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호 커버스토리]
시민사회로서의 교회
지금은 ‘시민사회’ 시대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말이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정부를 생각하면, 이제는 국가마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시장의 힘을 생각하면,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라고 부르는 영역이 존재한다. 모든 것을 시장으로 환원하려는 일부 시장근본주의자들을 제외하곤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정부의 실패’(government failure)도 마찬가지다. 큰 정부든 작은 정부든, 어떤 민주주의 정부도 그 자체로 완벽하게 작동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시민사회는 자연스러운 시대의 요청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의를 먹고 자란다. 시민사회로부터 적절한 견제, 지원, 동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정부는 성공하기 어렵다. 오늘날 기업도 마찬가지다. 주주(shareholder)를 넘어서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시민사회는 국가(정부), 시장(기업)과 함께 당당히 한 축을 이루는 영역이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남는 시간과 돈으로 남을 돕고 봉사하는, 그저 그런 낭만적인 분야가 아니다. 정부를 견제하고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가정, 문화, 교육, 의료, 예술, 종교, 공동체 등 사실상 인간다움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가치들을 지키고 확산하는 곳이 시민사회다.
시민사회의 여러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익성(public benefit), 혹은 공동선(common good)이라 할 수 있다. 비정부(non-government)와 비영리(non-profit)는 시민사회의 내재적 속성이다. 하지만 공익성, 혹은 공동선을 지향하는 것은 본질적 속성에 해당한다. 물론 시민사회에는 다양한 집단, 그룹, 조직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들 사이에는 긴장이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소수 회원들만의 관심을 공유하는 동호회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민사회는 공동선을 지향하는 조직을 일컫는다. 따라서 존경받는 시민사회단체는 공동선을 향한 헌신, 높은 도덕성, 탁월한 문제해결 능력으로 인해 대중의 신뢰를 얻는다.
시민사회에는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온갖 종류의 단체들이 있다. 국내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만도 2013년 기준으로 11,500개가 넘는다. 여기엔 공익법인과 종교단체는 포함되지 않으니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160만 개의 비영리기관이 존재한다고 한다. 각 나라들마다 시민사회단체가 GDP, 고용, 자원봉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점점 더 깨달아가고 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시민사회단체에 면세(tax-exempt) 혜택을 주고 있다.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은 그 이상의 공익성을 인정하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소득과 거래에 세금이 부과되는 현대사회에서 이는 엄청난 특혜임이 분명하다.
그 가운데 종교단체는 시민사회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전통적으로 시민사회에 사람과 재정을 지원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가치와 신뢰를 제공한 곳은 종교단체였다. 우리는 지난 세월, 권위주의 정부 아래 사람들의 인권이 억압될 때, 과도한 시장의 세력이 마을 공동체를 파괴할 때,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들이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함께 한 경험을 갖고 있다. 종교단체는 때로 시민사회의 마지막 보루가 되기도 했으며 희생과 용기를 통해 시민사회의 리더십을 획득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