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호 사람과 상황] 크리스마스 직전 그만둔 어느 부목사 익명 인터뷰

 

   
▲ ⓒ복음과상황 오지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빨간약과 파란약 중 빨간약을 선택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파란약을 먹으면 매트릭스 안에 영원히 갇혀 지내지만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다. 빨간약을 먹으면 매트릭스 밖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진실을 아는 것이 꼭 행복과 연결되진 않는다. 오히려 좌절, 실패, 절망과 연결되는 경우가 잦다. ‘그’ 목사(39)가 그만둔 이유도 ‘빨간약’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찬양하며 거짓 행복을 도모하기엔 ‘진실’의 아픔을 너무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 시대의 아픔과 직면하기 위해 과감하게 빨간약을 먹고, 설국열차(제도 교회)에서 탈출한 ‘그’ 목사를 만났다. '쫓겨난 지' 한 달이 되던 날, 그가 주일에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오래된 예배당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와 그를 따라나온 공동체 일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부득이 익명을 사용했다. 아울러 거짓과 맞서 싸우는 모든 목회자들의 이야기이기에, 불특정다수를 뜻하는 익명이기도 하다.

- 부목사로 사역 하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었다고 들었다. 주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이곳 예배당을 빌려 몇 사람들과 예배를 드린 지 3주 됐다. 새로 시작하는 걸음이니까 설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있어 좋다. 등산을 막 시작한 기분처럼 좋다. 아직은 짐이 무겁지 않게 느껴진다.

- 제도권 교회에서 이탈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지금은 없다. 가끔이라도 엄습할 만한데 한 번도 없다. 어떤 이는 3년 동안 무임 목사로 있으면 면직되는 것에 대해 걱정해주더라. 어디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현재로선 면직되어도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

- 독립교단으로 옮기는 것도 생각하고 있나?
함께 모이는 몇몇 사람들이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더라. 3~5년 뒤엔 우리 모임이 초교파적 모임이 되지 않겠느냐 예상하더라.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그런 이야기를 꺼내서 놀랐다.

- 함께하는 이들은 기존 교회에서 알고 지낸 교인들인가? 그들은 왜 목사님을 따라나왔나?
기존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알게 된 사람들이다. 10명 정도 된다. 다니던 교회는 대형교회였는데 양적 성장에 온통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교인 개개인의 울타리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몇 사람들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했고, 동의하고 공감하는 이들과 깊이 교제하기 시작했다.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더라. 어떤 이는 진정한 공동체를 위해 ‘투신’해보겠다 말하기도 했다.

- 그게 기존 교회를 나오게 된 계기였나?
아니다. 처음엔 교회 안에서 그런 끈끈한 공동체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교회 전체적인 방침이 ‘성장’에 맞춰져 있어 쉽지 않았다. 특별히 청년부 사역을 일부 맡고 있었는데, 청년들이 교회의 큰 흐름을 감당하거나 역행하기 힘들어했다. 리더 중에는 자신이 교회 성장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 같다는 이도 많았다. 진저리를 칠 정도였다. 나는 청년들 처지를 대변하거나, 교회 대형화가 아닌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구현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곤 했다. 크고 작은 갈등이 켜켜이 쌓였고, 수년간 버티다가 지난해 겨울 그만두게 되었다. 마침 고민을 함께 나누던 이들이 ‘기회’라 생각했는지 함께 모이자고 하더라.

 

   
▲ ⓒ복음과상황 이범진

- “끈끈한 공동체” “하나님 나라 공동체”라는 표현을 썼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염두에 두고 있나?
우리도 그것이 어떤 형태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그리지 못했다. 구성원들이 바라는 공동체의 모습을 민주적으로 이야기하고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희년, 한국 사회, 하나님 나라》(홍성사)를 함께 읽고 공부하기도 했다. 구약의 희년 메시지가 신약에서 하나님 나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기존 교회에 적용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교회를 나오게 되었지만 안에서 바꿔보고자 한 것이 애초 계획이었다.

