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호 사람과 상황] 국정교과서 반박문 작성한 심용환 역사 강사

   
▲ ⓒ복음과상황 이범진

정부가 지난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 했다. 일찍이 역사학계 학자들이 대거 집필 거부 선언을 했고, 국정화 반대 여론이 날로 높아지는데도 강행됐다. 심지어 이명박 전 정권에 이어 현 정권 초기까지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마저 국정화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수험생 대부분이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직접 거리로 나와 반대 의사를 당당히 밝힌 중고등학생들도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이 상황을 ‘역사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랑곳 않는다는 듯 국정교과서 발행 수순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연거푸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대표 집필자 가운데 1인인 최몽룡 교수가 성추행 논란으로 사퇴하는가 하면, 애초 교육부가 국정 교과서 집필 과정 공개를 통한 투명성을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집필진 공개 여부도 확실치 않다. 1973년 중고등 국정교과서도 각 신문에 집필진을 미리 발표했었다. 어떤 교과서도 집필진 명단 없이 나온 적은 없다. 1년이라는 짧은 집필 기간을 비롯하여, 과연 이 교과서가 정말 ‘올바르게’ 나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런 시국에도 국정화에 찬성하고 나선 교회들이 있지만, 반대하는 기독교인들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 <역사와 교회를 사랑하는 기독교 1,945인 양심선언문>을 작성한 베테랑 역사 강사 심용환 씨(38)는 SNS를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올렸고, ‘역사교과서국정화를반대하는기독인모임’이 주최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 긴급 포럼에서 발제를 맡기도 했다. 국정화 확정고시가 떨어진 다음날인 11월 4일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국정교과서 문제를 다루는 언론 보도나 포럼에서 이름을 꽤 봤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좀 해달라.
역사 교육을 전공했고, 재수생, 고3, 임용고시생 등에게 10년 넘게 역사 과목을 가르쳐 온 학원 강사다. 검인정체제 역사교과서들을 무분별하게 비판하는 글이 ‘찌라시’ 수준으로 돌아다니기에 조목조목 반박한 글을 올렸는데, 일이 커져서 여기 저기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더라. 살면서 이렇게 바쁘긴 처음이다. 내가 이렇게 불려다니는 건, 아직 강력한 움직임까지 가진 않았지만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국민적 열기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학원 강사를 해온 이력도 강점으로 작용한 것 같고.

― 어떤 강점을 말하는 건가?
지난 10여 년 간 모든 한국사 교과서를 연구했고, 수십 종의 한국사 참고서를 모두 섭렵했다. 지난 12년간의 기출문제도 다 풀어보고 연구했다. 수능 한국사, 공무원 한국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관련 책도 여러 권 저술했다. 그동안 어떤 주제가 축소되거나 중점적으로 다루어져 왔는지, 역사 시험 문제 경향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꾸준히 분석해 왔다. 그만큼 단련하지 않았으면 반박 글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쓸 수도,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을 거다. TV 토론 프로그램 같은 데 나와서 말도 안 되는 근거로 국정교과서 찬성 논지를 펴는 분들을 모셔다놓고 직접 가르치고 싶은 심정이다.

― 학원 강사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아는 동생이 내게 하는 말이, 공교육 당사자인 학교 교사보다 중립지대에 있는 학원 강사가 꺼내는 날카로운 이야기가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맞는 말 같다. 공교육이야 어찌 되든 강의로 돈만 잘 벌면 장땡일 수도 있는 학원 강사가 이렇게 나서서 이야기할 정도의 문제라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더 진지하게 생각할 것 같다. 이념 논쟁이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 SNS 상의 ‘국정교과서 찬성 찌라시’를 조목조목 반박한 글 읽었다. 학원 강사로서는 돈도 안 되는 일인데, 그 열정이 놀라웠다.
돌아보면, 신혼 초에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쫓겨서 어쩔 수 없이 학원 강사를 시작했다. 처음 계획에는 몇 년 하다가 신대원도 가고 기독운동을 제대로 시작하고 싶었다. 막상 들어서니까 그렇게 안 되더라. 먹고 살만해지고 나이도 들어 가면서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다. 순간순간 절망을 느꼈다. 배부른 돼지가 됐나 싶고, 앞으로 갈 바를 모르겠어서 학원 나가는 길에 멍하니 멈춰 서 있었던 적도 여러 번이다. 양심이 바르고 믿음이 좋으신 장인어른을 붙잡고,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요즘엔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내가 계획했던 일도 아닌데 내 강사 이력을 하나님이 이렇게도 쓰시나 싶다. 그 섭리가 놀랍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대학생 제자들과 함께 인문학 공동체 ‘깊은계단’을 꾸려가는 것으로 안다. 학원 강사가 ‘인문학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게 신기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깊은계단’의 시작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모임이었다. 처음엔 기독교인 모임으로 시작했었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있고, 나름 세상을 바꾸는 건 교육이라고 생각해서 역사교육학과에 들어갔다. 소위 운동권 학과였으나 민주 정부가 들어선 때라서 돌을 던질 구체적인 대상이 없었다. 선배들이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이야기하면서 신을 설명하는데,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아 선교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선교단체도 경건주의에 머물 뿐, 사회에 별 관심이 없는 모습에 한계를 느꼈다. 다른 기독교 단체를 찾아다니다가 두레공동체로 들어갔고 인문학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됐다. 그때 기독운동에서 새로운 시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같은 고민을 하는 동기들과 우리 나름으로 인문학운동을 시작한 게 ‘깊은계단’이었다. ‘깊어질수록 올라간다. 깊이 사고하고 인문적인 정서를 함양할수록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의미다. 그렇게 8년 정도를 이어갔는데 어느덧 구성원들 나이가 30대에 접어들어 생활이 바빴다. 후배 양성에 실패했고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중간에 다시 모인 적도 있지만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 수업을 받은 제자들과 다시 시작하게 됐다.

