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호 연중기획] 반자본주의의 길에 서 있는 복음주의자 고세훈과 박득훈에게 묻다

애초 기획은 87년형 복음주의가 경제 영역에서 어떤 운동을 해 왔는지 성찰적 대담을 해 보자는 것이었다. 대담자를 섭외하기 위해 경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복음주의자들을 훑어보니 대부분 주류 경제학의 입장에 서 있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 1%를 위해 99%를 희생시키는 신자유주의체제를 배태했던, 그 ‘악한’ 속성을 도처에서 드러내고 있는 자본주의체제를 비판적으로 통찰해 줄 경제학자가 복음주의진영 내에 보이지 않았다. 이문식 목사(산울교회)는 지난 1월 호 연중기획 좌담에서 “지금이야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다시 사회민주주의로 관심이 가고 있지, 당시에는 관심조차 안 갔다”고 했다. 복음주의 안에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희년 사상을 토대로 일관되게 토지문제를 제기해 온 희년함께(구 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를 제외하고, 지난 20여 년 동안 복음주의진영에서 자본주의체제에 대응한 운동은 없었다.

성찰의 주제는 ‘왜 87년형 복음주의에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되지 않았을까’로 바뀌었다. 앞으로 복음주의는 자본주의체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복음주의자로서 반자본주의 입장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는 정치경제학자 고세훈 교수(고려대 공공행정학과)와 박득훈 목사(새맘교회, 평화누리 대표)를 만나 지나온 길과 앞으로의 길을 헤아려 보았다. 대담은 6월 5일 카페바인에서 정종은 편집위원의 사회로 진행했다.


▲ ⓒ이종연

안락한 이원론에 빠진 복음주의운동

정종은(정) : 1987년경에 태동한 새로운 흐름(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교학문연구소, 학원복음화협의회, <복음과상황> 등 80년대 운동권에 대한 대응으로서 세계관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가, 후시적으로 탄생한 단체들)에 대해서 20여 년이 지난 현재 개괄적인 평가를 부탁드린다.

박득훈(박) : 1983년부터 1997년까지 영국에서 살았다. 그 시대에 해외에 있었던 사람으로 부채감이 있다. 억압과 고통, 치열한 고민과 투쟁의 현장에서 빗겨나 있었다. 내가 지금 영향력 여부에 관계없이 사회참여운동에 꾸준히 함께하려고 애쓰는 것은 그 부채감 때문이다. 그 시대를 평가한다는 게 죄송스럽다. 그러나 국외자였기에 어떤 면에서는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말해 보겠다.

긍정적인 면부터 보면, 보수교회의 치명적 단점이었던 이원론·타계주의(하나님 나라가 내세에 있다고 믿는 것)·경건주의에서 탈피해 복음의 통전성을 회복하려는 흐름이 시작됐다. 종교개혁 신앙의 왜곡이었던 제자도 없는 값싼 은혜, 실천 없는 죽은 믿음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부정적인 면에서 평가하자면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에 대한 겸허하고 깊이 있는 성찰과 창조적 수렴이 결여되어 있었다. 어떤 면에서 지금 복음주의 사회운동이 동력을 상실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복음주의 사회운동이 한창일 때, 초점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 즉 선거와 관련한 시민의 민주적 권리를 회복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되고 실질적 민주주의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시점에 복음주의권은 이에 대응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반공·반노동·친미·친자본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복음주의권이 얼마나 갖고 있었는가. 만약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을 좀 더 치열하게 성찰하고 그것이 복음주의에 던지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이렇게까지 무기력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손봉호, 이만열, 홍정길, 김진홍 등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복음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복음주의권은 이들 중심 지도자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분들과 그 후원교회들의 신학적·이념적 한계에 머물렀다. 인간의 전적 타락을 강조한 개혁주의 신학과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독교 현실주의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아 민중운동 계열의 급진 노선을 경계하고 온건한 시민운동에 머물렀다. 손봉호 장로님은 “천국에선 공산주의, 세상에선 자본주의”라고, 홍정길 목사님은 “감기약을 너무 독하게 쓰면 감기는 나아도 사람이 죽는다”며 급진적 실천을 이상주의로 경계했다. 이런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 복음주의 그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로잔언약을 받아들인 주요 교회들이 중산층화되었다. 노골적인 기복신앙은 피했지만 중산층 성도들을 목회하면서 성공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펼쳐 간다는 단순한 승리주의에 빠져 복음의 급진성을 추구해 나갈 목회적 동력을 얻을 수 없었다.

