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호 잠깐 독서]
율법을 주야로,
온몸으로 묵상한다는 것

말씀 앞에 울다
김기현 지음
SFC 펴냄 / 11,000원
“내 영혼의 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저자가 SNS에 연재한 5백여 개의 짧은 묵상 중 2백여 개를 가려뽑은 것이다. “내가 읽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저자가 성경의 사람이 되고자 매일매일 온몸으로 성경을 읽은 흔적이다.
내 묵상법은 간단하다. 내가 그가 되는 것이다. 성경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읽는 것이다. 폼나게 말하면 ‘상상하며 읽기’이다. 성경의 마음,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의 심정을 상상하며 마치 내가 그분과 그들이 되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읽었다. … 그렇다고 내 멋대로 읽은 것은 아니다. 억지로 풀면 망한다.(벧후 3:16)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본문을 소리 내서 네댓 번 읽는다. 그러면서 가닥과 줄기를 잡고, 전체 이야기를 수렴할 만한 딱 한두 단어에 집중했다. … 머리와 가슴, 입과 손으로 읽었다. 김수영시인의 말마따나 머리나 가슴이 아니라, 입과 손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갔다. 온몸으로 동시에 밀어붙인 자취가 이 글이다. (‘서문’에서)
권력은 어떻게
역사를 장악하는가

역사전쟁
심용환 지음
생각정원 펴냄/ 16,000원원
치열하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은 역사학계의 대대적인 집필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코 국정교과서를 내는 방향으로 ‘일단락’ 된 상황이다. 이 시점에 때맞춰 나온 이 책은 역사의 권력들이 어떻게 역사 장악을 시도해왔는가를 시작으로, 교학사 교과서 분석을 통한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 문제를 짚는 데까지 자세하게 역사 전쟁을 다룬다. 저자는 다름아닌 정부의 ‘국정화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던 심용환 씨다.
교학사 교과서 분석의 종장이 다가왔다. 주목할 것은 뉴라이트 학자들은 민주화를 축소하는 것을 넘어 폄하와 비방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들은 5·18 민주항쟁을 폄하하고 있다. … 개성공단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 … 통일 정책에 대한 교학사 교과서의 입장은 현행 교육부 가이드 라인과 전면 배치된다. (343, 347~348쪽)
룻기에서 발견한
이 시대 교회와 성도의 자화상

룻기
조영민 지음
죠이선교회 펴냄 / 15,000원
내수동교회와 분당우리교회 등에서 청년 사역에 몸담았던 조영민 나눔교회 담임목사의 룻기 강해. 설교집은 거의 소개하지 않지만, 위기에 처한 교회에 부임하여 전한 첫 설교를 눈물을 쏟으며 들었다는 성도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이 설교집만큼은 소개하고 싶었다. 손주들을 품에 안고 ‘꽉 찬’ 만년을 즐길 나이에 오히려 ‘텅 빈’ 인생 위기에 봉착한 여인 나오미에 주목하면서, 이 시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텅 빈’ 상황을 조명한다.
베들레헴이라는 지명은 ‘집’을 의미하는 ‘베이트’와 ‘빵’을 의미하는 ‘레헴’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빵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 1장1절 “그 땅(베들레헴 = 교회)에 흉년이 드니라”라는 말은 “빵집에 빵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빵집에 빵이 없는데, 사람들이 빵집에 남아 있어야 합니까? 빵이 없는 빵집에서 떠나는 것을 사람들의 잘못이라 말할 수 있나요? … 진짜 문제는 빵집에 빵이 없었다는 것, 하나님이 계셔야 할 거룩한 땅 베들레헴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26~27쪽)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리즈

고린도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조병수 지음/ 성서유니온 펴냄/ 18,000원
소예언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김근주 지음/ 성서유니온 펴냄/ 30,000원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리즈 최신간 고린도전서 편과, 소예언서 제1권(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이다.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한 다양한 문제들은 지금 여기 한국교회의 문제 그대로이며, 소예언서에서 이스라엘의 그릇된 종교 체계를 향한 예언자들의 외침 역시 지금 우리에게 외치는 소리로 읽힌다.
이 땅의 교회들은 온갖 지저분한 이유로 분쟁하고, 영적 음행뿐 아니라 신체의 음행으로 더럽혀지고, 세속화와 자유화로 신학은 어지럽다. 그리스도의 몸은 분열되고 오염되고 혼란스럽다. (《고린도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10쪽)
구약 시대 이스라엘이 수많은 제사와 종교 행위에도 불구하고 성전이 무너져 죽게 되었다면, 오늘 우리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성전에 들어가지 말고, 교회당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해야 하지 않을까? (《소예언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572쪽)
