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호 레드레터 크리스천] '전병욱 성범죄 사건' 피해자들 위해 싸우는 삼일교회 교인들

▲ '전병욱 목사 성범죄 사건'을 파헤친 ≪숨바꼭질≫의 공동편집자 권대원 씨 ⓒ김승범

‘상습 성범죄자 전병욱 목사 면직을 요구합니다.’

4년간 철저히 묵인(심지어 무시)되어 온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가 받아들여질 조짐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평양노회가 지난 10월 13일 정기회를 통해 재판국을 구성해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 치리여부를 판결하기로 했다. <뉴스앤조이> 보도에 따르면, 이날 송태근 삼일교회 담임목사는 노회장에게 ‘전병욱 목사 징계 긴급 동의안’을 제출하며 “재판국을 구성하거나 치리회로 즉결 심판하지 않는다면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텼고, 이에 재판국이 구성됐다.

(아직 면직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재판국이 구성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고단한 노고가 있었다. 무엇보다 먼저 ‘전병욱목사성범죄기독교공동대책위’의 끈질긴 노력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숨은 주역들은 피해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삼일교회 교인들이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불의와 범죄에 대해 눈감지 않고 자신들도 이 범죄의 공범이었음을 고백하며, 가해자 전병욱의 목사 면직과 징계를 요구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이들 중 최근 《숨바꼭질》이라는 책을 엮어내는 데 참여한 권대원(43) 씨를 만났다. 멀리 삼일교회가 보이는 숙명여대 근처 카페에서, ‘전병욱 사건’ 이후 삼일교회의 변화를 주로 물었다. 노회의 재판국 구성 결정 닷새 전인 10월 8일이었다.

- ‘전병욱 사건’을 다룬 단행본을 엮어냈다. <한국일보>의 단독 보도 이후 이것이 일파만파 퍼져나가 전병욱 목사가 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SBS ‘모닝와이드’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동안 전병욱 목사를 치리했어야 함에도 온갖 핑계를 대며 무시해온 평양노회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이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흐지부지 잊히는 것에 <한국일보> 기자도 많이 분개한 것 같았다. 책 판매량도 많아졌다고 들었는데 많이 알려져서 여론을 형성해, 전병욱 목사 면직이라는 결과까지 이끌어내면 좋겠다.

- 일부 자극적인 내용만 유통될 것을 우려하는 미디어 비평도 있던데….
교인들과 소통한 경험에 비춰 볼 때 감내해야 하는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공식 발표문에 ‘구강성교’라는 단어를 집어넣기 위해 많은 토론이 있었다. ‘유사성행위’ 정도의 용어로도 충분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정확한 표현을 쓰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니까 교인들이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냥 안마한 거겠지’ ‘슬쩍 건드린 것뿐이겠지’ 하며 오히려 피해자들을 꽃뱀으로 몰아가는 여론으로 기울어지더라. 내가 적나라한 내용을 직접 보여주고 알려주니까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이 문제가 있는 그대로 널리 알려져 전 목사가 처벌받기를 원한다. 이번에 나온 책 편집에도 전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교인이 나서주었다. 쭉 보더니 대번에 분명하고 자극적인 내용들을 책 앞쪽으로 배치하더라. 이게 여론 형성에도 도움이 되었다.   

- 교인들이나 목회자 입장에서는 ‘전병욱 사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은 빨리 잊고 싶을 것 같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불편한 진실도 직면하게 해야 한다. 나를 비롯해 우리 교인들은 모두 ‘전병욱 사건’의 공범이다. 우리가 모두 가해자라는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덮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번에 나온 책을 삼일교회 앞에서 팔았다. 이런 긴장을 만들어내야 공동체가 건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신앙 자체가 본디 불편한 현실과 직면하게 하는 힘 아닌가. 만삭의 여인이 여관방을 얻지 못한 그 비정한 사회를, 예수의 탄생이 직면하게 하지 않나.

- 항의하는 교인들은 없었나?
현수막에 ‘송태근 목사 추천 도서’라고 쓰여 있어서 그런지 강하게 항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교회 식당에서 어떤 분이 장로님들 앉아계신 곳에 가서 책 판매가 옳은 것인지 항의했다. 그때 수석장로님이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를 옹호해주셨다. 그 장로님이 최근에 《숨바꼭질》 출간 포럼에도 자진해서 나오셔서 많은 ‘공격’을 받았다. 당신이 사건 당시 교회 핵심에 있었기에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나서신 거였는데, 참 감사했다.