고세훈(고) : 1987년 이전에는 사회에 무관심했다가 그 이후에는 사회참여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복음주의는 여전히 이원론적 전제 안에 있다. 복음 전파 따로, 사회참여 따로. 복음주의가 현실에서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한 것은 복음 안의 역동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원론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내면에 흐르는 것은 ‘복음과 윤리’, ‘믿음과 행위’, ‘복음과 상황’ 식의 이원주의였고 그것이 시민운동에도 전제되어 있었다. 복음에 비추어 윤리와 행위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복음에 비추어 민주주의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등의 문제의식은 공자나 부처의 말씀에 비추어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마르크스 등 어떤 대가의 이론이나 처방에 따라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과 큰 차이를 보여 주지 못했다. 복음만이 줄 수 있는 역동성 즉 살아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구현되는 측면이 복음주의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데 거기에 단절이 있었다. 믿음이 사도신경의 언어적 고백에서 멈추었고, 치명적으로 행위가 도덕에서 멈췄다. 말로는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상황 인식은 별개로 떨어졌다. 나는 87년 이후 복음주의운동이 ‘안락한 이원론’에 젖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복음주의 정신이 왜곡되었고 복음이 근본적으로 잘못 선포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현시되지 못하고 역동성은 사라진 것이다.

박 : 로잔언약이 등장할 때 교회의 사명에 있어서 복음 전도가 사회참여보다 우선한다는 항목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주로 제3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신학자들은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 사이에 우선성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구두로 복음을 전할 때,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위해 지배 권력에 맞서 저항하셨다는 점에 주목했다. 다른 이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사회참여와 분리될 수 없다. 분리되는 순간 복음은 왜곡된다. 제3세계 신학자 그룹이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로잔언약 본문엔 반영되지 않았고 부록에만 실렸다. 아쉬운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고 교수님이 언급한 안락한 이원론이란 말에 깊이 공감한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으로부터 더 강력하게 도전을 받고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복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물론 나 역시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성경해석학, 민중메시아론, 복음의 지나친 정치화 등 수용할 수 없는 대목들이 있다.

고 : 박 목사님 같은 분이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려고 현장에 나가는 이유는 그 일이 도덕적으로 옳거나 성경이 가르쳐서라기보다 복음적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이런 복음적 열정을 심어 주지 못했다. 교회는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더 무서운 이원주의에 빠졌다. “예수 잘 믿어라” ‘그 다음에’ “예수 말씀 따라 선하게 잘 살아라” 한다. 무서운 말이다. 두 말이 단절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스로 예수 잘 믿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자와 장로 중에 많다. 그러나 선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교회 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윤리적 삶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칭송하는 것이며, 기독교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선한 삶은 복음주의의 당연한 결과로서 나타나야 하고, 그것은 죄에 대한 통렬한 자기 성찰의 산물이어야 한다. 걸인에게 행하는 개인적 자선을 넘어서는 이웃 사랑은 그제야 가능해진다. 복음에 투철할수록 삶은 급진화하는 것이다.

박 : “그 다음에”란 그 짧은 말 속에 굉장히 깊은 신학적 왜곡이 들어가 있다. 본회퍼가 <나를 따르라>에서 그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믿는 순간과 실천하는 순간에 시간적 차이를 두는 것은 복음에 대한 근본적 왜곡이다. 믿음과 실천이 분리되면 기독교 진리는 왜곡되기 시작해 적당한 율법주의에 빠지고 만다. 복음의 급진성은 다 사라지고, 자기가 예수님 잘 믿는다는 것을 적절하게 증명해 줄 규율이 생긴다. 주일 성수, 십일조, 금주·금연, 새벽기도, 성전 건축, 개인 전도, 일정한 구제 등 몇 가지를 잘하면 그것이 곧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삶은 역사적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만나는 데서 흘러나오는 삶의 총체적 변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정 : 우리는 ‘87년형 복음주의’라고 이름을 붙이고, 한계가 있지만 이전의 흐름과 구분되는 통전적 복음주의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실패했다고 보는 건가.

