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호 사람과상황] 한국교회 타락 고발하는 영화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

 

   
 

김재환(45) 감독은 방송사와 식당의 ‘맛집’ 돈거래를 폭로하기 위해 직접 음식점을 차려 <트루맛쇼>(2011)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3년에 걸친 작업이었고, 식당 창업비용까지 5억 원 정도가 들었다. MBC에서 PD로 일하다 그만두고 외주제작사를 차렸기에, 방송관계자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도 모자랄 판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회사의 존립 기반인 지상파 방송사에 칼을 대면서, 그는 직원들에게 “이 영화 만들고 회사 문 닫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돈줄’이더라도 비판할 것이 있으면 비판해야 한다는 철학에서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당선시킨 ‘탐욕적’ 유권자들을 고발한 <MB의 추억>(2012)도 같은 맥락에서 만들었다.

이런 그도, 최근 한국교회의 부패를 고발한 다큐영화 <쿼바디스>를 개봉하면서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트루맛쇼> 개봉 때도 응원해주시던 어머니가 이번에는 그를 막았다. “한국교회의 자정능력을 믿어보자”면서. 그러나 결국 <쿼바디스>는 김 감독의 깊은 고민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11월 전국 시사회를 거쳐 12월 10일 정식 개봉한다.) 썩고 또 썩어 곪아 터진 교회의 민낯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지난한 질문을 뚫고 나온 그를 10월 10일 카페바인에서 만났다.

- 인터뷰 준비하다가 감독님의 독특한 이력을 발견했다. 한 달 휴가를 내고 참치 잡는 원양어선을 탔다는….
어려서부터 큰 배를 타보는 게 꿈이었다. 내 고향이 부산인데, 어릴 때 친구들 집에 가면 아버지와 같이 큰 배에 올라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그게 부러웠는지 커서도 큰 배를 타보고 싶었다. 커다란 배를 찾다 보니 그게 참치 잡는 원양어선이었다. MBC에서 일할 때였는데, 출장을 받아 갈 수는 없었고 휴가를 내고 내 돈 주고 다녀왔다. 그때 찍어온 영상을 편집해 만든 작품이 반응이 좋아 방송에도 나갔었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유조선을 타본 경험을 쓴 글을 읽으며 ‘이 소설가, 나랑 비슷하네’ 싶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소설들은 다 읽었다. 요즘은 그가 사는 시골 마을로 무작정 찾아가 같이 낚시하는 꿈을 꾼다.     

- <쿼바디스>의 제작을 어머니께서 반대하셨다고 들었다.
영화 개봉 후 어머니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면서 ‘큰아들이 사탄이고, 그 영화 절대 보지 말라’고 할까봐 걱정이다.(웃음) 그런 말을 들으면 분명 충격 받으실 분이니까. 어머니께서 다른 분들 보내서까지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 은사님(어릴 때 다니던 교회 권사님)을 보내면서까지 날 설득하려 하시더라. 그럼 나는 또 그분들 다시 다 설득해서 보냈다.

- 구체적인 갈등의 내용이 궁금하다.
나는 ‘지금은 엎어야 할 때입니다’였고, 어머니는 ‘한국교회의 자정능력을 믿어보자’였다. 나도 그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쿼바디스>는 <트루맛쇼>나 <MB의 추억>과 기획시기가 같다. 그럼에도 가장 마지막으로 제작한 이유는 그런 고민들 때문에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부담되는 작품이었다.   

 

   
▲ ⓒ복음과상황 옥명호

- 결국 만들어냈고,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마음을 굳게 먹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한다. 더는 참기 힘들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담되고 불편한 주제일수록 하나님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고 한다. 그건 정말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그럴듯한 알리바이로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속내다. 실제 영화는 다 준비해 놓고 나도 그 알리바이와 치열하게 싸웠다. 불의와 맞닥뜨렸을 때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안 하는 내 안의 ‘순종적인 기독교인’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다가 명확하게 “노!”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불의한 것에 대한 ‘예스’라고 생각이 들었다. 불의를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은 곧 그것에 동조하는 것과 같다. 한국 대형교회가 이 지경까지 타락했는데 가만히 있는 것은 그들에 대한 동조다. 내 직업을 통해서 “노!”라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기독교인들이 자기 영역에서 더 많이 표현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 방송가의 옛 동료들에게 비수(?)를 꽂아야 했던 <트루맛쇼> 개봉 때보다 더 힘들었나?<트루맛쇼> 때는 단순했다. 돈이 만든 시스템을 고발하고, 누군가를 어떻게 속이고 있는지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밥그릇을 걷어차는 것이었으나 망하면 되는 거였고, 소송 몇 개 감당하면 되는 거니까 “노!”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았다. 너무나도 명확한 거짓에 대한 지적이었다. 반면에 <쿼바디스>는, 잘못된 신앙 교육의 폐해인지 몰라도 스스로 망설여지는 게 있었다. 특별히 하나님의 계시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나서야 할 것 같았다. 하나님과 찌릿찌릿 소통하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 스스로 그런 일을 하도록 예비된 사람인지 의심하고 회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 작업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지 싶다.   