- 그런 장로님을 비롯해 곳곳에서 애쓴 교인들이 많은 듯하다.
삼일교회 앞에 내놓은 책이 다 팔렸다. 395권이다. 처음 사건 터지고 외부에 알려졌을 때는 대처가 미흡했지만, 지금은 대형교회 중에서는 가장 건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삼일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알 거다. 담임목사님 설교에 대한 비평과 문제제기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목사님은 그 게시글에 일일이 댓글을 단다. ‘전병욱 사건’ 관련 내용도 게시판에서 건강하게 소통된다. 전병욱 목사 면직 운동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도 게시판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일부 교인들이 말도 안 되는 글로 전병욱 목사를 두둔했다. 그러면서 우리를 교회를 흔드는 세력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처음엔 정말 암담했다. 세뇌당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싶었다. 운영진들이 힘을 모아 그런 글들에 일일이 답변을 달았다. 2년 정도 흐른 지금, 게시판의 수준이 달라졌다. 교인들의 이름으로 당회에, 전병욱 목사 전별금으로 13억 4천5백만 원 지급한 근거와 전임 목사의 사임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라는 요청도 있다. 수백 명의 동의 댓글이 달린 ‘공동 요청문’을 당회가 거절할 수 없었다. 물론 부목사들 중 일부는 ‘감히 평신도들이 웬 난리냐’며 괘씸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들 스스로 평신도들의 상전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주 큰 착각이다. 예장 합동 헌법은 교회의 주인이 교인임을 명시하고 있다.

▲ 사진: 권대원 제공

- 면직 청원 운동을 하고, 단행본까지 엮어냈다. 정서적 영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은 안 들었나?
나는 ‘얼굴마담’일 뿐이다. 더 열심인 분들이 많다. SBS 모닝와이드에 나왔던 집사님 중 한 분은,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인터뷰하면서 많이 울었다. 피해자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얼굴이 한 명 한 명 떠올라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도 피해자들과 친했기 때문에 그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친구들 때문에라도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가슴이 무척 아프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제대로 위로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이 오히려 불명예를 뒤집어쓴 채 교회를 떠났다. 그것에 대해 삼일교회는 절대로 모른 척해선 안 된다. 사건이 불거지기 3년 전부터 이미 여러 정황이 있었다. ‘내가 겪은 일은 천국에 가서 밖에 말하지 못한다’고 고백한 동생도 있었다. 내가 그때 어떤 행동을 취했더라면 이후 피해자들은 없었을 것 아닌가.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에 정말 많이 울었다. 이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전병욱 목사 성범죄 사건의 '불편한 진실'을 다룬 ≪숨바꼭질≫ 표지
- ‘괴물 잡다가 괴물 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핵심 동역자들이 30명 정도 된다. 전병욱 목사의 삼일교회 목회 초창기 멤버들이다. 모여서 ‘왜 우리가 아직도 이 일을 붙잡고 있을까?’ 한탄하기도 한다. 전 목사를 욕하면서도 불쌍하니까 막아보려고 하는 마음이 크다. 성범죄 문제가 전병욱 목사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사람들로부터 그 어떤 경고도 받지 못하고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는 목사들에 비하면, 전 목사는 우리처럼 애정을 갖고 경고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복 받은 거다. 힘들지만, 함께하는 사람들 서른 명 정도가 꾸준히 모여 밥 먹고 신앙을 확인하는 과정이 즐겁다. 교회에서 상식적인 가치관으로 진정한 교제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동지들이 생긴 것이다. 전병욱 목사가 우리에게 준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르겠다.(웃음)

- 한국교회 전반에 문제가 많다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평신도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삼일교회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한국교회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삼일교회도 전병욱 사건이 불거졌을 때 “가만히 있으라” “침묵하라” 했다. 문제를 제기하면 “교회를 흔들지 마라” 했다. 피해자들 보고 “양보하라”고 했다. 데자뷔(déjà-vu, 이미 본 느낌)로 다가와 무서웠다. 교회와 국가가 동일한 논리로 병들어 있다. 전병욱 사건이 터지고 우리도 많이 배워가고 있다. 교인들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공부도 많이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인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교인들이 서로 일깨워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를 많이 도와주고 있는 이진오 목사님도 교회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주니 다른 사안들보다 일을 진행해나가기 수월하다고 하시더라.