고 : 말도 안 되는 노골적인 이원론에 대한 반동으로 나왔으니, 그 부분은 평가해야 한다고 볼 수 있지만, 상식적 수준에서 볼 때는 본전치기에 불과하다.

박 : 고 교수님의 비판에 공감하면서도 일정 정도 나아졌음을 인정하고 싶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김준곤 목사 등이 뒤늦게 로잔언약 운운하면서 기독교 정당의 깃발을 들었다. 군부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뤄지자 반응이 달라진 거다. 김진홍, 서경석, 이수영(한국로잔위원회 의장), 이종윤(한국로잔위원회 명예의장) 같은 이들 역시 로잔언약을 받아들였다고 하면서 철저히 친자본·친미·친기득권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들이 로잔언약을 자의적으로 왜곡한 면도 있겠지만, 로잔언약 자체에 오용·악용될 수 있는 애매하고 허술한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고 : 사회참여 문제를 전면으로 들고 나와 복음주의권에서 운동을 한 사람들에게는 더 가혹할 필요가 있다. 조지 오웰이 간디를 평가면서 성인은 무죄로 확정되기까지 유죄라고 한 말을 되씹어 보아야 한다. 기독교 시민운동을 주도한 1세대인 손봉호, 이만열 등은 개인의 강력한 도덕성을 가졌다. 그들의 자기 절제와 극기에 바탕을 둔 삶은 교계는 물론 사회에까지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자체는 선하다. 그러나 그것이 기본적으로 방법론에 있어서 개인주의에 머물게 한 측면이 있다. 개인의 회심과 도덕성 회복이 초점이었고 자본주의라는 구조의 힘, 그것이 끼치는 어마어마한 해악에 대해서는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제도와 구조의 문제인가, 개인의 문제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결국 개인의 문제로 갔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개인은 불의한 구조 속에서 일상적으로 죄를 지으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가령 노예제가 법적으로 용인되던 시기에 노예를 부리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것과 같다. 오늘날 교회는 노예제를 돌아보듯이 자본주의를 돌아보아야 한다. 노예제의 역사는 4000년이지만 자본주의의 역사는 불과 400년도 안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를 돌아보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박 : 철저히 개인 윤리적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봤기 때문에 복음주의 1세대에게 이랜드와 박성수 장로는 늘 모범 사례였다. 그들이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까지 성찰하지 못했다.

고 : 그 이전에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고 성공한다는 게 무엇인지 우리가 성찰했어야 한다. 가령 청부론은 복음주의 입장에서 애초에 불가능한 개념인데 거침없이 제기되고 지지받지 않았나. 청부론이 사회통념으론 칭송받을 만한 것일지 모르나, 그것은 복음을 율법으로 되돌리는, 근본적으로 반복음적이고 따라서 사탄의 계략일 뿐이다. 그것은 한국교회와 기독교 시민운동의 영적·신학적 상태를 징후적으로 보여 준다.

박 : 87년형 복음주의가 2, 3세대로 넘어오면서 청부론이나 이랜드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구조적이며 대안적인 몸부림은 약했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할지 방향 정립은 못했다.

▲ 고세훈 교수 ⓒ이종연

천민자본주의 주변에서 멈춘 경제운동

정 : 87년형 복음주의는 정치 영역에서 공명선거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굉장히 많은 단체가 참여도 하고 선거법과 선거 문화에 구체적 기여를 했다. 반면 경제 영역에서는 성토모를 제외하곤 딱히 떠오르는 그룹이 없다. 복음주의진영의 정치경제학자들 사이에 이런 고민을 한 분들의 네트워크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고 : 우리는 권위주의 시절을 거쳤다. 한국 정치가 후진적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절차 문제에 초점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반면 박정희, 전두환 정권하에 민주화는 후진했지만 산업화는 웬만큼 성공했다는 인식이 잠재되어 있었다. 이런 관점은 근본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이원론적으로 보는 인식의 틀에 터를 잡고 있다. 정치의 본질이 결국은 경제에 있다는,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 혹은 민주주의의 최대 과제라는, 즉 정치경제적 관점이 없었던 거다.