- 담임목사와는 가는 길이 달랐는데, 왜 진즉 나오지 않았나?
대부분 그 교회를 어릴 때부터 다닌 교인들이었다. 교회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에 교회를 떠난다는 건 논외였다. 아직도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이쪽으로 오는 이들이 있다. (익명으로 인터뷰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나도 마찬가지로, 내게 주어진 공동체가 좋았다. 떠나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변화시키고 싶었다.

- 사임을 급작스럽게 했다고 들었다.
계속 갈등 중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건데, 평소 내가 페북에 쓰는 글들을 담임목사님이 다른 부목사를 통해 전달받아 읽고 있었더라. 나를 향해 좌파라고 문제시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에게 사역을 맡길 수 없다는 논리였다.

- “좌파”라고 문제시한 근거는 무엇인가?
세월호 사건이 컸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글을 문제삼기도 했다. 나에게 세월호 사건은 정말 크나큰 충격이었다. 다른 일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고 교회가 이 일에 더 적극적인 책임의식으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은 “그런 것들이 너에겐 진리의 영역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확실히 말씀하시더라.

- 왜 적지 않은 교회들이 세월호 사건 언급을 꺼릴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는 게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월호 사건은 불편한 이슈 아닌가. 교회 안에서 힘 있는 이들도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인데, 이들이 불편해하는 말을 하면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불의한 권력에 대하여 교회가 취하는 자세를 보면 알 수 있다. 침묵이다. 교회가 권력의 관점에서 사건을 본다. 권력 가진 이들이 세월호 사건에 ‘이념적’ 프레임을 입히지 않았나. 이는 성장을 지향하는 대형교회 입장에선 몹시 고마운 프레임이다. 

- 담임목사를 비롯한 부목사들이 그렇게 불편해하는데 왜 세월호 얘기를 계속 했나?
침묵하고 있는 게 창피했다. 부끄러웠다. 어떻게라도 말하고 싶었고,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란 리본 달고 있으면 예배당에 들이지 않는 교회도 있다고 들었다. 이전 교회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한두 교회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 대형교회 부목사들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도 있다. 더 큰 교회로 가기 위해 ‘라인’을 타거나, 어차피 다른 곳의 ‘담임’으로 가기 위해 무난하게 묻어간다는 식의 비판 말이다.
‘거쳐 가는’ 부목사이지만 교회를 정류장처럼 여기고 싶진 않았다. 나에게 특별한 교회이기도 하다. 나에게 교회, 그리스도인, 목회자로서 가장 깊은 고민을 안겨준 곳이다. ‘오늘 예배에 몇 명 왔네’가 아니라,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가 와 닿아 내가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게 없을 때 느껴지는 절망 때문에 눈물이 흐르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여기가 내 교회, 내 공동체구나 하는 마음으로 보냈다.

-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와 닿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
청년들이 참 어렵게 살더라. 고민의 깊이도 있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봐왔다. 가령 한 청년은 어느 대기업에 취직해 잘 다니고 있었는데, 갈등하다가 퇴직을 결심했다. 이유를 물으니 ‘갑질’을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신앙적 고민 끝에 사표를 내기로 한 거다. 가족을 부양하는 처지라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이어가야 했다. 당연히 교회도 자주 나올 수 없게 되고, 어쩌다 짬을 내서 예배시간에 나오면 그의 삶이 다가와 눈물이 났다. 그런데 어떤 교인들은 그를 향해서 ‘교회 열심히 안 나온다’고 비난한다. 교회 일에 헌신하지 않는다며, 치열하게 하나님 뜻대로 살아보려는 친구를 비판한다. 오히려 이런 친구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하는곳이 교회인데, 출석률과 헌신도로만 청년들을 평가한다.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기도하려면, 그의 삶의 이야기가 먼저 마음 깊이 들어와야 한다. 교회 성장을 목표로 하는 교회들이 이런 부분을 간과하거나 소홀히 여기고 있다. 치명적이다.

- 영화 <쿼바디스> 봤나?
김재환 감독님도 직접 만났고, 영화도 공동체 일원들과 함께 봤다.       

-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나? 교회를 그만둔 이후였을 텐데.
‘침묵’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일부 대형교회의 사례가 주로 나오지만, 소개되지 않은 교회들도 같은 문제에 봉착해있다. 대부분의 부목사들은 거기에 침묵함으로 동조하고 있다. 물론 인간적으로 이해가 된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돌봐야 할 처자식이 있으니까.

