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호 새책과 헌책]

경남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64명 글, 구자행 엮음 | 보리 펴냄 | 13,000원
어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은 적이 별로 없다. 궁금해 했던 적도 별로 없지만 사실 무언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였고, 우리 어머니라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 법 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어머니들의 얼굴에서 중학교 때 꽁당보리밥 도시락이 부끄러웠던 아이, 비오는 날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서 처음 배부르게 밥을 먹었던 소녀, 서울에 올라와 미싱 시다로 고단한 생활을 했던 소녀의 생활을 떠올리지 못한다. 이 책은 그런 어머니들의 이야기, 가난과 고단함의 시간을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이 책을 엮은 구자행은 2007년부터 4년 동안 경남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국어 수업을 하며, 제때 공부를 못해 뒤늦게 배움의 길에 들어선 어머니들과 함께 글을 쓰며 매년 문집을 만들었다. ‘살아온 이야기’, ‘식구 이야기’, ‘이웃 이야기’, ‘직장 다녔던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대부분 사오십을 넘은, 때론 칠순이 넘은 분들의 이야기를 빼곡히 담아낸 것이다.
자식에게도 하지 않았을 법한 이야기들을 이렇게 글로 풀어낼 생각을 어떻게들 하게 되었을까. 아마 그것은 글의 힘 아닐까. 응어리져 있던 기억들이 터져 글이 된 것이 분명하다. 글쓰기는 기도하는 마음과 참 닮았다. 한 글자 한 글자 그 삶의 무게만큼 정성스레 눌러쓴 글에 진정한 마음이 담기지 않을 리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엮은이는 이 글들을 가난한 삶에서 피어난 꽃, 땀 흘려 일하는 가운데 얻어낸 보석 같다고 말한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을, 어쩌면 그냥 묻혀버렸을지 모를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는 역사책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들 속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조금 쑥스럽지만 다음에 부모님 댁에 가면 이 책을 어머니께 선물해야겠다. 기왕이면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의 어렸을 적, 젊었을 적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_ 박정경수 편집위원 
데이빗 그린리 지음 | 김요한·전병희·백재현 옮김 | 예영커뮤니케이션 펴냄 | 14,000원
‘이슬람 선교는 어렵다’, ‘무슬림이 개종하는 것은 힘들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다. 이슬람 선교에 관심 있는 이가 아니더라도 익숙한 주장이다. 한국 선교사들도 이렇게 고백하곤 한다. 그래서 이슬람 선교를 돌파하겠다며 공격적 선교를 지향하거나, 영적 대결이라는 이름으로 땅 밟기 사역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때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경우가 뒤엉키곤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실제 이슬람 선교 현장은 이와는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 이슬람 선교는 안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개종자 사례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편협한 듯하다. 무슬림이 복음 안에 들어오는 회심의 구체적인 경로와 진행 과정을 분석한 자료들은 거의 없었다. 몇몇 개인의 개종 사례가 일반화되고, 극대화되는 경우가 존재할 뿐이었다. 5년 전 봄, 태국의 한 도시에서 이슬람 선교 관련 포럼이 있었다. 한국교회는 이슬람 선교가 된다, 안된다 하고 있는 상황에, 다른 곳에서는 어느 시점에 무슬림 개종자 교회의 완전한 자립을 도모할 것인지, 지도력 이양의 적기와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논의하고 있었다. 한국교회의 이슬람 선교와는 엄청난 괴리감이 존재했다.
이 책은 이 같은 현실에 새로운 자극을 준다. 전 세계 곳곳의 이슬람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무슬림 개종자들의 사례를 분석하고 정리하여 보여 주고 있다. 이슬람 선교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운동이고, 우리는 그 일의 증인이며 목격자인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슬람 선교는 우리의 주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 또는 혐오감을 넘어서야 한다. 막연하고 감상적인 이슬람 선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시행착오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평가와 판단이 필요하다. 이 책은 딱딱한 보고서 같다. 표본 집단의 크기가 다르지만, 지역별 회심자들의 사례 분석과 평가, 전망을 보여 준다. 그래서 말랑말랑한 일부 개종자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슬람 선교에 얽힌 담론의 객관화를 시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혼자 읽기보다 관심자들과 함께 읽고 나눌 수 있기를 원한다.
_ 김동문 편집위원 
고세훈 지음 | 한길사 펴냄 | 24,000원
이 책은 <동물농장>과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1903~1950)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세밀한 보고서다. 제국주의와 전체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 한 비판적 (사회주의자) 지식인으로 살았던 조지 오웰을 통해 역동의 시대를 바라보는 예민한 통찰을 전달해 줄 뿐 아니라, 어떻게 실천하고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성찰거리를 제공한다. 이 책을 꼭 권하고 싶은 이유는 그가 그 시대의 다른 지식인들과 매우 다른 길을 걸어가며 우리가 매몰되기 쉬운 권력 구조들의 결을 분석해 주었기 때문이고, 오웰이 살며 분석한 전체주의의 암연이 짙게 내리 깔렸던 그 시대가 우리 시대와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총선과 대선 사이 온갖 구호와 암투와 회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찾고 싶다면 이 책이 적절하다.