박 : 물밑에서 몸부림이 있었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운동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 조금 얘기하고 싶다. 예를 들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 사회정의운동이 있었다. 2000년 이랜드의 노조 파업 때 기윤실이 중재했고 내가 관여했다. 이때 나는 중간 입장에서 중재를 했는데도 외부에서 나를 좌파 성향으로 이해했다. 기윤실에 머무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당시 이랜드는 기독교의 상징이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기업인데 일정 부분 노조 편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용납되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는 기독교학문연구소(기학연)에 경제 분과가 있었다.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분이 아주 없진 않았는데 점점 주류 경제학이 과도하게 주도하게 되었다. 공의정치포럼 등에서도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정도였다. 반자본·친노동 등 급진적 입장은 복음주의진영에 없었다. 최근 한미 FTA, 용산 참사 등에 대해 복음주의 일부 그룹과 에큐메니칼 일부 그룹이 반자본주의 흐름을 내건 운동을 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고 :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복음주의 시민운동이 무력감에 빠지고 생기를 잃은 것은 복음주의 정신의 근본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 줄 뿐 아니라, 내 존재, 나의 안락이 그들의 고통에 빚을 지고 있다는 죄의식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일에 실패했다. 기독교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왜 기독인의 정치적 관심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인가, 그러면서도 기독교정당 등 교회의 이름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왜 적절하지 않은가 등의 문제에 대한 체계적 지식이 우리에게 없었다. 이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사회과학에 무지한 것과 관련 있다. 예전에 김세윤 선생이 일반 기독교 학자들은 아마추어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동의한다. 역으로 신학자와 목회자도 아마추어 사회과학자가 돼야 한다.

박 :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정치경제학에 대해 무지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이들은 주로 소위 주류 경제학 쪽에서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경제 문제는 정치적으로 접근하거나, 시민운동이나 정당정치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안 된다는 거다. 복음주의자들이 정치경제학에 대한 일정한 이해만 있었어도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았을 것이다. 이 점이 장하준 교수가 계속 얘기하는 부분 아닌가. 하지만 복음주의자들은 정치 문제와 달리 경제 문제에 대해서 자기 입장을 표명하는 것에 부담을 가졌고 자신감도 없었다. 정치 영역에서는 양심적 확신을 가지고 공명선거운동 등에 주도적으로 뛰어들었지만,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확실한 흐름을 만들지 못했다. 소위 진보, 중도 그리고 보수 사이에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 관계가 있었다. 친자본주의 흐름에 선 사람들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 반면, 진보적 입장에 선 사람들은 급진적 목소리를 내어도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교회 분위기에서 동력을 얻지 못했다.

정 : 천민자본주의 극복 정도가 87년형 복음주의의 경제적 입장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성토모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희년 사상을 대중화한 측면도 있지만, 용산 참사나 쌍용자동차, 한미 FTA 등의 문제에 대해 추상 수준의 방향성 외에는 별로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박 : 토지 공공 임대를 통한 지대 환수, 토지보유세 위주의 조세 개혁 등 관련 정책들도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성토모는 한국교회에 개인 영성과 사회참여를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실례다. 단 희년 사상을 지나치게 토지와 주택 문제에만 집중해 적용하는 경향성이 약점이다. 대부법이나 노동법에 대한 성찰도 일부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잘 분석한 것처럼 희년 정신은 패러다임으로 해석 및 적용되어야 한다. 산업자본주의를 넘어 금융자본주의 시대로 들어간 오늘날 자본과 노동문제에 더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고 : 성토모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자본주의 전체 질서에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 왔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토지문제는 원칙과 당위적 측면에서 말할 수 없이 중요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특성이라는 전체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19세기 말에도 헨리 조지의 이론은 지대세 환원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당시는 아직 토지가 중요한 생산 수단이었다. 지금은 자본으로서 땅의 중요성이 줄어들었고 지주 계급은 몰락했다. 국부(國富)의 크기가 국토의 크기와 거의 무관하다.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 절박함을 인식하는 것은 복음주의의 당연한 귀결이지만, 세속적으로도 모든 쟁점에 대해 단일 해법으로 환원하는 것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 박득훈 목사 ⓒ이종연

우상이 된 자본주의,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정 : 두 분 다 청부론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신 바 있고, 이랜드 비정규직 문제나 사랑의교회 건축 등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하셨다. 이런 개별 사안에 대한 입장의 연장선에서, ‘한국교회가 선택해야만 하는 정치경제학적 노선’이라는 것이 정립 가능하다고 보시는가. 만일 가능하다면 어떠한 형태로 제시될 수 있을까.

