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호 오두막 묵상]

▲ ⓒ정영란

우리는 가끔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면 비록 당사자는 몰라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알아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우리 자신도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칫 일방적으로 사랑하다가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이 세상이 추구하는 이해타산을 따져서는 안 되는 숭고한 일이라 해도 최소한의 목적조차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 역시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서로 소통하는 사랑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지 못하는 사랑은 탐욕의 또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설령 일방적일지라도 오래 헌신하면 돌 같은 상대라도 마침내 감동하게 된다는 주장은 오해일 수 있습니다. 인내심이라는 명목으로 꾸준히 베푸는 헌신을 통해 상대를 부담스럽게 함으로써 심약자(心弱者)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폭력일 수 있습니다. 또 강퍅한 이들 중에는 이런 사랑을 냉소하거나 영악하게 이해타산을 저울질하며 감사라는 가면을 쓰고 뒤에서는 내심 비웃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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