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호 무브먼트 투게더Ⅱ]

부채탕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부채로 신음하는 이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희년함께는 부채 문제의 현실이 어떠하며 부채가 실제로 어떻게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부채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을 만나 소상히 상황을 듣고 문제의 실상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올해 6월 기준으로 가계부채는 1,040조 원을 넘었습니다. 가계부채를 넘어 공공기관 및 국가의 부채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 기간, 케이블 TV에서 대출광고가 너무 자주 나오는가 싶어 한 번 세어보았습니다. 열 번의 광고 중에 4~5개가 대출광고였습니다. 부채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대출광고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날개 달린 듯 활개 치고 있습니다. 냉장고만 열면 돈이 쏟아지는 대출광고가 버젓이 공중파를 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건강한 재무설계를 꾀하기는 어렵기만 합니다.

※ 희년과 부채탕감은 무슨 관계?

희년과 부채탕감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희년은 구약 이스라엘사회의 규약으로서 희년에는 개인의 부채탕감, 노예해방, 토지의 회복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사건인 희년은 돈과 권력에 의한 인간의 구속을 금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현대의 부채탕감운동도 빚에 의해 삶의 회복을 꿈꾸지 못하는 가난한 채무자들에게 희년적 조치의 하나인 부채를 탕감해주는 운동으로 희년의 정신과 닿아 있습니다.

부채탕감운동과 교회의 역할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성경에서는 안식년과 희년에 부채탕감을 해줌으로써 채무자에게 부여된 과도한 짐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부채탕감운동은 고아와 과부를 비롯한 가난한 자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가진 성경에 근거하여 평균 10년 이상의 부실채권을 소각하여 생계형 신용불량자에게 자유와 해방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모든 교회와 함께 오늘날의 부채탕감운동을 전개하려는 이유입니다.

희년함께가 첫 번째로 만난 분은 의정부에 사시는 이◯◯ 선생님입니다. 2010년까지 모금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회사를 옮기면서 많은 일을 경험했습니다. 막노동,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일을 시도하였습니다.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다가 올해부터는 1톤 냉동 탑차를 운전하고 있습니다. 지방까지 오가는 운반 업무는 육체적으로 몹시 힘들지만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버티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온종일 운전을 하고 나면 금요일에는 바로 쓰러져 잠이 든다고 합니다. 빠듯하게 삶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 번 아프거나 큰 병이라도 생긴다면 도무지 헤어 나올 길이 없습니다.

이◯◯ 선생님이 부채의 늪에 빠지게 된 시기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가 본인의 명의로 주택담보대출을 얻었습니다. 이때 구매한 집은 30평형 아파트입니다. 1억 8천만 원의 금액 중 1억 2천만 원 정도를 대출하였습니다. 30년 상환으로 월 52만 원이 대출이자로 나갑니다. 문제는 이 선생님의 월급으로 충당하기 너무도 어려운 금액이라는 사실입니다. 현재 다니는 직장의 월급은 세후 136만 원인데 대출이자 52만 원, 생활비 30여만 원, 주유비 14만 원, 어머니 용돈 20만 원을 지불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빠듯한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이 선생님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동산 신화, 삶을 옥죄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왜 무리하게 아들의 명의로 주택담보대출을 얻으셨던 걸까요? 1988년 13평형에서 시작해 1990년 18평형으로 이사했고 2000년 34평형 아파트를 얻으면서 꾸준히 부동산 시세차익을 경험한 겁니다. 어머니의 삶을 통해 경험된 부동산 신화는 주택담보대출이 아들을 위한 투자라고 두려움 없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주택담보대출로 주택을 구매한 시점은 그 가격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점이며, 현재는 가격의 거품이 계속 빠지는 추세라 매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선생님은 몇 년 전부터 여러 군데의 부동산중개소에 집을 내놓았지만 연락은 거의 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선생님은 사회적 활동가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금 컨설턴트의 경험도 있고 시민운동의 노하우도 축적되어 있습니다. 현재도 틈만 나면 관련 책을 보며 언제든지 자신의 꿈을 펼칠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삶은 너무나도 힘겹기만 합니다. 아직도 부동산의 꿈을 버리지 않는 어머니와의 갈등도 만만치 않고 노동강도에 비해 적은 임금, 그리고 빠듯한 생활비는 삶을 투쟁의 장으로 만듭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희망을 볼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희년함께의 부채탕감프로젝트는 이 선생님에게 당장 도움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 문제의 근원에 있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희년함께의 꿈을 나누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쳐야 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다니지만 이토록 심각한 자기 삶의 문제를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놓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에서 최선은 손해를 보더라도 주택을 매도하고 좀 더 작은 집에서 대출의 압박 없이 사는 것일 테지요. 그러나 아직도 부동산 신화의 신기루를 좇고 계신 어머니와의 합의는 어려워 보입니다. 부동산에 모든 자산이 잠식된 한국사회에서 금융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옥죄는 대출노예로 우리의 삶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김덕영
대학생 시절 희년을 꿈꾸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고 놀다가 희년으로 인생의 좌표가 설정되었다. 직장 생활 3년 과정을 수료하고 올해부터 희년함께에서 일한다. 희년과 한국사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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