고 : 복음주의진영의 대부분은 시장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쪽에 속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물론이고 선진 자본주의사회에서 오랫동안 실천해 온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그러나 나는 교회나 기독교 단체가 이름을 걸고 특정의 이념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는 우리가, 이웃의 불행을 체계적이고 대규모적으로 만들어내는 현 질서의 해악에 대한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다면, 서로 다른 해법을 가지고 있더라도 많은 것을 함께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랜드 문제, 사랑의교회 건축 문제는 복음으로 비춰 볼 것도 없다. 세속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만 봐도 부끄러운 문제다.

정 : 그렇다면 천민자본주의 극복 정도의 입장에서 경제 문제에 소극적으로 개입한 87년형 복음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경제적 관점을 조언한다 생각하시고 말씀해 달라.

고 :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 나아가 현재의 자본주의를 교정해 나갈 때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얘기할 수는 있을 듯하다. 자본주의의 급속한 타락으로 가난과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고 개선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사민주의를 선호하지만, 사민주의가 교회나 기독교의 이름으로 표방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어차피 수단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민주의의 핵심은 이거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가 정치를 무능하거나 무익하다고 보는 데 반해 사민주의는 의회정치의 가능성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서유럽 복지국가들에서 보듯, 의회정치야말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집단적 이익이 관철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선 시민의 참여가 개별적이지 않고 노동자정당이나 노동조합 등 집단이나 계급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도 얘기했지만 자본주의에서 가장 계급적인 건 자본이다. 자본은 계급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마다 가장 신속하게 연대한다. 그러면서 노동을 가장 계급적이라고 비난하고 자신은 계급적이지 않은 것처럼 시치미 뗀다. 오히려 그 내부에서 다양한 요인들로 분열돼 있는 노동이야말로 가장 비계급적이다. 노동자는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조직적으로 연대하고 결속하지 않으면 일사불란한 자본의 공세 앞에서 끊임없이 이용당하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시혜에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혜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인간관계를 전제로 주는 자에게는 심리적 우월감을, 받는 사람에게는 굴종적 심리감을 줄 수밖에 없다. 서유럽 복지 선진국들이 그랬듯이 약자들이 연대해서 당당하게 강자들과 대등한 세력을 만들어 사회의 자원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게 바람직하다. 차선이지만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고 그나마 인간의 불완전성을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말은 투박해 보일지 모르지만 민주적 계급투쟁 즉 사회경제적 약자의 집단적 요구를 노동자정당과 노동조합을 매개로 제도화하는 것, 나는 그것이 합리적인 개선 방식이라고 믿는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기독교인에게 필요하다. 교회가 지난 반세기 동안 조장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정당에 대해 편견을 부추기며 기존 질서(자본)를 옹호할 것이 아니라, 그런 집단적 노력들이 먼저 잘못된 구조에 대한 약자들의 자구책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어찌 보면, 한 사회에 지배적인 정의나 공의도 현실적으로는 권력관계의 산물일 뿐이다. 가능하면 대등한 권력이 서로 견제하는 것이 낫다. 오늘 한국 상황에서 누구의 권력을 강화할 것인가. 우리의 이웃이 누구이고 우리 사회에서 누가 약자인가를 생각해 보면 대답은 자명하다.

박 : 고 교수님은 개인의 입장과 교회의 입장을 구분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사안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등은 본질적인 신앙고백의 문제다. 교회가 그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저버리는 것이다. 나는 자본의 힘을 절대화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 역시 신앙고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면서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정치경제적 노선을 선택해야 할지 당혹스럽고 두려울 때가 적지 않다. 목회하면서 고민이 그것이다.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산상수훈의 황금률을 따르자면 어떻게 비정규직을 자를 수 있나. 그러나 기독교인이 회사에서 부장이 되고 이사가 되면 잘라야 하는 입장에 선다. 신자유주의 사회가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소비주의로 가장한 맘몬을 섬기게 하고, 절대화된 경쟁 문화, 사회 양극화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함으로써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반기독교적인 체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나는 신자유주의와 맞서 싸우면서 기독교인들이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하나님과 말씀으로 인권운동을 얘기했지만, 미국 사회의 민주적 가치에 호소하기도 했다. 교회 안에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내걸어야겠지만 일반 대중 앞에서는 하나님 이름을 빼고도 그들을 감동시키고 설득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고 : 문제는 신자유주의 이전에 신자유주의를 불가피하게 배태하는 자본주의 그 자체이다. 자본주의야말로 한국교회가 직면한 최대의 우상이다. 신자유주의는 방만한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결과물인 것이다.

