <리셋KBS뉴스9>, <제대로 뉴스데스크> 등을 만들고 있는데,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투쟁 동력도 소진돼 가고 있어 국면 전환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통해 대선을 치러야 할 것이다.
<국민일보>는 정치 파업이 아닌데….
거기가 가장 어렵다. 거대한 종교 자본 일가족과의 싸움인데, 조용기 목사는 굶어 죽을 리도 없고 (형식상) 순복음교회를 물러났으니 교회에서 징계당할 일도 없다. 그러나 일반 방송 노조 싸움과는 달리 <국민일보> 파업은 져도 신앙적으로는 이기는 싸움이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멀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신앙과 양심을 건 싸움에서는 하나님 편에 서는 사람이 궁극의 승리자다. 지금으로서는 노조가 많이 양보하고 파업이 끝날 공산이 크다. 인간적인 분함과 모멸감, 자괴감이 들겠지만 사실 파업 후가 더 중요하다. 조용기 목사나 간부들을 아예 내보낼 수 없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함께 나서줘야 한다. 그런데 <국민일보>가 교계 신문이기도 하면서 일간지이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떠안고 싶어 할지 모르겠다.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 신앙과 양심을 바탕으로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는 제대로 된 기독교 일간지가 필요하다. 과거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같은 신문이 그 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 그런 인식이 없다. 그간 <국민일보>가 그런 노력을 해 왔다면 모를까, 사람들은 <국민일보>를 조용기 목사와 순복음교회의 전유물로 인식해 왔다. 이 사태를 절박하게 느끼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파업 후가 더 중요하다.
이영훈 목사는 특별한 입장이 없는 건가.
발을 빼려고 하는 듯하다. 처음에는 조용기 목사의 잔재나 그림자를 순복음교회에서 좀 털어내고 싶어 했다. <국민일보>와도 적당한 암묵적 협력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뒤 사태가 복잡해지면서 발을 빼고 물러선 듯 보인다. 
나는 앵커를 할 때나 그만둘 때나 한 번도 하나님이 말씀을 안 하시던데.(웃음) 원래 신앙 양태가 외견상으로도 심하게 보수적이고 기복적이었다고 하더라. 정통 기독교단 소속의 교회에서 성장한 것인지 문제 교단이나 기타 집단에서 성장했는지 살필 필요가 있어 보인다.
표현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신앙의 결단’ 정도로 표현했으면 됐을 텐데.
내가 트위터에도 썼지만 자신의 강렬한 욕구나 바람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직업 선택할 때나 대학에 갈 때도 그렇지 않나. 자신의 꿈을 그렇게 반영하는 거다. 아직 그 정도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문제는 정치든 노조 파업이든 못하면 결국 부담은 한국교회가 지게 된다. 조금만 잘못해도 ‘기독교가 원래 저렇지’ 한다. 정치인도 교회 장로라고 뽑았는데 못하면 기독교가 덤터기 쓴다. 동료들과의 인간적 관계나 신념, 상식으로 처리할 것을 신의 계시라는 타이틀을 걸고 행동하면 기독교라는 집단의 이미지가 오해받게 될 것이어서 아쉽다.
나꼼수의 김용민은 좀 반대인 것 같다. 기독교가 현실을 외면하고 내세 지향적인 성향을 띠어 대중이 실망한다면, 김용민은 목사 아들로서 세속적이고 기성 사회에 저항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이 역시 대중에게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총선 때 만나서 조언도 해 주셨을 것 같은데.
만나면 어깨나 툭툭 쳐 주는 거지 바빠서 긴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후배의 미래를 위해 쓴소리를 해 주신다면.
한국 기독교의 맹점과 김용민이 갖고 있는 점 중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의 역사나 한국인의 의식 속에 예수가 차지하는 의미는 크지 않다. 기독교인들이 한국 역사에서 이뤄낸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신사 참배 거부, 민주화운동 거든 것 두 가지 빼고는 없다. 대개 주기철 목사를 언급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주기철 목사 얘기를 아직도 하겠나.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예수는 토템과 비슷하다. 곰이나 호랑이를 섬기는 부족이라고 해서 단군신화가 나오듯이, 예수를 저들 부족의 토템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강화하는 것 또한 기독교다. 선거에 장로가 나왔으니 그를 뽑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가 기독교인에게는 통한다. 그게 토템이다. 그럼 기독교 안에서 예수는 어떤 의미일까. 램프를 문지르면 튀어 나와 초월적 힘을 발휘해 도와주는 지니와 같다. 이건 완전히 만화다. 예수는 희생양이 돼 버렸다. 이렇게 예수가 내재화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지도자로 인정받으려면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이 인정하는 언행을 갖추어야 한다. 그건 보통의 경우 군자나 청렴하고 지조 있는 선비의 모습이다. 나꼼수 들으면서 김용민 씨를 부를 때 ‘돼지’라는 닉네임을 흔히 사용하며 비하하면서 한참 막내 취급을 하다 국민 의결 기구 대표로 이미지를 바꿔 내려니 어려웠다. 나꼼수가 청취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찬송가를 전기 기타로 연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부 젊은 세대 빼고는 바이올린으로 연주해야 영적 감응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김용민 씨의 기독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폭넓은 사회 인식, 사회 개혁을 향한 열정 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막말 파문도 있었는데 격려의 뜻으로 ‘일 동일정 묘도정의’(一 動一停 妙道精意)란 말을 주고 싶다. 군자는 모름지기 멈추건 나아가건 매 순간의 모든 행함이 깊은 이치와 다듬어진 뜻에 의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한 순간도 소홀함이 없기를.