― 어떻게 다시 시작하게 되었나?
뜻밖에도 내가 과외했던 제자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좋은 대학을 간 친구였는데 의미 있게 살고 싶어서 좌충우돌 했나보다. 그러다 답이 안 나오는지, 나한테 “과외비를 줄 테니 좀 도와달라”고 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게다가 얼마나 고민이 크면 돈을 주고라도 살아갈 방법을 찾을까 싶더라. 그게 시작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지속하기) 어려운 게 독서모임인데, 때마침 다른 제자들과도 연결이 돼서 제자들 너댓 명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다들 알겠지만 요즘 학생들 분위기가 얼마나 삭막한가.(웃음)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건데 왜 도와줘야 하느냐’는 숨이 턱 막히는 질문도 받았다. 하지만 인문성을 체험하면서,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면서 변하더라. 그 친구들과 동고동락하고, 다른 제자들도 들어오면서 3년 정도가 지나니까 이제 ‘역사-철학 2년 과정’이 자리 잡혔다. 깊은계단 총 인원이 현재 40명 정도인데, 매주 10~20명이 꾸준히 모임에 나온다. 격주로 성경공부 모임도 있다. 절반이 비기독교인이다. 처음엔 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 점점 기독교인화 되는 것 같다. 올해가 어느덧 15주년이다.

― 청년 때 막연히 생각하던 운동을 실현해 내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노정 중에 있다. 졸업생도 나오고 나름 순환하는 구조도 만들어져 여유가 좀 생겼다. 깊은계단을 다시 시작한 건 정말 기적 같다. 스스로도 의미를 못 찾던 직업을 통해서 하고 싶던 운동의 기초를 다져가고 있다. 이런 때 국정교과서 사태가 터진 것도 그렇고. 이번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기독인 모임 포럼에도 참석하면서 본의 아니게 예전 자리인 기독운동판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바뀐 건 거의 없더라. 불혹을 바라보는 내가 여전히 막내인 분위기엔 정말 깜짝 놀랐다!

― 긴급 포럼 당시 발제 내용이 구체적이고 쉬워서 인상적이었다. 발제문에 “통일 관련 문제의 출제가 사라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 하에서 엄격한 집필 기준에 의한 완전 검인정제도를 통해 교과서의 다양성이 축소되면서 수능 문제의 경향도 지속적으로 바뀌어 왔다는 말이다. 꾸준히 출제가 되던 통일 관련 문제가 나오지 않고 있고, 새마을운동에 대한 옳은 서술을 고르는 문제에서 부정적인 측면을 표현하던 부분이 없어진 게 구체적인 예다. EBS 교재의 경우 보수 우익 뉴라이트 계열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으로 미는 (그러나 업적이라고 할 수 없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관련 지문과 문제가 많이 출제되기도 했다. 이런 뚜렷한 경향성이 최근에 눈에 띄게 나타난다. 검인정 체제가 강화되고, 엉터리 교학사 교과서가 사회문제가 되고, 문창극 씨와 같은 역사 인식을 가진 사람이 총리 후보로 나오는 것들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고 본다.