- 그들도 <쿼바디스>를 보지 않을까?
자기들 이야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할 거다. 분별력이 없다. 분별력이 있어도 침묵한다. 개혁적인 신학으로, 아니 급진 좌파적 사상가 연구로 학위를 받은 목사들도 큰 시스템 안에서 부목사가 되니까 침묵하더라. 나도 그렇지만 인문학적 소양 없이 아무나 목사가 되어서 그렇다. 신학대 가는 사람들의 자질이 그가 다니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검증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없이 아무나 신학교를 갈 수 있으니 문제다. 침묵으로, 분별력 없이 윗사람만 잘 따르면 안주할 수 있는 구조다. <미생>을 보면서도 청년들이 얼마나 힘든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목사들이 태반이다. ‘나 젊었을 때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어’가 유일한 대응 논리다. 그들이 <쿼바디스>를 본다고 해도 자기 교회 안에서는 침묵할 것이고, 현재의 상황을 해석하고 분별할 만한 여력도 없이 쳇바퀴 돌 듯 담임목사님을 충실히 보좌하며 성장을 위해 달려갈 것이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목사님은 언제부터 그런 분들과 궤를 달리했나? 같은 신앙적, 신학적 토양에서 자라고 배운 것 아닌가?
원래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성격이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없어서 고민이 깊어지던 때가 2008년이었다. 그때 우연히 대형서점에서 <복음과상황>을 만나 고민하던 문제들의 답을 얻었다. 이후로 ‘와와클럽’에도 자주 갔었고, 기청아(기독청년아카데미) 수업도 들었다. 이만열 교수님의 역사 수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 복상이 목사님 인생을 꼬이게 한 거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그동안 내부에서 교회를 바꾸려는 노력이 왜 통하지 않았던 것 같나?
교회를 확 바꿔야지 하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내 영향력을 벗어나는 곳을 변화시키려 하는 건 월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맡은 부서나 역할 안에서라도 개혁을 시도하고자 했다. 솔직히 그 이상의 영역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은 없다. 내가 시도한 개혁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작은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섬기는 교인들이 “행사 때마다 동원되는 것 같아 힘들어요” 말하면,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주려고 벽에 붙어 있는 (경쟁을 유도하는) 출석부를 떼는 따위의 작은 저항이었지 거창한 개혁을 울부짖은 건 아니었다. 그마저도 담임목사님에게는 껄끄러웠던 거다. 

- 결국 그런 작은 변화의 움직임에도 미운털이 박혀 쫓겨났다. 원망스럽진 않았나?
교회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 쫓겨날 때는 ‘이게 무슨 교회냐!’ 하며 분노하고 많이 외로웠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망스럽진 않았다. 글쎄, 하나 있다면 담임목사님이 내 진정성은 알고 있다고 한 부분이다. 그걸 아신다는 분이 이럴 수 있나 싶으니까 없던 원망도 생기더라. 진정성(신앙)을 배반하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게 과연 무엇일까.

-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는데 막막하지 않았나?
2~3년 전에 종교인 과세 이슈가 불거졌을 때, 교회에서 세금을 내주겠다고 했었다. 이번에 그만두면서 4대 보험 확인서를 발급해보니 건강보험과 국민연금만 가입되어 있었고, 고용보험이랑 산재보험은 안 되어 있더라. 당연히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요즘 다시 종교인 과세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부목사들은 특히 나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세금을 내는 게 좋겠다. 더군다나 모든 시민의 의무이니까 목사들도 마땅히 의무를 져야 한다.

- ‘근로(사역)계약서’도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나도 안 썼고, 썼다고 하는 교역자도 본 적이 없다. 노동 규약에 관해 담임목사님이 직접 쓴 정관 같은 게 있다는 데 본 사람은 없고, 사인했다는 사람도 못 봤다. 교회의 사무직원들도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위 갑질 당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내일이라도 당장 담임목사가 그만두라고 하거나, 사직을 유도하면 부목사들은 그만둘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해고 일주일 전에 통보를 받고 그만둔 교회 직원도 있었다. 근로기준법 상 해고는 30일 전에 해야 하고, 그렇지 않았을 경우 30일분의 통상임금을 해고예고수당으로 지급해야 함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법’ 자체가 무의미하다. 의리로 뭉치는 조폭들처럼 똘똘 뭉치다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생겨나면 조폭들 하듯 ‘제거’하는 식이다.    