박 : 케인즈주의나 사민주의는 자본을 어느 정도 통제한다. 자본보다 높은 가치가 있는 거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서 이윤의 극대화는 절대적 가치다. 이윤 극대화라는 가치가 통제되지 않고 하나님보다 위에 있다면 그것은 우상이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제시할 때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사람마다 전략적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고 교수님이 설명한 사민주의, 급진 좌파의 민주적 계획경제, 내가 선호하는 공동체민주주의 등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 그 중 어느 하나만을 절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복음주의 안에 좀 더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과 당장 역사적으로 실현 가능한 제도를 고려하는 현실주의적인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상생하고 소통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고 : 교회는 사회와 우리 의식을 우리도 모르게 지배하는 압도적 힘, 헤게모니 세력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어쩌면 오늘날 자본주의는 우상을 넘어 물이나 공기와 같이 되어버렸다. 이걸 분별해서 드러내는 일은 그만큼 지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당분간 적응할 수밖에 없다. 적응하며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상에 맞추어 전략을 구사하면 현실에서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현실에서부터 절차적으로 합당하고 가능한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 단계와 과정으로 내가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게 사민주의다. 그러나 사민주의를 절대선으로 여기고 추구할 것은 아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문제가 낳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상대적으로 잘 덜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가는 거다. 예컨대 스웨덴의 사민주의적 복지체제가 우리가 도달할 최선일까. 아니다. 인류가 실제로 실험했고 또 실험 중인, 현존하는 정치경제체제 가운데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검증됐기 때문에 따라가 보자는 거다. 제도나 구조가 잘못되면 개인의 죄를 일상화, 구조화한다. 잘못된 구조를 개선해 모르고 짓는 개인의 죄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박 : 최근에 <신자유주의의 탄생>(장석준),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지주형, 이상 책세상)을 읽었다. 전자는 서구 사회의 케인즈주의와 사민주의가 왜 실패하고 신자유주의가 부상했는지, 후자는 한국에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뿌리 내렸는지를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장석준은 브레튼우즈체제가 무너진 후 국가가 부자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아무리 복지정책을 펴더라도, 자본이 국경을 넘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선 이러한 정책이 과거처럼 효과적일 수 없음에 주목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힘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이전의 케인즈주의나 사민주의로 가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국의 힘만으론 국제적 자본의 힘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노동자들을 비롯해 대중의 생활 세계에 파고들어 노동조합, 협동조합, 문화 서클 등이 서로 결합된 민중 자치를 실현해 가는 정치가 필요하다. 대중들이 파편화된 소비자로 전락하지 않고 자본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이는 지주형이 말하는 경제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조건이다. 둘째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정부들이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지구 질서를 바꾸는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이는 국민국가의 정치를 소홀히 하자는 것이 아니고 양자 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고 : 세계화를 보는 시각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과연 세계화라는 게 지속될 수 있을까. 세계화는 불가피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한미 FTA 논란에서 보듯, 세계화에는 주체가 있다. 세계화를 시작한 것도, 교정하는 것도, 멈추게 하는 것도 그 주체는 국민국가다. 누가 시작했고 확장했으며, 계속 확장하려 하는가를 면밀히 보고, 중개자로서 국가를 다시 찾아내야 한다. 금융자본은 자유롭지만 산업자본의 직접 투자는 사실 힘들다. 실제 세계화 현상이 진행되는 것은 쉽지 않다. 방만한 자본의 움직임을 제재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최근 일련의 위기 상황은 세계화가 무한정 방치된 채로 진행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 준다. 결국 국민국가가 다시 주된 행위자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거칠게 말하면 구원은 여전히 국민국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박 : 그런데 영국은 대처정부 즉 국가가 노동조합과 사민주의 복지정책을 상당 부분 무력화하지 않았나. 미국도 레이건 정부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세력을 다 제거했다.

