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호 오두막에서 만난 사람들]

▲ ⓒ정영란
위기 때 찾아온 하나님의 천사
오두막공동체 사역 초기인 1985년 5월부터 1년여 간 ‘에바다의원’이라는 의원급 병원을 열고, 출소자 및 양로원 어르신 등 의료 소외계층을 위해 무료진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꽤 괜찮은 병원이었습니다. 입원실도 10개나 있었고, 엑스레이를 비롯해 각종 의료장비도 충분히 갖추었습니다. 전 원장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병원을 운영할 수 없게 돼, 좋은 조건으로 임대할 수 있었지요. 

무료병원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습니다. 양로원을 순회하며 전도하던 시절, 부산의 어느 할아버지가 귀띔해준 이야기 때문입니다. 중병에 걸린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으슥한 곳의 한 방에 모아두고 죽도록 방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인은 절대 접근 못하도록 삼엄하게 경비까지 세운다고 합니다. 그곳은 양로원이 아니었습니다! 현대판 고려장이었습니다! 간접적인 살인을 자행하는 양로원이었습니다. 더 충격적이었던 점은 해당 지역 양로원 운영자들은 한 곳만 제외하고 모두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은 대단히 열악했습니다. 극빈자들을 위한 의료보호카드가 있었지만, 정부가 의료비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의 선처를 권고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었기에 병원에서는 의료보호 환자를 문전박대하기 일쑤였습니다. 이에 비해 ‘에바다의원’은 일반 유료 환자도 받아서 운영비에 보태는 한편, 뜻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잘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무료 환자가 점점 늘어나 우리의 수입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제약회사와 함께 협진하던 침례병원에도 빚을 지게 되는 등, 경영이 점차 악화되었습니다.

당시 부산의 한 교회에 호소문을 보내어 교회마다 1만 원씩만 후원하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 했지만 지명도가 거의 없던 우리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큰 도움을 주시던 김선옥 변호사/한 독지가가 사업을 병행하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병원 운영은 큰 난관에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에바다 출판사에 인쇄공장이 있으니 제약회사와 침례병원의 인쇄물을 수주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약회사들과 침례병원에서는 뜻밖에 흔쾌히 호응해주어서 인쇄물의 마진으로 빚도 갚고, 병원 운영비도 보탤 수 있어 한동안 에바다의원은 잘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료 환자가 계속 늘어나 결국 그 방법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찾아온 환자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도저히 없었습니다. 포기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평생 동역자가 될 한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평소 자비심 넘치는 성정의 신실한 불자 한 분이 바람결에 들은 우리에 대한 소문을 기억하고 있다가, 마침 몸이 아프게 되자 가까운 단골 병원을 두고 일부러 우리 병원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녀는 진료를 마치고 간호사에게 이런저런 궁금한 것을 묻다가 내가 있는 사무실로 왔습니다. 딱한 병원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된 그녀는 과거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재산의 거의 전부를 수차례에 걸쳐 병원에 기부했습니다. 그녀 덕분에 병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고, 무료진료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더 이상 줄 것이 없게 되자, 몸으로 섬길 것을 자청해 우리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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