   
▲ jtbc 뉴스 영상 갈무리

― 그 과정이 국정교과서로 가기 전의 수순, 분위기 만들기였을 수도 있다는 얘긴가?
국정교과서 카드를 꺼내기 전에 충분히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는 느낌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주류 신문이 어떤 사안에 대해 논조를 정하여 써내면 하나의 프레임이 형성된다. 그러면 누구도 그 바깥에서 사고하기가 어려워진다. 다른 입장이라고 해도 그 프레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교과서 교육도 그와 비슷하다. 배울 내용을 한 가지로 정해 놓고, 거기서 시험 문제가 출제되고, 시험에 나오는 것 위주로 외우고 공부하게 된다. 그러면 학생 때 공부하고 외운 내용들이 이후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에, 인식이라는 판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외우는 순간에 이미 역사를 인식하는 틀이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사고의 바탕도 규정되기 마련이다. 과정에 대한 의도적 시나리오가 있든 없든, 국정교과서 추진은 노골적으로 그 의도가 빤히 보인다. 국가가 단일적인 교과 교육으로 미래세대에게 특정 역사관을 강제 주입하겠다는 거다. 심각한 문제다.

― 반대 여론도 높고, 역사학자 대다수가 집필 거부 선언을 했는데도 확정고시 이후 교과서는 집필 수순에 들어갔다.
신문 기사를 본 분들은 알겠지만,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도 반대했다. 이분은 과거에 한국 역사학계의 좌편향을 못 막았다면서 보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인터뷰를 하신 분이다. 뉴라이트 계열의 교학사 교과서도 통과시켜준 아주 보수적인 학자이기도 하고. 이분도 반대할 정도고, 여론은 당연히 안 좋다. 그런 교과서 편찬에 누가 참여하겠나. 그런데도 밀어붙였다. 항간에서는 굳이 역사학자가 집필할 필요 없다며 경제학자나 사회학자가 쓴다는 소리도 들린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만, 지금 집필진 명단 공개를 놓고도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 교과서가 1년 만에 만들어진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어마무시한 부실교과서가 나올 거다.

― 정부가 국정교과서 확정고시를 하는 한편,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학생들에게 긍지와 패기를 심어 주는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커지는 반대 여론에 대한 탈출구를 민족주의에서 찾아보려는 시도 같다. 《환단고기》(일제강점기 때 한국 상고사에 관한 계연수의 저서) 같은 사관을 들먹이면서 찬란한 고대사, 상고사 운운한다. 이 말인즉, 역사 교육의 핵심이 논쟁적인 현대사가 아니라 ‘찬란한 고대사’라는 의미 아닌가. 그럼 근현대사 비중이 줄어들 거라는 이야기다. 현대사는 지금도 30쪽도 안 된다. 여기서 더 줄인다는 의미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사적 잘못을 최대한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데 집중할 거라는 의도다. 지금도 EBS 강사들은 ‘5·16’에 ‘쿠데타’라는 용어를 못 쓰고 ‘군사정변’이라는 용어로 대체한다. 더 완곡한 표현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또한 《환단고기》는 알고 보면 찬란한 고대사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석기시대부터 동북아 지역 범위를 넘은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주장을 담았는데, 아무런 사료도 없다. 정통 학계에서는 인정 못 받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교과서에 실릴 만하지 못하다. 대륙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과거 일본이 고안한 대동아공영권 개념과 무엇이 다른가. 엉터리 민족주의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 지난 10월 24일 서울 도심에서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학자들도 대규모 거리행진을 했다. 학자들은 오후 4시께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거리행동에 참여하는 역사 연구자와 교수 일동' 명의로 성명을 발표한 후 행진을 했다. 안병욱, 이이화, 윤경로 등 원로 사학자부터 교사, 역사전공 대학원생까지 300여 명이 참여했다.

― 새누리당 주관 ‘역사 바로 세우기’ 포럼 강연자인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은한 술 더 떠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그 대목에서 ‘역사 교육’의 위기가 곧 ‘교육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역사교과서가 편향됐다고 주장하는 근거에 따르면, 좌편향 아닌 교과서는 과학이나 수학 말고는 없을 거다. 〈사회문화〉 교과서의 핵심이 막스 베버의 기능론과 마르크스의 갈등론이다. 마르크스는 ‘빨갱이’니까 빼버려야 하나?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도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이 나오는데 이것도 빼야 하나? 공자가 대동사회 평등사회 주장하는 것도 빼야 하고,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도 빼야 하나? 아마 <윤리와 사상> 교과서가 최고 좌편향 교과서가 될 거다. 경제교과서에서 분배 이야기가 축소될 거라는 소리도 들린다.