고 : 도전받은 건 맞다. 그런데 복지국가의 정치적 불가역성이란 말이 있다. 복지국가는 논리상 무너질 수 없다. 노동계급뿐 아니라 중산계급의 선거 지지에 의해 복지국가가 형성되었고, 수혜자와 복지를 공유하고 관리하는 관료 사회가 복지국가체제에 의지하기 때문에 복지국가가 정치적으로 위기에 부딪히기란 어렵다. 과거 사민주의적 복지체제에 문제가 많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과제는 사민주의를 그대로 복귀시키는 게 아니라, 과거 취약했던 점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일이다.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새로운 정치경제체제가 수립되더라도 이미 이룩한 복지국가의 성취 위에서 가능하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복지국가를 유럽이 이룩한 최고의 성취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서구 복지국가가 무너지지 않았느냐는 것은 복지국가를 두려워하는 기득권층이 습관적으로 하는 얘기다.

그동안 복지체제는 시장을 자본에 맡겨 왔다. 생산과 분배를 인위적으로 나눠 생산은 자본이 소유하도록 하고 분배는 국가가 하는 식이었다. 국가를 넘어 시장과 생산 영역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지 않는 이상 문제는 되풀이될 것이다. 시장에서 자본의 재산권 행사를 일정하게 규제해야 한다. 노동의 집단적이고 조직적 목소리가 시장에서 그 중에서도 기업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중앙정부를 통해 가능하다.

박 : 결국은 노동의 힘을 강화할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대중이 지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생활 세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공세를 펼치는 자본에 노동이 포섭되지 않으려면 그에 맞설 수 있는 삶의 양식,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계 설정 그리고 가치관이 형성되어야 한다. 과거 노조는 오늘로 말하면 생활조합에 가까운 형태였다고 한다. 그런 걸 다시 회복해야 한다. 노조가 단순히 임금 인상 투쟁을 위한 조직에 머물면 안 된다. 노동자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며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구축해야 자본과 노동의 역학 관계를 제대로 조정할 중앙 정치인을 뽑을 수 있지 않겠나. 그런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 저변에서 노동을 지지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고 : 결국, 주도권(Initiative)을 누가 쥐는가의 문제다. 그것은 곧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가의 문제로 귀착될 것이다. 나는 지금의 세계화 환경 속에서 국민국가의 역량을 확대하는 것, 그리하여 중앙정부의 주도적 역할에 먼저 기대를 건다. 한국은 아직도 중앙정치의 힘이 압도적이다. 이런 상황이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개혁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긍정적인 상황일 수도 있다. 길은 쉽지 않지만, 복잡하지도 않다.

박 : 노무현은 노동 변호사 출신이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어선 노동자의 편을 들지 않았다. 자기를 지지할 노동 세력이 적으니까 정치적 판단을 했던 거다. 좀 길게 잡더라도 노동운동이 밑에서부터 생명력 있게 움직일 기반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정치인이나 대통령도 나와야 하지만 노동자들의 생활 세계를 바꾸는 다양한 형태의 정치를 강화하는 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고 : 나는 여전히 삶의 양식과 정치의식의 변화는 그 자체가 제도와 구조의 변화의 결과물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싶다. 가령 중앙 정치 무대에서 진보 정치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노동을 위한 복지제도 등을 시행할 때, 약자들의 연대를 위한 가장 강력한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의식이나 가치관의 개혁을 요구하기에는, 약자들을 위한 현재의 제도들이 너무 취약하다.

박 : 미국이나 한국 사회를 보면서 내가 하는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왜 노동자들이 친노동 세력이 아닌 친자본 세력에게 표를 주는가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부자 정당을 찍는가.

고 : 더 심각한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은 투표를 안 한다는 점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정치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도록 정치를 바로 세우는 일, 가령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정치 세력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정치를 기피하면 악순환은 갈수록 심화된다.