 

- <쿼바디스> 제작이 곧 ‘순종’이었다는 말로 들린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을 느끼면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순종 아닌가 한다. 우리는 표현하지 않는 것을 순종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표현하지 않고 근엄한 표정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걸 순종이라고 여기는데, 거기서 모든 문제가 야기된다. 적극적으로 “노!”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에겐 순종이었다.
이를테면 만약에 자기 직장이 홈쇼핑 업체인데, 거의 모든 직급(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에서 뇌물 거래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때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폭로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외치는 게 순종 아닌가.

- 그런 ‘진정한 순종’을 하기에는 한국교회 풍토가 쉽지 않다. 뜻을 기다리는 순종은 쉬운데 말이다.
‘가만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보자’는 분들은 부패한 종교 권력자들의 기득권을 더 공고하게 해준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저항이 곧 순종인데, 나도 그랬듯 쉽지 않은 것 같다. 각자의 직업에서 그럴 수 있는지 먼저 물어보고 싶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인천시 공무원이건 누구건 배 운항하는 사람들이 자기 직업에서 최소한의 저항을 할 수 있었는데 아무도 하지 않았다.

 

   
▲ <쿼바디스>의 한 장면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저항하려고 힘든 고민의 과정을 겪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신앙의 멘토나 목사들에게 용기를 얻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면 “기도해보자”가 답인 경우가 많다. 내가 <트루맛쇼> 만든다니까 목사님께서 “세상 안 바뀌고 너만 다칠 것”이라며 만류하시더라. 이미 다 만들었다고 하니까 “그러면 잘했다”고 하시더라. 물론 어른으로서 자기 교회 청년이 고난을 겪을까봐 걱정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참 심각한 상황 아닌가. 문제의 정답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 ‘정답은 쓰지 말고, 답안지를 비워두라’는 것이다. 오답을 쓰게 하진 않지만 비워두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오답이다. 목사님들이 청년들 인생 책임져줄 것 아니라서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겠지만, 목소리라도 래디컬하게 정답을 큰소리로 외쳐줘야 하지 않나.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 너무 오래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 옳지도 않고.

 

- 이번에 교황이 와서 해야 할 말을 속 시원히 해주고 갔을 때, 개신교에서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가톨릭에는 제대로 된 어른이 등장했구나 싶어 나도 부러웠다. 우리가 기다리던 권위 있는 목소리였지 않았나.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돈보다 생명이라는 걸 교황이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개신교 쪽에도 권위 있는 목소리가 나타나서 교황이 마피아 파문하듯 깔끔하게 정리해줬으면 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런데 가톨릭의 특수한 상황인 것 같다. 만약 지금 우리가 개혁이 가능하다면, 진정한 개혁은 그런 식으론 불가능할 것 같다. 아래로부터의 분노로 시작되어야 참 개혁이지, 위에서부터 내려와서 해결해주는 방식으론 개혁되지 않을 거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폭발하는 식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개개인이 표현을 해야 하는데 훈련이 안되어 있으니 안타깝다.