진행형이라 조심스럽지만 통합진보당(통진당) 사태도 안 짚을 수 없다. 정리된 견해나 전망이 있으신가.
먼저 든 생각은 자기반성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은 누가 무슨 짓을 저지르면 과거의 행적과 미래의 행로를 연결 지어 파악과 분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통진당에서 터지니 이름조차 모르겠더라. 노회찬, 심상정, 이정희 이런 인물은 다 알지만 실무를 담당한 이들의 성격이나 인적 구성은 아는 바가 없다. 그간 언론도 뉴스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실체를 외면하거나 기피했다. 또 재야 진보 쪽에서 고생하는 이들에 대한 연민, 동료 의식 때문에 너무 온정적이었다. 차라리 비판을 했더라면 더 건강해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니 그쪽 입장에서는 그동안 소외하고 관심도 주지 않다가 잘 안 되니까 벌떼처럼 나타나는 데 대해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흉금을 털어놓자면, 지금 통진당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당권파가 폭력적이다, 수구 진보세력이다, 종북 좌파다, 북한의 지령을 받는 빨갱이다’ 까지…. 도대체 스탠스를 못 정하고 있다. 주사파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독재 정권의 압재’와 ‘미국에 종속되었다’는 두 가지 한국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이들이 한때 북한을 롤 모델 삼아 북한이 어떻게 외세를 견디는지, 인민을 탄압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평등을 유지하는지 등을 공부한 적은 있다. 그런데 그것이 한때의 트렌드로 끝난 것인지, 젊은 시절 습득한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이 급박한 순간에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것인지, 치밀한 조직적 목표와 전략에 의해 처음부터 기획된 것인지 전혀 확인을 못했다.
90년대 한총련 사태 이후 ‘NL - PD 논쟁’이 창고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다시 창고에서 꺼내 봐야 하는 상황이 온 듯하다.
당권파가 종북이거나 주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국회에 진출하는데 이 나라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이 보고만 있었겠는가. 3대째 세습하는 나라에 무슨 존경이 남아 있겠나. 다만 이념을 갖고 격렬하게 투쟁하면서 습득했던 양식이 무의식중에 발현되었거나 내재화됐던 것 아닐까 싶다. 문제는 그간 내부적으로 주먹구구식의 어려운 살림을 꾸리다 보니,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제되거나 견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곧 새로운 세대가 국회로 진출하고 공당으로서 광범위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터라 더 조급하고 격한 반발이 당권파로부터 나왔다고 본다. 통진당이 심하게 썩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구조적·의식적·인적 구성은 쇄신해야 할 부분이 있다. 수술하고 다시 봉합해 융합시켜 나가야 한다.
언론의 역할이 아쉽다. 추측과 의견이 앞서고 폭력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진실은 가려진 듯하다.
