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호 잠깐 독서]

전도의 본질
전도하기 참 어려운(심지어 ‘두려운’) 시절에, 교회사에 나타난 전도를 연구한 책이 나왔다. 풀러신학교에서 ‘전도와 문화’를 전공한 저자는 역설적으로 “지금 한국교회는 전도라는 화두를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라고 말하면서, 예수와 바울, 초대교회와 중세시대, 종교개혁시대, 근대와 포스트모던시대의 전도 유산을 탐구할 뿐 아니라, 한국교회에 맞는 전도를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 복음 전도의 과제는 지난 1,700년의 기독교 국가시대(Christendom)를 지나서, 탈 기독교 사회에서 새롭게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오늘날은 전도의 측면에서 오히려 기독교 국가시대 이전의 초기 기독교 상황과 더욱 유사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즉, 복음 전도는 기독교 국가시대의 교회성장 패러다임에서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교회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본질적인 과제와 마주한 셈이다. …따라서 서구 기독교 국가시대의 경험이 없는 한국 사회에 서구교회의 과거 패러다임을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287쪽에서)

성경적 ‘정의’의 모든 것
‘정의’라는 주제는 《정의론》(존 롤즈)이나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를 읽어야 알 수 있는 걸까? 브라이언 맥클라렌이 편집한 《정의 프로젝트》는 성경이 말하고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하는 정의에 대한 모든 것’을 전한다. 그동안 ‘정의’가 “성경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우리는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도록 훈련받았고, 더 나아가 사회 정의를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도록 훈련”받아 왔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하나님의 정의, 예수의 하나님나라 소식과 정의, 정의로운 성령, 교회사 속의 정의 추구, 성경의 정의(모세오경?예언서?복음서?서신서에서의 정의), 미국에서의 정의(선거?진보정치?보수주의와 정의), 부와 정의, 사업과 정의, 도시생활과 정의, 도시빈곤문제와 정의, 지구생태학과 정의, 시골생활과 정의, 공정무역과 정의, 자녀양육과 정의 교육… 등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 문제를 현대문화와 사회의 맥락에서 다룬다.
“이 책의 저자들이 나누는 대화는 현재 미국과 전 세계에 존재하는 두 종류의 엄청난 굶주림에 기인한다. 그 하나는 영적인 실천 능력에 대한 굶주림이며, 또 다른 하나는 사회정의에 대한 굶주림이다.”(짐 월리스, 12쪽에서)

‘남북나눔’의 화해 사역 20년 이야기
20년간 들레지 않고 묵묵히 남북 화해와 평화에 혼신을 바친 단체가 있다. (사)남북나눔운동은, 대북 민간 교류가 없던 90년대 초반부터 오늘까지 신실하게 남북 화해의 ‘좁은 길’을 걸어왔다. 이 책은 남북나눔 대표 홍정길 목사를 비롯, 당시 설립과 활동에 기여한 이들의 생생한 회고록이다.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우리에게는 그들을 사랑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든 잘못된 어그러진 길로 가든, 결국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을 중단할 수 없듯이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저들을 미워할 어떠한 권리도 없다. 주님이 그런 권리를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홍정길, 116쪽에서)
“남북나눔운동은 민간 차원에서는 최초로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대북 지원을 시작했을 뿐 아니라, 분열되어 있던 보수와 진보 기독교 진영이 힘을 합쳤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남다르다. 남북나눔 이후에 나온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이 남북나눔을 모델로 삼아 따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그만큼 남북나눔이 대북 지원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다는 방증이 아닌가 한다.”(이만열, 208쪽에서)

‘대화체’ 예레미야 강해
매국노 소리까지 들어가며 “너희가 계속해서 이따위로 살면 망한다”고 경고하던 예레미야 때 상황이 오늘날도 지속된다. 그래서 예레미야 예언자와, 저자의 아바타인 ‘땅콩 선생’이 나눈 대화글을 읽다보면 한국교회의 현실이 절로 공감되고 애통해진다. 거짓 샬롬을 외치는 거짓 설교자들과, 세상 못지않게 물욕에 찌든 한국교회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자 절절한 호소를 담았다.
“제가 보기에 지금 한국 교회에 지갑의 회개보다 훨씬 더 필요한 것은 ‘설교의 회개’입니다. 설교자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그들이 설교를 자기들의 목회적 야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일을 그치지 않는 한, 한국 교회의 미래는 캄캄합니다. … 제가 주님의 예언자로서 한국 교회 설교자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좋은 씨앗을 뿌리는 농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는 지금 여러분이 신자들의 마음 밭에 뿌리는 씨앗의 종류와 품질에 달려 있습니다.”(299~300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