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동교동삼거리에서

성지순례, 다르게 생각하기

“‘순례자’라는 이미지는 우리 가슴과 상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압제로부터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길 잃은 나그네며 방랑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떠돌이다.”

《걸어서 길이 되는 곳, 산티아고》의 한 구절입니다. 낙원에서 추방된 이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나그네요 해배(解配)의 날을 기다리는 유배자 신세입니다. C. S. 루이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림자 나라(Shadowlands)”의 유형자들인 셈이지요. 그런 우리에게 ‘순례’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신앙과 생활 그리고 생각과 행동은 순례를 통해 하나가 된다. …따라서 순례란 몸과 영혼 그리고 발과 신앙을 통합하는 행위인 것이다.”(위의 책, 29쪽)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서 이뤄지는 성지순례는 이런 ‘통합의 영성 훈련’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특정 ‘성지’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를 품고 있는 한국교회에는 성지순례 자체가 거룩한 신앙 행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구나 특정 지역을 ‘거룩한 땅’으로 받아들이는 오래된 믿음(?)은 상대적으로 그 주변 지역을 말 그대로 ‘주변화’하고 심지어 경원시하는 시각을 낳기도 합니다. 한국교회의 성지순례를 반성의 눈으로 짚어보고 대안적인 성지순례를 고민해보고자 한 뜻이 이에 있습니다.

커버스토리 <대안 성지순례를 고민한다>에는 여행전문기자와 성지순례 경험자, 히브리학 교수이자 중동 전문가, 현지 문화와 생활양식에 해박한 중동 사역자, 생명평화 활동가 등 다양한 필자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리하여 ‘성지순례 비즈니스’에서 오가는 부적절한 거래 등 기존 성지순례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다른 관점과 접근 방식의 대안 성지순례에 대한 실천적 고민까지를 두루 담고자 했습니다. 이번 커버스토리가 기존 성지순례의 잘못된 관행을 성찰함으로써 성지순례의 대안적 모델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7월호 편집을 마감할 즈음, 대안 성지순례에 대한 편집팀의 고민은 오늘 우리 일상의 터로 되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순례자는 성지를 찾아 땅 끝까지 행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밟은 모든 땅이 성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위의 책, 274-275쪽)

본격 무더위에 강건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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