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호 은수연의 네버엔딩Q]

익숙해진 거짓 토닥임
사람들의 속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은 지난달부터, 연락해서 만나자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많아졌습니다. ‘답답한 거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라고 광고 낸 것도 아닌데 신기합니다.

해야 할 일 잔뜩 짊어지고 주말에 혼자 카페에 콕 박혀 앉아 있는 저에게 아주 어린 동생이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 엄마랑 제 나이가 비슷할 겁니다. 공부하겠다고 영어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 저를 보더니 묻습니다.

“샘은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요?”
“그냥 지금은 재미있어서. 근데 나이 들어서 하려니 진짜 힘들어. 나도 너 나이 때부터 공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우리 아빠라는 사람은 공부도 못하게 했거든.”
“왜요?”
“정상은 아닌 사람이잖아.”


제 말에 그냥 둘이 씨~익 웃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친구여서 이야기 나누기가 편합니다. 예전에는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서 위로하지도 지지하지도 못했는데 언제부턴가는 편해졌습니다. 마음껏 이야기할 시간을 주고, 점심도 먹고, 다시 자리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했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소녀를 달래고 난 후 저는 공부를 시작하고, 그 아이는 낮잠을 청합니다. 귀엽습니다. 젊음, 아니 어린 나이 소녀의 시간을 부러운 듯 바라보곤 하는데 기분 좋게 부럽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렵다고 하면 조금만 용기 내서 지금 힘든 시간을 견뎌보자고 하고, 연결해줄 테니 상담 받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대안을 제시하고, 이런저런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며칠 전 조카들을 두고 한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제 조카들의 미래를 엄청 걱정했거든요. 사회문제가 갈수록 깊어지고, 경쟁도 심해질 텐데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고요.

제 책을 보고 저에게 무언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으려고 저를 찾아 온 친구에게 제가 실제로 겪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전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거짓말로 토닥토닥하는 느낌에 미안함이 담깁니다. 소망을 전하고 싶어 말하긴 했지만, 지금의 삶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극도의 두려움을 가진 어린 소녀에게 딱히 해줄 다른 말들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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