폭력은 인간 본성의 문제라서 어느 현장에서건 일정 선을 넘으면 폭발한다. 용산 참사, 한진중공업 사태에서도 그랬다. 언론은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는 걸 찾는다. 정당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과 폭력 사태는 최고의 소재다. 특히 약한 세력이고 기성 언론을 부정적으로 대하던 진보 개혁 세력이니 다수 언론이 공격적으로 나섰고, 국민의 지탄을 받는 통진당이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이 사태가 연말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통진당 내부에서는 국회가 열리고 그 안에서 통진당 국회의원이 현 정권을 멋지게 비판하면 반전 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새누리당도 망해 가다가 박근혜가 마사지하니까 금방 거듭나서 지지표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보는 거다. 게다가 대선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 부정과 비리가 다 터져 나오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과거의 문제는 묻힐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또 통진당 지지 세력의 성격상 여권으로 건너 갈 가능성은 없고 재규합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대선에서 야권이 불리해진 건 분명하다. 박근혜는 여러 번 검증을 받아서 새로 터질 게 없다. 그에게는 태생적 한계와 태생적 기반이 있다. 통진당이 어차피 대선 후보를 낼 건 아니다. 통진당을 떠난 민심이 민주당으로 흡수되면 셈은 마찬가지다. 남은 건 안철수와 문재인의 역할 분담이고 통진당이 조직 정비를 얼마나 잘하느냐의 문제다. 비대위가 봉합하거나, 당권파를 분리하거나, 당권파로부터 빠져나오는 안이 있는데, 지금 민주당은 비당권파가 빠져나와서 민주당의 주변 세력으로 남아 줬으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통진당 내부에서 어찌 진행될지 예측이 힘들다. 19대 국회가 개원해 무사히 국회에 입성하면 당권파가 한결 여유를 갖고 비대위에 참여할 공산이 큰데 그 전에 파탄에 이르면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쉼 없이 현안을 죽 짚어 왔다. 이제 변상욱 기자 개인으로 주제를 옮겨 얘기해 보자. 개인적으로 ‘대기자’라는 호칭은 변 기자님 직함에서 처음 들었는데.
원래 보도국장의 선배 혹은 동료인 사람들이 경영관리자로서의 책임 보직이 아닌 현장에 있겠다고 하면 대기자가 된다. 방송국 PD 중에는 많다. 기자들은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시켜 주는데 신문사에 한두 명씩 있다가 없다가 한다.
현장에서 계속 뛰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기자나 PD가 회사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조를 만든 1세대로서 비상대책위원장 2번, 노조위원장 1번 총 3번 노조를 맡았는데 임기가 끝나고는 실제로 경영 공부도 하면서 준비했었다. 그때는 나만큼 방송, 특히 <CBS>에 관해 아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사회나 미디어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다가올 것들에 대한 예견, 그에 대한 적응까지 해야 하는데…. 가령 소셜네트워크(SNS), 스마트폰, 스마트TV의 등장을 라디오가 주 매체인 우리와 어떻게 연결할지 연구해야 하는데 개념도 익숙치 않으니 생각이 끊겼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세대에 맡겨야 할 것 같다. 경영 환경도 거칠어졌다. 세일즈맨이 되어서 여기저기 굽실거려야 하고 교회 돌고 나면 저녁에 술자리 가서 폭탄주 마셔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마음에 없는 소리도 해야 하고 고개도 푹 숙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부적절한 것 같다.
참고로 저는 <CTS> 노조 창립을 주도했었다. 제가 1대 사무국장이었고 2대가 김용민이었다. 기자 생활을 이어오면서 간직하고 있는 사건이 있다면.
전두환 정권 시절 9시 뉴스에 대통령의 활동 기사를 먼저 보도하는 불공정 보도를 지칭하는 ‘땡전뉴스’라는 말이 있었다. 9시 ‘땡’하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뉴스가 시작하는 데서 온 말인데, 당시 “전두환에서 시작해 이순자로 끝나는…”이라는 청취자의 멘트를 그대로 전한 게 ‘국가 원수 모독 죄’가 돼서 전파관리법 위반으로 징계를 받아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었었다. 박종철 고문 사건 때는 특집 방송을 못 내보내게 해서 막아서는 간부들을 떠밀어 내고 동료들과 방송실 안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방송을 내보냈다. 2시간 분량 중 1시간 15분을 진행했다. 그 사건으로 방송에 일체 내 이름이 못 나가도록 당국의 경고를 받아 성우실에 가서 지내야 했다. 지금의 표현력이나 방송 화법은 그때 성우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바가 크다. 내 인생의 황금기였나? (웃음) 내가 만들고 동료 이름으로 방송이 나가기도 했는데 그게 더 조심스러웠다. 잡혀가면 안 되니까. 그리고 민주화 이후 방송국 원상 복귀시키려고 하루 스무 시간씩 힘들게 근무한 적도 있다. 
이 인터뷰 코너 이름이 ‘편들고 싶은 사람’이다. 그간 무엇을 저항의 대상으로 삼고, 무엇을 편들며 살아오셨는지 궁금하다.