 

   
 

- <쿼바디스>는 한국교회의 비리와 부패를 폭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목회 세습, 성범죄, 무리한 성전건축 등을 다루고 있다. 한국교회에 대해서 더 낱낱이 알게 되는 계기였겠다.
한국교회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참 많이 닮았다. 이 대통령 측근을 만난 적이 있는데, 너무 불쌍하다고 그러는 거다.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국민들에게 욕을 먹으니까 안쓰럽다는 말이었다. 소통의 기술이 없어서 그렇다. 소통의 DNA 자체가 없어 보인다. 둘 다 건축을 사랑하는 것도 많이 닮았다. ‘꿈’과 ‘비전’이라는 말을 쓰면서 뭔가를 열심히 해나가는 데 그 방향이 너무 성장에만 치우쳐 있다. 방향을 잘못 잡아놓고 너무 열심히 일한다.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으면서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아, 유사점이 하나 더 있다. 헌금(돈) 많이 내는 사람 좋아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가난한 장로님들이 교회에 많았다. 그런 분들이 낡은 양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교회 앞에서 반갑게 웃어주셨다. 요즘은 그런 분 만나기 참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보면 돈 많은 사람들 돈 많이 벌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교회도 이명박 대통령만큼, 안타깝다.

- 세상과 접점을 찾지 못하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쿼바디스>가 어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나?
이 영화의 타깃을 어떤 분들에게 맞출지 결정하는 일이 어려웠다. ‘개독’ 댓글 다는 일반인의 정서로 맞춰야 할지, 교회에서 침묵과 냉소로 일관하는 이들에게 불을 지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아니면 우리 어머니처럼 새벽기도 한 번도 안 빠지며 지금의 교회를 잘 지탱하고 있는 이들에게 맞춰야 할지 결정하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어머니 같은 세 번째 그룹에 있는 분들을 위해서는 더 진지하고 점잖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첫 번째 두 번째 그룹을 타깃으로 했다. 첫 번째 그룹에는 소통의 접점이 되고, 두 번째 그룹에는 불을 지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면 세 번째 그룹에게도 불편하지만 계속 고민해야 할 숙제를 안겨줄 수 있지 않을까.

 

   
▲ ⓒ복음과상황 옥명호

<쿼바디스>가 극도로 말이 안 통하는 교회 안팎을 이었으면 좋겠다. 소통이 시작되려면, 우리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통렬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 아주 처절한 고백 말이다. 우리가 이런 자들이다!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 예수답지 않은 우리에게 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예수는 우리가 왜곡시킨 예수이다! 처절하게 돌이켜보겠다! 우리 다 같이 돌이켜 보자! 이것이 소통의 첫걸음이다. 첫걸음 떼지 못하면 앞으로도 소통은 불가능하다.

- 영화에 유머 코드가 많이 가미되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유머의 코드가 없어지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되어 버린다. 더 무거워진다. 그러면 시장성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룰수록 유머 요소를 담아야 한다. 진지한 주제를 다룬 폭로 영화를 사람들이 주말에 열악한 변두리 극장까지 와서 8천 원, 9천 원 내고 보러 온다. <MB의 추억>을 1만 5천 명이 와서 봤다. 내가 업고 다녀야 할 사람들인데(웃음), 독특한 의미와 유머를 섞지 않으면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진지한 주제를 다룰수록 웃음 유발이 필요하다. 희화화가 불편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정도 수준도 소화를 못하면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세상의 비판은 내 영화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최승호 뉴스타파 PD,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이용마 MBC 해직기자 등이 영화에 특별 출연한다.
MBC가 그들을 해고했기 때문에 이런 호화 캐스팅이 가능했다. 특히 뉴스타파 최승호 PD는 MBC 10년 선배로, 그분이 <경찰청 사람들> PD를 맡았을 때 내가 조연출이었다. 한 해 한 해 알아갈수록 더 날을 세우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훌륭한 선배였다. 그분이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교회 청년부 회장 출신이라고 한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교회의 문제는 그저 종교인들만의 문제인줄 알았는데, 우리 사회의 문제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하시더라.      

- 사람들이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할 텐데, 불법다운로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불법다운로드를 해서라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 평소 이런 말을 농담 삼아 한다. “<트루맛쇼>를 영화관이나 정식 다운로드를 통해 본 ‘분’들이 있고, 불법다운로드로 본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안 본 ‘놈’들이 있다.”(웃음) <쿼바디스>와 유사한 논지의 영화 작품이 왜 한 편도 없을까 의아하다. 삐뚤게 나가는 한국교회에 대한 견제가 더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라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 경제적인 형편은 어떤가?
<트루맛쇼> 찍을 때, 영화를 사실적으로 찍기 위해 식당을 창업하느라 돈을 많이 썼다. 약 5억 원.