― 중고생들도 길거리로 나와서 ‘국정교과서 반대’를 외치는 판에, 지지 선언을 보태는 신학 교수들이 있다. 적잖은 신도들이 그 의견에 동조를 한다. ‘한국사회에 대한 개신교의 기여 부분이 왜곡 축소되어 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 개신교회의 한국 근현대사 기여 업적이 빠져있거나 대폭 축소되었다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한국사는 종교사가 아니기에 당연히 종교 분량이 적을 수밖에 없고, 타종교에도 마찬가지다. 분량으로 따지면 오히려 다른 종교보다 개신교 분량이 더 많다. 선교사들의 사립학교, 병원 설립 이야기도 다 나오고. 알렌과 헐버트 선교사 이야기도 나온다. 대표적 민족운동단체인 신민회 활동도 정확히 ‘기독교 탄압 운동’으로 서술된다. 타종교에 비해 차별받고 있지 않다. 설사 국정교과서가 새로 나온들 개신교 부분이 더 반영될 리는 없다. 무엇보다, 교회나 신학 교수들은 ‘역사학계’가 아니다. 교과서 내용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학술적 연구 결과를 통해 토론되고, 그중에서 통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어야 한다.

― 앞으로 국정교과서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구르다 지쳐가거나, 패배에 익숙해지는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
일단 나는 아직 지치지 않았다.(웃음)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인줄 알면서 뛰어들었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질 부분엔 끝까지 갈 거다. 사실 깊은계단 같은 형태의 인문학 운동이 안정적으로 여기저기서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들어 구체적으로 관심 갖는 일은 근현대사에 대한 시민교육, 인문학의 대중화이다. 아까 잠깐 언급했는데 더 강력한 시민 저항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 열망을 운동으로 바꿔줄 콘텐츠가 없어서가 아닌가 한다. 사람들이 책을 조금이라도 더 읽고, 그 안에 콘텐츠가 쌓이고, 그렇게 사람이 바뀌고 시민의 수준이 올라가는 방식에 장기적으로 에너지를 쏟고 싶다. 이미 그 기회가 열린 것도 같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때에 시민강좌도 열고 싶다. 지금의 관심이 식지 않으면 좋겠다. 사실 역사뿐 아니라 노동과 복지에 관한 강좌들이 열리면 당장 뛰어들고 싶다.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대로 역사교육, 시민교육을 곳곳에서 시작하면 된다. 막연하지만 그런 일들이 여기저기서 시작만 된다면 국정교과서 위기는 오히려 기회라고 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에서 그런 붐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 앞서 기독운동판으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했다. 변한 게 거의 없어서 놀랐다고 했는데….
그냥 내 생각이지만 더 열려 있고, 콘텐츠나 형식에서 고유함이 있으면 좋겠다.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그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 그게 곧 운동의 콘텐츠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 더 열려 있어야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새로운 해석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포기해야 하는 건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여전히 예전 담론들을 반복하면서 내부만의 논쟁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얼마 전 EDM 논쟁에서도 현재 문화나 사회에 관한 이해 없이 신학 관점으로만 접근한다는 태도가 느껴졌다. 과도한 신학적 사고 같다. 우리는 급변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데, 신학은 정체되어 있다. 과거에 멈춰 있는 신학으로 무장한 기독운동이 무슨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세상을 어떻게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까. 차라리 우리가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일반 철학을 공부하면서 신앙과의 접점을 찾으며 우리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현 정권도 그렇지만, 기독운동판에서도 이미 답을 정해놓은 ‘답정너’라는 한계를 느낀다. 세계관이 너무 좁다. 예를 들어, <복상>에서 불가의 〈법구경〉(法句經)을 다루면 왜 안 되나? 우상숭배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서 현실을 살아내는 기독교적 통찰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성리학과 기독교의 접점을 파보려고 한다. 정약용의 사상과 그 세계관이 마테오 리치와 같고, 예수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도 매우 유사하다. 유명하다는 서양 신학자들 논리를 앵무새처럼 따라하지만 말고 우리 고유의 이야기,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기독교인들끼리만 모이지 말고 구분 없이 다 섞여서 활동하는 장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예수님은 ‘아무나’ 불러주셨다.

― 노하우를 공유해주면 좋겠다.
아무나 깃발 들고 나서고, 저마다 자발적으로 모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의 협소한 운동 구조를 점차 바꿔 나가면 어떨까? 깊은계단을 예로 들면 대표인 나를 포함해서 후원하는 이전의 졸업생들은 먹고사는 개인 직업이 다 따로 있다. 이렇게 작고 지속가능한 모임이 더 많아져야 급변하는 사회와 치명적 위협으로부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다양하고 지역적인 시민단체가 힘을 발휘하는 일본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그리고 모임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가는 데는 참신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훈련, 평등하게 소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사람이 변하고, 그렇게 사회도 변하는 거 아닐까. “기독교인만 결집하라”는 구호도 이제는 필요가 없다. 경계 없는 공부와 활동이, 오히려 우리 기독교인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작이 아닐까. 

※ 심용환 씨 페이스북이나 블로그(http://lyanga.blog.me/)에서 국정교과서와 역사 교육에 관한 각종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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