- 다른 목소리를 내면 생존이 위협당하기 때문에 제왕적 담임목사의 시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제공해주던 사택에서도 나와야 했을 텐데, 한겨울 집을 구하러 다니는 마음이 힘겹진 않았나. 대출도 받아야 했을 텐데….
집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고 다니느라 몸이 힘들었지 마음은 힘들지 않았다. 내 처지를 잘 아는 교인들이 마음을 다해서 기도해주었고, 집 구하는 과정에서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었다. 다행히 적당한 집이 구해졌다. 이사하는 것도 교인들이 도와줘서 무사히 잘 끝났다.

- 모든 일련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모님은 뭐라고 하던가?
아내의 사전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제도권을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하는 결단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아내와 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다만 아내는 자신이 모태신앙이라서 그런지 내가 교회의 전반적인 흐름에 맞서고 저항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기와는 많이 다르다고 하더라. 그럼에도 잘 견뎌주는 모습은, 오히려 내가 배울 점이다.

 

   
▲ ⓒ복음과상황 오지은

-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이다. 앞으로 수입이 없는데,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할 계획인가?
솔직히 나는 대책이 없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함께 공동체를 시작한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십일조를 모아서 주고 있다. 나 스스로도 돈을 벌 수 있게 일을 알아보는 중이다. 신기한 일들도 많이 경험했다. 잘 모르는 관계인데 봉투 주고 가는 분들도 있었고,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인데 매달 교통비를 지원해주겠다는 분도 생겼다. 액수에 상관없이 나이겐 정말 귀한 도움의 손길이다.

- 생활비도 빠듯할 텐데 대학원 진학도 어려운 결정이었겠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데에 집중하고 싶었다. 나도 틀릴 수 있는 사람인데, 내가 틀렸다는 걸 확인하려면 항상 배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교회를 개척했다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교회 건물도, 이름도 아직 없는데….
애초에 교회를 개척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마음 맞는 지체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싶었다. 앞서 말했듯 지금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두 교회를 다니는 이도 있고,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개척은 답이 아니라는 입장도 있고, 더 신중하게 준비하는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 과감하게 십일조도 모아주는 분들인데, 목사님이 과감하게 깃발 꽂으면 따라올 사람들 아닌가?
그러게 말이다.(웃음) 내가 그 역할을 안 하고 있어서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고 계속 생각중이다. 그러나 의견이 이렇게 분분한데, 모두 같은 질문을 품었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기존 교회에 있을 때에도 난 내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의견을 말하는 순간 그것이 공동체가 응당 따라가야 할 답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리더들에게 항상 말했다. “여기서 내 의견대로 결정되면, 이 공동체의 주인인 여러분들 자신이 분리됩니다.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담당 목사 바뀔 때마다 끌려다니게 됩니다.” 새로 시작하는 공동체에서도 더디지만 다양함 속 일치를 추구하고 싶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후인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김구 선생님께서 남긴 말이다. 내 경우, 깃발 꽂고 따라오라고 할 정도로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은 없다. 느리더라도 어깨동무한 채 한걸음 정도 먼저 내딛는 게 내 역할인 듯싶다. 깃발은 이미 성경 속에 있는데내가 꽂을 필요가 있겠나.  

- 그만두면서 교회에 관해 뼈저린 묵상을 했겠다. 교회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벼랑에 선 사람들》(오월의봄)이라는 책이 있다. 일용직 배달부, 야간청소부 등 가난한 이들의 삶을 취재하거나 직접 겪어 담아낸 책이다. 병원비가 없어 고통 받는 서민들, 빚에 허덕이는 저소득층의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담겨 감명 깊게 읽었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구하는 게 교회겠다 싶다. 함께 벼랑에 서주는 무모함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교회이지 싶다.

진행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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