- 결혼은 하셨나?
그런 질문 많이 받는다. 결혼했는데도 그렇게 ‘사고 치면서’ 다니느냐는.(웃음) 나름대로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다.

- 다큐 영화 감독이 되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좌충우돌로 살아왔다. 대학에선 경영학을 공부했는데, 특별히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간 거다. 졸업해서는 직업을 갖기보다는 작은 회사를 창업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금융회사에 들어가 2년 동안 일했다. 그러다가 방송사 PD를 준비하는 친구를 따라 시험을 봤다. 정말 열심히 준비한 친구들은 떨어지고 대충 공부한 내가 붙었다. 변별력이 없는 시험이었다. 국악, 재즈 같은 것을 물어보는 문제였으니까. 운이 좋은 사람이 합격한다. MBC 입사해서는 죽으라고 일만 했다. 6년 정도 일하다가 2002년에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창업을 했다. 1인 창업을 포함해 어떤 회사 조직이든지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문을 닫고 나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가슴 아프게 떠났던 사람들이 있다.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한 것 아닌가 싶더라. 나의 자유로움을 위해서 관계된 사람들을 힘들게 한 건 아닌가 하는. 회사를 둘로 나누어 하나를 후배에게 맡겼다. 내가 원하는 사업을 별도로 떼어 진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안정을 거부하는 성향인 것 같다.  

- 안정을 거부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이건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청년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트루맛쇼> 때도, 이런 거 만들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행복하게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다가 인생이 꼬일 수 있다. 인생 꼬여서 고통스러울 수 있다. 다만 그 고통을 아주 즐겁게 감내하며 가는 것이 신앙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내가 자격은 안 되지만, 인지적으로 동의가 되어 삶으로 표현되는 것 아닌가. 인생 꼬여봐야 60~70년이다. 이왕 꼬일 거면 화끈하게 꼬여주마! 행복하게 꼬여주마! 이게 내 생각이다.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 대형교회가 좋아하는 감동적인 인물 다큐멘터리 만들어서 얼마든지 편하게 일하고 돈 벌 수 있다. <쿼바디스> 같은 영화는 상영관 얻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좁은 길이다. 내가 인생을 오래 살지 않아서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기독교인이 가야 할 길은 좁은 길이다.

 

   
▲ ⓒ복음과상황 옥명호

- 좁은 길을 가는 데 가장 위협적인 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너만 다쳐”라는 말일 것 같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고, 내가 무엇을 한 것일까 실망하고 허망할 때도 있다. 세상은 안 바뀌는 것 같지만, 미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때 에너지가 샘솟는다. 어쩌면 그것은 단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 당장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어디선가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그런 변화는 꼭 가장 지치는 순간에 보인다. 풀샷으로 화단을 볼 때는 어제와 같은 모습이지만,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하고 미세하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어느 순간 맺혀 있는 이슬이 보이고 그 모습에 감동하는 순간이 있다. 이번에 <쿼바디스>를 본 어느 젊은 친구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났다. 이 영화가 그에게 적게나마 영향을 주었고, 신앙을 제대로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작은 변화가 큰 기쁨이 된다. 그러니 불법다운로드를 해서라도 <쿼바디스>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김 감독의 핸드폰으로 비보가 전해졌다. 11월 중순, CGV강남에서 예정되어 있던 두 차례의 시사회 장소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극장 관계자의 일방적인 취소 통보였다. 가능하다고 연락받아 이미 공지까지 나간 상태였다. 전 좌석 티켓구매로 진행하는 시사회였기에 극장 측에선 전혀 손해 볼 게 없었다. 그럼에도 갑작스러운 취소 결정이 내려진 이유가 무엇일까? ‘외압’이라는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며칠 뒤 다른 지역의 극장들도 하나둘 대관 취소를 알려 왔다. 뻔하다. 늘 ‘그들’은 우리보다 앞서 움직인다. 다른 건 몰라도, 막무가내로, ‘믿는 바’대로 밀어붙이는 건 저들에게 배워야 한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빼앗겨 왔다. 김 감독의 말처럼 ‘답안지에 답을 적지 않는 건 오답’이다. 오답이 이끄는 한국교회에서, 당신은 어디로 가려는가?

■영화 <쿼바디스>와 시사회 관련 정보는 공식 블로그(http://quovadis2014.blog.me) 또는 청어람ARMC 홈페이지(http://ichungeoram.com)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진행 _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