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국가: 무능한 국가와 그 희생자들 / 게리 하우겐·빅터 부트로스 지음 / 최요한 옮김 / 옐로브릭 펴냄 / 18,000원

(여덟 살) 소녀의 이름은 유리였다. 이른 아침, 누군가가 유리의 짓이겨진 시체를 한길에 버렸다. 자갈길 위로 자그마한 피 웅덩이가 고였다. 두개골은 움푹 패고 다리는 전선에 묶여 있고 팬티는 발목에 걸려 있었다. … 어쩌면 라우니온에서 발생한 이 기괴한 강간 사건이 페루 약자들의 일상을 말없이 파괴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조금이나마 밝혀 줄지도 모를 일이다.”(25쪽)

범인은 인근의 지역 유지 아얄라 부자(父子)였다. 그들의 집 안에는 피 묻은 매트리스와 피해자의 옷이 있었다. 명백한 강간 살해 사건. 그러나 페루에서는 이런 사건을 국가가 수사하지 않고, 피해자가 돈을 내고 수사 인력을 구해야 한다. 돈이 없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면 유리의 살해범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개도국의 불법 폭력 피해자를 구조하는 국제 인권단체 IJM의 대표와 그 동료가 쓴 《폭력 국가》는 “불법 폭력이라는 전염병이 우리 세계의 두 가지 꿈, 즉 세계 빈곤을 끝장내는 꿈과 빈민의 기본 인권을 지켜내는 꿈을 전부 파괴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책은 20억이 넘는 전 세계의 빈곤 현실이 지난 30년간 별다른 변화(개선)가 없는 이유가 현지의 일상적 폭력에 있다는 연구결과를 입증하는 생생한 사례를 가차없이 보여준다.

매일 굶지도, 일상적 폭력범죄를 당하지도 않는 우리가 “거대한 폭력의 세계가 숨어 있는” 지하 세계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면 충격과 공포를 넘어서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말하는 ‘비극 중의 비극’은 이것이다.

‘고질적인 가난’은 폭력에 취약하다는 것을, 폭력이 바로 지금 세계 빈민을 잔인하게 짓밟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폭력 퇴치에 느긋하다. 폭력을 막지 않으니 빈민을 돕는 선량한 사람들의 노력은 대부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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