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호 김형원의 세상 읽기]

‘김용판 무죄 판결’에 비친 내부고발자의 현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국정원 댓글사건이 없었다고 수사결과를 갑자기 허위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최근 법원이 김 전 청장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 축소 및 은혜 지시에 대한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판결 이후 경찰이 권은희 과장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에서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으로 인사발령을 내리자 좌천 논란이 일었다.

이 일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재확인하는 사례로 별 새로운 일도 아니다. 과거 이문옥 감사관, 이지문 중위, 장진수 주무관 등이 이와 비슷한 길을 걸었고, 권은희 과장과 더불어 윤석열 검사가 뒤따른 셈이다. 아무리 경찰과 검찰이 막강하고 외부의 감시가 철저해도, 내부자들이 공모해서 부정을 행하면 그것을 잡아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 종종 내부자의 양심적인 행위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고 부정부패를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해 보상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핍박을 가한다. 예나 다를 바 없이 현재도 내부고발자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고, 부당 행위자에게 고발을 당해 구속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조직의 부정과 부패를 바로 잡으려는 내부고발자가 또다시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정의를 위한 일이라도 감당할 수준을 넘는 희생을 무릅쓰고 호루라기를 부는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내부고발자가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고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 시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이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는 무성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법을 만들지 못했다. 설령 그런 법이 있다고 해도 지금의 분위기로는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이다. 사정기관들이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면서 협력하고 있는데 왜 그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법을 집행하겠는가? 결국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힘이 발휘되어야 한다. 검찰과 경찰이 공정한 수사를 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한편,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뒤따르는 희생을 함께 감당해 주는 공동체적 지원이 필요하다. 강자들의 이권연합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약자들의 연대뿐이기 때문이다. 뭉쳐서 서로 격려하고 지원하고 기댈 언덕이 되어줘야 강자의 압력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힘을 얻게 된다.

만약 내부고발자가 신앙 양심에 따라 결단을 한 것이라면 교회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개인의 행동이니 후폭풍도 개인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내버려둘까, 아니면 교회가 함께 책임지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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