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호 잠깐독서]

체르노빌의 봄
엠마뉘엘 르파주 글?그림|맹슬기?이하규 옮김|길찾기 펴냄|20,000원

‘체르노빌’과 ‘봄’이 만날 수 있을까. 책을 펼치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27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체르노빌 지역은 “죽음의 땅”이라 불리지 않는가.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라 규정하는 문규현 신부의 표현은, 그래서 더욱 참혹하다. 그 체르노빌에 프랑스 만화가 엠마뉘엘 르파주가 동료들과 함께 방문하고 돌아와 4년간 그림을 그렸다. 그는 왜 체르노빌에 갔으며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의 발끝과 손끝에서 나온 실존적 고민은 그렇게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질다스, ‘체르노빌은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말에 모순을 느낀다. 하지만 내 그림이 그렇게 보여 주고 있다. 거기서 죽음을 느낄 수 있는가? 전혀… 그런 것들을 그려오라고 사람들이 나를 보낸 게 아니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나와 세상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수기 위해 체르노빌에 왔다… 그것을 내 그림에 담기 위해… 경험이라는 발자취를 부여하기 위해… 하지만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모르겠다. 내가 본 것은 진정 무엇일까?”(131-132쪽)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

M. 스캇 펙 지음|조종상 옮김|율리시즈 펴냄|16,000원

안락사 첫 허용 사례였던 김 할머니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수년이 흘렀지만 안락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과 논의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삶이 그렇듯 죽음 또한 영혼의 성장을 위한 배움의 기회로 보는 스캇 펙은 이 책을 통해 흑백논리에 갇힐 수 없는 복잡한 안락사 논의가 좀더 확대되기를 바랐다. 의학적 측면, 영혼이 존재하는가 하는 정신적 측면, 법률적?사회적 측면에서 고찰한 그의 생각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삶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와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락사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갈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영혼과 영혼의 성장을 독려하는 사회를 원하는가의 여부다. 거의 모든 안락사 논쟁의 복합성은 결국 간단한 질문 하나로 해결될 수 있다. ‘우리는 영혼과 영혼의 성장을 독려하는 사회를 원하는가?’”(343쪽)

인생의 사계절
폴 투르니에 지음 | 박명준 옮김 | 아바서원 펴냄 | 12,000원

인간(인생), 성경,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의 알짬이 이 아담한 책에 담겨 있다. 출퇴근 길에 가볍게 들고 묵직하게 읽다 보면, 어느새 가슴이 차오른다. 정식계약을 맺고 새로 펴낸 이 책은, 편집과 번역에 따라 책이 어떻게 달라지고 더 읽을 만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인생 전체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이 필요합니다. … 아무리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하더라도, 인생의 풍요는 우표 수집장처럼 한없이 사건을 나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의 부요는 한 사람의 인생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인생에나 다른 순간들보다 더 중요한 특별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특정 순간에 자신의 입장을 결정하고 헌신하고 결정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헌신할 때 한 사람의 인격이 만들어집니다. 헌신할 때 자신의 인간성이 나타나게 됩니다.”(110-111쪽)

왜 나는 예수를 믿는가
이승장 지음 | 홍성사 펴냄 | 12,000원

이승장 목사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의 실존적 물음의 답을 기독교에서 발견했다. 시대 상황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평탄치 않은 인생을 보낸 그가 생생한 삶의 이야기로 독자에게 말을 걸으면서 성경, 신학 등의 접근으로 “왜 예수를 믿는가”를 설명한다. 긍정심리학도 자기최면도 아닌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신앙은 결코 쉽지도 흔들림 없는 길도 아님을 깨달을게 된다. 

“우리 부부는 딸의 고통스런 출생과 죽음 외에도 지난 70년의 인생길에서 각자, 또는 함께 숱한 고난을 경험했다. 그래도 지금 나와 아내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버리기는커녕 고난받기 전보다 더 굳건한 신앙인으로 살고 있다. 후배들에게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인간의 고난에 대한 유일한 답이요, 진정한 소망이라고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다.”(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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