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_폴 투르니에 지음_강주헌 옮김_포이에마 펴냄_15,000원

인간은 거대한 연극 속 ‘등장인물’일 뿐이다. “우리 모두가 100판의 체스 경기를 동시에 진행하는 체스 챔피언처럼 행동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과연 자신을 등장인물로 만들어버리는 온갖 장애물과 방해꾼을 극복하고, 본래의 진정한 자신(실제 인간)과 만날 수 있을까? 저자 폴 투르니에의 답변은 더욱 암울하다.

“우리가 이런 끝없는 치장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더라도 그런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치장은 필연적인 사회적 삶에 의해 외부로부터 강요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제2의 천성이 됐기 때문이다.”(51쪽)

가면이 덧씌워져 본래의 자기 얼굴을 잃어버린 시대에, 저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내고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말한다. 내과의사, 정신의학자, 기독교상담자였던 그는 이 사명을 이루고자 갖가지 지식을 동원하지만 결국 ‘영혼의 치유자’로 다가갔을 때 가장 효과적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를테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벌거벗을 수 없게 된 인간의 궁극적인 욕구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20년 동안 수많은 내담자들과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기 위해’ 맞닥뜨렸던 이야기들을 모았다. 이야기마다 결혼, 부부관계, 직장생활 등에서 가면을 하나하나 찢어가며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아 가는 치열한 과정이 담겨 있다. 특정 이론에 빗댄 객관적 설명이나 과학적 결론을 제시하진 않기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명확한 답을 원했던 독자들은 모호함과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옷을 빼앗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옷을 직접 지어 입히셨기 때문에” 모호함과의 싸움은 인간의 끝없는 숙명이다. 이런 겹겹의 가면을 쓴 우리에게, 답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질문 자체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과정일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무딘 질문은 책장을 넘길수록 비수처럼 날카로워져, 우리의 가면을 뚫는다.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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