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동교동 삼거리에서
1885년 1월 7일, 영국 서더크의 뉴파크스트리트교회 회중들은 약관(弱冠)의 젊디젊은 목사가 토해내는 강렬한 설교에 압도되었습니다.
“신성을 묵상하는 일에는 우리의 지성을 엄청나게 향상시켜 주는 무엇이 있습니다. …지성을 확장시키는 데는 신성이라는 위대한 주제를 열렬하고 진지한 태도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조사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제임스 패커, 《하나님을 아는 지식》, 29쪽에서 재인용)
스무살의 젊은 목사는 다름 아닌 ‘설교의 황제’ 찰스 스펄전이었습니다. 그가 선포한 대로, ‘신성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일이 우리의 지성을 확장하고 향상시 키는 가장 좋은 길이라면 기독교회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지성적인 공동체여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이 땅의 현실은 스펄전의 설교와는 전혀 딴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회는 이성적·합리적 대화와 토론이 통하지 않는 ‘불통 집단’ 혹은 다수의 힘으로만 밀어부치는 ‘패거리’ 이미지로 인식되는 실정입니다. 타종교에 대한 호전적 태도, 종교적 코드로 선동하는 “종북 세력” “간첩” 색출 선동, 민주적 절차와 문제제기를 무시한 무차별적 ‘차별금지법 반대운동’ 등의 사회적 행태에서 과연 스펄전이 말한 지성의 어떤 면모를 찾을 수 있습니까.
스펄전이 틀렸던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한국교회의 반지성적 행태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국교회가 묵상하고 연구해 온 대상이 하나님 아닌 ‘다른’ 신성인 걸까요? 한국교회의 반지성, 심지어 몰지성적 자화상을 성찰한 커버스토리 “교회의 반지성에 반反하다”에서 차근차근 그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반이성적 광기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 계시와 성령 역사에 오랫동안 소외되어 영적 균형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김회권, “반이성적 기독교를 향한 경고”)
옥명호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