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반드시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미국 역시 9·11 테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를 비롯한 여러 많은 사건이 일어난 후에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 처음 선보이는 인터뷰 기획 ‘레드레터 크리스천’(78쪽)에 나오는 쉐인 클레이본의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하나님이 국민 대신 아이들을 침몰 시키셨다’라고 한 어느 목회자의 설교에 대해, 쉐인은 ‘세상에는 나쁜 신학이 많이 있다’면서 이 같이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한국교회에도 ‘나쁜 신학’이 큰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에 동조하는 무리 또한 상당해 보입니다. ‘문창극 사태’에 대한 한국 교계 주류의 문 후보자 지지와 옹호 논평, 성명서 게재 등은 그 사례이자 증거 아닌가 합니다. 우리 역사의 암흑기와 비극적 사건을 하나님의 뜻이라 단정 짓는 신앙관을 두고 한 쪽은 ‘하나님의 주권 사상에 대한 성경적 신앙’이라며 옹호하고, 다른 쪽은 ‘성경 해석의 오류와 비약이 낳은 편협하고 왜곡된 신앙’이라며 비판합니다. 이 문제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어 8월호 커버스토리 “세상만사 하나님 뜻?”을 꾸렸습니다. _옥명호

6년 전 대학 신입생이었습니다. 이제는 ‘요즘 대학생들 원래 저리 앳돼 보이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이젠 대학생처럼은 안 보이겠구나’라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이런 즈음, 스무 살 대학 새내기를 인터뷰했습니다. 고학력 취업난이 만성 증상이 된 사회 현실 속에서, 진로 계획과 준비가 대학생의 우선순위가 되는 풍토가 갈수록 더 굳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개인에게도 보이지 않는 강박이 뿌리 깊이 내면화되었겠지요. 진리의 상아탑, 자유의 대학 정신은 도대체 있기는 했던 말일까요? 기껏해야 짧은 여흥(entertainment)마저 계획된 항로를 벗어나는 일탈로 여기는 이 시대 젊음이 안쓰럽습니다.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20대의 시간을 하나의 거대한 일탈로 만들어가는 ‘청춘 놀이패’가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그 시절이 아니면 언제, 그렇게 무모한 일탈을 해볼 수가 있을까요. 저도 남은 20대를 불태워보겠습니다. _오지은

1년에 300여 명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기김진호 선생님(8쪽_‘사람과 상황’)은 한국의 교육 구조 자체가 ‘또 다른 세월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구조의 ‘하수인’이라며 스스로 내부자의 책임을 떠안으려 합니다. 그 책임감과 죄책의식이 더 나은 교실을 만들려는 노력, 생명의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의 동인(動因)인 듯 보였습니다. 최근 두 번의 장례식을 겪어서 그럴까요, 유독 이번 호에는 ‘생명’과 관련한 원고가 많게 느껴집니다. ‘미사일 쇼’ 보듯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을 관람하는 악한 시대에 생명 감수성의 회복을 빌어봅니다. 어찌할 수 없는 나도, 이 사회 구조의 하수인이라는 죄책 고백과 함께…. _이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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