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공동생활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던 산둥수용소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돈, 사회 지위, 가족 배경이라는 껍데기가 아닌 인간의 덕성이 인품으로 인정되는 공동생활이었지만, 정치적 감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물품 보급을 둘러싼 갈등, 악이라는 돌풍이 일어나기도 했다. 저자는 인간이 지닌 윤리성과 욕망 사이의 괴리를 파고들며 공동체의 적은 다름 아닌 우리 내부의 도덕적 실패에 있음을 들려준다.
“우리의 수용소 경험은 인간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하나는 인간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대단히 창조적이고 천재적이며 용감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 가지 사실은, 인간은 압박의 상황에 놓이면 어느 때보다 자신과 자신의 소유를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이다”(428쪽).
저항인 함석헌 평전
▲ 김삼웅 지음|현암사 펴냄|20,000원
사상이 필요하고 어른이 필요한 시대에 평전류는 갈 바를 비추는 등대 역할을 한다. 20세기를 여는 1901년 태어나 한평생 몸으로 저항하다 간 사상가이자 어른인 함석헌의 평전이 반가운 이유다. 박정희가 미워했던, 김교신과 장준하의 친구였던, 독재 시대에 민중이 주인 되는 시대를 꿈꾸며 ‘씨사상’을 만든 ‘싸우는 평화주의자’ ‘비폭력 저항인’ 들사람(野人) 함석헌을 읽자. 무엇에 저항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싸움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만일 잘못이 있다면 나 자신이나 남이나 우리나 백성이나 할 것 없이 힘을 다해 싸울 것이다. 그것이 나의 나라에 대한 충성이요 동포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나 결코 감정으로, 미움으로는 아니 하기로 맹세한다. 감히 장담을 하리오마는 적어도 그리하고자 힘쓸 것이요, 하나님이 그 실력 주시기를 겸손히 빌 것이다”(148-149쪽).
떠나야 하는 보낼 수 없는
▲ 오시카와 마키코 지음|남기훈 옮김|세움과비움 펴냄|12,000원
이름도 생소한 재택사(在宅死), 곧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 11명의 마지막 생과 죽음을 다룬 이야기. 장례식장․상조회사․요양원 등 죽음과 가까운 서비스가 도처에 널려 있는 요즘은 집에서 죽을 일이 없지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재택사’는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어린 유카리와 힘든 선택을 한 부모 이야기, 3년간 집에서 남편의 간호를 받고 죽음을 맞은 67세 하츠미 할머니 이야기 등은 죽음의 존엄함을 보여 준다.
“며칠 후 장례식 사진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저희를 찾아 오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애쓰면서 잘 해냈어.’ 요양 중에 보이던 자신만만한 그의 웃는 얼굴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3년을 간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생을 함께하며 살아온 부부라 가능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하츠미 할머니 부부와 함께한 지난 3년의 순간순간이 기적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99쪽).
믿음으로 살라
▲ J. C. 라일 지음|장호준 옮김|복있는사람 펴냄|24,000원
‘리버풀의 주교’ 존 찰스 라일의 “믿음의 실천”에 관한 글 모음집. 자기성찰, 사랑, 열심, 행복, 형식적인 신앙, 재물, 병 등 믿는 자의 삶에서 중요한 20여 가지 주제를 통렬하고도 명료하게 다룬다. 700쪽에 이르는 분량임에도 간결한 문체와 깔끔한 번역 덕에 술술 읽힌다.
“재물이 많고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증거는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히려 성공과 부는 인간의 영혼에 올무와 걸림돌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기가 쉽습니다. 솔로몬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잠 23:4). …세상에서 행복에 이르는 위대한 비결 가운데 하나는 인내하고, 만족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상급을 받는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날마다 잊지 않기 위해 애를 쓰십시오. 신원하고 보상하는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434-4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