_ 정모세 편집위원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펴냄 | 14,000원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철학사를 공부해야 한다고들 한다. 맞다. 하지만 이 문은 너무 좁다. 이래서야 도대체 얼마나 철학의 낙원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때문에 그동안 나에게 철학 입문서에 관해 조언을 구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때마다 내심 부담을 떨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조중걸의 신작, <아포리즘 철학>을 통해 그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조중걸은 훌륭한 지식 소매상이다. 그의 글은 방대한 인문학적 교양에 기초하고, 명료하며 평이하다. 철학자들의 유명한 아포리즘을 철학의 낙원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삼는다. 조중걸의 역사적 시야와 개념적 통찰을 통해 난해한 아포리즘을 들여다보는 순간, 명료한 의미론적 지평이 드러나고, 남들 앞에서 철학적 경구를 들려줄 때 자신감도 갖게 될 것이다.
_ 이원석 편집위원 
오경아 글 임종기 사진ㅣ 디자인하우스 펴냄ㅣ 15,000원
영국은 정원의 나라다. 스타 쉐프 제이미 올리버도 유명하지만 스타 가드너도 있는 곳이 영국이다. 저자는 6년째 영국에서 조경학을 공부하고 있는 정원디자이너다. 그는 치유, 의미, 유행, 위대한 완성, 사람들, 디자인, 사랑, 방문 등의 주제별로 각 정원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동시에, 수려한 글 솜씨로 정원을 산책하며 얻을 수 있는 삶의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사진 반 글 반으로 채워져 있는 덕에 책을 읽는 내내 영국의 여러 정원에서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며 산책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기신 첫 일 중 하나가 정원을 돌보게 하신 일이었고(창 2:15) 부활하신 예수님은 “정원사”처럼 보이셨다(요 20:15)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제부터 찾게 될 정원을 보는 눈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다.
_ 전성민 편집위원 
박영호 지음 | 교양인 펴냄 | 22,000원
죽음. 살아 있고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것을 인간은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곧 외면으로 이어지고 무지와 공포는 반복된다. 결국 인간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마주할 때, 혹은 죽음이 자신에게 찾아올 때 슬픔과 분노, 회한과 불안에 허덕인다. 10여 권의 책을 써 스승인 다석의 사상을 세상에 알린 저자가 이번엔 다석을 중심으로 철학자들(소크라테스, 키르케고르, 몽테뉴, 파스칼 등)이 죽음에 관해 품은 생각을 펼쳐 놓았다. “죽는 연습이 철학이요, 죽음을 없이 하자는 것이 종교다. 죽음의 연습은 생명을 기르기 위해서다.” 책 곳곳에 정리한 ‘다석어록’은 “죽음 맛을 좀 보고 싶다”면서 하루를 ‘오! 늘~(영원)’로 여기며 살았던 다석의 사상에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드러낸다.
_ 김은석 기자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 이승수·김효정·주효숙 옮김 | 서교출판사 | 95,000원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 같은 이 세상에 그리스도인이 놓치지 않고 챙겨야 할 소설들은 무궁무진하다. 이 책이 그중 하나다.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할 신부면서도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쳐 있는 돈 까밀로와 무식하지만 순박한 사회주의자이자 읍장 빼뽀네의 이야기는 레드컴플렉스에 걸려 있는 우리 교회 현실에 비춰 볼 때 페이지마다 가득한 위트와 유머와 함께 찡한 울림을 전한다. 사회적 지위, 정치적 이해관계가 한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삶과 어우러져 화해되는지, 이 책은 논바닥처럼 메말라 있는 독자들의 가슴을 웃음과 감동으로 흠뻑 적셔 줄 최적의 책이다. TIP : 한번 읽으면 헤어 나오기 힘든 이 책은 10권으로 된 시리즈니 책값이 부담스러운 독자는 가까운 헌책방을 이용할 것.
_ 정지영 편집위원 
김삼웅 지음 │ 철수와영희 펴냄 │ 13,800원
<리영희 평전>, <김구 평전> 등 역사를 이끌었던 이들의 평전을 써 온 김삼중의 신간이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곧 저항사”다. 노예해방운동,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모두 불의에 저항해서 일어난 역사의 흔적들이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날, 진정한 과오가 시작된다”고 한 에밀 졸라의 말대로, 과오를 저지르는 이들 때문에 역사가 뒷걸음질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한다. 힘 있고 돈 있고 뻔뻔한 이들이 활개를 치는 지금 한국의 현실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이럴 때, 99%의 민중이 할 일은 오직 하나다.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의 연대가 생겨나야 한다. 세상은 한 번도 저절로 좋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_ 이종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