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호 동교동삼거리]
“재정적으로는 이미 폐간되었어야 할” 잡지의 지령 300호
“재정적으로 보면 이미 오래 전에 폐간되었어야 할 잡지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복음과상황 지령 300호를 맞이하는 소회를 밝힌 글(26쪽)에 나오는 김형원 발행인의 고백입니다. 그 ‘불가사의’는 기실 숱한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이 힘을 보탰기에 가능했을 터입니다. “재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원고료도 받지 않고 좋은 글들을 써 주기도… 시간을 내어 편집위원으로… 여기저기 소개하면서 영업활동을 하기도… 꾸준히 구독하고 후원하면서 복상을 위해서 헌신해온 사람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든든한 재정적 뒷배가 없는 잡지가 300호를 맞이한 묘책이 달리 있을까요. 갈수록 ‘이웃의 안녕’보다 ‘내 앞날’이나 ‘내 아이들의 미래’만 최우선 관심사가 되어가는 이 시대에, 앞으로도 400, 500, 600…의 나이테를 계속 쌓아갈 수 있을지요. “지금의 현실이 오히려 복상이 태동하던 30여 년 전보다 사회나 종교계가 더 후퇴”한 듯 보이기에, 하나님 나라 복음과 복음의 공공성 확장을 위한 복상의 존재 이유는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300호 기념호에서는 커버스토리 확장판으로 “다시, 복음의 공공성-시즌2”를 꾸몄습니다. _옥명호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기로 한 사람들의 뇌는 그렇지 않은 이들의 뇌보다 더 활성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머리를 좀 써라”라는 핀잔은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거지요.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뇌는 서로를 돕도록 설계된 거지요.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인 개인이 공의로운 사회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나 봅니다. 300호를 맞아 복상의 사명이 복음의 공공성 확산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특별히 20대 독자 세 분이 보내오신 글(커버스토리)은 복상이 누구의 길동무가 되어야 하는지를 거듭 일깨워주었습니다. 소설가 박민규는 어느 인터뷰에서 “인류 역사에서 책읽기를 좋아했던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며 책을 읽는 행위가 경제 능력과도 무관한 시대에 ‘소수의 독자’들이야말로 “작가보다 더 특별한 존재들”이라고 했지요. 뇌를 ‘제대로’ 활용하시는 복상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_이범진
지난 10월 독일 뮌헨에 머물다가 뮌헨예술대를 다니는 친구에게서 학생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구호는 ‘DAS KANN DIR NICHT EGAL SEIN’, ‘너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정도의 의미랍니다. 사연인즉슨 지난 여름축제 때 학교 측이 안전문제를 들어 오후 8시 이후 외부인을 내보내기 위해 화재 경보를 오용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부당함을 주장하기 위함이랍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안전문제를 들어 학교가 자꾸만 학생들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제한하려는 흐름에 반대하는 집회고요. 자칫 별일 아니라 여겨 그냥 두고 보면, 이후엔 얼마나 더 큰 반칙과 일방성을 용인하게 될지 알기에 많은 학생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한국은 국정교과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데요.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음에도 대통령과 여당은 막무가내입니다. 올해가 자유민주주의를 몸으로 살아냈던 고 장준하 선생의 40주기입니다. 먼 타지에서, 구성원들의 의사에 반하는 일방주의에 맞서는 독일 대학생들의 집회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는 거저 지켜지는 게 아님을 배웁니다. _오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