죽음의 지혜와 부활신앙

▲ 정종은 편집위원 ⓒ이종연
정 : 최근 저축은행 사태에 연루된 이들 상당수가 ‘소망교회 소금회’ 회원이다. 기독교 장로가 대통령인 정권하에서 부패한 지도자들이 다 기독교 인맥으로 엮인다. 복음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부패한 세력을 과감히 도려내고, 경제 영역에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 : 그런 문제의식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그 쪽에 자성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복음주의진영 내부의 쇄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는 이미 자본주의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하나님이 복 주신 사람이라는 인식이 가득하다. 누군가 말했듯이, 창밖에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바로미터가 정상을 가리키고 있다면 바로미터가 잘못된 것이다.

박 : 이명박 정부는 기독교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왜곡시켰다. 기독교의 본질은 십자가의 도, 힘 없음의 힘이다. 이명박 정부는 철저하게 힘의 정치를 구사했다. 거짓과 불의를 일삼았다. 서민들을 위한다면서 가진 자들의 편에 섰다. 한미 FTA를 밀어붙여서 한국 경제의 틀을 미국 경제의 틀에 맞추어 버렸다. 향후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적 운신의 폭을 줄여 놓은 것이다.

정 : 복음주의 이름을 걸든 아니든 희년 사상이나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까.

고 : 대안은 다소 모호하게 남겨 두는 게 좋다. 구체적인 단일 대안을 찾는 데 너무 몰두하다 보면 시작하기도 전에 분열하기 쉽다. 때로는 기존 질서에 대해 통렬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 자체가 대안적 성격을 띤다. 최장집 선생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탁월한 분석서를 쓰셨는데 부제가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이다. 나는 우선 ‘한국 복음주의의 반복음적 기원과 위기’에 대한 정밀하고도 체계적인 신학적 탐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1887년 이후 지금까지 새롭고도 교묘한 방법으로 복음주의진영에 뿌리를 내린 반복음주의, 그것에 대한 근본적 내부 성찰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

박 : 요한복음 7장 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문맥상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고난과 희생을 각오하고 당시의 억압적인 안식일 체제에 도전해 병들고 약한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복음주의자가 어떤 면에서 반복음적인지 성찰할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와 고통당하는 이들의 자리로 내려가 그들의 설움과 아픔에 함께하고 그들을 살려내기 위해 기존 체제에 맞서는 실천적 자세로 성경을 다시 보면 복음도 정확히 보이고 자본주의의 문제도 확연히 드러난다. 칼 바르트가 하나님을 절대적 타자라고 한 것은 타계주의적 용어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선 언제나 기존 질서에 반한다는 뜻이었다. 그 관점에서 보면 복음주의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보인다.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새로운 삶을 살고 성경을 다시 읽고, 동아리도 만들고, 다양한 실천의 장에 나가 연대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정치경제 영역에서 복음주의운동이 새롭게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고 : 복음의 개념을 시간을 초월한 진리체계로 제시하는 데 머무는 것은 복음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복음과 상황이란 말은 적절하다. 그러나 복음과 상황을 병렬적으로 배치하거나 상황 속에 복음이 있다는 식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은 잘못됐다. 복음은 언제나 상황과 불화해야 한다. 압도적이고 지배적인 가치, 물질 체계, 주류 질서와 갈등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지 않음으로써, 또 스스로 자본주의화함으로써 기존 질서인 자본주의의 대변자 내지 협력자 노릇을 했다. 교회와 신학은 자본주의에 의해 식민지화됐고, 목사는 자본주의의 변론자가 되었다. 목회자들은 때로 교회를 양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복음주의 정신에 역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젊었을 때는 뭔가 제대로 할 것처럼 보였던 목사들이 어느 정도 교회를 운영하다 교묘하게 벗어나는 것을 본다. 복음주의 정신에 충실하면 세상 기준에서 볼 때 목회에 실패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죽음의 지혜’다. 죽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하면 결국 죽는다. 우리는 삶과 유리된 죽음에 대한 값싼 설교를 거부해야 한다.

박 : 복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악을 깨닫지 못하거나, 알고도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부활신앙이 없어서다. 바울은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라고 말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내게 은과 금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할 수 있다 했다. 오늘날 이렇게 고백하며 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있는가. 부활신앙이 있다면 기꺼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면서 십자가의 길이라도 즐겁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진행 정종은 편집위원 jjekorea@daum.net
정리 김은석 기자 warmer@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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