- 전병욱 목사가 다시 담임목사로 오길 바라는 교인들이 꽤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엄연한 사실이다. 담임목사가 바뀌었다고 교회 공동체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바뀌는 것도 큰 문제 아니겠나. 내가 1999년부터 삼일교회를 다녔고, 10년 넘게 간사로 있었다. 간사 쪼아서 출석률 높아지면 담당 부목사들은 그것을 권력으로 알았다. 청년들은 욕망을 자극하는 설교를 계속 들었다. 자극으로만 점철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영적으로 엄청나게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고 착각한다. 리더들 중에서 기본적인 성경 이해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평소 전 목사는 “예배에 목숨을 걸라”고 했는데, 청년들은 예배를 여러 번 드리기에만 집중했다. 이런 문화가 삼일교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 영성의 뿌리를 내리는 과정 자체가 생략되었다. 송태근 목사님이 이것을 깨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 전병욱 목사를 좇아 홍대새교회로 간 사람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를 칭송하고 받쳐주는 사람이야말로 ‘전병욱 목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자기 귀 즐겁게 하려고, 이익을 취하고자 옆에 붙어있는 이들이다. 전병욱 목사가 ‘목사’로는 끝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기회는 남아있다. 그런데 오히려 전 목사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그 기회를 막는다.       

▲ ⓒ김승범
- 전병욱 목사에게 개인적으로 말할 기회가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나?
진심으로 회개하길 바란다. 사람들 앞에서 요목조목 구체적으로 공개적으로 사과하라. 목회를 이제 내려놓기 바란다. 성중독증도 하루빨리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가 지옥에 가길 바라는 게 아니다. 일단 두 딸과 아내에게 진실을 말하고, 피해자들과 그 부모님들을 찾아가서 사죄하라. 피해자의 부모 얼굴을 본다면 죄책감에 견딜 수 없을 텐데,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기회까지 놓치진 않았으면 좋겠다.

-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겠다.
‘아직도 당신들 잊지 않고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권대원 씨는 더 이상 말을 쉽게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고 있듯, 우리도 당신들 잊지 않고 있다. 평양노회가 정말 지독하게 견고한 집단인데 우린 끝까지 싸울 거다. 삼일교회도 도의적인 책임이 분명히 있다. 어느 피해자는 ‘나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여러분들 때문에 위로를 받고 치유가 되어간다’는 쪽지를 보내왔다.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를 징계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참 어렵다.   
전 목사의 성범죄 사례를 수집하면서 피해자 중 모태신앙이거나, 장로와 권사의 자녀가 많아서 깜짝 놀랐다. 대다수는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자’라거나, ‘교회를 흔들면 안 된다’고 교육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도, 자기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 목사의 저서 중 《기적이 상식이 된다》가 있는데, 우스개로 ‘상식이 기적이 되는 게 교회’라 말하곤 했다. 이런 일들이 한국교회에 너무 많지 않은가. 피해자들이 정당하게 조치를 취하고, 부당함을 드러내는 상식적인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죄를 죄라고 말하는 상식이 교회를 긴장시키고 더 건강하게 만든다.

- 지역 교회의 일을 통해 한국교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나를 비롯하여 온순하던 사람들을 투사로 만든 건 한국교회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드니까 사명감이 더 강해지더라. 한국교회, 진짜 심각하다. 진공관 속의 신앙인들 같다. 문제가 많은데도 무결한 척 도피성을 만들어 환상 속에서 산다. 교단은 교단대로, 목사는 목사대로, 교인은 교인대로, 이기심 때문에 다 망해가고 있다.

- 앞서 삼일교회가 대형교회 중 가장 건강할 것이라고 했다.
내홍을 겪으면서 교인들이 저마다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상식적이 되어가고 있다. 교회 차원의 사과문을 발표했고, 전병욱 목사 면직 운동을 하면서 스스로 우리의 죄와 계속 마주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담임목사님, 수석장로님 등 어른들도 여러 부담을 무릅쓰고 나서고 있다. 이외 다른 사안들도 더 투명하게 다뤄지고 있다. 적어도 헌금 많이 내는 이가 권력을 갖는 교회는 아니다.

▲ ⓒ김승범


우리 교회 청년들이 보수적이지만, 꽤 많은 교우들이 세월호 촛불집회에 나갔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토론들도 게시판에서 활발하게 진행된다. 불의가 판을 칠 때, 그에 저항하기 위해서 대형교회가 그 교세를 내세우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나는 대형교회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아직은) 믿는다. 물론 구조악이 있음을 깨닫고 있지만, ‘전병욱 사건’을 함께 해결해가면서 교회의 희망을 보고 있다. 대형교회의 건강성 면에서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

- 면직 운동이 일단락되면 ‘교회를 떠나고 싶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건강한 대형교회’를 일구기 위해 끝까지 남아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이다. 개인적으로 피로감이 많이 쌓였다. 어느 틈엔가 교회에서 불의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도맡아서 처리하는 ‘해결사’로 우리를 대하는 분들이 있다. 그건 결코 바람직하지도, 건강한 모습도 아니다.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모든 교인들이 관심을 갖고 해결사로 나서야 하지 않겠나.  

진행 _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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