나는 ‘인간적 정직’이면 족하다. 부정직하게 사람을 억압하는 현장이 내 싸움의 최전선이었다. 그런 현장을 대할 때마다 분노했는데 첫 번째 현장이 교회였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회 헌신예배 시간이었다. 나는 학생회 회장으로서 순서를 맡아 단상 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다른 순서를 맡으신 70대 여 권사님이 여자라는 이유로 단상에 올라오지 못하고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밑에 서 계셨다. 목사, 장로 심지어 나처럼 젊은 녀석조차 등받이 있는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말이다. 부흥회 때 목사와 부흥사가 입을 맞추고 교인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장면도 나로 하여금 교회를 달리 보게 만들었다. 목사님은 천만 원 내는 사람이 있어야 5백, 3백만 원 내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부흥사가 계속 ‘천만 원 헌금하실 분 없느냐’고 다그치니까 장로님들은 진땀을 뺐다. 그런데 저쪽에서 누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니 아멘하고 난리가 났다. 집회가 끝나고 가보니 노숙인 비슷한 사람이 ‘헌신, 헌신’ 하는 소리에 정신적 압박을 못 이겨 손을 든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에, 고등학생으로서 건방진 생각이었지만, 교회에서 알려 주지 않는 것들을 알고자 신앙 서적을 찾아 읽었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칼 힐티로 기억한다. 우치무라 간조의 책도 접했고… 좀 웃기지만 바로 무교회주의로 넘어갔다. 대학에 가서는 내 세상이었다. 안병무, 함석헌 선생을 책으로 만나고 한신대 수유리 캠퍼스에 가서 도강도 했다. 그러면서 성결교 교회에서 청년부 회장, 성가대 지휘도 했다. 군대에 가서는 이현주 목사의 책을 읽었다. 엄격한 부대라 책을 못 읽게 해 배낭을 뜯어 책을 넣고 바느질을 해 두었다가 훈련 나가서 몰래 읽곤 했다. 그리고 <CBS>에 들어왔는데 선배가 ‘넌 성결교인이라 좀 꺼려지는데 그래도 인사 한번 할래?’하면서 어떤 분을 소개하는데 이현주 목사였다. 내가 덜덜 떨면서 ‘제가 제일 존경하는 목사님’이라고 했더니 픽 웃으시더라. 그런데 그분 책을 달달 외우다시피 한다 하니 들으면서 기막혀 하셨다. 그렇게 이현주 목사와 인연이 시작됐다. 그분을 통해 청강 장일순 선생을 만났고, 장일순 선생을 좇아 노자와 장자의 세계로 들어갔다. 장일순 선생이 가톨릭 신자여서 가톨릭 영성도 접했는데, 여기에는 불교를 받아들여 응용한 영역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가톨릭 신앙과 불교, 노장사상을 접목한 중국 출신의 아시아의 대표적인 가톨릭 영성가 오경웅 박사를 만났고, 불교에도 뭔가 있구나 싶어 겁은 났지만 불교를 공부했다. 이후 중국과 일본의 선불교를 접했다. 중국의 선불교가 호방하다면, 일본은 아주 섬세하다. 그렇게 배워가며 여기까지 왔다. 나도 내가 뭐가 될지 모른다. (웃음)
인간적 부정직과의 싸움에서 여기까지 오셨다. (웃음)
교회를 벗어나고자 한 게 시작이었는데, 벗어났더니 이런 길이 있었다. 만났다는 게 접했다는 거지 득도했다는 건 아니고…. (웃음) 도란 좇아가는 것이지 얻고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동양의 가르침이다. 빌립보서 3장의 말씀 그대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 이야기다.
다른 데서는 이런 얘기를 하신 걸 못 봤다.
물어보는 데가 없다.
할 얘기가 많으실 텐데 방송에서는 절제하시는 듯하다.
한번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어떤 사람이 점심시간이 되자 비행기 바닥에 카펫을 깔고 예전에 따라 기도를 하더라. 잠깐도 아니고 수십 분을 했다. 기독교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엄청난 경지에 오른 사람일 거다. 불교에서는 비질을 한 뒤 빗자루 손잡이가 밑으로 가도록 세워 두는데, 그래야 비가 휘지 않는다. 이렇게 형식을 지키는 게 곧 마음을 다스리는 것일 때가 많다. 그런데 기독교에 부족한 것 중 하나가 형식이다. 또 원불교에는 실지불공이라는 개념이 있다. 몸이 가서 할 수 있으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어떤가. 대부분 새벽기도로 때운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지만 행동은 안 하겠다는 말이다. 봉사 활동을 하든지 성금을 내든지 행동을 해야 하는데, 기득권을 가진 중산층 기독교인들은 기도만 하면서 자부심도 느끼고 죄책감도 씻는다. 기도가 사람들 마음을 뜨겁게 할 수는 있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 넘어가면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런 얘기, 다른 데서는 못한다.
오늘 말씀하신 대로 실어드리겠다.
좋다.
진행 황병구 편집위원장 hwang1203@yahoo.co.kr
정리 이종연 기자 limpid@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